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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정신

강창래 지음 | 알마
책의 정신

강창래 지음

알마 / 2013년 12월 / 376쪽 / 19,500원





포르노소설과 프랑스대혁명



포르노소설이 프랑스대혁명을 일으켰다고?

혁명은 무엇으로 일어나는가? 가치체계는 어떻게 바뀌는가? 이런 질문은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누구라도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마 여러 관점에서 수많은 답이 나올 것이다. 로버트 단턴은 질문을 조금 바꿔서 그 답을 찾아보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대혁명 이전에 어떤 책을 읽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혁명 전, 그러니까 18세기에 금지된 베스트셀러를 25년 동안이나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당시 프랑스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되는 세 종류의 책을 찾아냈다. 그것은 포르노소설과 SF, 그리고 정칙적인 중상과 비방을 담은 소설이었다.

“성적인 감정을 일으킬 목적으로 성기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포르노 소설이 프랑스대혁명의 지적인 기원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놀라운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위대한 고전’으로 알려진 책들은 그 목록에 없다는 사실이다. 더 놀랍고 재미있는 것은 그 위대한 계몽사상가들 역시 포르노소설이나 그에 버금가는 작품을 썼다는 것이다! 《철학서간》으로 유명한 볼테르는 음란하고 외설적인 《오를레앙의 처녀》를 썼다. 그리고 루소의 《고백록》은 소설은 아니지만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올랐다. 그런데 이처럼 포르노소설이 베스트셀러였다고 해도, 그것이 그토록 대단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장 자크 루소의 연애소설: 사실 장 자크 루소의 대표작은 《사회계약론》이 아니라 《신 엘로이즈》라는 연애소설이라 해야 할지 모른다. 《신 엘로이즈》는 1761년에 출간되어 40년 동안 115쇄를 찍었다. 115쇄라니! 그 당시의 문맹률을 감안하면 글자를 아는 사람만이 아니라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거의 모두 이 책을 읽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책의 판본은 70종 이상이 있었으며 책을 시간 단위로 빌려줘도 모자랄 정도로 그 인기가 엄청났다고 한다.

그에 비해 ‘18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논문이자 프랑스혁명의 성서’라고 평가받고 있는 《사회계약론》은 1762년에 처음 출간된 이래, 프랑스대혁명이 있었던 1789년 이후 1791년에 딱 한 번 더 찍었을 뿐이다. 그리고 학자인 조앤 맥도널드가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하고부터 2년 사이에 정치에 관한 소책자 1,114권을 조사한 결과, 겨우 12회 참조되었다. 이런 사실을 보더라도 ‘프랑스혁명의 지적인 기원’에 대해 처음으로 연구했던 다니엘 모르네의 조사 결과가 설득력 있어 보인다. 모르네는 당시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조사하면서 18세기 개인장서의 경매 목록을 뒤졌다. 2만 권이나 되는 그 목록에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한 권 있었다. 로버트 단턴은 모르네의 조사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2만 권 가운데 단 한 권이라면 너무하지 않은가. 틀림없이 그 당시 사람들은 장 자크 루소를 계몽사상가라기보다 유명한 연애소설 작가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엘로이즈 이야기’는 중세 최대의 연애사건으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었다. 《신 엘로이즈》에서 두 주인공은 가정교사와 학생으로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다. 남자는 가난한 평민, 여자는 스위스 귀족의 외동딸이었다. 그런 신분의 차이를 여자의 아버지는 용납하지 않았다. 남자는 떠나야 했고, 여자는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는 러시아 군인과 결혼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다시 만나게 된 남녀는 서로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만 여자는 남편을 배신할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이 소설은 여자가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여자는 유서에서 “하루만 더 지났어도, 어쩌면 나는 죄를 지었을지 몰라요!”라고 고백한다. 이 결말을 두고 ‘정숙한 여인으로서 죽을 수 있는 기쁨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독자들에게 그런 기쁨보다는 가슴 저미는 고통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자연스럽고 열정적인 사랑이 제도의 억압 때문에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면, 자신을 등장인물들과 동일시하며 함께 울고 웃고 했던 독자들이 그 폭압적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교황청에서는 이 소설을 금서 목록에 올렸으나 그때도 역시 ‘금서 목록’은 책의 명성을 드높이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 도움을 줄 뿐이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이 지겹고 긴 서간체 소설(한국판으로 1,000쪽이 넘는다)이 당시 독자들에겐 엄청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17세기 중반에 출간되기 시작한 세계 최초의 학술지였던 <주르날 데 사방>은 당시 이 소설에 대해 “냉혈한이 아니라면 그처럼 영혼을 강탈하고 폭압적으로 쓰디쓴 눈물을 뽑아내는 감정의 분출에 저항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등장인물들과 매우 강렬하게 동일시되었고, 그럼으로써 “전통적인 사회적 경계, 즉 귀족과 평민, 주인과 하인, 남성과 여성, 아마도 성인과 아동 간의 경계마저 넘어 공감”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이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들까지 자신과 비슷한 감정과 이성을 가진 ‘같은 존재’로 보게 되었다. 이런 배움의 과정이 없었다면 프랑스대혁명은 평등이라는 낱말에 깊은 의미를 담지 못했을 것이며 또한 정치적 성과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을 전공한 문화사학자인 린 헌트는 그런 공감이 인권이 발명될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을 만들어주었다고 설명한다. 이 말은 그런 종류의 소설이 프랑스대혁명의 사회적 배경이 되었다고 고쳐 읽어도 무방하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인권, 즉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며 개인이 가진 재능과 장점에 따라 지위가 개방되고 출신에 따른 특권을 단호하게 타파한 ‘인권 선언’이 프랑스대혁명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인권 선언으로 곧바로 만인이 평등해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 이전에 인권이란 귀족 남자의 특권만을 의미했던 것과는 달랐다.

