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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유상우 박사의 공황장애에서 벗어나기

유상우 지음 | 소울메이트
정신과 전문의 유상우 박사의 공황장애에서 벗어나기

유상우 지음

소울메이트 / 2013년 12월 / 276쪽 / 15,000원





프롤로그_ 공황장애, 현장의 사례로 배운다



[사례 1 -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병원에 오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치료하지?] 2006년, 젊은 여성이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희 어머니는 수년간 집 밖으로 못 나가고 계세요. 음식점을 운영하고 계신데, 가게와 집이 한 건물에 있어서 거기에서만 생활을 하세요.” 자세히 들어보니 그녀의 어머니 이수민 씨가 보이는 증상은 공황장애 증상 중 하나인 광장공포증이었다. 광장공포증은 특정 상황이나 장소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그리고 그와 연관된 회피행동을 주된 증상으로 한다. 예로 엘리베이터, 교통 체증 등 막힌 공간에서 당장 빠져나올 수 없을 때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감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그 장소에 가지 못하고 회피하게 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녀를 통해 본인과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 통화로 파악한 이수민 씨의 증상은 최악이었다. 갑자기 그런 상태가 된 것은 아니었다. 거의 30년에 걸친 기간 동안 무슨 병인지 모른 채 공황증상을 반복해서 경험했다고 한다. 치료가 시작되었다. 딸이 내원하면 전화를 통해서 환자와 면담을 진행하고, 적절한 약물 투여를 통해 자주 나타나는 공황발작을 먼저 조절해나가기 시작했다. 공황증상이 어느 정도 잦아들면서 상태가 조금 호전되었다(치료 과정을 모두 기록하면 상당히 길어질 것 같아서 중략한다). 특이한 치료가 시작된 지 3개월여 만에 이수민 씨가 직접 내원했다. 이후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고,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한 후 공황장애 증상과 광장공포증이 완쾌되어 치료를 종결했다.

[사례 2 - 공포스러운 한강 다리와 비행기, 15년간 안 다녀본 병원이 없습니다.] 1999년 후반, 필자가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근무할 때였다. 50대 중반인 김영수 씨가 아내와 함께 진료실을 방문해 말했다. “15년 전 일입니다. 친구가 사망을 해서 영안실에서 밤을 새고 출근을 하는데 택시 안에서 멀미 증세가 나타났어요. 그러려니 하고 사무실에 출근을 했는데 계속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CT촬영과 심전도검사를 했지만 이상이 없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3일간 쉬었다가 다시 출근을 하는데 한강 다리를 지날 때 갑자기 공포감이 엄습해왔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되돌아와서 일주일간 지내다가 시골에서 요양을 하려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너무 불안해서 감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결국 초죽음 상태로 지방 공항에 내려서 곧바로 병원을 찾아 며칠간 입원했습니다. 그 이후로 15년 동안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녔어요.”

지난 15년 간 그는 수많은 공황증상을 경험하면서 점차 일상생활의 반경이 좁아져 현재는 혼자 어디도 갈 수가 없다고 했다. 혼자 출근할 수가 없어서 항상 아내가 동행했고, 심지어 사무실 한 켠에 아내 책상을 두고 항상 아내가 함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진료실에서 아내는 한없이 울었다. 김영수 씨의 증상에 대한 평가를 진행했고, 광장공포증을 동반한 매우 심한 공황장애로 진단했다. 필자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의 필요성을 그에게 설명했다. 김영수 씨는 인지행동치료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궁금해 했다. 아니, 궁금함을 넘어서 의아해했고 심지어는 치료 효과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졌다. 필자는 그에게 치료 과정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하지만 인지행동치료의 효과에 대한 그의 의심은 여전했다. 일단 약물치료를 몇 주 정도 진행한 후에 경과를 보자고 설득했다. 공황발작은 잦아들고 증상은 호전되었지만 광장공포증은 여전했다. 몇 주 후 그는 마지못해 인지행동치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치료 후 환자는 홀로 자유롭게 출퇴근할 수 있게 되었다. 비행기 탑승을 비롯해서 어디든 혼자 다닐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사례 3 - 과로하던 어느 날 찾아온 공황장애 “공황으로는 절대 죽지 않아!”] 2012년 초 늘 그랬듯이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결혼 준비와 새롭게 도전하는 시험 준비까지 이어져 피곤에 피곤이 더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10명 정도의 팀원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다. 너무 어려운 프로젝트를 맡아서 60일 무휴 출근, 새벽 2~3시 퇴근을 일상화했었다. 이러다 큰일 나지 하면서도 강행군을 계속했고 몸의 신호를 무시했다. 어리석었다. 새벽 2시 심야 버스를 타고 가던 어느 날, 갑자기 정말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미친 듯이 심장이 뛰고 손발이 떨렸다. 새벽 3시에 집에 도착해 응급실로 향했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듣고 쫓겨나듯 응급실에서 나왔다.

