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자존감을 살려주는 결정적 한 마디
김주희 지음 | 책이있는마을
아이의 자존감을 살려주는 결정적 한 마디
김주희 지음
책이있는마을 / 2013년 9월 / 255쪽 / 13,000원
1. 아이들의 자아존중감에 상처를 주는 말
아이를 무시하지 마라 “애들 주제에 뭘 안다고 나서니?”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전혀 인정받지 못하거나 일방적으로 무시당하게 되면 누구나 절망하게 된다. 절망하고 자신감을 잃은 사람은 자기존중감 역시 잃어버리게 된다. “못생긴 주제에.”, “돈도 없는 주제에.”,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하는 말을 들어서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글쎄, 그 집 부부는 별거한 지 일 년이나 됐어요.” “그래요? 애들은 어떻게 하구요?” “외할머니한테 맡겨놓았다나 봐요.” “애들이 안 됐네요.” 엄마와 이웃 아주머니와의 이런 대화를 듣고 있던 아이가 대뜸, “엄마, 별거하다가 이혼하는 거지?”라고 말한다. 엄마는 기가 막히다는 듯 아이를 쳐다본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걸 알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등 아이들이 정보를 얻는 통로가 훨씬 많아지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시끄러워. 어른들이 말할 때 그렇게 끼어드는 거 아냐. 애들 주제에 뭘 안다고…….” 아이들이 몰랐으면 하는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면 아이들이 듣지 않는 곳에서 해야 한다. 알아봐야 좋을 거 없다거나 이야기해도 못 알아들을 것이라는 생각에 어른들끼리 뒷전에서 수군거리는 것도 좋지 않다. 그럴 때 아이들은 더 불안해한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어린 주제에.” “어린 게.”, “넌 아직 몰라도 돼.”와 같은 말로 아이들을 무시한다. 아이들에게도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아이의 마음에 상처로 남기는 말로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부부가 별거하다가 이혼을 하는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어른들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싸움을 할 수도 있거든. 그래서 서로 떨어져서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는 거야. 그러다 서로에 대한 오해나 화가 풀리면 다시 함께 살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이혼할 수도 있지.”라고 설명을 해주었더라면 아이는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의 자아존중감에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고 평가했을 때 가장 의미 있는 영향을 주는 것을 아동의 자아존중감이라고 한다. 자아존중감이란 스스로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가치감이나 긍정적인 평가를 말한다. 아이들의 자아존중감은 스스로의 느낌이나 평가, 자신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으로 형성된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와 부모가 가진 특성을 배경으로 아동의 자아존중감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부모는 자녀의 생활환경에서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동기에 형성된 자아존중감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자아존중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에게 만족할 줄 모르고, 매사에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자신의 아이를 자아존중감이 낮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와 부모의 행동으로 자아존중감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2. 아이들로 하여금 의욕을 빼앗는 말
아이의 의욕을 꺾지 마라 “틀렸어,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누구든지 아는 대로 행동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처럼, 아는 것처럼 되지 않는다. 아이의 실수나 실패와 맞닥뜨리면 부모는 어느새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야단을 치고 화를 낸다. 그리고 돌아서서 후회한다. 부모에게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이가 실수나 실패를 통해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잠시 물러서 있기도 하고 기다려줄 수도 있어야 한다.
상혁이가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 엄마는 상혁이를 기특하게 여기는 마음과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상혁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자꾸 보지 마세요. 엄마가 보면 잘 안 된단 말예요.” 상혁이는 제법 심각한 얼굴로 말한다. 하지만 엄마는 상혁이가 틀린 걸 보고 모른 척 할 수도 없다. “여기 틀렸잖아.” “어디요?” “이 문제, 여기서부터 다 틀렸네. 학교에서 안 배웠어?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곱하기를 먼저 하고 더하기와 빼기는 나중에 하는 거라구. 너 수업시간에 딴짓했니?” 엄마는 어느새 상혁이의 연필을 빼앗아 들고 문제를 풀고 있다. 상혁이는 엄마가 풀어주는 문제를 들여다보는 대신 엄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버린다. “이제 알았지? 공부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하며 엄마가 연필을 놓자마자 상혁이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니, 공부하다 말고 어디 가?” “밖에요.” 그러더니 상혁이는 휑하니 나가 버린다.
