내 소파 위의 남자들
브랜디 엔글러, 데이비드 렌신 지음 | 명진출판
내 소파 위의 남자들
브랜디 엔글러, 데이비드 렌신 지음
명진출판 / 2013년 6월 / 272쪽 / 14,000원
성공한 남자들은 왜 바람둥이가 될까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한 금융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데이비드는 훤칠하고 미식축구 선수처럼 다부진 몸에 고급 정장을 걸치고 진료실로 들어왔다. “이거 영광입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 분이 치료사 선생님이실 줄은 몰랐는데요? 왠지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같네요.” 도발적인 말을 던지기는 했지만, 그의 눈빛을 보면 진정한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걸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조용한 말투로 그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도대체 사랑이 뭡니까? 좀 도와주세요.” 사랑이 뭔지 알고 싶어 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내 여자 친구는 정말 끝내주는 여자입니다. 키도 크고 머리도 금발에다 모델입니다. 그런데 그런 여자 친구를 놔두고 바람을 피워요. 이상하게 자제가 안 돼요. 밤에 여자 친구가 일하러 가면 친구들하고 술집에 가서 곧장 번호 따기 내기를 하는 겁니다.”
“번호 따기요?” “네. 그 방면으로는 이 몸을 따라올 사람이 없죠.” 그는 자신이 여자에게 작업 거는 방법을 자랑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몇 번이나 하는 거죠?” “하룻밤에도 여러 명한테요.” “무슨 목적으로?” “전화번호 따려고요. 어떨 땐 진도를 더 빼기도 하고요. 아주 짜릿해요. 경기에서 이겼을 때처럼.” “섹스까지 하는 건가요?” “그럴 때도 있죠. 하지만 한 번 하고 다시는 안 만나요.” “섹스는 어때요?” “좋아요. 하지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친구들과 술집에 가서 번호를 따는 과정이에요. 섹스보다 헌팅이 더 재미있죠.” 내가 치료사로 일하면서 얻는 가장 큰 성과는 남자의 성적 행동에서 그의 성격과 감정적 필요에 관해 상당히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성적인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의 사랑 능력, 자존감, 자기표현 정도, 개인적인 힘, 더 나아가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둔 문제들까지 파악할 수 있다. 섹스는 자아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본인이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궁금하시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봤나요?” “내가 엮이고 싶지 않은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면서 관계를 망쳐버리기 때문이에요. 난 결혼해서 정착하고 싶습니다. 이젠 먹고사는 데 아무 문제 없고 친구들은 다 결혼해서 좋은 동네에 있는 큰 집에 살아요. 내 아내가 제일 예쁘고 내 집이 제일 컸으면 좋겠어요.” 데이비드를 가장 많이 붙들고 있는 것은 경쟁심이었다. 그가 밤마다 친구들과 전화번호 내기를 하는 이유가 승부 근성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여자들이 날 원하게 할 때 쾌감을 느끼는 놈인가 봅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데이비드를 원하게끔 하는 게 중요하단 말이군요.” “네.” “그게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요?” “내가 여자를 유혹할 때 자존심을 느끼는 놈이란 뜻인가 보죠.” 데이비드는 상대를 수단으로 보는 쪽에 있으면서도 멋진 사람으로 인정받기에만 급급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을 가진 듯 의기양양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항상 좋은 소리만 듣고 싶어 하고,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다. 반대로 여자는 항상 자기한테 아낌없이 주기만 해야 했다.
데이비드는 여자 친구와 성적으로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잘 몰랐고, 자신이 그런 상태라는 것 역시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밤마다 헌팅을 하는 이유를 스스로 돌아보게끔 하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여자들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해요.” “그래서 난 여자 친구가 있으면서도 만약을 대비해서 또 여러 명을 준비해놓나 봅니다.” “그러면 안전하단 느낌이 드나요?” “사실 난 혼자 있는 게 정말 싫어요. 견딜 수가 없어요.” “그게 어떤 느낌인지 설명해줄래요?” “그건… 여기가… 텅 빈 느낌이에요. 그리고 나를 주체할 수 없어요. 꼭 나란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겁이 나요. 여자한테 전화해야 해요. 안 그러면 참을 수 없어요.” 몇 달에 걸친 진료 끝에 우리는 그를 꽉 잡고 있는 고통의 정체를 밝혀냈다.
