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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독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감정 독재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3년 12월 / 336쪽 / 15,000원





왜 스포츠 심판들은 결정적 순간엔 휘슬을 적게 불까? 부작위 편향



2012년 6월 19일 대전구장에서 LG가 0-1로 뒤진 5회 무사 2루, 전일수 1루심은 이병규(9번)의 절묘한 희생번트를 아웃으로 판정했다. 이병규는 심판에게 몸을 부딪치며 거칠게 항의했고, 김인호 1루 코치가 뒤이어 심판을 손으로 밀쳤다. 판정 번복은 없었다. 이병규 대신 김인호 코치가 퇴장을 당했다. 같은 날 잠실구장 넥센이 3-1로 앞선 5회 1사 3루에서 박병호의 외야 뜬공 때 3루 주자 정수성에 대한 포수의 태그가 늦었지만 아웃 판정이 났다. 넥센이 1점을 더 도망갔다면 두산 벤치는 니퍼트를 교체할 예정이었다. 판정은 승부를 갈랐다.

이런 일련의 오심 논란으로 인해 6월 20일 새벽, 한국야구위원회 홈페이지가 불통되었다. 한국프로야구 심판들은 대부분 프로야구 경험을 지닌 ‘엘리트’들로 미국과 일본보다 ‘정확한 판정’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데, 왜 그런 일이 자주 벌어지는 걸까? 이용균은 오히려 그런 뛰어난 자질이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심리학적으로 따지자면 일종의 ‘인지 편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중계기술이 발달하고 순위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심판이 받는 압박이 커진다. 압박에 따라 ‘인지 편향’ 가능성도 심해진다. 심판들은 일단 부작위 편향을 갖는다. 부작위 편향이란 ‘개입하지 않음을 최선으로 삼는 태도’다. 심판들은 ‘최고의 심판은 경기가 끝났을 때 누가 심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심판’이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관습적 상황에서 관습적 콜이 이루어진다. 야구의 흐름을 지나치게 잘 알기 때문이다. 보내기번트 상황에서 아웃 콜이 우선되는 경우가 그 이유다. 이병규의 아웃은 부작위 편향의 가능성이 높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부작위 편향’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일어나는 손실보다 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손실에 덜 민감한 현상, 바꿔 말하면 움직이지 않았을 경우 돌아오는 손해보다 행동했을 때의 손해를 고려하는 현상이다. ‘행동하지 않은 책임’이라는 것도 있긴 하지만, 우리가 보통 말하는 책임은 행동을 했을 때에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부작위 편향을 부추긴다. 관습적 상황에서 관습적 콜은 이례적 콜보다 안전하기 때문에, 부작위 편향이라고 하는 타성에 기울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NBA 농구 경기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접전인 경기의 결정적 순간엔 심판이 휘슬을 평소의 절반 이하로 부는 것으로 나타났다. 괜히 파울 선언을 해서 경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즉 ‘경기가 끝났을 때 누가 심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심판’이 되고 싶다는 ‘부작위 편향’이 작동한 것이다.

부작위 편향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생각하는 ‘손실 회피 편향’과도 통한다. 민재형은 “제약회사가 신약 개발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약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소송(개인적 피해)이 두려워 포기한다면, 이는 인류의 건강과 관련해서는 큰 손실(사회적 피해)이 아닐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신약의 부작용에 대한 처벌은 존재하지만, 신약을 개발하지 않아 많은 이들을 병마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데 대해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사회는 없다. 많은 조직에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방관자들이 많은 세상은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른다. 이런 사회적 비용은 결국 개인의 비용으로 전가된다.”