“글씨가 왜 이 모양이니? 좀 정성 들여 예쁘게 써봐. 누가 보면 지렁이가 기어가는 줄 알겠다.” “틀렸잖아. 이건 이렇게 하는 거라고 몇 번을 얘기해야 알겠니?” “이것도 몰라? 너 누구 닮아서 머리가 그렇게 나쁘니.” 이런 이야기를 듣고 ‘아, 이건 이렇게 하는 거구나. 다음부턴 꼭 잘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부모는 아이보다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다. 부모는 아이를 가르칠 수 있고 또한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직접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틀린 걸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차분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 답이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풀어볼까? 지금 보니 네가 계산하는 순서를 잘못 알고 있었구나. 곱하기를 먼저 하고 더하기와 빼기는 나중에 해야 하는 건데 넌 그냥 앞에서부터 계산했구나.”라고 아이의 틀린 점을 차분하게 지적해주는 것이 “이건 틀렸어.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보다 아이의 하고자 하는 의욕을 고취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다.
있는 그대로 아이를 인정하라 “인사도 제대로 못하니?”
예절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예의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그 사람의 인격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부모들은 어렸을 때부터 아이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나 집에 손님이 찾아왔을 때 아이들이 예의 없게 굴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당황하게 된다.
소라와 엄마는 모처럼 친척집을 방문했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소라에게는 퍽 낯선 집이다. “아유, 우리 소라가 벌써 이렇게 컸네. 어디 보자.” 대문을 열어주며 친척 아주머니가 반갑게 말한다. 그런데 소라는 친척 아주머니가 내민 손을 뿌리치고 엄마의 치마 뒤로 숨어 버린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소라야, 아주머니께 인사드려야지.”라고 말하지만 소라는 여전히 고개만 내민 채 눈치를 살핀다. 엄마는 점점 당황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드려야지.”라고 채근을 하지만 아이는 그저 입을 오물거리는 정도다. 엄마가 기대했던 예의 바르고 다정한 인사말은 들을 수가 없다. “넌 어쩜 인사도 제대로 못하니?” 답답해진 엄마는 그 자리에서 아이에게 면박을 준다. “애가 덩치만 컸지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요.” 그리고 애써 웃는 얼굴로 친척 아주머니 쪽을 바라보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는 아이 쪽을 향해 얼굴을 찡그린다. ‘너 이따가 봐. 너 때문에 엄마가 얼마나 창피한 줄 알아!“ 엄마의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흔히 부모가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것은, 아이가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고 상대방이 자신을 비웃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면박을 주고 아이는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예의 바른 모습인지 모른다. 누구나 그렇듯 아이들도 익숙한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으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정히 인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아이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니?”라고 다른 사람 앞에서 면박을 준다면, 아이는 점점 낯선 사람들을 피하려 들 것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늘 자신 없어 할 것이다. 아이가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면 아이의 성격을 인정해주고 자연스럽게 낯선 사람들과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야 한다. 단번에 아이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아이가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아이들로 하여금 의욕을 빼앗는 말과 행동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아이들이 뛰어난 성취동기를 가지고 무슨 일이든 의욕적으로 하길 바란다. 아이들의 성취동기는 부모의 양육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바람과 상관없이 아이들의 하고자 하는 의욕을 빼앗는 말과 행동을 일삼는다. 부모가 강제로 명령하고 성공에 대해 끊임없는 압박감을 준다면 아이는 결코 의욕적으로 모든 일에 임할 수 없다. 반면에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가 무엇이든 이루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격려한다면 아이들은 성공을 지향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사고와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존재다. 인간의 욕구와 능력은 무한하며 다양하다. 부모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아이들의 성공을 대신 이루어줄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이가 보다 성취지향적이 될 수 있도록 아이의 욕구와 동기를 인정하고 그 과정을 도와주는 것이다.
3. 아이들의 자율성을 해치는 말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몫은 남겨두자 “방 좀 치우면 어디 덧나니?”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아이의 능력이 닿는 한 집안일도 어느 정도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밥을 먹고 난 뒤 자기가 사용한 밥그릇과 수저는 설거지통에 담아두는 것이라든가 청소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등의 규칙을 정해놓고 아이가 지킬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애가 알아서 자기 일을 척척 해내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게 못하니까 허구한 날 잔소리하고 그러는 거죠. 잔소리하는 게 좋은 사람이 어디 있나요.” 이렇게 말하는 부모가 있다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잔소리를 한다고 해서 절대로 아이 스스로 자기 일을 하게 되지는 않는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니? 옷은 벗어서 제자리에 두라고 그랬잖아!” “너는 도대체 치울 줄을 모르는구나. 내가 언제까지 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거니?” “넌 한 번 말해서 듣는 꼴을 못 봤어. 어떻게 된 애가 입이 닳도록 얘기해도 그 모양이니? 방 좀 치우고 다니면 어디가 덧나니?” 이렇게 엄마의 잔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반복되면 자연히 그 말이 가지는 효과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엄마의 잔소리는 더욱 신경질적이 되고 점점 길어지게 된다.
