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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그러나 다르게 동료효과

김대유 지음 | 시간여행
함께 그러나 다르게 동료효과

김대유 지음

시간여행 / 2013년 9월 / 268쪽 / 13,800원





1부_ 서로를 웃게 하는 동료효과



1장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여수 앞, 바닷가에 손양원 목사가 설립한 애양원이 있다. 이곳은 1,000여 명의 나환자들이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는 자활촌이다. 나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기간에 이순임 집사님의 도움을 얻어 애양원 방문 일정을 잡았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알게 된 김재천 할아버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파스칼의 『팡세』를 좋아하던 19세 앳된 나이에, 나병을 앓아 평생을 애양원에서 머물고 있는 할아버지였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마주치는 주민들에게서 독한 나병약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손가락ㆍ발가락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거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분은 병이 심화되어 실명 상태였다. 할아버지 또한 손가락과 발가락이 성하지 않았고 실명된 상태였다. 할아버지는 나를 손자처럼 반겼지만, 내가 무서워하는 것을 아시는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할아버지가 기도를 해주시겠다며 나에게 기도 제목을 물었다. “목감기가 걸렸는데 잘 낫지 않아요.”

할아버지가 우렁찬 목소리로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대유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그의 가족들 건강도 지켜주세요…….” 할아버지의 간절한 기도를 듣다가 나는 문득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치고 올라오는 그 무엇 때문에 부끄러워졌다. ‘눈도, 손가락도, 발가락도 없는 분이 이렇게 젊고 튼튼한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다니…….’ 나는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가서 할아버지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두 뺨에 볼을 비비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시력을 상실한 주민들이 주위에서 손가락이 떨어져나간 손으로 박수 치며 우렁차게 찬송하고 있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 하여도♬ 나도 세상 사람들 안 부러워해♪♪” 애양원에서 울려 퍼지던 그들의 노랫소리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손가락이 없는 뭉툭한 손바닥으로 치는 손뼉 소리지만, 성한 사람들 박수 소리보다 몇 배 더 힘찬 그 소리가 나의 가슴에 콱 박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들은 서로를 보듬어주었고, 높은 자존감으로 건강한 이방인을 위해 기도했으며, 무너지는 외모와 달리 속사람은 깨끗하고 순수했다. 고 이순임 집사님과 불편한 나환자들이 더불어 빚어낸 아름다운 동료효과의 결과물, 그것은 참사랑이었다. 그들이 꿈꾸었던 세계는 지금도 내 가슴속에서 피어난다.

교육현장에서 제자에 대한 사랑이 고갈되어 영혼이 곤궁할 때면, 참사랑이 충만했던 애양원을 떠올리게 된다. 가난하고 병약한 제자들을 볼 때마다 그 속사람에 깃들어 있을 건강하고 당당한 자존감을 가늠하게 된다. 아이들이 서로를 돌아보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동료애를 갖게 해준다면 학교 또한, 아이들에게 천국이 될 것이다. 학생은 어떤 사람일까? 그들의 존재에 대해 고민했고, 그 고민은 후에 발도르프 교육을 통해 답을 얻게 되었다. 민주적이고 창의성 있는 교육으로 널리 알려진 발도르프 학교의 기본 이념은 ‘인간을 소중하게 다루는 것’과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다.

발도르프는 사람의 기질을 크게 4가지로 구분했다. 새로운 것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사람, 슬픔을 잘 느끼는 사람, 느린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발도르프 교육은 아이들의 그런 기질과 환경, 신체조건 등을 보면서 어떻게 이를 온전하게 보완해줄까를 고민했다.

발도르프 교육을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학교들이 갖는 교육체계를 생각하면 참 우울하다. 발도르프 교육을 우리의 공교육 체계로 가져온들 토양이 달라서 말라 죽을 판이다. 호기심 많은 아이는 내신 점수 따기에 실패할 것이고, 슬픔을 잘 느끼는 아이는 리더가 되기 어려우며, 느린 아이는 왕따가 되기 쉽고, 화를 잘 내는 아이는 학교폭력 가해자로 몰릴 것이다. 학교에서 생존하려면 공부를 잘하든지, 주먹이 세든지, 영어를 잘해야만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방관자로 겨우 하루를 버틸 뿐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이코 상태를 의미한다. 어른이 보기에 완벽하지 않고 모자란 상태다. 청소년은 감성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은 시기이다. 사이코 상태에서는 슬픔과 사랑이 극대화되고 결단은 느릴 수 있다. 말하자면 청소년 시기는 슬퍼하고 느리고 화내고 호기심 많은 때이다. 학창시절, 체험여행을 애양원으로 가게 되었던 것은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해 겨울은 나에게 참 따뜻했다.

