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와 세계정치
Andrew Heywood 지음 | 명인문화사
국제관계와 세계정치
Andrew Heywood 지음
명인문화사 / 2013년 9월 / 568쪽 / 30,000원
세계정치의 소개
세계정치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세계정치를 연구해야 하는가? 전통적으로 세계정치는 ‘국제’ 패러다임의 기반하에 이해되어 왔다. 국가는 세계정치를 구축하는 기본적인 단위라 할 수 있는데, 그 의미는 세계정치가 근본적으로 국가 간의 관계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 상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파악하면, 세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세계화’ 패러다임은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전 지구적인 상호연결성과 상호의존성의 확대에 의하여 세계정세가 변화하였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세계는 더 이상 분열적인 국가 또는 ‘단위’들의 집단으로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세계’로서 작동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세계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세계화가 어느 정도로 세계정치를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중대한 논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 책은 세계정치에 대한 이러한 두 가지 논의를 다룬다. 국가와 정부가 세계정치와 관련이 없다고 하는 것이나,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는 데 국가가 전 지구적 상호의존의 맥락에서 활동한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모두 어리석은 생각이다. ‘세계’와 ‘국제’는 상호 보완적이며, 정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경쟁적이거나 모순된 용어가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은 세계정세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을 기반으로 하고, 정치적 발전을 세계 차원뿐만 아니라 지역, 국가, 하위국가의 차원에서 다룬다.
세계정치를 관찰하는 렌즈
세계정치를 이해한다는 것은 세계정세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이론, 가치와 가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정치를 들여다보는 핵심 ‘렌즈’는 무엇인가? 세계 정치에 관한 두 가지 주류 관점들은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이다. 이들은 모두 실증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며, 국가관계에서 갈등과 협력 사이의 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들은 이 균형에 대하여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 이에 반해 비판이론들은 이론에 대한 후기실증주의 접근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고, 주변적이고 억압받는 집단들의 이익과 제휴함으로써 글로벌적인 현상 유지에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세계정치의 지속과 변화
세계정치는 항상 변화하는 분야이며, 변화의 속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빨라진다. 최근 들어 냉전 종식, 소련 붕괴, 미국에 대한 9ㆍ11테러, 그리고 2007~2009년의 세계금융위기 등과 같은 중대한 사건들을 목도하였다. 이러한 사건들은 때로는 급진적으로 세계질서의 형상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일부 세계정세의 특징들은 지속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증명되고 있다. 이는 세계정치의 세 가지 핵심 관점(권력, 안보, 정의)의 지속과 변화 사이의 균형을 탐구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
세계정치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권력의 성격과 형태에 대한 논쟁과 국가안보가 세계 또는 심지어 인간안보에 의하여 대치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쟁, 정의가 현재 세계주의적 또는 글로벌한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현재 진행 중이다. 참고로 인간안보에 대한 관심은 두 가지 이유로 나타나게 되었다. 첫째, 냉전종식 이후 국가 간 전쟁의 감소는 폭력을 유발하는 갈등의 위협이 국가 내에서 내전, 반란, 시민투쟁의 형식으로 변화하였다. 둘째, 현대세계에서 사람들의 안전과 생존은 군사적 위협보다 비군사적 위협을 받는 경우가 더 많은데, 그 유형으로는 환경파괴, 질병, 난민의 위기, 자원부족 등이 있다.
국제관계 이론
어느 누구도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를 이론, 가정과 가설의 장막을 통해서 본다. 이런 점에서 관찰과 해석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우리는 세계를 볼 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이론이 중요하다. 이론은 혼란스러운 현실을 형상화하여 구조를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전통적으로 국제관계이론은 풍부하고 점차 다양한 영역으로 펼쳐지고 있다.
