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화의 역사
위르겐 오스터함멜, 닐스 P. 페테르손 지음 | 에코리브르
글로벌화의 역사
위르겐 오스터함멜, 닐스 P. 페테르손 지음
에코리브르 / 2013년 5월 / 256쪽 / 15,000원
“글로벌화”: 용어의 탐색
현시대의 진단과 역사적 과정을 나타내는 용어
“글로벌화”는 오늘날의 세계를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인데, 이 용어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경험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하나의 단어로 요약해준다. 예를 하나 들자면, 세계의 부유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소비와 정보 전달의 근대적 형식 덕분에 매일 (거의) 전 세계를 자기네 문지방에서 맞이한다. 다른 예를 들자면, 고립되었던 소비에트 블록 세계의 붕괴로 인해 근대의 서구적 라이프스타일이라는 획일적 원칙이 전체적으로 이 행성을 지배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정부 규제로부터 해방된 시장 세력과 정보 처리 및 전달 분야에서 일어난 기술 혁신이 세계적 규모의 수요와 공급을 효과적으로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장을 창출하는 데 도움을 준 것처럼 보인다.
글로벌 경제의 상호 의존성을 가리는 극도의 불투명성, 그리고 일상적 경험을 통해 국가적 경계의 부적절성을 차츰 더 뚜렷하게 밝혀내는 투명성, 이 양자 사이의 간극이 넓어질수록 글로벌화라는 용어는 이성과 감성을 화해시키고 그 공통분모를 찾아냄으로써, 양 측면 모두에 공정할 수 있는 현저하게 유리한 지위를 획득한다. 글로벌화라는 용어의 핵심에는 그것이 사실인 것만큼이나 그 내용적인 사소함이 거듭 증명되기도 하는 이항 대립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서로 멀리 떨어진 곳들이 지속적으로 더 가깝게 연계되면서, 세계는 눈에 띄게 “더 작아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세계는 우리의 지평이 전례 없이 넓어져왔기 때문에 또한 “더 커지고” 있다. 따라서 금세기에 일어난 이런 최근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시대정신(zeitgeist)을 “한 단어로” 총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우리가 글로벌화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확신에 의존하는 방법 말고는 대안을 거의 찾지 못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글로벌화 논쟁에 역사가들이 개입할 필요를 느끼는 대목이다.
핵심 개념과 논쟁
“글로벌화”의 의미와 관련해 제기된 대다수 정의에서 주요 역할을 한 요소를 갈무리해보면, 세계적 범위로 연결되는 관계의 팽창과 집중화, 그리고 가속화를 들 수 있다. 모름지기 정의란 대체로 지금 우리 시대에 대한 다양한 진단 또한 담고 있다. 요컨대 글로벌화가 민족-국가의 사명을 의미하는지 세계 전역을 문화적 동질성으로 인도할 것인지 혹은 다른 길로 인도할 것인지, 시간과 공간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는지 따위의 질문을 그와 같은 정의가 대체로 담고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화의 ‘의미’에 대한 이런 논의에서는 강한 가치 판단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다. 이를테면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의견의 스펙트럼 양쪽 끝에는 글로벌화 경향에 열광하는 자들과 반대자들이 제각각 고수하는 입장이 놓여 있다. 전자가 글로벌화를 성장과 번영의 새 시대의 시작이라고 환영하는 반면, 후자는 그것을 서구에서 기원한 거대 기업에 의해 글로벌 범위로 행사되는 지배 체계의 출현이나 민주주의ㆍ노동권ㆍ빈곤국ㆍ글로벌 생태계 따위의 훼손을 의미한다고 이해한다.
