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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작가들

프란시스 아말피 지음 | 윌컴퍼니
불멸의 작가들

프란시스 아말피 지음

윌컴퍼니 / 2013년 8월 / 532쪽 / 23,000원





오노레 드 발자크 (프랑스 투르 1799 ~ 파리 1850)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던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유모와 기숙학교에 맡겨져 성장했다.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문학에 몰두했다. 오랜 세월 무명으로 지냈으며, 그의 연인이자 후원자였던 22살 연상의 베르니 부인의 도움으로 1825년에 출판업을 시작했으나 그마저도 3년 만에 파산하고 만다. 빚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작품에 매진한 그는 20년간 10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남기게 되는데, 이후 모든 작품을 묶어 ‘인간 희극’이라는 총괄적 제목을 붙인다. 그는 2천여 명에 달하는 『인간 희극』 속 등장인물의 삶을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를 세밀하게 보여주며 사실주의 문학의 문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대중들에게는 열렬한 사랑을 받았으나 당시의 전문가들에게는 냉대와 멸시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도스토옙스키와 빅토르 위고 등의 문인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게 된다.

문구 및 명언

- 명예는 독성이 있으므로 소량만 섭취해야 한다.

- 대식가는 씹는 것의 숭고함을 모르기 때문에 요리사에겐 별로 달가운 존재가 못 된다.

- 많은 짐승은 크리스천이다. 그들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크리스천의 수를 보충하기 위해 존재한다.- 운이 있어도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운이 없어도 존재감이 있는 사람이 있다.

-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여자들 그리고 작가들이다.

- 예술은 머리에서 태어나는 것이지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 풍습은 그 나라의 가식이다.

- 위대한 영혼들은 항상 불행의 미덕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

- 아름다운 책은 인간의 생각 속 전쟁터에 오른 승전기다.

- 소설은 그 나라의 사적인 이야기다.

- 글 쓰는 사람들, 괴로운 사람들.

- 영감(靈感)은 날마다 일하게 한다.

- 신은 작가와 결혼한 여자들을 구원해주리라.

- 사랑은 감정일 뿐만 아니라 예술이기도 하다.

- 예술의 사명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시간은 인생을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갖가지 행위들을 일삼는 술 취한 영혼들에게만 빠르게 흘러간다는 말은 거짓이 아닐까?비로토 사제는 시간을 활기차게 보내며 생각을 짓누르는 마음의 짐에서도 멀어졌다. 그의 생각은 한동안 야망, 탐욕, 연애 등을 수시로 넘나들며 기대와 절망에 얽매여 있었다. 오직 신만이 인간과 세속적인 것, 그리고 우리 자신 안에 숨은 욕구를 떨쳐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공로를 알아봐주시리라. 우리가 자신의 목적지에 대해서 항상 꿰뚫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여행을 하며 느끼는 피로에 대해선 신물이 날 만큼 잘 아는 것처럼 말이다.- 투르의 신부





윌리엄 블레이크 (영국 런던 1757 ~ 1827)

런던의 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그림을 공부했으며 12세가 되던 해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4세 무렵, 한 판화가의 제자로 들어가 일을 배웠으며, 이후 판화 가게를 열어 시집을 편집하면서 자신이 직접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판화가로서의 그의 면모는 『욥기』나 단테의 『신곡』 등의 삽화를 그린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또한 알브레히트 뒤러, 라파엘로 산치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작품과 그리스 예술에 특별히 조예가 깊었다.블레이크는 기본적으로 진실은 오로지 예지적 관점에서 생겨난다고 믿었고, 욕구에서 창조된 미덕을 새로운 윤리관으로 삼았다. 그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잠재력이 뛰어난 작가로 ‘몽상가’ 혹은 ‘미치광이’로 불리기도 했다. 환상적이고 기상천외한 그의 그림과 시들은 당시엔 거의 이해받지 못하다가 20세기에 들어 평가받게 되었다.

문구 및 명언

- 까마귀의 가르침을 따르는 독수리는 결국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 진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악한 의도로 밝혀졌다면, 이는 지어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거짓말과 다를 바 없다.- 살아가는 모든 존재는 혼자 살지 않으며, 그들 자신을 위해 살지도 않는다.

- 욕구를 억누를 수 있었다면 그 욕구가 억눌릴 만큼 작았기 때문이리라.

- 적보다 친구를 용서하는 것이 더 어렵다.

- 통곡이 지나치면 웃음이 터지고, 웃음이 지나치면 울음이 터진다.

- 잔인함은 인간의 심장을, 질투는 인간의 얼굴을, 공포는 인간의 몸을, 그리고 비밀은 인간의 옷을 갖고 있다.- 매사에 솔직하게 말하라. 그리고 비열한 자들과 어울리지 마라.

- 길을 걷고 또 걷다 보면 지혜의 성에 도달하게 된다.

- 모든 신은 인간의 가슴 속에 있다.

- 영원은 순간이 창조하는 것을 사랑한다.

- 인간이 산을 형성할 때 위대한 일이 이루어진다.

