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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남자들의 이야기 댄디즘

쥘 바르베 도르비이 지음 | 이봄
멋쟁이 남자들의 이야기 댄디즘

쥘 바르베 도르비이 지음

이봄 / 2014년 2월 / 168쪽 / 13,000원





10가지 키워드로 보는 댄디의 초상_ 이주은



1. 엄격함 - 순백색 셔츠와 한정된 장식품

댄디는 냉담하고 흐트러짐 없이 보여야 하므로 새하얀 셔츠를 입는 것이 기본이었고, 윤기 나는 순백색 그 자체로 멋의 승부를 봐야 했다. 셔츠는 반드시 매우 청결해야 했으며, 턱까지 닿는 높은 칼라에 풀을 먹인 것이었다. 진정한 댄디는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라 완벽함을 위해 깎고 씻고 면도하고 부츠를 닦는 데 그리고 넥타이를 매는 데 정성을 쏟았다. 과식은 미식가의 미덕이 아니듯, 댄디의 치장에도 쓸데없이 넘쳐나는 군더더기란 찾을 수 없었다. 장식품은 보석장식 대신 외알안경과 줄 달린 시계, 지팡이와 장갑 등 용도를 지닌 물건들에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낱개의 품목들이 그 어느 하나 허름한 것 없이 모두 완벽했다.

2. 관능 - 몸에 딱 붙는 옷

몸의 선이 드러나게 입은 쪽이 댄디 성향에 가깝다. 댄디의 개성표현은 특별한 장식에 있지 않고 아름답고 호리호리한 몸매를 부각시키는 착 맞고 구김 없는 차림새에 있었다. 타이트한 옷감 밑으로 몸과 살의 느낌이 드러나는 것은 댄디를 에로틱하게 연출하는 효과가 있었다. 형태미를 추구하는 댄디에게 멋이란 우아한 선과 고급스런 천의 재질감이면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댄디는 재단사를 미치게 할 정도로 세심한 요구가 많았고 극도로 까탈스러웠다. 브러멀 역시 꼭 맞는 옷을 착용했는데, 특히 장갑은 손가락 부분과 손등 부분을 나누어 재단할 정도였다. 그의 장갑은 손톱 주위까지 완벽하게 싸줄 정도로 꼭 맞게 재단되어 있었다.

3. 자연스러움 - 연출하지 않는 연출

가늘고 길고 창백한 손. 이것이 댄디의 체형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댄디들이 추구한 옷차림에는 그처럼 가는 몸과 창백한 얼굴이 잘 어울렸다. 때문에 뱃살이 접히거나, 목살이 늘어지거나 해서는 안 되었다. 브러멀의 스타일을 좋아했던 영국의 왕 조지 4세는 식탐으로 인해 점점 살이 불어나자 코르셋을 착용해 허리를 조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부자연스러운 연출은 댄디가 스타일을 통해 추구하려 했던 우아함과는 거리가 한참 먼 것이었다.

4. 경계인 - 귀족과 부르주아 사이의 반항아

역사적으로 댄디는 서구에서 근대 시민사회가 형성된 과정에 탄생했다. 즉 근대 시민사회를 이끈 양대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18세기 산업혁명과 계급혁명이 낳은 독특한 산물이 바로 댄디라 할 수 있다. 로코코 스타일 귀족의 형형색색 화려한 복장에 저항하려는 듯 검은색 프록코트, 검은 실크모자, 검은 장갑을 낀 사람들이 거리에 나타났는데, 이들을 댄디의 시초로 볼 수 있다. 댄디는 우르르 섞여 있는 ‘천박한’ 군중들 속에서 결코 자신이 그들과 섞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댄디는 자본과 노동을 절대적인 원칙으로 삼고 있는 부르주아의 실용주의적 가치관을 정면으로 배격하면서, 그는 스스로 품위 있고, 고상한 취향을 지닌 엘리트가 되길 꿈꾸었다.