2013년 10월, 한때 재계 순위 5위까지 올랐던 56년 역사의 동양그룹이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것과 관련, 이상배는 부작위 편향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동양그룹 내부에서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사양산업에 접어든 시멘트 부문을 매각하는 방안이 논의되었지만, 동양그룹 임원들은 동양시멘트나 한일합섬, 동양매직, 동양파워 등을 섣불리 헐값에 팔았다는 비판으로 일자리를 잃을 것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매각을 주장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선호 현상도 따지고 보면 부작위 편향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이 장기 기증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꼭 인간애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데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에서 신체 일부를 떼어내는 것이 자연스러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작위 편향은 ‘행동 편향’에 반하는 성향인가? 꼭 그렇진 않다. 스위스의 작가 롤프 도벨리는 “행동 편향은 어떤 상황이 불분명하고 모순적이고 불투명할 때 작용하는 반면, 부작위 편향은 대개 통찰 가능한 상황에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폐해는 행동을 통해서 예방하려고 노력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폐해를 예방하는 것은 우리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하지는 못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작위 편향은 행동 편향에 비해 인식하기가 어려운 편이다. 행동을 거부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보다 눈에 덜 띄기 때문이다. 그래서 1968년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된 대규모 학생운동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극하려는 의도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슬로건을 내세우며 싸웠다. ‘만약 당신이 해결의 일부가 아니면, 당신은 문제의 일부이다.’”

인터넷과 SNS 시대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목숨 걸고 하려는 사람들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의 정치적 담론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부작위 편향의 증대로 인한 정치적 양극화다. 인터넷과 SNS는 대중의 정치 참여를 보장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참여는 주로 과잉 정치화된 사람들이 양산해내는 ‘악플’의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악플에 시달리는 게 싫은 사람들은 속된 말로 “38선 나 혼자 막나” 하는 심리로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즉,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중간지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부작위 편향을 자기방어 수단으로 삼은 이들은 그 성향이나 기질상 타협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반면 악플에 개의치 않거나 오히려 악플을 보며 더 힘을 내는 ‘양극화 장사꾼들’은 대부분의 정치 관련 사이트와 SNS에서 맹렬하게 활동함으로써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행동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라”고 했다. 쉽지 않은 주문이긴 하지만, 이 명언이야말로 행동 편향과 부작위 편향 사이에서 취할 수 있는 슬기로운 중용의 해법이 아닐까?



왜 내 문제는 ‘세상 탓’ 남의 문제는 ‘사람 탓’을 하는가? 기본적 귀인 오류



“그 사람 그럴 줄 알았어.” 어떤 사람이 실패를 하면 흔히 나오는 말이다. 그 사람이 어떤 특별한 상황으로 인해 실패했을 가능성도 있건만, 우리는 너무도 손쉽게 실패의 모든 이유를 그 사람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 자신의 실패에 대해선 세상 탓을 하면서도 말이다. 이는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은 과소평가하고, 그 상황에 의해 나타나는 성향은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사람의 행동에는 구조적 여건, 절박한 상황, 집단의 규범, 판단 착오 등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원인 요소들을 무시하고 성격이나 동기 등 행위자의 내적 특성 탓으로만 돌리는 오류를 가리켜 ‘기본적 귀인 오류’라고 한다. 귀인(歸因)은 특정한 행동이 발생한 원인을 추론하는 것을 뜻하는데, 귀인 오류 가운데 너무나 흔히 관찰할 수 있는 편향이기에, ‘기본적’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이다. 이 오류를 지적한 심리학자 리 로스는 동양인에 비해 개인주의적인 서양인이 이런 오류를 더 많이 범한다고 했다.

로스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한 학기에는 통계학을, 다른 한 학기에는 인본주의 심리학을 가르쳤는데, 로스에 대한 학생들의 강의 평가는 전혀 딴판으로 나왔다. 통계학을 가르친 학기에는 로스가 냉정하고 완고하고 쌀쌀맞고 까다롭고 보수적인 사람, 인본주의 심리학을 가르친 학기에는 내적 성숙과 공동체 문제에 깊은 관심이 있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강의 과목의 특성이라는 환경의 영향을 무시하고 그걸 행위자의 내적 특성으로 돌리는 기본적 귀인 오류가 일어난 것이다.