- 계속 전진하지 않는 것처럼 큰 잘못은 없다.

- 에너지의 매력은 무한하다.

- 인간이 없는 자연이란 그저 사막에 불과하다.

- 풍요는 아름답다.



모래 한 알을 통해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을 통해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속에는 무한을,

단 한 시간 속에는 영원을 쥐라.



기쁨에 속박된 어떤 이는

삶의 흐름을 사라지게 하고

길을 건너며 보석에 입 맞추는 어떤 이는

영원함이 동틀 무렵에 산다.

- 순수의 전조





안톤 체호프 (러시아 타간로크 1860 ~ 독일 바덴바일러 1904)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파산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했다. 모스크바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잡지에 수많은 유머 단편을 기고했다. 그의 글은 호평을 받아 대학을 졸업할 무렵엔 이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23세부터 그를 괴롭히던 폐결핵이 악화되었음에도 체호프는 사할린을 돌아보며 그곳에 유배된 죄수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고 돌아왔다. 이후 집필한 『사할린섬』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895년부터 레프 톨스토이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으며, 1900년에는 러시아 아카데미 명예회원으로 임명되지만 막심 고리키의 회원 자격이 박탈당하자 당국에 항의하는 의미로 자신 역시 회원 자격을 반납했다.1901년에 모스크바 예술극장 여배우였던 올가 크 니페르와 결혼하였으나, 3년 후 악화된 결핵을 치유하기 위해 독일 바덴바일러의 온천 지역으로 떠났다가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작품들은 무기력하게 움직이는 인간의 고독하고 일상적인 삶을 조명한 것이 특징이다.

문구 및 명언

- 항상 그랬듯이 무덤에서도 홀로 지내게 되리라. 본질적으로 혼자 사는 삶이다.

- 작가의 독창성은 그의 스타일보다는 생각의 방식에 의해 좌우되는 편이다.

- 간결함은 재능의 자매다.

- 자연에서는 혐오스러운 번데기가 찬란한 나비로 변신하지만 인간사는 이와 반대다. 찬란한 나비가 혐오스러운 유충으로 바뀌니 말이다.- 어떤 한 가지 잘못에 있어서 해결책이 다양하게 나왔다면 그것은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의미다.- 예술 작업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 다른 기준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어떤 상대를 향한 증오심과는 대조적으로 사랑과 우정 그리고 존경은 좀처럼 사람들과 결합하지 않는다.- 대학은 모든 능력을 빛으로 끌어낸다. 무능력까지도 말이다.

- 의사들은 변호사와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변호사는 당신 돈을 도둑질하는 것에 그치지만 의사들은 도둑질하며 죽이기까지 한다.- 고독을 감당할 수 없다면 결혼하지 마라.

- 지식은 실행을 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 인간은 믿음을 갖는 존재다.

- 사람들은 행복할 때는 지금이 여름인지 겨울인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 여자들이란 절대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다.

- 고백하건대, 나는 어떤 이들을 매장함으로써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해변 부근에 새로운 인물이 출현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라고 불렀다,드미트리 드미트리치 구로프는 벌써 2주가량을 얄타에 머물면서 어느 정도 그곳 생활에 익숙해진 탓인지 새로운 얼굴들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항상 그랬듯이 베르네 가옥에 앉아서 중간 정도 체구에 금발머리인, 베레모를 쓴 젊은 여인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뒤로는 하얀색 스피츠가 따르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 이라클리온 1883 ~ 독일 프라이부르크 1957)

터키의 지배를 받고 있던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다. 아테네 대학에서 법률 학위를 취득한 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앙리 베르그송과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을 공부했다. 1912년에 발칸전쟁이 일어나자 육군에 자원입대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1914년 이후부터 전 세계를 여행했으며, 1917년에는 친구 알렉시스 조르바와 갈탄광산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때 만난 조르바와의 이야기는 이후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그의 대표작 『미칼레스 대장』과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비난과 노여움을 샀고, 이후 한동안 그리스에서 출간이 금지되었다.그는 정치에도 참여하여 그리스 사회당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두 차례 장관직에 임명되었다. 1956년에는 국제평화상을 받았다. 그의 묘비명에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새겨져 있다.

문구 및 명언

- 모든 인간은 광기가 필요하다. 광기 없이는 결코 끈을 끊고 자유로워질 수 없으리라.

- 산다는 것은 담요를 머리에 꽁꽁 싸매고 골칫거리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아름다움은 무자비하다. 그대가 그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대를 바라보며 그대를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온 영혼은 하나의 외침이며, 나의 작품은 그 외침 밑에 달린 주석이다,

- 승리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그것을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이다.

-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열렬히 믿는다면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열정적으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다정함은 열정의 대답이다.

- 현실을 바꿀 수는 없으니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바꾸는 게 어떻겠소.

- 세상에는 단 한 명의 여인만 있을 뿐이다. 수많은 얼굴을 가진 단 한 명의 여인만이.

- 완벽한 여행가는 여행하는 곳에서 항상 하나의 나라를 창조해낸다.