“데이비드는 어떤 여자든 유혹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여자들이 결정하게 하고 있는 거예요. 뭐가 잘못된 걸까요?” “나 혼자서는 내가 사랑받을 존재라는 것을 못 느끼는 거요.” “데이비드는 다른 사람에게 너무 큰 권력을 주고 있어요. 자신이 사랑받을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지만, 바로 그 욕구 때문에 아무리 인정을 받아도 절대로 만족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 없어요.” “어떻게 하면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믿겠어요?” 그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나 자신을 사랑하란 말인가요?” “네. 그게 지금의 행동 방식에서 벗어날 방법이에요.” 자아도취가 하늘을 찔렀던 그에게 내가 요구한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몇 가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일은 계속 월스트리트에서 했지만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거처도 브루클린으로 옮겼다. 시간이 나면 술집에 가서 전화번호를 따는 것이 아니라 기타 연습을 했다. 책도 읽고 박물관에도 갔다. 나는 데이비드와 1년여를 일하면서 그가 천천히 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우리는 여자를 꾀고 다니는 남자들을 보면 쓰레기 취급을 한다. 하지만 이유를 알면 그렇게 간단히 치부할 수가 없다. 그런 남자들은 사랑, 신뢰, 인정에 대한 욕구를 제대로 풀지 못할 뿐이다. 누구든지 그 욕구 때문에 비합리적이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기 쉽다. 그런 면에서 데이비드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왜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무덤덤해질까
지적인 풍모의 제약회사 연구원인 앨릭스는 3년을 사귄 여자 친구 카샤 때문에 나를 찾아왔다. 그는 여자 친구가 자신과의 섹스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라져가는 그녀의 성욕을 되살리고 싶어 했다. 나는 카샤를 만나 그녀의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연인이라는 것은 둘째 치고 서로 알고 지내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녀는 앨릭스의 지적인 면을 높이 산다고 했다. 카샤는 앨릭스와의 섹스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다른 남자와의 섹스는 좋아한다고 했다. “앨릭스와 계속 살고 싶어요. 하지만 그 사람에게 별로 끌리지 않아요. 그래도 어떻게든 잘해보고 싶어요. 좋은 사람인 것을 아니까요. 어떨 땐 그냥 오빠나 좋은 친구 같은 거 있죠. 난 지금이 만족스럽고 또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불꽃이 없어요. 나한테는 불꽃이 필요해요.” 그것은 사실,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사귀지 않는 한 해결하기 어려운 딜레마였다.
“앨릭스하고 섹스는 어떤가요?”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앨릭스는 따뜻하고 자상하지만 그와의 성관계는 봉사활동에 가까웠다. 섹스가 의무가 되면 귀찮지만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된다. 그러면 마음이 멀어지고 화가 치민다. 거기에 자연스러운 즐거움이 없다. 카샤는 다른 남자와의 섹스에서 만족을 느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앨릭스도 지난 1년 동안 카샤와 나눈 섹스를 두고 “알맹이가 빠졌다.”고 말한다. 형식적인 눈 맞춤, 딱딱하고 기계적인 애무, 텅 빈 눈동자, 카샤가 아무리 신음소리를 내고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 연기를 해도 정서적인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 앨릭스는 카샤를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애를 쓰면 쓸수록 카샤는 흥미를 잃어갔고, 그의 박탈감은 더욱 커졌다. 앨릭스는 그녀에게 내면의 갈등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불안한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나에게 온 것이다.