귀인 이론을 체계화한 버나드 와이너에 따르면 귀인에는 상황적 귀인과 기질적 귀인이 있다. 어떤 사람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가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황적 귀인, 성격 자체가 흉악하다든가 하는 기질 탓으로 돌리는 것은 기질적 귀인이다(상황적 귀인은 ‘상황 귀인’, 기질적 귀인은 ‘성향 귀인’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는 상황적 귀인을 하는 반면, 타인에 대해서는 기질적 귀인을 하는 경향이 있다. 즉, 내 문제는 ‘세상 탓’이지만 남의 문제는 ‘사람 탓’이라는 논리다.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 등은 197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런 성향을 ‘행위자-관찰자 편향’으로 설명했다. ‘행위자-관찰자 비대칭’이라고도 한다. 쉽게 말하자면, 내 문제는 내가 행위자이므로 내 행위에 가해진 상황적 제약에 대해 잘 아는 반면, 다른 사람의 문제는 내가 관찰자에 불과하므로 상황적 제약에 대해 알기 어려워 사람 탓을 한다는 것이다.

운전할 때는 차로의 빨간불이 길게 느껴지는 반면, 길을 걸을 때는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길게 느껴진다거나, 다른 사람이 듣고 있는 음악 소리는 시끄럽게 느껴지고 짜증이 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땐 그것이 시끄럽다고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거나, 다른 사람이 욕하는 것을 들으면 “무슨 저런 무식한 사람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내가 기분 나쁘고 화나는 일이 생길 때 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 모두 내가 행위자냐 관찰자냐 하는 처지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지각을 하면 “길이 막혀서 늦었어”라고 하며 지각의 원인을 외부 세상으로 돌리지만, 타인이 지각을 하면 “분명히 늦장을 부리다가 늦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지각의 원인을 당사자 내부 문제로 돌린다. 이런 오류가 발전해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스캔들”인 이중 기준이 만들어지고,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원리로 승격되는 것이다.

부부싸움을 하는 원인의 상당 부분도 실은 바로 이런 오류 때문이다. 자신이 자동차 사고를 내면 “폭우가 심해서” 혹은 “커피가 갑자기 쏟아져서”라는 식으로 상황 탓을 하며 합리화를 하지만, 배우자가 자동차 사고를 내면 “앞을 잘 살폈어야지” 혹은 “안전거리를 확보했어야지”라는 식으로 사람 탓을 하며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이런 식의 이중 기준이 작동한다면 어찌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으랴.

기본적 귀인 오류는 우리 삶의 기본일 정도로 피할 수 없는 것인가? 롤프 도벨리는 우리 인간이 석기 시대부터 다른 사람들의 일에 관여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 귀인 오류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를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조상은 생존을 위해 집단에 속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의견을 조율하고 마음을 맞춰야 했다. 혼자만의 길을 가는 사람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들이 살아남는 확률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머물며 살아남는 확률보다 적기 때문에 유전자풀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90퍼센트의 시간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데 쏟아붓고, 단 10퍼센트만 외부 상황의 관계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토머스 페티그루는 1979년 기본적 귀인 오류가 집단 간 편견과 결부되어 나타나는 것을 가리켜 ‘궁극적 귀인 오류’라는 이름을 붙였다. 예컨대, 백인이 백인과 흑인을 어떻게 달리 평가하는지 생각해보자. 흑인의 부정적 행동에 대해선 기질적 귀인을 하고 긍정적 행동에 대해선 상황적 귀인을 하는 반면, 백인의 부정적 행동에 대해선 상황적 귀인을 하고 긍정적 행동에 대해선 기질적 귀인을 한다면, 이게 바로 궁극적 귀인 오류다.

