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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2

주현성 지음 | 더좋은책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2

주현성 지음

더좋은책 / 2013년 10월 / 576쪽 / 20,000원





1장 원시 미술에서 사실주의까지 - 모네 이전의 회화



기원의 미술, 원시 시대와 이집트 미술

미술의 근원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다른 오래된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솔직히 그 시작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약 4만 년 전후에 현생인류가 나타났고, 그와 동시에 또는 그 후 많은 세월이 흐르기 전에 이미 미술품이라 할 만한 것들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약 1만 5천 년 전후에 그려진 것들로 추정되는 라스코(Lascaux) 벽화나 심지어 약 최소한 3만 5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슈바벤의 비너스(Schwaben Venus)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는 아직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기 전인 구석기 시대였지만, 그 작품의 형태가 오늘날과 비교해 크게 뒤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렇게 볼 때 인류에게 미술 또는 예술은 타고난 본능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미술: 많은 사람들이 최초의 회화로 생각하고 있는 그림 중 하나인 라스코 동굴의 벽화. 이 벽화는 약 2미터가 넘는 높이의 동굴 천장에 말, 소, 사슴 등 200여 마리의 동물들이 약 1,200여 미터에 걸쳐 그려져 있다. 마그네시아와 황토 등을 갈아 만든 검은색, 붉은색, 노란색, 흰색 등 네 가지 색깔이 주를 이루는 이 벽화의 동물들은 어느 것이나 약동적이고 생기가 넘치며, 당시에 그렸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벽화에는 옆구리에 창을 맞아 내장이 흘러나온 들소나 남근이 묘사된 사냥꾼 등의 다양한 상황들이 함께 펼쳐져 있다.

우리는 이 벽화를 통해 당시 그림이 가지는 의미를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우선 라스코 벽화는 누가 봐도 당시의 가장 중요한 생활양식인 사냥과 직접 관련이 있고, 그러므로 사냥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이 벽화가 단순히 사냥하는 모습을 묘사했다고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들의 ‘기원(祈願)’을 읽어야 한다. 그들에게 사냥은 핵심 생계 수단이었으며, 동시에 목숨을 건 생산활동이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터에 나가야 했고, 필히 상대 동물을 쓰러뜨려야 했다. 바로 이런 상대 동물들을 정복하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염원이었으며, 그 염원이 이 그림에 담겼을 것이다.

인류가 정착하고 본격적으로 농경을 시작하면서, 미술에 대한 인식도 변화를 겪게 된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이동생활은 농경과 목축을 기반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변해갔고, 이는 이제까지 자연 변화에 철저히 순응해온 인류가 안정적 식량 공급을 목표로 생활 방식을 바꾸며 자연에 도전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인위적 식량 공급이라는 차원에서는 농경뿐만 아니라 목축도 같은 것이며, 토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식량의 저장이라는 측면에서 안정적 식량 공급과 관련이 있다. 그들이 이렇게 안정된 식량 공급과 정착생활이라는 조건 변화를 통해 더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갖게 되었을 것이라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다. 인구도 늘어났을 것이며, 언제나 똑같은 환경이나 가족 이외의 씨족들과 같은 인물들을 대면하는 반복적 경험도 크게 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벼농사를 위해 자연환경의 변화와 반복되는 주기에도 예민한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눈에 띄는, 또는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변화를 몰고 오게 된다.

그러한 변화의 흔적들은 그들이 그린 문양이나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구석기 시대와 같은 아주 구체적인 벽화 같은 것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선이나 원 모양 같은 기하학적 무늬나 선으로 간단하게 묘사된 해, 달, 동물 모양이 암각화 등을 통해 주로 보이고 있다. 그들의 토기에서도 빗살무늬, 격자무늬, 삼각무늬, 지그재그 무늬 등과 같은 일종의 패턴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점 또한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 먼저 그들의 풍요나 다양한 필요성 속에서 많은 토기가 만들어지고, 그 토기에 자신들의 여유나 차별적인 욕구로 인해 무늬를 새겨 넣기 시작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패턴이 등장했다는 것에도 신석기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토기 제작 자체에도 주술적 제작과는 다른 차원의 창조행위라는 점과 흙으로 그릇을 만들었다는 놀라운 기술적 진보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기원, 이집트 미술: 이집트 미술은 사후 세계에 대한 강한 집착과 정면성의 원리와 같은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미술이며, 시대적으로도 선사 시대 이후와 그리스 미술 사이에 등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미술이다. 무엇보다 그리스 기술자들을 배출했으며, 서양 미술사에 직ㆍ간접적으로 중요한 기원(起源)을 제공하는 미술이다.