5. 신비주의 - 베일에 싸인 인물

영국의 안개와 우울, 깔끔한 브랜디 맛, 거만함과 냉정함, 체면을 중시하는 형식적인 성향, 자기통제의 이상이 만들어 낸 인간형이 바로 댄디이다. 여기에 프랑스적인 기교와 섬세함이 더해져야 완성된 댄디가 탄생한다. 따라서 댄디는 그 자체로 신비로울 수밖에 없었다. 댄디는 극도로 세련된 어휘를 써서 주의를 끌었으며, 심지어 어떤 말은 독특하게 발음해서 마치 그 말이 발화됨과 동시에 무엇인가 신비로움이 발산된다고 믿게 할 만큼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세련된 어휘의 구사와 수려한 외모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던 19세기의 대표적인 댄디는 문필가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 백작이었다. 자신만의 문학 살롱을 운영하며, 여러 예술가와 교류했던 그는 댄디즘에 대한 샤를 보들레르의 생각을 그대로 인물로 옮겨놓은 듯하다.

6. 무관심 - 교양 없는 세상 견디기

영국에서 민주주의가 전성하지 못하고 귀족주의가 부분적으로 흔들리고 있을 무렵에 나타난 댄디는 민주주의와 함께 번져가는 부르주아의 속물근성과, 자존심을 잃고 그 속물근성에 덩달아 휩쓸려 다니는 귀족들의 추락에 대해 슬픔을 느낀다. 군중들은 기술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세상의 변화를 맹목적으로 찬양한다. 하지만 댄디는 물질적 진보로 인해 잃어버린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들이다.

보들레르는 1846년 <부르주아에게>라는 글에서 “빵 없이 3일은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 없이는 결코 버틸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만일 이 말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댄디일 가능성이 높다. 보들레르는 말한다. “정신적인 영역을 독점하는 자만이 세상을 느끼고 즐길 권리를 가지며, 궁극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리라”고.

7. 고립 - 의식 있는 인간의 선택

집단으로만 즐기고 패거리에서만 생각이 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댄디는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남들이 좋다는 것이라면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개성 없고 안목 없는 사람들을 혐오했다. 진정한 영웅이라면 홀로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댄디는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몸, 행위, 감정 그리고 존재 자체를 예술로 만들고자, 즉 심미적 삶의 방식을 위해 혼자가 되기로 한다. 그에게 고립은 물질세계의 좁다란 지평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경멸하기 위한, 일종의 부르주아 사회 전체를 상대로 한 예술적 대결방식이었다. 그는 세상을 피해 눈에 띄지 않는 은둔자가 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결하고자 눈에 띄는 혼자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다.

8. 자유 - 낭만주의적인 영혼

시인 바이런은 댄디를, 도달할 목적이 없는 이상주의자이고 현실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낭만적인 도피자로 이해했다. ‘낭만적’이라는 말이 애초부터 예술비평을 위해 사용된 것은 아니다. 그 단어는 근본적으로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영웅적이고 신비하며, 허황된 감성적 충동의 본질을 일컬었다. 18세기에 이성의 시대를 맞아 명료한 진리와 질서를 추구하게 되자, 낭만적이라는 말은 합리성과 대립되는 의미로 자주 부각되고 언급되었으며, 주류 문화에 맞선 반동적인 운동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19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지배적인 문예사조로 자리를 잡게 된다.

낭만주의자들은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감성에 귀를 기울였다. 감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예술이며, 자유로운 예술표현을 구속하는 실용적 목적이나 도덕성으로부터 예술을 해방시키는 것은 개인 안에 있는 예술혼을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개인의 해방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차원에서 댄디는 자유로운 예술혼이었다. 하지만 댄디는 자신의 낭만성을 결코 뜨겁게 분출시키는 일이 없었다. 에두아르 마네를 위시한 19세기 프랑스의 댄디 예술가들은 결코 뜨겁게 고민하지 않으려 애썼으며, 고민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더더욱 삼갔다. 어쩌면 무관심만이 산업사회의 머리 없고 심장 없는 군중 속에서 적당히 스스로를 숨기며 살아남는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9. 인공미 - 실재보다 허구

오스카 와일드에 의하면 댄디는, 외관이 실재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이다. 넥타이를 잘 매는 것이 인생의 첫걸음이라며 ‘표면의 철학’을 삶의 신조로 삼았던 댄디 오스카 와일드는 본질보다 인공미를 숭배했다. 그에게 본질은 꾸며진 여러 포즈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따라서 실체보다 매너가 더 중요하며, 허구의 가면이 사실보다 훨씬 우세하다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댄디 중에서도 좀 유별났다. 의상에 신경 쓸 뿐만 아니라 유미주의의 상징이었던 백합이나 해바라기를 손에 들거나 라펠에 꽂는 것을 항상 잊지 않았다고 한다. 치밀한 계산에 의해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했던 것이다.