린 헌트는 그 배경에 음란한 소설의 독자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서간문에는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행위 밖의 시선이나 권위주의적 관점이 없다. 읽어가다 보면 작가의 모습도 사라지고 등장인물만 남게 되면서 마치 실제 상황인 것처럼 느껴진다. 교훈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편지를 쓰는 인물의 내면에 빠져들어 강렬한 동일시를 경험하게 된다. 놀랍지 않은가. 프랑스 대혁명만이 아니라 ‘인권의 발명’에도 유명한 계몽사상가들의 위대한 저작물은 없다. 대신 그 자리에 조금 음란한 연애소설들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잘못된 질문, “예술이냐 외설이냐”: 앞에서 살펴본 그런 종류의 공감은 연애소설보다 포르노그래피에서 훨씬 더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섹스는 연애 감정보다 더 자연스럽고 강렬한 본능적 욕망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급과 상관없이 섹스가 ‘호환’되는 것이라면 지배계급 역시 하층민과 같은 종류의 인간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귀족들만이 천부적인 특권을 가진다는 사회제도는 설득력을 잃게 된다.

그것은 미국의 한 인종주의자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가 반인종주의자로 바뀐 경우와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백인은 한 전투에서 상처를 입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수혈을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혈액형이 다른 백인이 아니라 혈액형이 같은 흑인에게서 수혈을 받고 살아났다. 그 경험은 흑인도 백인과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행위에 관련된 묘사가 주를 이루는 포르노그래피가 혁명을 일으킬 정도로 사람들의 가치체계를 바꾼다는 설명에 충분히 공감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다면 성에 대해 솔직한 표현들이 천박하고 불경스럽다고 느끼는 언어문화에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그래서 성행위와 성적인 표현에 대해 위선적인 도덕 관념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우리의 그런 사고방식은 지배권력이 계획하고 실행했던 대중조작의 결과가 아닐까.



아무도 읽지 않은 책



‘아무도 읽지 않은 책’에서 과학혁명이 시작되다

독자들 가운데 혹시 과학에 부담을 가지고 있다면 이 글에선 걱정을 털어버려도 좋다. 우선 내겐 독자를 괴롭힐 정도의 전문 지식이 없다. 그리고 특히 난해한 과학책 고전이라면 그것을 꼭 다 읽고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책들에는 늘 요약본이나 해설서가 따라다녔고, 그 2차 문헌들이 원전을 대신해서 이론을 널리 퍼뜨렸다. 그런 사실로 미뤄볼 때 어떤 종류의 고전은 원전 읽기보다 그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아무도 읽지 않았던 위대한 책?: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1543)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혁명의 시작을 대표하는 저작물로 꼽힌다. 그래서 과학사에는 당연히 자주 등장하고, 일반적인 역사를 다루는 통사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만큼 영향력이 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아무도 읽지 않은 책’ 그리고 ‘역사상 가장 덜 팔린 책’으로 꼽힌다.

가장 큰 이유는 극단적으로 어려운 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당시에도 많이 “읽었다”고 주장한 오언 진저리치조차, 자신도 천문학자지만 “무시무시하게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책 앞부분 24쪽까지는 매우 아름다운 글이라 웬만한 독자라면 지적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수학적으로 난해할 뿐 아니라 천문학적으로도 엄청나게 전문적이다.

책을 읽는 다양한 방법을 보여준 과학의 역사: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이론이 정통 신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교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두려움도 있었다. 당시 기술로는 자신의 ‘터무니없는 이론’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 쓴 원고를 먼저 교황에게 보냈다. 읽어보고 출판을 허락해달라는 것이었다. 교황은 자신도 읽어보고, 주변의 유명한 학자들에게 돌려가며 읽게 했다. 물론 이 경우에 ‘읽었다’고 해야 할지 ‘훑어보았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꽤 많은 사람들이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보기’는 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출판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게 아니라면 출판을 감독하며 교정을 열심히 본 안드레아스 오지안더의 ‘비겁한 서문’ 덕분에 출판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여러 번 읽었을 것이고, 이게 ‘장난 아니게’ 위험한 저작물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오지안더는 ‘독자에게’라는 제목의 서문을 써넣었다. 글쓴이의 이름을 따로 밝히지 않아 언뜻 보면 당연히 코페르니쿠스가 썼겠거니 할 만한 글이었다.