이집트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피라미드와 미라이듯 그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만큼 죽은 자를 위한 미술로 점철되었다. 물론 피라미드 중심으로 발굴되었다는 점에서 남아 있는 그들의 미술이 이런 특징에 집중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예술품을 만들 수 있는 계층이 왕의 권력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이것이 이집트 예술의 큰 줄기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집트 미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면성의 원리다. 이 원리는 마치 정면에 모든 중요한 것들을 다 담아내려는 듯 그리는 방법이다. 그들은 신체를 그릴 때, 가슴은 정면이 가장 잘 보일 뿐 아니라 팔 두 개를 모두 같이 연결시켜 보일 수 있도록 정면으로 그리고, 얼굴과 발은 그 특징이 더 잘 나타날 수 있으므로 옆모습으로 그렸다. 또한 다리나 팔은 두 개가 다 나타나야 하므로 언제나 겹치지 않게 그렸다. 이 원리는 죽은 자들이 저승에서도 육체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하려는 의도와도 관련이 있다. 죽은 영혼이 다시 육체를 찾으려 할 때 모든 사지가 온전한 모습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결국 그들에게는 얼마나 똑같이 그리느냐보다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특징을 얼마나 잘 나타내느냐가 관건이었다. 이 원리는 이집트 미술 전반에 깔려 있으며, 신체뿐 아니라 정원을 그린 그림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네바문(Nebamun)의 무덤에서 발견된 <연못이 있는 정원(Garden with Pool)>을 보면, 나무는 옆면이 그 특징을 잘 나타낼 수 있으므로 옆면으로, 연못은 위에서 보아야 잘 알 수 있으므로 윗면으로, 물고기와 새들은 옆면이 잘 알 수 있으므로 옆면으로 그렸다.

이런 이집트 미술에 대해 진중권 교수는 『서양미술사』에서 ‘객관적 비례와 제작적 비례가 일치한 유일한 시기’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여기서 ‘객관적 비례’란 대상을 사실적으로 나타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반면 ‘제작적 비례’는 개념이나 개인적 주관에 의해 좀 더 구성적 또는 추상적으로 나타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이집트 미술은 사실적으로 나타내면서도 주관적인 개념이 충분히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 미술은 균형 있는 비례나 기하학적 규칙성 등을 통해 사실적인 이상미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객관적 비례를 담아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정면성의 원리로 담아내려고 하면서 사물의 실제 모습보다는 주관이나 개념에 따라 제작적 비례도 중요시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집트 화가들에게 주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정해진 표준에 따라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인체 비례와 거의 맞아떨어지는 ‘캐논(Canon)’이라는 신체 비례의 표준으로 객관적 비례를 추구했으며, 정면성의 원리를 철저히 따름으로써 개념이나 구상에 접근하는 제작적 비례를 추구한 것이다. 이렇게 엄격한 원리에 따라 그림을 그린 그들은 모델 없이도 조상을 제작할 수 있었으며, 예술가라기보다 기술자에 가까웠다.