주류 관점들
세계정치에 대한 핵심적 주류 관점들은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이다. 이 둘은 세계문제의 갈등과 협력의 균형에 대해 각기 다른 곳에 비중을 두고 있다. 현실주의자는 세계정치가 끝없는 갈등으로 규정된다고 믿고, 자유주의자는 협력의 가능성과 지속적인 평화를 믿는다.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s, 줄여서 IR로 쓰임)라는 학문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유주의적 아이디어와 이론에 깊게 의존하고 있으며, 특히 국제정치를 윤리적이고 법적인 규범의 틀 내에서 다루고 있다. 하지만 1930년대 이후 자유주의적 아이디어가 현실주의 이론가들로부터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현실주의 이론가들은 권력정치의 불가피한 현실에 초점을 맞춘 논리를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국제관계는 자유주의와 현실주의로 ‘분열된 학문’이 되었고, 1945년 이후에는 현실주의가 점차 우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국제관계 학문이 정체 상태로 유지되는 것을 거부하여 ‘대논쟁’을 벌였다. 그리하여 1970년대에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새로운 버전이 등장하였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 두 주류 이론들 간의 차이도 희미해지고 있다. 대논쟁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학문 분야에서의 국제관계는 제1차 세계대전(1914년~1918년)이 끝난 후에 지속적인 평화 수립을 모색하기 위한 도구로써 등장하였는데, 국가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통적으로 국가 간의 관계는 주로 외교적, 군사적, 전략적 차원에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소위 말하는 일련의 ‘대논쟁’을 통하여 이 학문 분야의 성격과 관심은 변화하게 되었다.
첫 번째 ‘대논쟁’은 1930년대와 1950년대 사이에 이루어졌다. 그 골자는 평화적 협력을 강조한 자유주의자들과 불가피한 권력정치를 예견하였던 현실주의자들 사이에 있었던 논쟁이었는데, 1950년대까지 현실주의가 더 힘을 얻게 되었다. 두 번째 ‘대논쟁’은 1960년대에 이루어졌다. 이는 국제관계에서 객관적인 ‘법’을 제정하는 것이 가능할지를 놓고 행태주의자들과 전통주의자들이 벌인 논쟁이다.
‘패러다임 간의 논쟁’으로 불리는 세 번째 ‘대논쟁’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루어졌는데, 그 내용은 현실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을 한편으로 하고, 국제관계를 경제적 측면에서 해석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다른 편으로 한 논쟁이었다. 네 번째 ‘대논쟁’은 1980년대 후반에 이론과 현실의 관계를 놓고 실증주의자들과 후기실증주의자들이 벌인 논쟁이었다. 이는 다양하고 새로운 비판적 관점들이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반영했는데, 새로운 비판적 관점들은 사회적 구성주의, 후기구조주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과 녹색정치를 포함하였다.
비판적 관점
세계정치에 대한 핵심적 비판이론은 다양한 형태의 마르크스주의, 사회적 구성주의,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즘, 녹색정치와 탈식민주의를 포함하는데, 이 이론들은 글로벌 현상 유지의 기반이 되는 규범, 가치와 가설에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한다. 또 비판이론가들은 현실주의와 자유주의가 글로벌 세력 불균형을 숨기거나 정당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아울러 많은 비판이론가들은 주관과 객관, 즉 이론과 실제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후기실증주의의 관점도 포용하는데, 후기실증주의자들은 ‘바깥 저곳’에 관찰자의 믿음, 아이디어, 가설과는 다른 객관적인 실제가 존재한다는 신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실제라는 것은 ‘상호주관적인’ 개념으로 생각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로벌하게 생각하기
점점 높아지는 글로벌 상호연결성의 수준은 세계화의 확대와 연계되어 있으며, 일련의 새로운 이론적 도전들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는 복합성이 기존의 선형적인 사고에 주는 어려움, 세계가 단일의 도덕공동체를 구성할 가능성, 그리고 이론적 패러다임의 가치 등이 포함되는데, 패러다임들은 통찰과 이해를 가져다주지만, 그들은 우리의 지각적 영역을 제한할 수도 있다.
