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강, 메콩에서
김이기 지음 | 시간여행
어머니의 강, 메콩에서
김이기 지음
시간여행 / 2013년 12월 / 308쪽 / 16,800원
1부 생명이 깃든 어머니의 강, 메콩
1장. 강이 품은 다양한 생물들
꼬꽁의 해안 마을과 바다에 떠 있는 맹그로브 숲: 캄보디아 남서부 꼬꽁 주 핌크라솝. 이 마을의 집은 바다에 나무기둥을 박아서 물 위에 지어 놓았다. 배가 지날 때 들어 올릴 수 있는 도계교가 마을과 마을을 잇는다. 아이에서 할아버지까지, 주민들은 누구나 다 한 가족처럼 이 다리로 왕래한다. 바닷물과 바람에 시달리는 나무집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아서 자주 수리를 해야 한다. 그래서 마을 남자는 누구나 집수리에 능란하다. 주민들은 웬만해선 땅을 밟지 않고 물 위에서 생활한다. 고기잡이와 양식업을 하며 바다에서 일한다. 우기에는 비가 많이 와서 배를 띄우지 않는다. 그래도 물고기가 많아지므로 이곳 사람들은 우기를 좋아한다.
총 1만 ha에 달하는, 캄보디아 최대의 맹그로브 숲인 꼬꽁의 해안. 열 개의 크고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숲과 바다를 의지해 산다. 언제나 거대한 맹그로브 숲이 꼬꽁의 수상마을 사람들을 보호한다. 바다와 강,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에서 자라는 맹그로브. 맹그로브는 물속에 뿌리를 두고 자라는 신비한 나무이다. 물 아래 땅 깊숙이 10m 이상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다. 이 뿌리가 토양의 유실을 막아 주고, 물고기의 산란 장소를 제공한다. 새우와 게, 각종 물고기들의 은신처가 되고, 먹이를 제공한다. 이곳에 서식하는 어류 대부분은 물속 맹그로브 뿌리 사이에 산란을 한다. 맹그로브 숲은 새로 태어날 물고기들의 안전한 보금자리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맹그로브는 해안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태풍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한다. 뿌리가 단단히 얽혀 있는 맹그로브 나무가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맹그로브의 무성한 숲은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배를 타고 지나가기도 어렵고, 무성한 숲 속으로 걸어가기는 더더욱 힘들다. 숲 속 깊숙한 지역엔 맹그로브 외에 다양한 나무가 서식하고, 그 숲엔 여러 생명체들이 깃들어 있다.
그 생명체들 가운데 하나가 박쥐다. 왕박쥐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커다란 몸집을 자랑하는 박쥐가 이곳 맹그로브 숲에 무리 지어 서식한다. 벌목과 개간 등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알려진 이 왕박쥐는 동남아시아와 호주의 열대ㆍ아열대 지역에 서식하는데, 국제자연보호연맹에서 지정한 멸종위기 근접종이다. 과일과 꽃을 먹는다고 해서 일명 과일박쥐라고도 불리는 녀석들은, 보통의 박쥐들이 초음파로 적을 감지하는 것과 달리 시각과 후각으로 사물을 감지한다. 겉모습과는 달리 섬세한 녀석들에게 이곳 맹그로브 숲은 인간의 접근이 차단된 천연의 요새이다.
갯벌에 비가 내린다, 개흙 속에서 먹이를 찾고 개흙을 은신처로 삼는 물뱀과 게가 갯벌을 기어간다. 물과 뭍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망둥이가 펄떡 뛰어 물가로 가더니 헤엄을 치며 물살을 가른다. 손과 발이 진흙투성이인 원숭이 한 마리가 쓰러진 나무를 타고 맹그로브 숲에서 나와 물 빠진 갯벌을 어슬렁거린다. 동남아시아 해안의 숲이나 늪지대에 주로 서식하는 이 녀석은 긴꼬리원숭이과에 속하는 게잡이원숭이다. 나뭇잎을 먹지만 곤충이나 게도 먹는 잡식성으로, 이 갯벌에서 참 많은 것을 얻고 있다. 호기심이 많은 습성을 버리지 못해서 인근 마을의 집까지 들어가 음식을 훔쳐 먹는다. 이 녀석 역시 최근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는 관심필요 종이다. 다행히 이곳은 갯벌이 있고 또 맹그로브 숲이 있어, 녀석에겐 가장 좋은 서식지이다.