지랄총량과 시월애(十月愛): 아이들에게 사랑과 그리움은 무엇일까? 하얀 교복을 입고 그림처럼 앉아서 EBS 방송교재를 풀고 있는 청춘들에게도 가슴속에는 사랑과 그리움이 가득하다. 이 시기에 사랑과 그리움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면, 사랑 연습을 하지 못하고 자란다면, 이 과정을 생략한 채 성장해서 어른이 된다면, 이들은 참 불편한 사랑을 해야 할 것이다.

별난 짓을 우리는 속된 말로 ‘지랄 맞다’고 한다. 지랄은 마구 어수선하게 떠들거나 함부로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사춘기의 일탈과 40대의 탈선을 뭉뚱그려서 ‘지랄’이라고 표현하면 그 어감이 참 다르지 않다. 어차피 인간에게는 평생 꼭 부려야 할 ‘지랄’의 총량이 내재되어 있고, 그 지랄이 어떤 형식으로든 적정기인 사춘기에 분출되지 못하면, 잠재되어 있던 이 ‘지랄’은 언젠가 터진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가끔 일생을 범생이로 살던 상류층 인사가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기이한 행동을 해외 토픽에서 본다. 어릴 때 못 부린 지랄이 내재되어 있다가 늘그막에 빵 터진 경우다.

최근 500년, 한국 역사는 유교를 종교로 삼고 성리학을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유교적 이데올로기는 사교육과 스펙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성교제와 사랑의 감정은 선도 규정의 금지 사항이고, 연애의 완결된 이미지는 결혼으로 막을 내려야 하는 것이며, 결혼 너머의 사랑은 불륜뿐이라는 드라마의 교훈에 압도당한다. 연애의 의미는 퇴색하고 성에 대한 호기심은 이리저리 흩어져서 제각각이다. 한국의 4, 50대 성범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청소년기에 누려야 할 자유분방한 지랄이 억제되어 있다가 어른이 되어서야 기어코 분출되는 것이다.

우리가 말로만 청소년을 사랑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이자 현재진행형인 사랑에 대해 함께 응시하고 고민해야 한다. 청소년 시기에 이성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지 않는 국가는 성숙한 문화를 만들어내기 힘들다. 사랑을 배우지 않고 성장한 어른에게 사랑은 나눔과 소통이 아니라 소유와 대립이다. 사랑이 풍부한 사회는 문화가 융성하지만 사랑이 없는 사회는 미개하고 야만인 사회가 된다. 그렇다. 누가 뭐래도 이제는 청소년들이 사랑하게 하자.

청소년들이 졸업파티에 사랑하는 파트너를 데려오게 하자. 우리 청소년들에게 총천연색의 연애를 그릴 수 있는 성장통을 경험하도록 배려해주자. 싸이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 순위에 올랐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우리 청소년들이 빌보드 차트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는 그런 문화적 토양을 형성해줄 의무가 우리 어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시월에, 시월애(十月愛)를 생각한다.

함께한다는 자각, 동료애: 교실에는 친한 친구(friend)와 친하지는 않지만 뭐든 함께 하는 동료(peer)가 있다. 친구를 통해서는 프랜드십을 익히고, 동료를 통해서는 구성원의 협력이 무엇인지 배운다. 학교의 존재 이유는 스터디보다 오히려 친구 맺기와 동료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미가 또 가출했다. 가정방문을 해보았으나 정미를 찾을 방법을 찾지 못했다.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저지를 수 있는 일탈을 정미는 이미 두루 섭렵한 상태였다. 학교폭력으로 생활지도부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지나친 음주와 흡연으로 건강도 나빠져 있었다. 이번 가출은 정미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기 어렵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정미의 가출로 애가 타는 것은 담임이지, 아이들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정미는 불편한 존재일 뿐이었다. 사고만 치는 정미를 좋아하는 학급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담임 혼자서 찾으려고 뛰어다니지 않았다. 대신 칠판에 7일이라는 한시적 D-day를 게시하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7일 안에 정미를 찾지 못하면 포기한다는 뜻이다.