2장 명작들이 수놓은 또 하나의 지성사 - 문학과 문예사조



인문주의를 앞세운 르네상스 문학

교황이 앞장서 대대적으로 일으켰던 십자군 전쟁은 그들이 믿는 신의 위대함을 증명해주지 못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교황보다는 전쟁의 실질적인 지휘자인 왕들의 권한만 높아졌고, 원활한 물자의 교환으로 도시가 발달하면서 교황권의 기반이던 장원이 붕괴되고 있었다. 그 전쟁의 통로에 있던 이탈리아 피렌체는 번성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곳은 무너진 비잔틴제국과 근거리에 있어서 그리스 로마 문화를 보존하고 있던 비잔틴제국의 지적 유물과 지식인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중세를 지배했던 신에 대한 강한 신뢰가 사라져가고 있었고, 중세를 지탱하던 문화의 중심이 비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중심에 신이 있었던 것만큼, 비워진 그 중심을 메꾸어야 할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바로 그때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중세 이외의 문화는 과거 또는 이슬람으로부터 재수입된 그리스 로마 문화가 전부였을지도 모르겠다. 막 성장하는 왕과 새로운 도시 세력들은 교황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했고, 이제 신보다 자신을 중심에 세우길 원했다. 그런 면에서도 인간과 개인이 강조되는 그리스 로마 문화가 그들에게 더 잘 어울렸을 것이다. 회화에서는 조토가, 문학에서는 단테가 그러한 변화를 직감했으며,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가 앞장서서 문학의 새로운 중심을 찾아 나섰다.

이탈리아로부터 시작된 르네상스: 단테의 친구 페트라코의 아들이기도 한 페트라르카. 그는 그리스 로마의 필사본들을 수집했으며, 키케로와 베르길리우스의 작품들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는 고대 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라틴어로 된 여러 저작을 남겼지만, 당시 지배적이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학풍은 배격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외의 그리스 로마 고전 작가들을 연구하고 복권시킬 것을 주장하면서, 이 새로운 학풍을 ‘인문학’이라 불렀다. 그의 이런 주장은 이후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의 영향과 하나가 되어 15세기 이탈리아의 인문주의 르네상스를 이끌어가는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그의 진정한 면모는 전혀 다른 데 있었다. 그것은 그가 24세 때 첫눈에 반한 여성 라우라(Laura)를 향해 쓴 366편에 달하는 짝사랑의 시편들이었다. ‘칸초니에레(Canzoniere)’라고 불리는 이 서정시집은 이탈리아어로 쓰였으며, 라우라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있다.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정신세계의 조화를 열변하면서, 현실 세계의 애정과 행복을 적극 거론한 이 작품은 중세의 금욕주의(Asceticism)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한 바람을 표현하고 있다. 14행의 일정한 형식을 갖춘 ‘소네트(Sonnet)’라는 시풍은 이후 유럽의 전형적 시풍으로 정착하게 되었으며, ‘페트라르칸 러브(Petrarchan Love)’라고 하여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보카치오는 페트라르카와 우정을 나눈 친구이자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최초로 단테 전기를 쓰기도 했던 그는, 『데카메론』이라는 산문을 내놓음으로써 근대소설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1349년 피렌체를 휩쓴 페스트를 피해 대저택에 모인 10명의 사람들이 10일간 매일 하나씩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이 소설은, 중세 후기 각 사회계층의 모습을 솔직하게 묘사하고 있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물론, 색정과 익살이 담긴 음담패설이나 성직자와 귀족들의 숨겨진 치부까지 현실의 생생한 모습들이 담긴 것이었다. 또한 살아 있는 민중의 언어로 쓰여 더욱 뛰어난 사실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인간의 내면묘사와 함께 각층의 현실을 통해 다양한 인물상이 창조되었다. 이것이 이 작품을 『신곡』에 견주어 ‘인곡(人曲)’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며, 대표적인 르네상스 소설로 손꼽는 이유이다. 또한 최초의 단편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이후 많은 작가들에게 모방의 근거를 마련해주면서 근대소설로 가는 발판을 만들어주게 된다.