만약 이와 같은 다양한 확신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글로벌화가 민족-국가의 중요성에 도전하고, 국가와 시장 사이에 조성된 권력의 균형을 시장 친화적 경향으로 변경시킨다는 식의 추정 정도일 것이다. 이와 같은 추세의 진전과 자유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민족-국가의 정부가 취하는 조치를 통해 생겨나는 이득을 차지하는 장본인은, 자기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는 의무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세계적 범위의 직접 투자를 위해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역을 골라잡을 능력을 갖춘 다국적 기업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경제 발전과 천연자원에 대한 접근, 그리고 특히 각종 세금 제도에 영향을 주는 민족-국가 정부의 능력은 거의 손상되었다는 얘기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로 복지 국가의 전망 또한 무너지고 있으며, 그리하여 국가의 정당성이 줄어드는 뚜렷한 경향도 확인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글로벌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볼 때, 이런 상황적 변화는 개인적 자유의 획득을 의미하는 발전인 반면, 글로벌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겐 강한 자에게만 이익을 퍼서 몰아주는 무정부적 상황이 약한 자들에게 가하는 심대한 타격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민족-국가의 대외적인 자주권과 국내적인 권력의 독점 및 통치 능력 등의 침식 문제가 오늘날 사회과학의 중심 주제 중 하나가 되었다.
글로벌화의 두 번째 성격, 이를테면 “문화”라는 항목으로 포괄되는 모든 것에 대한 글로벌화의 영향력에 관한 일반적인 동의 또한 존재한다. 서구 문화 산업의 정보 전달 기술과 세계적 마케팅 등에 의해 추동되는 문화적 글로벌화를 가장 먼저 하나의 동질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다양성을 희생하면서 미국 대중문화가 글로벌 차원에서 지배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인 경향이 곧 나타났는데, 글로벌화에 대항하는 운동과 로컬적인 독특성, 개별성, 정체성 등을 옹호하는 운동의 출현이 그런 대조적인 경향을 분명히 밝혀준다.
이런 동질화에 반대하는 운동은 자신들의 목표를 더 능률적으로 추구하고 세계 여론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서라도, 동질화를 초래한 바로 그 신기술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사회학자 롤런드 로버트슨은 이런 동질화와 이질화의 동시 발생 현상을 “지방주의의 보편화와 보편주의의 지방화”라는 하나의 동반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다른 한편으로, 글로벌적 경향이 언제나 로컬적인 공동체에 충격을 주는 동시에 구체적인 상황에 맞춘 특별한 “흡수 통합”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글로컬화(glocalization)”라는 용어를 도입한다.
많은 저자들이 사람, 상품 그리고 특히 정보가 엄청난 거리를 극복하는 이동 가능한 측면의 용이성과 빈도에 착안함으로써 글로벌화를 시간과 공간의 범주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근본적 변화라고 설명해왔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이런 변화를 “시간과 공간의 압축”이라고 부른다. 이런 해석은 글로벌화에 관한 사회과학적 이해에서 세 번째로 제시할 수 있는 기본적인 특질로 생각할 수 있다.
전화 요금의 급격한 감액 및 전자 우편의 확대 사용과 함께 시작한 “시간과 공간의 압축”은 접근이 용이한 직접적 소통의 관계성과 아울러 일종의 “가상” 연대성을 창출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런 압축 효과는 서로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하는 유효 거리가 지리적 거리보다 훨씬 더 가까워짐으로써 생겨나는 세계적 범위의 사회적 관계, 네트워크, 체계 따위를 위한 필요조건을 제공한다. 이런 현상을 창출해낸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보 전달 분야의 향상된 속도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생각을 표현하는 다른 방식으로 “탈영토화” 혹은 “초영토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화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에 선도적으로 참여했던 다양한 논자들은 더욱 정교하게 개발한 자신들의 해석과 예측의 토대를 이루는 근본적이면서도 널리 인정받는 각각의 정의를 사용한다. 여기서 그들 중 두 사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마틴 앨브로의 “글로벌 통합성” 개념과 마누엘 카스텔의 “네트워크 사회”라는 개념이다. 글로벌 통합성의 차원은 글로벌 생태계라는 틀 안에 환경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 글로벌 범위로 일어날 수 있는 파괴적 참화의 상존하는 위험이 대량 살상 무기에서 연유한다는 사실, 정보 전달 체계와 시장이 지구 전역에 걸쳐 전개된다는 사실, 그리하여 결국 글로벌 통합성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글로벌 맥락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신들의 활동과 태도에 관한 지식을 참조해 성찰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는 사실 등을 반영한다고 앨브로는 주장한다.