힘과 21세기 세계질서
힘과 세계정치
세계질서의 이슈는 국가들과 다른 행위자들 사이의 힘(power)의 배분을 반영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고, 글로벌 시스템 내의 안정 수준과 갈등과 협력 사이의 균형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는 힘 자체의 성격에 대하여 질문을 제기한다. 힘은 국가와 행위자들이 소유하는 상징적인 것인가, 아니면 세계정치의 다양한 구조에 내재되어 있는 암묵적인 것인가? 힘은 지배와 통제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협력과 친화를 통하여 작동되는가?
힘과 관련된 문제는, ‘힘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힘에 대해서는 합의된 개념이 없고, 일련의 경쟁적인 개념들만이 있을 뿐이다. 광의의 개념에 의하면 힘은 사건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인데, 실질적/잠재적 힘, 상대적/구조적 힘, 그리고 ‘하드/소프트’ 파워로 구분되고, 타자에 대한 물질적 힘으로서의 힘에 대한 관념은 점차 비판을 받고 있으며, 힘에 대한 미묘하고 다면적인 개념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탈냉전 세계질서
냉전 기간에 세계의 힘은 양극의 성격을 가졌다는 점이 대체로 수용된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들의 대립이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었는지, 아니면 긴장과 안보불안을 조성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 냉전종식 이후 세계질서에 대한 심각한 논쟁이 야기되었다. 초기 견해는 초강대국 시대의 종식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등장시켰고, 이 질서는 평화와 국제협력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신세계질서’는 어떤 것이었으며, 그 운명은 어떠했는가? 이런 신세계질서는 항상 부정확하게 정의되었고, 이 아이디어는 곧바로 관심을 잃게 되었다.
미국의 패권과 세계질서
냉전 이후 세계질서에 대한 두 번째 견해는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등장이 미국의 ‘패권’에 기초한 단극(unipolar) 세계 질서를 형성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미국은 ‘글로벌 패권국’인가? 미국 패권의 의미는 9월 11일 테러 공격 이후 미국이 신보수주의 정책에 기반하여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미국의 군사개입에 대해 네오콘(신보수주의) 분석가들은 미국이 ‘자비로운 글로벌 패권’을 수립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주의자들, 급진주의자들, 그리고 무슬림 국가들을 포함한 저개발 지역의 분석가들은 미국이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고 주요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욕심을 가지고 활동한다고 비판한다.
다극적 세계질서?
미국 패권의 쇠퇴 또는 종식은 다극체제의 등장에 대한 평가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두 가지 이슈를 포함한다. 첫째, 세계질서는 다극적 성격을 어떠한 방식으로 어느 정도로 가지게 되는가? 둘째, 다극체제가 가지는 함의는 무엇인가? 21세기 세계질서는 점차 다극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중국을 의미하는 ‘신흥강대국’의 부상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세계화와 글로벌 거버넌스의 발전과 비국가 행위자들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등 보다 광범위한 결과이다. 참고로 신현실주의자들에게 글로벌 행위자들 사이의 힘의 다극적 분산은 불안정과 심지어는 전쟁의 가능성을 조성한다. 반면, 다극체제는 안정, 질서와 협력을 유도하는 다자주의의 추세를 강화한다.