이 책에 실린 태양중심설은 참이거나 참일 가능성도 없다. 태양중심설은 다만 천문학자들이 더 정확한 계산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편리한 수학적 도구일 뿐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서문만 보면 코페르니쿠스 역시 태양중심설을 믿지 않았다고 오해할 수 있을 정도다. 조금은 비겁한 방식이지만, 태양중심설의 종교적 측면을 축소시키고 과학적 성격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 돋보이는 글이다. 출판 허락을 받기 위해 교황청에 제출한 원고에 이 서문이 포함되었다면 좀 더 쉽게 출판을 허락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책이 출판된 뒤로 1616년 금서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놀랍게도!’ 교황청에서도 대단히 훌륭한 책으로 인정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이 책에서 제시한 천문학 계산법 덕분에 곤란한 문제 하나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달력은 BC 45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력을 개정해서 만든 율리우스력이었는데, 그 오래된 달력 체계는 누적된 역법상의 오차 때문에 부활절을 지정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생각해보라.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서 권위를 가진 교황이 부활절 날짜 하나를 제대로 지정하지 못한다면 그 얼마나 ‘스타일 구기는’ 일이겠는가. 그런데 코페르니쿠스 덕분에 그 문제를 해결했으니 ‘대단히 훌륭’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개정된 달력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력이다.

당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던 교황의 수석 천문학자 크리스토퍼 클라비우스 역시 이 책을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는 달력 개정을 위한 연구 과정에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열심히 읽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 책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강의하는 천문학 강좌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소개했다고 하니,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를 완전히 거부하지 않았고, 지구가 움직인다는 주장과 관계가 없는 부분만을 적절하게 받아들였다. - 《과학의 변경 지대》, 로버트 웨스트먼, 215쪽

사실 오지안더가 쓴 서문은 거의 관례적이기까지 했다. 클라비우스는 예수회의 과학자였고,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으니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 리지외의 주교였던 니콜 오렘도 그랬다. 그는 코페르니쿠스보다 100년 정도 전에 이미 지구의 자전설과 태양중심설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천상과 지상론》에서 지구의 자전을 설파했다고 전하는 고대의 헤라클레이데스 폰티쿠스의 이론을 소개했다. 그러고는 “천계가 아니라 오히려 지구가 태양 주위로 회전운동을 한다는 견해를 지지하며 이를 더 정교하게 발전시킬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썼으며,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는 가능성과 논거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한참을 그렇게 설명하고는 다음과 같이 김을 쏙 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은 땅덩이가 아니라 하늘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나도 그렇게 믿는다. 실제 ‘하느님은 땅덩어리를 움직이지 않게 단단히 고정해 놓으셨다.’ 내가 지금까지 그 같은 방식으로 기분 전환 삼아 논하던 사항은, 우리의 신앙을 그런 논거에 의거해 비난하려 하는 사람들을 논박하고 배척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16세기 문화혁명》, 야마모토 요시타카, 2010, 772쪽

이런 방식으로 니콜 오렘은 자신의 주장이 교회에 맞서기 위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이런 그가 위험하다거나 혁명적이라는 평가도 없었을 뿐 아니라, 교회의 탄압을 받았다는 기록도 보이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처음에 처했던 사회적 상황도 그와 비슷했다.

요약본과 해설서의 역할: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읽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분명히 혁명의 실마리가 되긴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는 요약본이다. 앞서 말했지만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이론을 책 발간 시점보다 일찍 확립했다. 당연히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도 궁금했을 것이다. 그래서 1514년 이전 언제쯤에 요약본을 하나 썼다. 그것이 《코멘타리올루스》(‘짧은 논평’이라는 뜻)라는 필사본이다. 대략 40쪽 정도 되는 얇은 이 책은 꽤 많이 필사되었던 것 같다. 한 자료를 보면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나오기까지 약 30년 동안 거의 전 유럽에 퍼졌다고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16세기 필사본 하나가 어떻게 그처럼 널리 퍼졌는지 의심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자료를 보면 천문학자들의 네트워킹도 놀라울 정도로 잘 되어 있었고, 도서관매상들의 활약도 대단했다. 그들은 잠재 고객의 명단을 확보하고 고객에게 판매 가능성이 높은 도서목록을 제공했다.

두 번째는 코페르니쿠스의 제자였던 레티쿠스가 1540년에 쓴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 대한 소개서 《지동설서설》이다. 이 책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아주 잘 소개한 책으로 꼽힌다. 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매우 좋았고, 그 이듬해에 재판을 찍었다. 그래서 1566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재판을 찍을 때 함께 출간되기도 했다. 어쩌면 갈릴레오도 이 요약본을 읽었을지 모른다.

갈릴레오도 읽지 않은 고전: 만일 갈릴레오에게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읽어야 하느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그것은 ‘고전’이기 때문에 읽는 것이 좋다고 대답할까?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역시 그 책을 다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릴레오가 코페르니쿠스에게 ‘낚인’ 것은 어쩌면 스스로 제작한 고성능 망원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망원경으로 본 하늘은 경이로웠다. 그러다가 보아서는 안 될 목성의 위성들을 보고 말았다. 당시의 정통 신학에 적응한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 체계로 볼 때 그런 것은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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