이후 이 정체불명의 증상은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최악의 상황은 어느 일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방에서 책을 읽던 중 갑자기 찾아왔다. 정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극단의 공포를 체험했다. 또다시 응급실행, 하지만 여전히 이상 없음! 괴로웠다! 상황은 계속되었다. 어느 일요일, 불쑥 그것도 2번이나 공포가 찾아왔다. 응급의학과 선생님은 ‘젊은 사람이 아픈 데도 없는데 응급실에 왜 왔냐?’라며 쫓아내듯 내몰았다. 화가 났다. ‘오죽하면 병원에 왔겠습니까? 죽을 것 같단 말입니다!’ 하고 대들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한마디 던졌다. ‘정신과에 가보세요. 공황장애일지도 몰라요.’ 각종 검사를 받고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다. 선생님께서는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할 것을 권했고, 효과는 극적이었다. 약을 먹은 후 그림자같이 따라붙던 예기불안이 많이 사라지고, 공황발작은 거의 겪지 않게 되었다.

[사례 4 - 번갈아 찾아오는 예기불안과 공황발작, 큰 힘이 된 가족의 이해와 격려] 나는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차를 골목에 세워두고 멎을 것 같은 심장을 가라앉히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순간 ‘만약 이대로 차에서 기절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은 내가 그냥 자는 줄 알고 아무도 구해주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장 내려 근처 건물 경비원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 사건이 있은 지 벌써 9년이 흘렀다. 1997년에 아들을 낳고 3년이 지나도 살이 빠지지 않아 의사의 처방으로 ‘리덕틸 10mg’을 먹었다. 2달 후에 살이 빠져 출산 전 몸무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1년 후에 요요현상으로 5kg 정도 다시 불었다. 그때 약을 재복용한 것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줄이야…. 돌이킬 수 없는 과오로 인해 지난 몇 년 동안 어둡고 긴 터널 속을 헤매왔다.

약을 재복용하면서부터 목이 바짝 마르고 나만 알 수 있는 손떨림이 계속되었고 이유 없이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살이 빠진 모습을 상상하면 이 정도의 부작용쯤이야 참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119구조대원의 들것에 실려 가면서 내 상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119구조대에 이송되어 실려 갔던 응급실의 담당 의사는 전혀 몰랐었지만, 리덕틸을 처방했던 의사는 그날의 상태를 듣더니 공황장애 같다며 신경정신과를 추천해주었다.

공황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가족의 이해와 격려는 그 어떤 약이나 치료법보다 내게 힘이 된다는 것을. 처음부터 혼자 행동요법을 시도하기보다는 가족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와 같이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약 복용을 두려워 말고 의사의 지시대로 꾸준히 복용하다 보면 불안한 생각마저도 어느덧 남의 이야기같이 느껴질 때가 분명히 온다는 것을.



공황장애,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공황장애가 무슨 병이야?