[1일차] 학생들은 무관심했다. [2일차] 다솜이를 비롯해 4명의 친구들이 ‘정미 찾기 모둠’을 구성했다. 학생들의 눈빛에 조금 호기심이 비쳤다. [3일차] 그들이 다른 학급을 기웃거리며 정미의 가출 흔적을 더듬기 시작했다. 가정방문을 하는 눈치다. [4일차] 정미의 이웃 학교 친구들을 추적한 모양이다. 다른 학생들은 슬쩍슬쩍 모둠의 활동을 훔쳐본다. [5일차] 아직 정미의 그림자도 찾지 못했는데 모둠은 어느새 지쳐 보인다. 이제 뭔가를 결단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6일차] 모둠은 아이들에게 실패를 보고해야만 했다. 엷은 기대감으로 들떠 있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들이다.

그때 다솜이가 당차게 고개를 들었다. ‘정미를 찾기 위한 기도 릴레이 편성’을 제안했다. 곧 기도 모임은 종교별로 짜였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토테미즘에 이르기까지 기도조가 만들어졌다. D-day도 3일 더 연장했다. 3일이 지났다. 그래도 정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열흘째 되는 날에 담임은 ‘포기 선언’을 했다. 아무 관심도 주지 않았던 학생들의 눈빛에 말할 수 없는 아쉬움과 섭섭함이 어렸다. 과정을 함께한 자들만 느낄 수 있는 공감대 형성이었다.

포기 선언이 있었던 다음 날, 정미는 돌아왔다. 절망 끝에 찾아온 희망이었다. 친구들은 환호하면서 정미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학급의 달라진 분위기에 정미는 긴장한다. 잔잔하지만 깊은 애정이 담긴 친구들의 관심, 칠판에 벌로 쓰는 ‘오늘의 명언’에 분홍색 분필로 별표를 해주는 아이들, 정미는 친구들의 동료애 때문에 자신의 자리에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올 수 있었다. 함께하는 학급 친구들의 사랑으로 한겨울에도 깊은 우물처럼 따뜻한 온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2장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교육병을 앓는다. 가정과 학교는 대화와 소통 부재로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를 원망한다. 상처가 깊어질수록 공허한 힐링 타령만 늘어난다. 그렇다. 늘 문제는 어른들의 탓이다. 학부모와 교사, 교육 관료와 정치인은 아이들의 운명을 다루는 어른들이다. 아이를 행복하게 하려면 먼저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이 부드러워져야 한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사회변화를 수용하는 진로교육: “어차피 만점짜리로 준비해와요. 그래도 그래머(Grammar) 들어가면 허점이 많아요. 더 해야 돼요.” 스펙 얘기다. 서울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재벌급 어학원 간부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들이 털어놓은 불만이었다. 입사를 위한 서류 응시에서 토익, 토플, 텝스 만점짜리를 뽑아도 면접을 해보면 모자란 점이 드러나기에, 요즘은 아예 추가로 토익 Speaking과 Writing을 별도로 요구한다고 한다. 스펙은 2004년부터 국립국어원 신조어로 등록되어 있는 영어, Specification의 준말이다. 해당 단어는 구직자들 사이에서 학력과 학점, 토익 점수 외 영어 자격증, 그밖의 관련 자격증들을 총칭한다. 이것이 구직자의 능력을 증명하는 변별점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 스펙을 기준으로 두고 구직자를 평가한다. 스펙의 여파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3포(暴) 현상을 가져오게 했다. 세 가지를 포기한다는 뜻이다. 스펙 때문에 도서관에 처박혀 있으려니 연애를 포기해야 하고, 연애를 못 하니 결혼도 포기해야 한다. 설령 결혼을 했다 할지라도 기업체에서 사원들에게 스펙을 또 요구하니 때늦은 어학연수를 떠날 판국에 출산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하게 만드는 나라에서 교육을 논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이 사태의 책임은 정부와 기업에 있다. 정부와 기업이 취업 준비생에게 스펙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MOU를 체결하거나, 경제인연합회에서 자정운동을 벌이거나, 국회가 나서서 취업 시 스펙을 보지 않도록 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할 판이다. 멀고도 가까운 일본에서는 기업이 대학생들에게 스펙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학은 인ㆍ적성을 최대한 고려하여 신입생을 뽑고, 기업은 신입사원을 채용한 후에 자체 비용을 들여서 상당 기간 사내 훈련을 시킨다. 정부가 강요한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그렇게들 한다. 교육의 영역을 보호해주기 위해서다. 선진국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교육이 기업과 정부에게 무한 책임을 전가하고 면죄부를 받을 자격은 있는가? 결코 없다. 오히려 무겁다.

