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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택시 인생극장

백중선 지음 | 행복에너지
사랑의 택시 인생극장

백중선 지음

행복에너지 / 2013년 5월 / 288쪽 / 15,000원





1부 택시기사의 인생극장



사랑의 택시기사가 되기까지

나는 전문 건설업을 20년 넘게 하면서 몇 십 명의 직원을 통솔하는 아주 잘나가는 주식회사의 대표이사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교만이었다. 사업에 실패하여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리게 되니, 남은 것이라곤 마누라와 자식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전철을 타고 청량리역을 비롯한 서울의 전철역은 다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노숙생활을 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동해 묵호로, 목포로 왔다 갔다 하며 노숙할 자리를 보러 다녔고, 목포역전에서 이틀 동안 노숙생활에 들어갔다.

나는 무능한 나 때문에 모진 고통을 겪으면서도 날 버리지 않고 믿고 있는 가족을 생각하기보다는 ‘에라, 죽어버리자. 그럼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겠지’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종로3가 파고다공원 노인들한테 편히 죽을 수 있는 방법을 듣고 그대로 행동하려고 제초제를 항상 가지고 다녔다. 제초제를 막걸리와 타서 먹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고생하지 않고 편히 잠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목포에서의 노숙생활이 3일째 되는 날 유달산에서 한 부부를 만났는데, 내 이야기를 듣던 남편분이 말씀하셨다. “가족을 생각해서 박스라도 줍고 경비라도 해야지. 인생을 왜 그렇게 끝내려고 하십니까?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은 생각하지 않고 대표이사까지 한 사람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세상을 뜨면 남은 가족은 어떡하라고요. 다시 생각해서 사세요.” 그러고는 당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나도 부산에서 신발공장을 하다가 부도를 맞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혼자만 야반도주하려 했어요. 몰래 짐 싸서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자고 있는 마누라를 내려다보는데,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이 마누라 얼굴 위로 뚝뚝 떨어져 내렸지요. 놀라 잠에서 깬 마누라가 ‘당신 왜 그래요? 나를 버리고 당신 혼자 어딜 가려고 그래요? 가려거든 나하고 같이 가요.’ 하며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통곡하고 애원하는 거예요. 결국 우리는 같이 울면서 작은 짐 하나 가지고 아무도 모르는 목포로 왔고, 이제 겨우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어요. 그러니 당신도 용기를 갖고 가족을 위해 다시 한 번 시작해보세요.”

나도 다시 살아보자고 다짐을 했다. 서울로 돌아와서 일거리를 찾던 중 택시 운전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2010년 4월 택시 면허시험을 보았다. 몇 번을 떨어진 끝에 겨우 합격하여, 그때부터 나는 나에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준 택시 운전을 하게 되었다. 택시 운전을 하다 보니 택시기사들과 손님들 사이가 너무 말이 아니다. 너는 너, 나는 나, 완전 따로국밥이다. 나는 생각했다. 나라도 베풀며 손님을 위해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택시 운전을 하겠노라고.

어느 여름날 둔촌역에서의 일이었다. 손님 한 분이 휠체어를 타고 택시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런데 택시들이 하나 둘 셋 그냥 지나간다. 난 뒤에서 보다가 너무 마음이 아파 재빨리 다가가서 “손님, 내 차 타세요.” 하며 트렁크에 휠체어를 싣고, 손님의 목적지인 가락동 경찰병원까지 모셔다드렸다. 또 어느 날은 성내3동 대순진리교 앞에서 나이 많은 할머니가 추운 새벽에 서 계셨다. 다른 택시들이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내가 가서 타시라고 했더니, 할머니께서 “아저씨는 태워주실래요?” 하고 물으신다. “그럼요, 제 택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타는 택시랍니다.” “아니, 그런 택시가 나왔어요?” “그런 택시가 나온 것이 아니고 그런 사람이 나왔어요. 할머니, 천천히 타세요.” “다른 택시기사는 빨리빨리 타라고 그러는데. 고맙구려, 젊은이.” “할머니, 왜 앞 택시 두 대는 그냥 지나갔나요?” “노인들이 택시 탈 때 느리잖아요. 내릴 때도 느리고요. 타고 내릴 때 다치면 골치 아프지요. 게다가 멀리나 갑니까. 보통 기본요금 거리지요. 그래서 잘 안 태워줘요.”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이런 일을 담당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돈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손님 위주로 손님의 마음부터 생각하고, 거동하시기 불편한 분들을 우선적으로 태워드리면서,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운전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목적지까지 잘 왔어요.” “안녕히 가세요.” “또 만나요.” “이 택시 또 타세요.”라는 나의 인사가 시작되었고, 오늘도 행복의 노래를 부르며 서울 시내를 누비고 있다. 나는 자살하지 않고 택시 운전이라는 새 삶을 살게 됨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항상 봉사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고, 다른 택시들이 외면하는 손님들을 목적지까지 편하게 모셔다드리며 안전운행 할 것을 굳게 다짐했다.