한편, 카스텔은 글로벌화를 “네트워크 사회”의 출현으로 설명하는데, 그가 주장하는 사회 형태 역시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라는 환경에서, 경제와 정치는 더 이상 위계적이며 관료적인 대규모 방식으로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느슨하게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구조화된다. 권력을 행사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기반이 그렇게 변화해온 것이다. 여기서 권력은 더 이상 명령과 복종으로 확인되지 않으며, 어떤 구체적인 목적을 위해 각각의 시간을 설정하는 가운데, 실제로 존재하는 네트워크 조직에 그 닻을 내린다. 억압과 착취로 구축된 이항 대립, “상층”과 “하층”이라는 사회적 범주, 그리고 “중심”과 “주변” 같은 지금까지의 지리적 개념 대신, 권력의 결정적 원리는 해당 네트워크에 누가 귀속하는가 혹은 배제되는가의 문제로 구성된다. 그래서 카스텔이 정의하는 새로운 세계에서 주요한 단층선은 연결된 사람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글로벌화의 차원
만약 글로벌화가 단지 최근 수십 년 만에 생겨난 일이고, 더욱이 새로운 역사적 시대의 시작을 표상할 수 있는 용어라고 한다면, 그 이전에 존재했던 것들과 다르게 새로 나타난 국면을 먼저 상호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만약 글로벌화가 장기간에 걸친 과정의 상호 작용과 상호 강화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결과적 현상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우리 자신이 바로 역사적 분석을 요구하는 중요한 문제의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시기
시기 구분은 어떤 시대의 역사적 발전을 구체적 기간으로 구분해 정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역사를 이야기할 때, 시기 구분을 에둘러 갈 방도는 없다. 역사적 과정이란 어느 경우든 기계적 규칙성에 따라 일어나지 않는다. 그 과정은 속도의 가속과 감속에 의해 변이를 나타낸다. 휴지기와 추진하는 힘에 의해, 밀려들어오고 밀려나가는 힘에 의해, 그리고 급속한 혁신 국면에 의해 그 성격을 드러낸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글로벌화가 수천 년 동안 계속되어왔다고 가정함으로써 시기 구분을 문제적인 것으로 심사숙고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전근대 사회가 가구나 마을 혹은 기껏해야 도시와 농촌 사이의 공생 등과 같은 작동 틀 안에서, 오로지 자급자족 경제만을 기초로 하는 작고 꽉 짜인 단위라는 기존의 정리를 오늘날 어느 누구도 진지하게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좀 더 앞선 시기를 거쳐 오면서 어느 특정 시점에 항상 꺾이기는 했지만, 글로벌화를 위한 시도는 계속 반복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글로벌화의 전사(prehistory of globalization)라고 본다.
1500년 전후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식민 제국 출현과 더불어 진행된 하나의 새로운 글로벌화라는 주도적 흐름을, 기본적으로 세계적 통합이라는 불가역적인 과정의 시작이라고 해석하는 부분까지는 우리도 월러스틴의 의견에 동의한다. 탐험과 정규적인 무역 관계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의 직접적인 접촉을 역사상 처음으로 가능케 만들었다. 1750년대 중반까지는 이와 같은 접촉이 다자간에 일정하게 맺은 안정적인 상호 의존성 속에서 성장해왔다.