이전에는 공황장애가 무슨 병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다.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났다면 누구나 공포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이것은 정상이다. 공황장애는 호랑이가 없는데도, 호랑이가 있는 것과 유사한 공포감을 느끼는 병으로, 인체 정보체계의 오작동으로 인한 병적 증상이다.” 이런 교과서적인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공황장애에 대해 대략 이해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들은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거 마음만 좀 굳게 먹으면 괜찮은 것 아니야? 실제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거잖아!” 답답했다. 이들의 공황장애에 대한 이해도를 조금 더 높이고 싶었다. 그래서 공황장애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보았다.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신 일요일, 칠수의 집에 같은 과 친구 만수와 수미가 모여서 그룹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종일 함께 공부하고 난 후 머리도 식힐 겸 늦은 저녁 텔레비전으로 〈개그콘서트〉를 함께 보고 있었다.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고 있을 때 갑자기 떼강도가 나타나 칼과 야구방망이 등 흉기를 휘두르며 셋을 위협했다. 손발이 꽁꽁 묶이고 눈은 가려진 상태로 ‘저들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엄청난 공포감에 떨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한참 시간이 지나 떼강도는 강탈한 물건을 들고 세 사람을 내버려둔 채 달아났다. 그 사건 이후 일주일이 흘렀다. 당신이 칠수라고 가정하고, “강도 사건 전과 후에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해보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 누구나 거의 비슷하다. 공황발작은 떼강도만 없을 뿐이지 위에서 가정한 나머지 상황과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공황발작을 경험하기 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상황이나 장소, 신체감각 등에 과도한 민감성과 불안감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공황장애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치료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되면 대인 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심하게 다툴 때마다 자주 공황발작을 경험하던 20대 여성도 있다. 그녀는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남자친구가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사랑이 깊어질수록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이에 비례해서 다투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때마다 자주 경험하는 공황발작, 즉 공포감은 남자친구와 함께 있는 시간과 상황에 대한 공포증으로 변해갔다.

증상과 회복에는 기복이 있다

정신의학적 질환 중에서 공황장애의 경우 기복의 패턴이 특이하다. 어떤 질환도 당장 죽을 것 같은 느낌을 수시로 경험하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황장애는 다르다. 당장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증상이 엄습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증상은 사라진다. 그런 증상이 언제 또 나타날지 몰라서 불안하지만, 항상 죽을 것 같은 불안은 아니라서 견딜 만하다. 공황장애 증상이 갖는 이러한 속성 때문에 치료를 시작해도 거의 대부분 기복을 그리면서 증상이 호전된다.

치료 초기에 예외 없이 환자들에게 한 가지 그림을 보여준다. 그림을 본 환자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증상의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좋아지는 자신을 예상할 수 있다. 그림에는 평균을 냈을 때 시간에 따른 호전 정도(평균 호전 정도)와 매 순간 느끼는 호전 정도(순간 호전 정도)를 나타내는 곡선이 그려져 있는데 그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 공황장애 치료 초기에 항공황 약물을 투여하게 되면 환자 대다수는 증상이 마치 다 나은 것 같은 경험을 한다. 공황발작과 그 후유증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이 잠시 경감된 것뿐인 데 말이다.

이때 생긴 방심이 공황장애 치료의 실패 원인이 되는 경우가 상당히 흔하다. 일부 환자들은 치료를 받는 도중에도 더 나빠진 것 같은 경험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따져보면 처음보다는 상당히 호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나은 것만 같다가 다시 증상이 나타난 것에 대해 절망하기도 한다. 절망에 빠진 환자는 이렇게 질문한다. “공황장애가 낫기는 하나요? 완치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공황장애는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인데, 가장 기본적인 치료 진행 과정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치료는 초기ㆍ중기ㆍ후기로 나눈다. 치료 초기는 통상적으로 초기 2~3개월을 의미하며, 공황장애 증상과 후유증을 스스로 조절해나가기 위한 중요한 시기인데, 약물치료와 함께 그룹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가장 많이 요구되는 시기다. 이 기간 동안 약에 대한 교육과 호흡훈련ㆍ이완훈련ㆍ인지훈련 등이 진행된다.