마을 주민들이 배를 타고 맹그로브 숲으로 간다. 숲의 초입에서 한 사람이 하선하더니 맹그로브 나무뿌리에서 골뱅이를 채취한다. 한 그루에 두세 개밖에 없는 골뱅이를 온종일 찾으며 나무뿌리를 옮겨 다니다가 저녁 5시경에 그는 돌아가는 배에 다시 승선할 예정이다. 배는 다시 달리고,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던 사람들이 일제히 양말을 올려 신고, 신발 끈을 조인다. 끈으로 신발과 발을 동여맨다. 몸을 감싸고, 옷을 묶거나 조이며 작업할 채비를 단단히 한다. 두 명씩 한 조가 된 사람들이 배에서 내려 각자의 목적지로 간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질척한 개흙을 밟으며 맹그로브 숲으로 들어간다.
숲에 도착한 아주머니들은 가장 낮은 자세로 구멍에 손을 깊이 더 깊이 밀어 넣어 게를 잡는다. 진흙이 흥건한 게를 웅덩이에 고인 물에 흔들어 씻고 끈으로 게의 다리를 묶는다. 때론 게 구멍을 잘못 짚어 헛손질을 한다. 한쪽에선 젊은 여자들이 무릎걸음으로 갯벌을 이동하며 조개를 잡는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더위가 작업을 방해한다. 수시로 옷을 뚫고 들어오는 모기를 쫓기 위해 연신 손을 휘젓는다. 국거리용 작은 조개를 바구니 가득 채우려면 성가시지만 모기를 쫓으며 더위와 한참 더 싸워야 할 것이다.
이곳 맹그로브 숲은 잘 보존되고 있는 셈이다. 태국은 연안에 자생하는 맹그로브 숲 군락지를 베어 버리고 보다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새우 양식장을 만들었다. 200만ha였던 맹그로브 숲이 20년 만에 절반가량이 유실되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좁은 늪지에서 많은 새우를 기르기 위해서는 사료와 항생물질을 대량으로 뿌려야 한다. 수질오염으로 양식장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시 새로운 맹그로브 숲을 베고 양식장을 만드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맹그로브 숲이 사라졌다. 맹그로브 숲에서 오랜 세월 먹을 것을 얻어 온 사람들은 사라진 맹그로브 숲의 크기 이상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야 했다.
꼬꽁의 맹그로브 숲도 한때 숯을 만들기 위해 벌목을 하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1971년 이후, 캄보디아 정부는 꾸준하게 습지 보호 사업을 해왔고, 2001년부터 지금까지 약 260만 그루의 맹그로브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심는 것보다 가꾸고 지키는 일이 더 중요했다. 홍보 활동을 꾸준하게 하면서 주민들의 협조를 구하는 한편, 97년 이후 맹그로브 벌목을 전면 금지했다. 그리고 레인저들이 한 달에 네 차례 맹그로브 숲 구석구석을 돌면서 불법 벌목을 단속했다. 이 지역은 모두 수상가옥이기 때문에 맹그로브 나무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예외적으로 집을 짓거나 수리할 때,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15년 이상 된 나무 중에서 벌목을 할 수 있다. 새 집을 지을 땐 100그루, 집을 수리하는 경우에는 50그루까지 벌목을 허용한다. 그러나 허가받은 사람은 허가받은 용도에 따라 나무를 이용해야지 나무를 팔아서 이익을 얻지는 못하도록 철저하게 단속한다.
늦은 오후가 되면 수로에 배를 대고 곧바로 집으로 들어설 정도로 물이 차오른다. 핌 그라솝 마을에는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저녁을 마치고 마을을 잇는 다리 부근의 상점 앞으로 모여든다. 마을에서 생필품을 파는 유일한 가게는 비교적 넓은 공간을 주민들에게 내어 주고 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밤이면 발전기를 돌려 전깃불을 밝히고, 모두들 이곳으로 마실을 나오는 듯하다. 텔레비전이 나오는 유일한 집이기 때문일까. 사방이 조용한 탓인지 발전기를 돌리는 모터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2장. 강이 품은 다양한 사람들
아시아의 파리, 역동하는 호치민 시: 베트남은 수도 하노이와 항구도시 하이퐁을 중심으로 하는 북부지역과 오랜 왕조의 역사가 살아 있는 후예와 다낭을 중심으로 하는 중부지역 그리고 호치민을 중심으로 하는 남부지역은 각각 다른 고유한 문화 특성이 있다. 중부 이북은 정치 중심지이자 왕조가 있던 지역이다. 베트남 북부 사람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고, 보수적이며, 집단성이 강한 편이다. 반면에 베트남 경제 중심지인 호치민이나 메콩 델타의 남부지역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며, 개별성이 강한 편이다. 이 같은 성격 차이는 베트남 남부지역이 처한 지정학적인 위치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베트남 남부지역은 오래전부터 인도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과 해상 교류가 빈번했다. 특히 메콩 델타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여러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의 역사와 상통한다. 16세기 베트남에 정복되기 전까지 프레이 노코르는 캄보디아의 주요 항구도시였다. 17세기 청나라에 저항하다 망명한 명나라 유민 양언적과 그를 따라온 수천 명의 중국인을 지금의 메콩 델타 지역에 거주시키면서, 황무지에 가깝던 메콩 델타의 개척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베트남 남부 메콩 델타 지역을 배경으로 자율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농지를 확보해 나갔지만 대부분 습지에서 작은 촌락을 이루었다.