- 조르바는 살구나무를 심고 있는 한 노인을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가 그토록 나이를 먹고 어찌 새 나무를 심는지 물었다. 노인이 대답했다. “나는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오.” 그러자 조르바는 “저는 내일 죽을 것처럼 삽니다.”라고 말했다. 과연 둘 중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가?

피레오에서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나는 항구에서 크레타로 향하는 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동틀 무렵으로 주변은 제법 밝았으나 시로코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면서 밀려오는 파도 물결이 항구의 허름한 카페까지 닿을 듯 부딪혔다. 유리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가게 안은 샐비아 차와 사람 냄새가 풀풀 났다. 밖은 추웠고 사람들의 입김이 유리창에 뿌옇게 서렸다. 꼬박 밤을 새운, 염소 가죽 상의를 입은 선원 대여섯 명이 커피나 샐비아 차를 마시며 뿌연 창 너머로 바다를 응시했다. 파도의 기승에 정신이 나간 물고기들은 평온한 서식처를 찾아 바다 깊은 곳으로 몸을 숨기며 수면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렸다. 카페에 삼삼오오 모인 어부들 역시 거센 폭풍이 가라앉아 물고기들이 수면으로 떠올라 미끼를 물기만을 학수고대할 뿐이었다. 광어, 놀래기, 가오리들이 야간 원정을 끝내고 돌아올 무렵, 날이 밝기 시작했다.- 그리스인 조르바





밀란 쿤데라 (체코 브륀 1929 ~ )

체코 브륀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이자 피아니스트였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작곡을 공부했다. 프라하의 카렐 대학에서 문학과 미학을 공부하다 중단하고 영화학을 공부했으며, 졸업 후에는 영화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했고, 작가이자 훗날 체코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바츨라프 하벨 등과 함께 ‘프라하의 봄’에 참여했다. 1968년 소비에트 정권의 무력침공 후 그의 작품은 모두 출판 금지를 당하고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1975년부터 그는 프랑스로 망명하여 렌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1979년에 체코 정부에 의해 시민권을 박탈당했으며, 1981년에 프랑스 시민권을 얻었다.그의 작품들은 탁월한 작품성을 인정받아 메디치상을 비롯해 수많은 문학상을 받았으며, 다양한 언어로 번역ㆍ출간되었다. 그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필립 카우프만 감독에 의해 1988년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문구 및 명언

- 불행한 자는 자신의 슬픔과 다른 이의 슬픔을 섞으며 위로를 얻는다.

- 사랑은 누군가가 옆에 눕기를 열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잠들기를 원하는 것이다.- 음악가들은 날이 갈수록 음악을 더 크게 연주하므로 우리는 점점 귀머거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귀가 먹어가기 때문에 그들은 더 크게 연주할 수밖에 없다.- 메타포란 위험하다. 사랑은 하나의 메타포에서 시작한다……. 사랑이란 한 여인이 우리들의 시적 기억에 그녀의 첫마디를 끼워 넣으면서 시작된다.- 권력을 향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을 향한 기억의 투쟁이다.

- 인간 종족의 일련번호는 얼굴이다. 이는 특성들의 우발적이자 번복할 수 없는 결합이다.

- 야망이란 게으름을 피울 능력이 없다며 늘어놓는 가엾은 변명이다.

- 작은 배역이란 없다. 작은 배우만이 있을 뿐.

- 나는 반론하는 재미와 홀로 모두를 상대하는 행복감 때문에 글을 쓴다.

- 나는 나에게 반했다.

- 삶이란 계속되는 역사의 집단의식이며, 생각하고 사는 방식을 말한다.

- 나는 물 아래에 있으며 내 심장의 두근거림은 수면에 원을 그린다.

- 양극단은 예술과 정치상의 극단주의로 인해 삶과 열정이 끝나는 바로 그 경계선에 있다. 그리고 이는 죽음 때문에 불안히 밤새 뒤척이는 것과 같다.

만일 우리 삶의 순간들이 매번 무한히 반복된다면 이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 또한 영원함에 못 박힌 것이리라. 이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영구적으로 회귀하는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의 짐 위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니체는 영구적 회귀의 사상이 가장 무거움 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영구적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런 배경 위에 있는 우리네 삶은 신비로울 정도로 가벼운 존재가 아닌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프랑수아즈 사강 (프랑스 카자르크 1935 ~ 옹플레르 2004)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이며 부유한 실업가의 딸로 태어나 가족과 함께 리옹에서 살았다. 소르본 대학에 진학했으나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했다.19세에 첫 소설 『슬픔이야 안녕』을 발표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문학비평상을 받았으며,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후 미국을 여행하면서 트루먼 커포티와 만나기도 했으며 1958년에는 편집인이었던 가이 슈웰러와 결혼했으나 이혼하고, 1962년 도예 디자이너 봅 웨스트와 재혼했으나 또다시 이혼했다. 1956년에 두 번째 작품을 출간하지만 이후의 작품들은 그녀의 처녀작만큼 명성을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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