나는 카샤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 아나요? 자신의 욕망은?” 하고 물었다. 그녀는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그녀는 남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사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냥 손 놓고 가만히 있어도 남자들이 자신을 원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정서적 욕구고, 또 여성이 만성적 성욕 저하의 덫에 걸리기 전에 보이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섹스로 자존심을 세우려고 하면 처음에는 만족스러울지 몰라도 그런 즐거움은 일시적일 뿐 오래가지 않는다. 그녀는 남자들에게 욕망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자존심의 명령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자연스러운 성적 욕망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욕정을 찾도록 돕고 싶었다. 앨릭스는 카샤의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했지만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카샤 역시 앨릭스가 따분하다고만 생각했지 자신이 따분하게 군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앨릭스는 카샤를 유혹하기 위해 뭘 하나요?” “음… 난 카샤가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려고 애 씁니다. 키스하고 정성껏 애무를 합니다.” “오르가슴만 느낀다고 섹스가 즐거워지는 건 아니죠. 앨릭스는 목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여자의 몸은 이렇다’라는 잡다한 지식과 섹스 테크닉은 다 갖다버렸으면 좋겠어요. 중요한 건 과정이에요! 두 사람이 어우러져 펼치는 춤사위랄까, 그런 게 섹스를 짜릿하게 하는 거란 말이죠. 앨릭스는 안정감, 우정, 사랑을 주려고 노력해요. 카샤는 앨릭스와 가장 친한 친구죠.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해요. 카샤에게 섹스 토이가 돼야 해요.” 프로이트가 말한 근친상간 금기가 생각났다. 연인들은 시간이 지나면 서로 너무나 익숙해져 상대를 성욕의 대상이 아닌 가족으로 보게 된다. 서로 이성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앨릭스에게 새로운 준거틀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가 그때까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서 연애에서 성욕의 불꽃을 다시 지폈으면 했다.
환자가 성적인 환상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환자 스스로 자신이 처한 현재 위치에서 직접 첫발을 떼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각화 훈련이 유용하다. 나는 앨릭스의 눈을 감기고 어떤 느낌이나 환상이 떠오르는지 물었다. “슬퍼요. 카샤를 잡고 싶어요.” “좋아요. 이젠 거기에 성욕을 더해봐요. 환상을 좀 이용해보는 거에요.” “카샤를 아파트에 감금하고 싶어요. 도망가지 못하고 꽁꽁 묶어두고 내 여자가 되겠다고 맹세하게 할 겁니다. 섹스도 실컷 할 거고요. 그녀의 몸을 마구 먹어치울 거예요. 막 깨물어서 여기저기 자국을 남길 거예요.” 나는 앨릭스가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 두려움을 강력한 환상으로 바꾸기를 바랐다. 첫 시각화 훈련을 한 날 앨릭스에게 그날 밤 카샤와 잠자리에 들 때 그녀를 소유하는 환상에서 나오는 성적 에너지와 욕망을 잘 이용하라고 일러줬다. 하지만 그는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환상을 생각하다가도 침대에 누워 있는 카샤를 보면 몸이 바싹 얼어붙은 겁니다. 내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해지는 거죠.” “연기를 하는 건 지금이 아니라 이전의 앨릭스였어요. 지금은 솔직해지려고 노력하는 거죠.” 앨릭스는 상대를 만족시키겠다는 욕망이 지나치게 컸다. 나는 그가 자신감을 키워서 불안을 잠재우도록 돕고, 한편으로는 카샤가 다시 성욕에 불타오를 수 있게 도와야 했다.
카샤에게 말했다. “앨릭스는 카샤가 자신의 관능적인 면을 탐색하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돼줄 거예요. 하지만 위험과 불확실성을 참아내야 해요. 그렇게 자기 속을 들여다봐야 해요.” 성욕은 겉으로 드러나는 게 다가 아니다. 욕구는 에너지다. 성욕은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성욕은 섹스보다 강한 기운이며 우리의 열정, 창의성, 생명력에 불을 지핀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성감은 섬세한 것이어서, 상대방과 관계가 달라지거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 또는 자기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쉽게 위축되고 무시당한다. 그러면 우리는 불감증에 걸리거나 성욕 감퇴에 시달린다. 나는 카샤에게 자신의 욕구에 불을 지피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스스로 성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법을 배우면 욕구를 시들지 않게 보존할 바탕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카샤는 사무실로 배달된 소포를 받았다. 발신인은 적혀 있지 않았고 검정색 드레스와 오늘 저녁 8시에 포시즌 호텔에서 만나자는 쪽지가 들어 있었다. 그날 저녁 지난번 우연히 만나 섹스를 했던 러시아 남자와의 만남을 기대하면서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호텔로 나간 카샤는 그곳에서 근사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앨릭스를 만났다. “아주 잘 어울리네.” 앨릭스가 다가와서 열쇠를 건넸다. “먼저 올라가 있어. 금방 갈 테니까.” 스위트룸에 들어가 보니 침대 위에 란제리가 든 상자가 들어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다른 남자와의 외도는 자기가 앨릭스에게 바랐던 것,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바랐던 것의 대체품일 뿐이었음을.