한편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라는 14세기 이탈리아의 3대 천재를 잇는 이탈리아 작가로는 마키아벨리가 있다. 그는 오늘날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알려진 ‘마키아벨리즘’의 주인공이지만, 그가 『군주론(Il Principe)』을 통해 진실로 추구한 것은 군주가 유능해짐으로써 그 힘을 통해 이탈리아의 통일을 앞당기는 것이었다.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르네상스의 열풍: 르네상스가 퍼져 나가고 있는 와중에 지리상의 발견이 일어났다. 이 지리상의 발견은 무역의 중심을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놓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침체기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지리상 발견에 적극적이었던 스페인을 정점으로 북유럽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르네상스 열풍은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북유럽 르네상스를 연 사람은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였다. 신약성서를 최초로 편집한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우신예찬(Encomium Moriae)』이라는 풍자문을 통해 북유럽에 르네상스 바람을 몰고 왔다. 이 풍자문의 주인공이 모리아(Moria)라는 여신이라서 ‘모리아 예찬’이라고도 부르는데, 친구인 영국의 인문학자 토마스 모어(Thomas More)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어리석음의 여신, 모리아를 떠올렸다고 한다. 에라스무스는 어린 시절의 순진함도, 젊은 날의 사랑도 모두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어리석음이 삶의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역설한다. 또한 철학자, 신학자들의 쓸데없는 논쟁과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들의 위선은 지혜라고 일컬어지지만, 그것이야말로 참된 어리석음이라고 조소한다. 결국 이 책은 교황과 성직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 때문에 금서로 지정되었고, 에라스무스는 일급 이단자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비판은 기독교의 복음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게 함으로써 이후 전개될 종교개혁에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프랑스의 르네상스는 여러 회에 걸친 이탈리아 원정에서 촉발되었다. 이 원정을 통해 프랑스인들은 이탈리아의 놀라운 예술 문화를 목격하게 되었고, 특히 프랑수아 1세가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 학자, 건축가들을 초청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 시기 프랑스의 대표 작가는 대식가이면서 뛰어난 지성을 가진 거인의 이야기를 다룬 『팡타그뤼엘(Pantagruel)』의 작가 라블레다. 『팡타그뤼엘』은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 성공한 최초의 문학이기도 한데, 라블레가 쓴 장편소설들은 이후 근대 유럽 장편소설의 토대가 되었다. 또한 시인 롱사르는 『카산드라의 사랑(Les Amours de Cassandre)』과 『마리아의 사랑(Les Amours de Marie)』을 통해 우아하고 감동적이며 독창적인 문체를 선보임으로써 이후 10세기 낭만주의자들의 효시가 되었으며, 몽테뉴는 자신의 생활 속 사소한 일들과 성찰을 담은 『수상록(Essais)』을 내놓음으로써 ‘에세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

영국의 르네상스는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다소 늦은 편이었지만, 셰익스피어라는 대거장의 탄생으로 인해 영국 문학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먼저 윌리엄 틴들이 성서를 번역하여 영어의 근대적 완성을 이루어냈고, 서둘러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Utopia)』를 들고나와 새로운 사회상을 선보였다. 당시 놀고먹으며 부를 향유하는 귀족과 뼈 빠지게 일하면서도 농토를 잃고 전락해가는 농노의 모습을 통해 유럽의 사회상을 비판한 『유토피아』는 상상 속에 존재하는 새로운 사회상을 제시함으로써, 많은 이상향을 다루는 책들이 출간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공상적 사회주의(Utopian Socialism)’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극작가이자 시인,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힘이 강력해진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활동했다. 오늘날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희곡 38편, 소네트 154편이 전해지고 있는데, 5대 비극으로 알려진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 왕』, 『맥베스』, 『햄릿』, 『오셀로』와 『한여름 밤의 꿈』, 『말괄량이 길들이기』, 『폭풍우』, 『십이야』, 『베니스의 상인』, 『줄리어스 시저』 등 모두 설명이 필요 없는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2,000여 개에 달하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언어의 천재였으며, 그가 가진 대중적인 힘은 영어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후 수백 년간 문학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으며, 연극과 영화는 물론 음악에도 많은 모티브를 제공했다. 영국의 극작가인 벤 존슨은 “그는 한 시대를 위한 작가가 아니라 온 시대를 위한 작가”라고 단언했고, 빅토르 위고는 “셰익스피어가 곧 연극”이라고 격찬했으며, 조이스는 “무인도에 떨어질 경우에는 단테보다 셰익스피어의 책을 들고 가겠다”고 호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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