프랑스가 메콩 델타를 점령한 다음 이곳 호치민을 중심으로 배수시설을 설치하고 전형적인 식민도시로 개척했다. 프랑스풍의 관청을 비롯하여 수많은 건물이 도심 곳곳에 건축되었고 남부 메콩 델타에서 생산되는 쌀과 북서부의 고무 수출을 위해 항구를 정비했다. 프랑스로부터 해방된 이후,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호치민은 남베트남(월남)의 수도가 되었으며 인구가 증가했다. 호치민이 베트남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많은 서양 기업들이 들어오다 보니 다른 지역보다 이곳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해 개방적이다.
베트남 외교부 산하 프레스센터에 근무하는 꽝 선생이 하노이에서 도착했다. 그는 이번 취재 일정 내내 우리와 동행하면서 취재와 관련된 주요 기관의 협조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스텝 회의를 마치고 촬영에 들어갔다. 시내 중심가의 소공원에는 벤치나 잔디밭에서 시민들이 휴일을 즐기고 있다. 가족이거나 또래집단이 대부분이다. 대성당과 중앙우체국, 전쟁박물관, 대통령궁이 모여 있는 1군 지역에는 관광객과 시민들로 북적거린다. 시내 중심부, 야외 카페의 붉은 파라솔에서는 외국인들이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벤탄 시장은 100년 전 프랑스가 베트남 터미널 맞은편에 형성한 시장이다. 벤탄의 ‘탄’은 터미널이라는 뜻으로, 호치민과 호치민 밖을 연결하는 시발점이자 종점인 셈이다. 시장은 다루는 상품별로 골목골목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고, 오가는 사람들은 서로 비켜 가기 힘들 정도로 북적인다. 구역별로 의류, 가방, 귀금속 등 생활에 필요한 잡화들을 비롯해 과일, 농산물, 수산물, 축산물 등이 나뉘어 있다. 물건이 가득 찬 쇼핑 봉투를 든 외국인이 꽤 눈에 띈다.
로터리에는 여섯 갈래의 도로가 교차하고, 오토바이와 차량 행렬이 끊임없이 지나간다. 수십 대의 차와 오토바이가 한데 엉켜 제 갈 길을 가는 모습이 이채롭다. 오토바이 행렬을 한참 바라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역동성이었다. 만 교수는 출근 시간에 오토바이 행렬이 장관이라 한다. 며칠 후, 아침에 본 차량 행렬은 정말 대단했다. 벤탄 시장 앞, 로터리에는 호치민 시의 모든 오토바이가 몰려나온 듯했다. 출근하는 직장인, 학교 가는 아이를 태운 주부가 도로에 뒤섞여 장관을 이루었다. 도심 곳곳의 공원과 공원을 연결하는 도로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자라고, 가로수 사이로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무리 지어 달린다. 프랑스식 건물과 로터리가 유난히 많다.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은 서구적이고, 시민들은 바게트와 빵을 즐겨 먹는다. 시내를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동양의 파리’라는 말이 실감된다.
메콩 델타는 평균 해발이 3m다. 도시를 벗어나면 사방이 평야다. 호치민 시가 바다에 잇닿아 있는 탓일까? 바람이 시원하다. 도심 곳곳에 마련된 공원에는 저녁이면 더위를 식히려는 가족이나 친구들 혹은 연인들이 몰려나온다. 밤이면 거리엔 오토바이를 타고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남녀가 가득하다. 공원 광장에서는 젊은이들이 따 꺼우를 찬다. 한국의 제기와 모양이 비슷한 따 꺼우는, 얇은 플라스틱 재질의 원판을 겹겹이 붙이고, 스프링을 묶어 놓았다. 그리고 끝에는 기다란 깃대가 여러 가닥 붙어 있어 마치 배드민턴의 셔틀콕과 흡사하다. 따 꺼우를 발로 차면 탄력을 받아서 멀리 날아간다. 받는 방식은 주로 머리나 무릎, 혹은 가슴으로 가볍게 트래핑하는 것이다. 숙련된 사람은 발뒤꿈치를 이용해 뒷발차기로 멋지게 넘긴다. 하지만 따 꺼우는 상대가 있어야 즐길 수 있는 운동으로, 둘 이상이 호흡을 맞추어야 개인이 가진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두 사람 이상이면 복잡한 규칙, 시설, 도구가 필요치 않고 좁은 공간에서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베트남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와 태국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인기가 좋다.