아이는 아이대로 짜증을 부리고 고집스럽게 방을 치우지 않는다. 그러다가 엄마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면 아이는 위기감에 몰려 주섬주섬 방을 치우기 시작하지만 그 모양새가 서툴고 느리기 짝이 없다. 5분이면 될 일을 아이는 꼼지락거리며 20분에서 30분을 끌기 예사다. 참다못한 엄마는 아이를 밀치고 방을 치우기 시작한다. “아유, 저리 가. 앓느니 죽지. 방 치우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렇게 꼼지락거리고 있어.”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아이 스스로 방을 치우길 기대하기는 힘들다. 아이들에게는 열 번의 훈계보다 한 번의 칭찬이 효과적이다. 성에 차지 않더라도 아이가 해야 할 일은 아이에게 맡겨두어야 한다. 그러다 아이가 모처럼 방을 깨끗하게 치우게 되면 주저하지 말고 칭찬해주도록 하자. “네가 방을 치우니까 정말 보기 좋구나.”라는 한 번의 칭찬이 “방 좀 치우면 어디 덧나니?”라는 열 번의 잔소리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다면 선택은 분명해진 것이다.
아이들의 자율성을 해치는 말과 행동
만 2세의 아이들은 기저귀를 더 이상 차지 않고, 신체활동도 활발해지며, 제법 많은 단어들을 말하기 시작한다. 이때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들 가운데 하나가 “내가 할 거야!”이다. 에릭슨은 만 1세부터 3세까지는 자율성 발달이 주요한 과제라고 하였다. 자율성이 발달하지 않으면 아이는 수치심이나 회의심을 품게 된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부여되는 주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가 배변훈련이다. 배변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실수를 하거나,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신체적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거나, 밥을 떠먹는 것과 같은 자조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서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적절하게 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좋게 보지 않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은 강하지 못하고 부족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통제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무능하다고 자책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된다.
이런 감정들은 결국 아이를 무능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으며 의존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배변훈련뿐만 아니라 아동기 전체에서 자율성을 경험하고 발달시킬 수 있는 숱한 기회들을 만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보이는 태도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결정된다.
4. 아이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말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기 “딴 거 틀어.”
오늘날 텔레비전은 생활 속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앉아 화목한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텔레비전을 보는 경우가 더 많다. 가끔씩 이루어지는 가족 사이의 대화 역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공통 화제로 등장한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하루에 몇 분에서 몇 시간까지 텔레비전을 본다. 그래서 가족들끼리 텔레비전을 둘러싼 채널 쟁탈전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혜미네 집도 예외는 아니다. 오후에 텔레비전이 켜지면 저녁 내내 꺼지질 않는다. 심지어 식사시간에도 가족들의 얼굴을 쳐다보는 대신 텔레비전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야, 채널 돌려. 나 볼 거 있단 말이야.” “안 돼. 오늘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 나온단 말이야.” 혜미 남매는 텔레비전 채널을 가지고 늘 티격태격한다. 결과는 늘 오빠의 승리. 오빠는 큰소리나 주먹으로 위협하면서 혜미를 굴복시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둘 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빠다. 아빠가 텔레비전 앞에 앉자마자 “야, 딴 거 틀어.” 하면 혜미 남매는 꼼짝없이 채널을 돌려야 한다.
부모는 이럴 때 힘과 권위를 사용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거기에 꼼짝없이 복종하는 것이다. 혜미가 오빠의 위협과 협박에 굴복하듯, 아이들은 아빠의 명령에 따른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동등한 입장에서의 토론이나 약속보다는 명령과 복종이 더 많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힘의 논리를 배운다. 힘이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억누르고 마음대로 부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힘을 기반으로 한 권위를 사용할 때는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아이들과 텔레비전을 볼 때 어떤 프로그램을 볼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 부모와 아이가 동등한 입장이 되어 토론을 벌이면 어떨까? “난 이 프로그램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보고 싶어.” “전 이 프로그램을 봐야 해요. 이러저러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식으로 토론을 벌이고 민주적인 합의를 한다면 가족 간의 다툼이나 마음의 상처는 사라지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 방식도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말과 행동
부모는 아이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아니 단지 중요하다는 표현으로 부모의 중요성을 다 말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부모는 아이의 생존을 책임지며 아이에게 사회에서 필요한 가치들을 전수하고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능력들을 길러준다. 부모는 아이에게 자신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다양한 상황에 처했을 때 대처하는 행동요령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모델이 된다. 물론 부모가 아이에게 모든 행동을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는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에서 만나는 가족들이며 그 가운데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부모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