10. 옴 파탈 - 양성성과 악취미

발자크의 소설 『잃어버린 환상』에는 아름다운 남자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의 얼굴에는 고대의 미녀에게서 볼 수 있는 뚜렷한 선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희랍의 코와 이마, 벨벳처럼 부드럽고 흰, 마치 여자 같은 살결, 검어 보일 만큼 푸른 눈….” 여성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이 화려한 수식어들은 모두 댄디 청년을 묘사한 것이다.

댄디는 남성도 끌리고 여성도 끌리는 양성적 매력이 있었다. 이런 댄디의 몸은 예술작품처럼 전시하기 위한 것이다. 전시용 인간은 결코 다른 누군가와 살을 맞대고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지 않는다. 그는 모두에게 그저 이미지일 뿐이다. 댄디는 철저히 이미지이기 위해 열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 상대를 열정에 들뜨게 하는 일은 즐기지만, 결코 스스로는 무모한 열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그는 팜 파탈의 남성형, 옴 파탈이었다.



무례한 댄디의 내면에 대하여_ 고봉만



허영심을 예찬하다

댄디즘이 꽃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조건은 허영심이다. 흔히 허영심은 분수에 넘치는 외적인 영예에 대한 자랑, 겉멋만 좇으며 들뜬 마음, 필요 이상의 겉치레에 치우치는 허세를 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여기는 이 허영심에 대해 쥘 바르베 도르비이는 『댄디즘과 조지 브러멀』의 첫 페이지부터 찬사를 보낸다. 그의 찬사는 다분히 도발적이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는 의도를 띠고 있다. 바르베의 이러한 찬사는 그가 개인주의를 진심으로 옹호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가 이 글에서 주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허영심이 영국에서 어떤 다채로운 변화를 거쳤는지에 관한 것이다.

바르베가 세간의 상식을 뒤엎고 허영심을 찬양한 것은 브러멀에 가해진 몇몇 비판이 직접적인 계기였음을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에 아르누 프레미는 『르뷔 드 파리』에 발표한 <브러멀의 죽음>이라는 글에서 브러멀의 허영심을 비난했고, 저널리스트인 존 르무안은 1844년에 출판된 제스 대령의 『조지 브러멀의 생애』에 대한 평론에서 “에고이즘의 감정”을 공격하고 “허영심의 약점들”을 비난했다. 바르베는 이런 비난들에 대단히 분개했다.

바르베는 어떠한 감정도, 아무리 “감정의 서열”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이라 해도 경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허영심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감정도 아니다.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들을 조정하거나, 타인에게 인정받거나 동의를 얻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생명의 본능과 비교될 수 있는 허영심은 인간 속에 있는 모든 것에 관계될 뿐 아니라 사랑, 우정, 자존심과 같은 감정들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바르베는 허영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는다.

“허영심은 사랑의 우주보다 더 넓은 우주를 거느리며, 우정에는 충분한 것도 허영심에게는 충분하지 않다. 자존심이 왕이라면 허영심은 여왕이다.” - 『댄디즘과 조지 브러멀』 중에서

댄디즘의 한복판에는 역설이 자리하고 있다. 항상 주체로 있으면서 대상(Objet)이 되는 주체(Sujet), 타인들의 탄복하는, 또는 시샘 어린 시선으로 대상화된 주체인 그는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타인을 매료시키고 그리하여 주체로서 자신의 지위를 획득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집단적인 가치와 유용성을 획득한다. 타인의 시선을 추구함으로써 허영심은 영광에 대한 사랑과 같은 부류에 속하게 된다. 또한 가역성의 원리로 타인에게 미(美)의 감정을 전파한다. 신중하지 못하고 가벼우며 하찮은 일을 중시하는 경박한 태도는 이렇게 해서 하나의 가치로 변화한다.