사랑의 택시란

택시 운전을 시작하고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아침 출근시간에 2차선 도로에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다른 때와 같이 택시를 앞에다 세우며 “타세요!” 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기사아저씨, 서울 택시들은 왜 나이 많은 할머니를 안 태워주나요?” “그럴 리가요? 손님을 못 보고 지나갔겠지요.” “그런가요? 몇 대가 그냥 휙 하고 지나가던데. 어쨌든 기사아저씨는 좋은 말만 하시네요. 좋은 일도 많이 하시지요?” “저는 택시 운전 시작한 지 3일밖에 안 됐어요. 그래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손님들을 편하게 모시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택시 운전 계속 하실래요?”

“그럼요, 해야지요.” “그래요. 좋은 일 많이 하시면서 덕을 쌓고 복된 말만 하고 살아가세요. 그럼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좋은 일이 옵니다. 아저씨, 나는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갑니다. 지인 병문안하고 다시 한국을 떠날 예정입니다.” “손님은 외국에서 사시나 보군요?” “나는 일본에서 19년 만에 한국에 왔어요. 내가 이래 봬도 이대 출신 할머니랍니다. 3일 있으면 한국을 떠나는데 기분 좋은 택시를 탔으니, 택시 이름이나 지어주고 가야겠어요.” 할머니께서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말씀을 이어가신다.

“이 택시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은 복을 받는다는 의미로, 그들의 복을 빌어주며 ‘사랑의 택시’라고 하세요. 그리고 기사님이 먼저 ‘사랑의 택시’ ‘사랑의 택시’ 하고 다니세요. 그럼 언젠가는 ‘사랑의 택시’가 빛을 볼 날이 꼭 올 겁니다.” “네, 손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야기 나누면서 오니 병원에 다 왔네요.” “요금은 얼마 나왔나요?” “이만 오천 원입니다.” “여기 삼만 원이요. 잔돈은 됐고요.” “감사합니다. 손님도 일 잘 보시고 건강하세요.” 난 지금까지 그때 그 손님의 말씀을 머리에 새기고, 손님들에게 복을 빌어주며 서비스 정신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강남역 사거리 못 가서 손님이 내리고 있는데 어떤 젊은 여자 분이 와서 묻는다. “기사아저씨, 낙성대까지 좀 태워주세요.” “네, 그럼요. 손님이 내리시면 타세요.” “감사합니다.” 그러더니 여기서 한 사람 저기서 한 사람이 탄다. “아니, 왜 이렇게 여기저기서 차를 타시나요?” “50분 넘게 택시를 잡았는데 하나같이 낙성대는 안 간다고 해서요.” “그러셨군요. 걱정 마세요. 이 택시는 사랑의 택시랍니다.” “아저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사랑의 택시란 이름을 지어준 일본에 사시는 할머니와의 일을 설명해주었다. 내 말을 다 듣고 난 한 손님이 말한다. “그럼 컴퓨터로 글을 써서 차 유리에 붙이고 다니세요.” 그러자 다른 손님이 또 말한다. “아저씨, 아니에요. 붙이지 마시고 ‘사랑의 택시, 묻지 말고 타세요!’고 써서 코팅한 다음 잘 보이게 앞에 올려놓고 다니세요.” “아, 손님.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그때부터 나는 ‘사랑의 택시, 묻지 말고 타세요!’란 문구를 싣고 다니며, 승차거부 없는 택시, 부당요금 없는 택시를 모토로 삼고, 오늘도 행복하게 달리고 있다.