치료 중기는 유지치료라고도 하는데, 호전된 상태를 안정시키고 유지하는 기간으로 치료 초기에 배운 훈련들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본격적으로 생활 속에 습관화하는 과정이다. 치료 후기는 치료약물을 점진적으로 감량해가면서 치료를 종결하는 과정이다. 한편 치료 기간의 길고 짧음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각 개인이 처한 환경적인 요인, 치료약물 복용에 대한 순응도, 여러 훈련에 대한 충실도 등을 들 수 있다.

공황장애, 유명인도 예외는 아니다

이경규, 이병헌, 김하늘, 차태현, 하유미, 이만기, 양현석, 김장훈, 하일성, 이무송, 조니 뎁, 엠마 스톤, 킴 베신저, 스칼렛 요한슨, 아델, 에드바르트 뭉크. 이들 유명인들의 공통점은 공황장애의 고통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공황장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매우 늘어났다. 공황장애의 인지도가 높아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자신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용감히 고백한 덕분이다. 어떤 사람들은 연예인들이 많이 걸리는 병이라며 공황장애를 ‘연예인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것 같다. 공황장애 증상의 유발인자가 피로의 누적, 수면 부족, 스트레스 등임을 생각해본다면, 연예인 각 개인의 속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적 속성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약으로 마음을 치료한다?: 많은 사람들이 “약으로 어떻게 마음을 고치느냐? 마음의 병은 의지나 정신력으로 고쳐야지.”라고 말한다. 꼭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공황발작과 같은 불안 공포는 의지나 정신력과는 상관없는 병적 증상이다. 뇌 경보장치의 오작동이지 정신력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공황장애 치료약물은 치료 초기에 증상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약물치료는 일정 기간 이상(통상적으로는 1년 이상의 기간) 유지되어야 하고, 이 기간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크다. 따라서 약물을 감량하거나 끊는 과정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의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한편 인지행동치료에서 다루는 호흡훈련ㆍ이완훈련ㆍ인지훈련은 치료 후기에 약물을 감량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꾸준히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훈련은 굉장히 중요하다. 약을 맹신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지나친 거부감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약에 대한 중립적인 생각, 즉 ‘나는 약이 필요한 상태라서 도움을 받고 있는 중이다.’와 같은 생각이 중요하다.



호흡훈련과 이완훈련으로 고통에서 벗어나자



공황장애, 완치를 기대하는가?

호흡훈련과 이완훈련을 빼놓고 완치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호흡훈련(복식호흡)은 요가, 단학선원를 비롯해서 심신수련을 하는 거의 모든 기관에서 중요한 훈련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완훈련은 불안, 긴장, 스트레스 관리뿐만 아니라 수면 유도에도 효과적인 훈련 방법이다. 이 2가지 훈련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기 위해 우선 신체증상과 심리증상에 대해 알아보자. 공황발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환자에게 질문하게 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중에서 4개 이상의 질문에 “예”라고 답한다면 공황발작으로 정의한다.

① 마치 달리는 것처럼 심장이 마구 뛰었습니까? ② 양손에 땀이 나거나 축축했습니까? ③ 팔다리나 몸이 떨렸습니까? ④ 숨이 가빠지거나 숨 쉬기 곤란했습니까? ⑤ 질식할 것 같거나 목에 뭔가 걸린 것 같았습니까? ⑥ 가슴에 통증이나 압박감 또는 답답함이 있었습니까? ⑦ 토할 것 같거나, 속이 불편하거나, 갑자기 설사를 했습니까? ⑧ 어지럽거나, 불안정감이 있거나, 머리가 멍하거나, 기절할 것 같았습니까? ⑨ 주변 사물들이 이상해 보이고, 비현실적이거나, 혹은 낯설게 느껴지거나, 또는 당신 몸의 전체나 부분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고 느꼈습니까? ⑩ 자제력을 상실한다든지 미칠 것 같았습니까? ⑪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되어 두려웠습니까? ⑫ 당신 몸의 일부가 저리거나 무감각했습니까? ⑬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거나 오한이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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