남자와 여자의 욕구는 다른 걸까
30대 중반의 평범한 중산층인 케이시가 진료실로 나를 찾아왔다. “저는 여자 친구와 섹스하는 것보다 야동을 보는 게 더 좋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케이시의 여자 친구인 에이미는 얌전하고 교양 있는 숙녀이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케이시는 혼자 컴퓨터 앞에서 야동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야동 속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여자들은 그가 흠 없는 도자기 인형에 비유한 에이미와 정반대였다. “침대에서 여자 친구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너무 빤하고 밋밋해요. 그렇다고 야동에서 본 것을 그녀에게 할 수는 절대 없는데, 난 그런 것을 봐야 흥분이 돼요.”
“케이시의 성생활은 분열되어 있는 것 같아요. 에이미와 있을 때는 애정이 넘치지만 자신의 성욕을 억누르고 있어요. 어쩌면 그 욕구가 밖으로 드러내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케이시에게 야동을 좋아한다고 에이미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는지 물어봤다. “난 에이미를 정말로 존중하고 흠모합니다. 인터넷에서 본 걸 그녀랑 하면 마음이 편치 않을 거예요.” “중요한 건 케이시가 보는 이미지의 내용이 아니에요. 두 사람의 관계에서 관능적인 욕구가 빠진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한 거죠. 내 생각엔 여자 친구와의 섹스가 지루한 건 관능성이 떨어져서인 것 같은데요.” “에이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게 왜 나쁘다는 거죠?” 그는 에이미가 어떻게 생각할지를 걱정하다 보니 욕구가 심하게 억눌려서 엉뚱하게 야동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케이시는 야동에 빠져서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야동을 보며 흥분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억압과 왜곡된 표출을 되풀이하면서 둘로 나뉜 채로 살아야 할 것이다. 케이시가 원하는 것은, 그가 욕구를 느끼는 성행위를 에이미와 함께하는 것이었다. 욕구는 나쁜 게 아니다. 문제는 사랑과 관능성을 별개로 보는 점에 있다. 케이시의 마음 깊은 곳에는 거침없고 도발적인 섹스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지만 에이미의 고상한 성격 때문에 그런 욕망을 분출할 길이 막혀 있었다. 하지만 하루는 그가 건전한 공격성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이 공원을 걷다가 어떤 매력적인 여성을 만났는데 그 순간 그 여자를 집어삼킬 수 있다는 충동을 느꼈다고 고백 했다. 건전한 공격성은 분노, 증오, 가학, 파괴가 뒤섞인 야동의 공격성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야성적이고 육체적인 끌림에서 비롯된 활활 타오르는 정열에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번에는 케이시가 에이미를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에이미가 못마땅하다는 투로 말했다. “이 사람 달라졌어요. 아주 섹스에 푹 빠져서 새로운 체위로 하자, 색다른 장소에서 하자, 밧줄로 묶고 하자. 그런 소리만 늘어놔요. 선생님이 그러라고 시킨 거예요?” “케이시가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드나요?” “배신당한 기분이에요. 뭐죠? 이젠 내가 충분치 않은 건가요?” “요즘 케이시에게 사랑받는다는 기분이 안 든다는 말로 들리네요.” “사랑의 ‘사’ 자도 없어요. 이용만 당하는 기분이에요.” “에이미를 사랑하기 때문일 수도 있잖아요?” “그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요?” “그렇게 성생활에 일어난 변화를 두고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해봤나요?” “우리는 성생활에 대해서 얘기 안 해요.” “왜요?” “서로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풀릴 테니까요.” “그건 위험한 착각이에요. 섹스가 항상 좋을 수는 절대로 없어요.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늘 섹스까지 좋을 수 없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