우리가 스펙 망국이 된 것은 정부와 기업, 대학의 공동책임이지만, 애당초 발단의 책임은 교육당국과 대학에 있다. 국회가 초중등교육법으로 교육과정의 기획과 운영을 교육부 장관에게 위임한 채 뒷짐을 지고 있는 동안, 교육부는 시행령을 통해 딱 10개 교과만 정해서 고착화시켰고, 학생의 요구와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면서 일체의 새로운 교과 개설을 가로막아왔다. 그 결과 사교육 시장은 경직된 학교교육과정을 손쉽게 베껴가면서 덩치를 키웠다. 특히 대학은 수능을 통해 공짜로 인재를 선발했다. 그렇게 공짜로 선발된 인력을 경쟁력 있게 키워내지도 못했다.

대학의 학부 학생들은 중고생도 폐지한 상대평가에 시달리며 스펙 폭탄을 맞아야 했다. 기업은 낡은 교육과정을 통해 쓸모없는 교육을 하는 대학을 불신할 수밖에 없고, 결국 영어 스펙만을 바라보며 대학생을 한 줄로 세우는 악순환의 고리에 낚여버리고 말았다. 수십 년간 기업의 인재를 양성한 웅진그룹의 인재개발원장이었던 최정순 박사는 이에 대하여 “대학교 교육의 폐쇄적인 교육과정이 학생들의 창의성을 말살하였고, 그래서 모험심과 창의력이 부족한 인재들을 대량생산하고 있다.”고 한탄하였다.

3포가 횡행하는 엄혹한 시대에 교육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실종된 진로교육은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대학생에게 적합한 교육과정의 개혁을 위해서는 가혹하게 교과목 개폐를 시도해야 한다. 일례로 교육부는 2014년부터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이란 과목을 전국의 교직과목에 의무과목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자 대학들이 반발했다. 인력도 교재도 없는데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바로 이 부분이다. 학생들이 학교폭력의 희생물이 되어 자살하고 고통 받은 세월이 10년이다. 그런데도 예비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은 눈 깜짝하지 않았다. 진즉 시대에 맞춰 관련 과목을 개설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관했다. 뒤늦게 교육부가 나서서 지시하자, 허둥대며 당국만 원망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교육대학, 사범대학의 현주소다. 그저 교수들은 자기네들끼리 편리한 과목만 수십 년째 운영하고 있다. 답은 본래부터 명료하다. 중등교육과 대학입시의 분리, 대학교육과 기업선발 기제의 분리, 인문학적 소양과 실증력 넘치는 교육과정, 현장경험이 풍부한 교수인력의 확보, 마음껏 놀 수 있는 중등 교육과정, 가슴 뜨겁게 연애할 수 있는 대학교육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교육개혁 속에 3포의 종식을 담아야 한다.



2부_ 함께 그러나 다르게



1장 길을 헤매는 학교에서

나는 교사 초임 시절에 제자 두 명을 제적시킨 일을 크게 후회한다. 그 제자들은 쌍둥이 자매였는데 등록금이 계속 밀렸다. 보호자는 등록금을 납부할 능력이 없었다. 나는 아무런 대안도 만들지 못하고 윗분들의 권유를 그대로 이행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어느 날, 거리에서 자매를 만났다. “선생님, 우리 학교 가고 싶어요. 언제 갈 수 있나요.” 새처럼 가냘픈 두 자매가 나에게 매달렸다. 제자를 보기가 부끄러웠던 나는 황망하게 그 자리에서 도망쳤었다.

누구나 참 많이 가난했던 시절이었다고,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자기합리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담임으로서 그 제자들을 책임졌어야 옳았다. 나의 무책임과 비겁함과 부끄러움 때문에 애통했다. 교단에 있으면서 제자가 어려움에 봉착하는 상황이 오면, 그 자매의 눈망울과 목소리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이제는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고 마음에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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