자아의 감정으로서 허영심은 브러멀에 의해 자아에 대한 인식으로 바뀌고, 타인에게 취하는 복잡한 전략 중 하나가 된다. 그것은 아마도 영국의 댄디 브러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으리라. 이 복잡한 전략 때문에 주체는 실체와 외관으로 나누어지고, 그 이원성을 의식하면서 때때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빠지고 만다. 또한 허영심을 실체와 혼동하게 만드는 외관의 위엄을 통해 타인이 인정하도록 만드는 의지로 내보이게 된다. 댄디의 허영심이 완수하는 이 기괴한 노력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이런 전략 덕분에 대상(객체)이 되도록 위협받는 주체는 타인에 의한 대상화를 벗어난다. 즉, 자신의 유일한 의지로 그 자신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과시함으로써 그는 은밀한 정체성을 보존하는 것이다.

댄디가 추구하는 세 가지 행동양식

댄디의 첫 번째 목표는 타인과 마주할 때 “규범의 굴레에 익숙해진 정신”에 맞서 “항상 예상치 못한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한 타인들이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에 절대 부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댄디는 그가 살아온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댄디의 독창성은 내용보다는 타인의 고정적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댄디가 수행하는 끊임없는 운동 속에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놀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놀이의 규칙은 매 순간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인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도하기 어려운 것이다. 바로베는 이런 어려운 시도에 정통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친구인 트레뷔시앙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요란스러운 댄디 시절을 상기시키면서 독창성을 ‘놀라게 할 필요성’과 동일시했다.

“나의 말은, 놀라움으로 기가 눌린 형편없는 영혼들에게 나의 진홍색 조끼와 똑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그들의 눈을 병들게 하고 지독한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 1855년 4월 22일

댄디의 두 번째 목표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화장할 때의 의식에 가까운 과정이나 외양을 완벽하게 꾸미기 위해 투자하는 과도한 정성, 고급스러운 옷감이나 귀하고 사치스러운 물건에 대한 관심 등은 아름다움을 향한 숭배를 명확히 증명한다. 그의 동작, 그의 발걸음, 그가 선택한 재단사, 그가 자주 드나드는 장소 또한 조화로운 통제를 통해 드러난다. 댄디의 예술은 인생 그 자체, 비슷한 동료들과 어울려 살도록 창조된 인간에게만 주어진 영원히 빛나는 재능 그 자체였다. 다른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듯, 그는 자기 몸으로 사람을 즐겁게 했다. 댄디는 스스로 자신의 상(像)을 조각한다.

댄디의 세 번째 목표는 독립성이다. 그는 자기 삶의 선택에 유일하게 책임을 지고, 자신만이 규칙을 알고 있는 게임의 대가다. 댄디즘에 법률이나 제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바르베가 보기에 댄디즘도 분명히 몇 가지 원칙과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변덕의 지배를 받는다. 이런 독립성은 댄디 자신의 개인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 타인의 대상화하는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인물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바로 독립성이다. 댄디의 독립성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역동적이다.

댄디의 목표 ‘닐 미라리(Nil Mirari)’, 결코 흥분하지 말지니

댄디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예측하지 못한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대중과 결별하는 데까지 가지는 않는다. 댄디는 자신의 행위를 우아함으로 포장하려고 한다. 바르베는 우아함을 거의 종교적 의미에서 하늘이 내려준 선물로 이해했다.

브러멀은 바르베가 보기에 무엇보다 먼저 그것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세속적 의미에서 우아함은 ‘기발한 것’인데, 그것은 규범의 예측 가능성에서 벗어나게 하고, 따분한 사회를 유혹하고 흔들어놓는다. “진실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편협한 도덕률”에 지배되고 있는 대중, “경직되고 천박한, 무례하고 호전적인” 대중들 속에서 변덕과 경박함과 상상력은 사회의 통념을 깨뜨리고 “다른 곳에서라면 불가능할 매너와 태도에 관한 학문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브러멀은 이러한 점을 드러낸 최후의 인물이었으며 어느 누구도 그에 필적할 수 없을 것이다.”

댄디즘의 본질적 구성 요소이자 댄디가 보유한 무기 가운데 가장 필요하고 효과적인 무기는 의심할 여지없이 냉정함이다. 냉정함은 감정을 길들이면서 타인의 조심성 없는 시선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해주고,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에 침범할 수 없도록, 상처를 낼 수 없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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