벤치에서는 젊은이들이 외국인 여행객 주위에 모여 영어를 배운다. 923공원은 외국 배낭여행객이 많이 찾는 데탐 거리와 가까워서 이 같은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 대학생들이다. 그들은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선호한다. 학부모의 자녀교육 역시 열기가 대단히 높다. 교육과정은 초등학교 5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3년을 마쳐야 졸업하고, 2년제 전문대, 4년제 대학으로 편성되어 있다. 영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교에서 가르친다. 대학을 졸업해도 변변한 직장을 잡기 힘든 것이 베트남 현실이다. 그러나 학부모는 형편이 닿는 한 자녀의 대학 진학을 희망한다. 수학능력시험을 잘 보아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학생들은 치열하게 공부한다. 수학능력시험은 하루에 두 과목씩 3일 동안 본다. 높은 교육열로 문자를 해독하는 사람이 90%이고 대학은 300여 개이다. 뛰어난 손재주와 부지런하고 근면한 성품 그리고 교육에 대한 열의가 베트남 발전을 앞당기고 있다.
중앙우체국과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1군 근처는 백화점 타운이다. 야외 임시 무대 뒤에는 5인조 남자 그룹의 멤버 사진이 커다란 걸개그림으로 걸렸다. 인도에는 수백 대의 오토바이와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리듬에 맞추어 젊은이들이 몸을 흔든다. 환호성과 함께 색색의 강한 조명이 무대에서 현란하게 움직인다. 다섯 명의 가수가 무대에서 등장한다. 역동적인 몸짓과 빠른 템포의 노래가 시작되자 광장은 금세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인다.
첫날 여러 곳에서 보았던 도시의 풍경과 렉스 호텔 옥상에서 보았던 현란한 간판, 마제스틱 호텔 옥상에서 보았던 사이공 강의 야경은, 그 어느 도시보다 호치민 시가 화려한 자본주의 도시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자본주의는 돈의 가치와 힘을 아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가발전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모든 것이 역동적이다. 과거의 베트남은 경제 흐름이 사이공 강물처럼 느렸다면, 지금 베트남의 경제는 라오스 콘 파펭 폭포처럼 빠르고 급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2부 이야기와 기도가 소박한 메콩 강
3장. 강에 새긴 사람들의 이야기
복원하는 신화, 앙코르 제국의 영광: 앙코르와트는 소리아바르만 2세가 1113년에 건축을 시작해서 1150년에 완성한 힌두교 석조 사원이다. 37년 동안 코끼리 100만 마리와 크메르족 200만 명을 동원해서 1.5t에 달하는 돌 1천만 개를 옮겨 지금의 웅장한 사원을 지었다. 그러나 소리아바르만 2세는 생전에 완성된 앙코르와트를 보지 못하고 사후에 중앙 탑 밑에 묻혔다. 앙코르와트가 건립되고 난 후, 왕들은 앞다투어 많은 사원을 지어서 신에게 바쳤다. 캄보디아 전역에 크고 작은 사원을 700여 개나 지었다. 사원을 짓고 자신이 죽은 다음 그곳에 묻힘으로써 왕은 신의 도시에서 신과 함께 더불어 영생하기를 염원했다.
캄보디아가 인도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브라만교와 불교다. 힌두교가 들어온 것이 언제인지 문헌상에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베트남의 영토이지만 과거 캄보디아 영토였던 메콩 강 하류의 오께오 지역에서 발견된 유적에 남아 있는 산스크리트어로 미루어 짐작하면 대략 1~2세기로 추정된다. 지금도 동남아시아 지역 문화가 서로 유사한 것은 산스크리트어를 공유했었기 때문이다.
앙코르와트는 건축 기술이나 예술 면에서 대단히 뛰어난 건축물이다. 앙코르와트는 돌을 깔고 그 위에 모래를 채운 다음 건축물을 지었다. 우기에 연간 강수량의 88%가 집중되다 보니 사원의 지반이 유실될 것을 염려한 것이다. 건축물을 둘러싸는 해자의 바닥에 돌을 깔고 그곳에 물을 채움으로써 비가 많이 오더라도 수위 조절이 가능하게 하였다. 4km에 이르는 해자 덕택에 지반이 유실되지 않아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건물의 축조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인도로부터 단순히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환경을 이해하고 인간에게 불리한 자연 조건을 극복한 것이다. 정작 인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웅장하고 독특한 양식의 사원을 캄보디아인들은 창의적으로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