메이플라워호 항해에서부터 서부개척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개인의 결단과 모험이라는 토대 위에서 건국되었고 그것이 국가적 정체성을 형성했기에, 사회적ㆍ국가적 차원의 시스템 문제마저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것을 국민적 신앙으로 갖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왜 38명의 목격자는 한 여인의 피살을 외면했는가? 방관자 효과



1964년 3월 13일 금요일 새벽 미국 뉴욕 퀸스 지역 주택가(아파트 단지)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의 칼에 찔려 살해되었다. 제노비스는 3시 15분에서 50분까지 약 35분 동안 3번에 걸쳐 칼에 찔려 비명을 지르면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몸부림쳤지만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범인은 윈스턴 모즐리였다. 그는 부인과 두 아이가 있는데도 밤늦게 집을 나와 그냥 여자를 하나 골라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물색하다가 제노비스를 택했다. 그리고 칼에 찔려 죽어가는 그녀를 강간하기까지 했다. 모즐리는 6일 후 다른 절도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스스로 제노비스 살인을 자백했다. 그는 그간 30~40건의 절도와 더불어 다른 두 여성을 살인ㆍ강간한 것으로 밝혀졌다.

처음엔 평범한 살인 사건으로 취급되었다가 2주 후인 3월 27일 《뉴욕타임스》가 이 사건을 크게 다루면서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기사 제목은 매우 자극적이었다. 「살인을 목격한 38명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Thirty-Eight Who Saw Murder Didn’t Call the Police)」. 훗날 《뉴욕타임스》 편집국장이 된 기자 에이브러햄 로젠탈이 이 사건을 소재로 쓴 책의 제목도 『38명의 증인들: 키티 제노비스 사건(Thirty-Eight Witnesses: The Kitty Genovese Case)』이다.

《뉴욕타임스》는 정상적인 남녀 목격자 38명이 창가에 서서 희생자가 마지막 30분 동안 비명을 지르는데도 구조는커녕 경고성 고함 한 번 지르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이 방관자들의 기이한 행태를 시리즈 형식으로 연속 보도했다. 다른 신문들도 ‘차가운 사회’, ‘무감각한 시민정신’, ‘인간성의 소실’ 등의 제목으로 분노와 개탄을 표출하는 기사와 칼럼을 앞다투어 실었다. 목격자들의 이름과 주소를 공개하라는 분노의 비난이 빗발쳤다.

로젠탈은 자신의 책에서 제노비스가 공격을 당하는 동안 목격자 38명 전원이 전화기를 들지 않은 이유를 어느 누구도 설명할 수 없다며, 그들의 냉담함은 사실상 대도시의 다양성 중 하나라고 했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냉담함은 대체로 심리적인 생존에 관건이 된다. 어떤 사람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압력을 받았을 때, 그가 이 무수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침입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능한 한 그들을 무시하는 것뿐이다. 자기 이웃과 그들의 고통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다른 대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뉴욕의 생활에서 불가피한 조건반사이다.”

1994년 이 사건 발생 30주년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을 때 빌 클린턴 대통령은 뉴욕 시를 방문해 이렇게 연설했다. “이 사건은 당시 우리 사회에 관한 소름 끼치는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바로 우리 각자가 위험에 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고독하다는 것이지요.”

이 사건을 다룬 어느 사회심리학 교재는 “목격자들이 범인이 세 번이나 범행 장소로 돌아와 그 소름 끼치는 행위를 끝마칠 때까지 장장 30분 동안 넋을 잃고 창가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라고 묘사했다.

미리 밝히자면, 사건 발생 40여 년 후인 2007년, 이 사건을 다룬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언론의 보도가 엄청나게 과장되었다는 걸 밝힌 논문이 《아메리칸 사이콜로지스트》에 실렸다. 사건의 목격자가 38명이 있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며, 일부 목격자들도 여자의 비명을 듣고 창밖을 어렴풋하게 보긴 했지만 그것이 살인 사건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학생들에게 드라마틱한 연구 사례로 우화적 기능이 있어 계속 오류가 교재에 반복되고 있다는 게 논문 필자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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