만약 21세기 세계질서가 다극의 성격을 가졌다면, 이는 전쟁, 평화와 글로벌 안정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21세기는 유혈사태와 혼란으로 기록될 것인가, 아니면 협력과 번영으로 기록될 것인가? 다극 세계질서에는 두 가지 매우 상이한 모델이 있다. 첫째는 힘이 글로벌 행위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분산되는 비관적 함의이다. 특히 신현실주의자들은 다극체제의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하면서, 불안정과 혼란이 다극체제의 구조적 역동성의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미어샤이머는 냉전 양극체제의 종말을 아쉬워하면서, 유럽의 미래는 ‘미래로의 귀환(back to the future)’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다극 세계질서가 강대국들에게 팽창주의 목표를 추구하도록 하여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기여했고, 다극적 국제체제 내에서 힘의 균형이 유동적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에서 다극체제는 양극체제와 비교하여 불안정하다. 행위자가 많아지면 분쟁의 가능성이 많아지고, 높은 수준의 불안정성을 야기하고, 모든 국가들의 안보딜레마를 격화시킨다. 덧붙여서 다수 행위자들 사이의 동맹의 변화는 세력 균형의 변화가 보다 자주, 보다 극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둘째는 다극체제의 구조적 함의에 대한 관심에 더하여 수많은 결점과 긴장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주로 과거의 패권국가인 미국과 새로운 패권국가인 중국 사이의 적대감 증대의 가능성과 전쟁까지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계속해서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미국과 중국 사이의 힘의 변화에 대하여 가장 비관적인 사람들은, 패권국가는 쇠퇴하는 위상에 대하여 쉽게 또는 평화적으로 적응하기 어렵고, 새로 부상하는 패권국가는 자국의 경제적 지배를 반영하는 정치-군사적 힘의 수준을 추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중-미 갈등에는 많은 잠재적 이유들이 존재한다. 19세기 영국의 패권이 20세기 미국의 글로벌 패권으로 평화롭게 전환된 것은, 양국의 역사적ㆍ문화적ㆍ정치적인 유사성 때문에 영국이 미국의 부상에 대한 위협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적인 미국과 ‘유교’적인 중국의 문화적ㆍ이념적 차이는 점증하는 적대감과 오해의 기초를 제공하여 ‘문명의 충돌’ 논제와 연결된다.
또한 대만, 티베트의 인권문제와 더불어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자원경쟁에 의한 갈등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을 훨씬 덜 위협적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과 미국은 경제적 상호의존(미국은 중국의 주요 수출시장이고, 중국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채권국이다)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양극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신현실주의자들은 새로운 양극체제가 높은 수준의 안보와 안정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은 중국이 세계문제에 대하여 더 많은 책임을 부담하기를 원하고 중국이 균형(balance)을 유지하기보다는 미국의 뜻에 편승(bandwagon)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국제적인 긴장의 또 다른 가능성이 있는 원천은 러시아가 힘을 회복하여 새로운 냉전이 등장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러시아의 GDP는 NATO 회원국들 중 25번째 회원국의 GDP보다도 못하지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미국을 파괴시킬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이다. 따라서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러시아가 글로벌 거버넌스의 제도(예를 들어, G-8 가입) 내에 편입되게 하는 것이고, 러시아의 영토적 팽창과 영향력의 회복을 막는 것이다. 러시아의 팽창을 막으려는 미국의 목적은, EU와 NATO가 과거 소비에트 불록의 국가들로 확대되는 것을 지지하고, (나중에는 포기했지만) 폴란드와 체코공화국에 미국의 탄도탄요격미사일을 배치하는 협정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전개가 새로운 냉전으로 발전할 것 같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왜냐하면 초강대국 시대 이후 미국-러시아 관계의 역동성은 많이 변화하였고, 그 관계는 글로벌한 맥락에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건은 중국과 러시아가 선도한 권위주의와 미국을 위시한 민주주의 사이에 심화된 긴장의 형태로 ‘역사의 반복’이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의 긴장(예를 들어, 미국과 유럽 사이의 긴장)과 권위주의 국가들 사이의 긴장(예를 들어, 중국과 러시아)이 민주주의-권위주의의 분열만큼 심각하다는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보다 낙관적인 또 다른 다극체제 모델도 있다. 첫째, 신흥 강대국의 등장과 미국의 상대적인 쇠퇴는 평화를 유지하고 경쟁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관리될 수 있을 것이다. 잠재적인 경쟁 대상들에 대한 미국의 기존 접근은 그 국가들이 분명한 자기이익을 추구하도록 하면서, 보다 많은 역할을 하도록 고무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이는 1945년 이후 일본의 재건을 미국이 지지한 점, 유럽의 통합과정을 지속적으로 격려한 점에서 나타난다. 비슷한 접근이 중국, 인도와 러시아에 대해서도 적용되었다. 즉 신흥강대국들에게 ‘균형’이 아니라 ‘편승’을 택하여, 미국에 반기를 들기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무역과 금융체제에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