택시기사의 인생극장

[2011. 09. 01] 명일동 사거리였다. 40대 아줌마가 어린애를 업은 채로 또 한 애는 손을 잡고 서서 택시를 잡으려고 한다. 택시 몇 대가 섰다가 지나가고 섰다가 지나가고 한다. 내가 뒤로 후진해서 “아줌마, 무조건 타세요.” 했더니 “하남시 가실래요?” 한다. 나는 두말없이 “네, 갑니다.” 하고는 하남시 덕풍동 골목골목을 올라가서 모셔드리고 내려오는데, 50대 정도의 아줌마가 서울 택시 왔다며 반가워하신다. “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손님이 경동시장 가자고 하신다. 와, 빈차로 돌아갈 것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기사아저씨, 고맙게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요.” “손님, 내가 더 고맙지요. 명일동에서 아이 둘 데리고 택시 잡느라 고생하는 아줌마가 딱해 보여 무조건 타시라고 해서 모셔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기사아저씨가 좋은 일을 해서 또 여기서 날 만나게 된 것 같네요. 나는 경동시장에서 몇십 년째 장사를 하고 있어요. 옛날에는 손님들한테 베풀면 답이 늦게 왔는데, 요즘은 좋은 일을 하면 답이 바로바로 와요. 그러니 기사아저씨, 계속 즐거운 마음으로 운전하세요.” 그러는 사이 어느새 경동시장까지 다 왔다. “택시 손님도 별별 손님이 다 있지요? 경동시장에서 장사를 해도 별별 손님이 다 있다오. 그것 다 참견하고 신경 쓰면 명대로 못 살아요. 대충대충 하고 약간 모자라는 사람처럼 살아야 해요. 밖에서 보면 바보처럼, 안에서 보면 속이 꽉 찬 사람이 되어 열심히 살다 보면, 나쁜 손님 좋은 손님 따로 없어요. 다 좋아져요. 그러니 오늘처럼만 살아가자고요.” “네, 안녕히 가세요.” 택시 문을 조심스럽게 닫으면서 예쁘게 인사하고 돌아서는 손님의 뒷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2011. 09. 09] 추석 하루 전날 신반포에서 타신 손님이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꺼낸다. “추석이 돌아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요.” “누구세요?” “우리 남편이요.” “왜요, 손님! 아저씨가 어때서 그러시나요?” “몇 개월 전에 돌아가셨는데, 2년을 중환자실에서 병원신세를 졌어요. 있는 재산 다 거덜 내고 병간호도 내가 하다가, 사는 사람이나 살자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우리 남편 보고 내가 그랬어요. ‘여보, 이왕 가시려거든 빨리 가세요. 내가 너무 힘들어요.’ 남편이 그 말을 들었는지 말은 못하고 눈물만 주르륵 흘리는 거예요.” 남편 생각이 나는지 어느새 손님도 울면서 말씀을 이어가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남편이 자꾸 눈을 깜박거리길래 ‘여보, 말씀해보세요.’ 해도 대답이 없는 거예요. 나는 그냥 ‘남편이 말하고 싶은데 말이 안 나오다 보다’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마지막이었어요. 그대로 숨을 거두고 운명하셨거든요. 이렇게 큰 후회가 될 줄은 몰랐어요.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가신 우리 남편 생각이 요즘 많이 나요.”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기사아저씨,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좀 더 잘해줄 걸 내가 왜 그렇게 못되게 했을까요? 남편이 중환자실에 있을 때 남편이 좋아하는 것 만들어다가 남편 입에 수저로 음식을 떠서 먹여주고, 입가에 흘리면 닦아주고…. 지나고 나니 몸은 힘들었어도 그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아요. 기사아저씨, 지금은 낙이 없어요.” “자제분들이 있으시잖아요.” “자식들이 있다고 해도 남편만 하겠어요. 자식들도 다 잘해요. 그래도 남편만은 못하죠. 나는 친구들한테도 일일이 전화해서 말해요. 살아 있을 때 남편한테 잘하라고. 정작 곁을 떠나고 나면 다 후회한다고요. 중환자실 침대에 말 못하는 남편을 두고 살아도 그것이 행복이라고요. 기사아저씨도 아줌마한테 잘하세요. 어, 벌써 다 왔네요. 이야기도 다 못했는데….” 손님이 아쉬워하는 것 같아 기분도 풀어드릴 겸 내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럼 다시 반포로 갔다 올까요?” 그제야 아주머니가 웃으시며 “기사아저씨 참 재미있네요.” 하신다. “네, 감사합니다. 손님, 다음에도 이 택시 타시게 되면 오늘 못다 한 얘기 해주세요.” “네, 그래요. 기사아저씨도 수고하세요.” 멀어져 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나는 문득 집에 있는 아내가 보고 싶어진다. 오늘은 퇴근길에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사들고 가야겠다.

[2011. 10. 05] 젊은 친구가 아침 출근시간에 암사동에서 잠실역까지 가자고 한다. 수원 어느 대학에서 박사 과정 공부를 하는데, 군대도 갔다 오고 여자 친구도 있다고 한다. 젊은 사람이 이야기를 참 잘도 한다. “저는 어릴 때부터 돈 모으는 걸 취미로 여기며 살았어요. 부엌에서 설거지해주고 엄마한테 5백 원 타고, 아빠 구두 닦아주면서 천 원씩도 타고, 설날에 세뱃돈 타면 한 푼도 안 쓰고 다 모았지요. 그런 저를 보고 주위에서는 보통 놈이 아니라고 해요. 대학도 알바해서 번 돈으로 다녔어요.”

“듣고 보니 손님, 정말 보통 젊은이가 아니네요.” “그런데 아저씨, 어느 날인가 아르바이트하랴 공부하랴 늘 정신없이 사는 저를 아버지가 부르시는 거예요. 그러고는 제 학비를 아버지가 무이자로 대출해줄 테니 저더러 사인을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 정말 너무하십니다.’ 했더니 아버지가 허허 웃으시며 ‘너한테 돈 받기 위해 그러는 게 아니라 네게 절약정신을 키워주기 위해 그러는 거야. 네가 장가가서 자식을 낳고 살면 그 돈을 또 자식교육을 위해 쓰게 하려는 거란다.’ 하시는 거예요.” “손님은 훌륭한 아버지를 두셨네요. 참 군대도 갔다 왔다 했지요?”

“네. 제가 건강하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제대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아버지가 저를 부르시면서 ‘우리 아들아, 술 한잔할까? 그래, 이왕이면 안주 좋은 데 가서 술 한잔하자.’ 하시는 거예요. 제가 군대를 갔다 오니 아버지가 이제야 저를 진짜 남자로 인정해주시는 것 같아 엄청 기뻤어요. 그래서 어깨에 힘을 딱 주고 아버지 뒤를 따라 집 근처 술집으로 갔지요.” “맞아요. 아들이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지요. 그래, 술집에서는 아버지와 무슨 얘기를 나누었나요?”

“아버지께서 앞으로 제가 사회인이 되어 살아갈 것들에 대해 충고해주셨어요. ‘아들아, 사회인이 돼서 살아가려거든 많은 것을 배우고 이해하고 참고 살아가야 한단다. 주먹을 쥐고 설치면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만, 두 손 모아 기도하면 상대도 좋고 너도 좋은 것을 얻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진단다. 언제나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되어라. 그럼 많은 사람이 너를 도와주고 이 아버지처럼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하시면서요. 저는 그때처럼 우리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어요. 정말 가슴 깊숙이에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생기더군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아버지 실망시키지 않게 열심히 살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아, 손님이나 아버님이나 정말 훌륭하십니다. 듣고 있는 제가 다 흐뭇해지네요.” “고맙습니다, 기사아저씨. 저기서 세워주세요. 얘기 나누고 와서 즐거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네, 손님도 안녕히 가시고 또 만나요.” 씩씩하게 성큼성큼 걸어가는 젊은 친구의 뒷모습이 눈부시다. 역시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

[2012. 02. 17] 서대문에서 탄 젊은 손님이 세종문화회관까지 가자고 한다. 음악을 하는 청년 같다. 나는 사업을 수년간 해서 사람의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다. 상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손님, 음악 하세요?” “네.” “그렇군요. 오늘 이 사랑의 택시를 탔으니 사랑의 기를 받아서 앞으로 무슨 일이든 잘될 겁니다. 애인이 없는 사람은 애인이 생기고,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가 잘되고요.” “하하, 기사아저씨가 참 재미있으시네요. 애인 하니까 생각났는데,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3년 동안 사귄 애인이 있는데, 요즘 더 좋은 여자 친구가 나타났어요. 어떻게 하면 사귀던 애인과 헤어지고 지금 나타난 여자 친구랑 사귈 수 있을까요?” 내가 택시 뒷좌석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것은 안 되지요. 사귀던 애인이랑 헤어지면 천벌을 받지요. 어이, 젊은 손님. 좋은 사람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지요.” “사귀던 애인보다 훨씬 좋은 여자처럼 느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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