그러므로 18세기 중반까지는 최소한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영향력을 갖춘 대륙 간 네트워크가 수립되었다. 다음 시기, 즉 1750년 무렵부터 1880년까지는 산업 혁명으로 창출된 생산과 운송 및 정보 전달 분야의 새로운 기술적 역량의 영향을 받아 그 강도에 있어 전례가 없던 통합의 확장이 세계적 범위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국면으로 볼 때, 이 시기의 유럽은 자기 대륙 내부로 물러서는 양상을 나타낸다. 아메리카 대륙에 걸쳐 편성되었던 식민 제국의 구조가 보잘것없는 몇몇 잔류 형태를 제외하고 사라진 것이다.
(1776년 영국 식민지이던 미국의 독립 혁명은 아메리카 대륙의 정세를 급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혁명의 정신은 무엇보다 독립선언서에 잘 나타나 있다. ‘평등, 자유, 행복 추구권’ 그리고 이런 타고난 권리를 수호하는 그 자체의 목적을 스스로 파괴하는 정부를 폐지하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것을 인민의 권리로 정의한 독립선언서의 내용은 ‘자유, 평등, 박애’를 내세운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정신과 함께, 피식민자들의 독립 의지에 힘을 실어주었다. 1804년 아이티라는 이름으로 독립한 프랑스령 생도맹그가 라틴아메리카 독립 도미노의 첫 사례였고, 이후 19세기 중후반에 걸쳐 거의 모든 식민지가 해방을 쟁취했다. 아메리카 대륙을 휩쓴 이런 독립의 도미노는 혁명 이후에도 노예제를 고수하던 미국을 고립된 섬으로 만듦으로써, 결국 3년 동안의 내전이 끝난 1863년 노예 해방 선언을 하게끔 하는 외부의 압력으로 작용했다.)
“세계 경제의 출현”은 널리 퍼져 있던 자유무역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일어난다. 이와 동시에 민족-국가라는 형태를 포함하는 유럽식 제도와 유럽의 혹은 “서구의” 사상이 세계 전역으로 수출된다. 우리는 특정한 경제적 영역이 진정한 글로벌 상호 의존성에 의해 최초로 영향을 받는 시기를 1860년대와 1870년대로 보는데, 그중 몇몇은 통계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1880년 이후의 글로벌화는 정치화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이르러 국가 형식을 갖춘 사회가 글로벌 경제 통합의 효과에 통제력을 발휘하길 원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글로벌 경제는 국가 권력의 한 기능으로서 세계 정치로 간주된다. 이어서 “세계 강국” 사이의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이런 대립과 갈등은 경제적 탈글로벌화 및 글로벌 위기와 세계 전쟁이 만연하는 한 시대의 전조를 보여준다.
1945년 이후 이 시대가 끝나면서, 경쟁적인 두 강국의 권역에서 시행되는 두 가지 경쟁적 체제 모델에 따라 더 나은 세계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신중한 시도가 이뤄진다. 이런 조정을 거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 특히 탈식민화, 다국적 기업, 해외 원조 정책, 소비자 사회 등을 통해 - 글로벌화를 발전시킨 구조가 수립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서서히 핵에 의한 파멸이라는 위협을 받으면서, 국가적 경계를 넘어 영향을 미치는 환경 문제와 직면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서 세계를 지각하게 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종류의 글로벌화가 차츰 더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세계 경제의 황금기라고 간주하는 이 시대의 정확한 끝은 논란을 일으키기 쉬운 문제인 까닭에 우리는 여기서 확정적인 발언을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연구는 1970년대에서 끝난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아주 분명하다. 즉 1989~1991년까지 진행된 소비에트 권역의 붕괴는 완전히 전례가 없는 세계의 급작스러운 출현을 의미하지 않고, 그 붕괴 자체는 오히려 대체로 1970년대에 관측된 각 글로벌화 추진 세력 사이의 경쟁이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결론
글로벌 시대로 가는 도중?
우리가 지금 “글로벌화 과정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견해가 광범위하게 인정받는 것처럼 그 기초는 훌륭하게 세워져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하나의 새로운 시대일까? 현재의 글로벌화가 양적이고 질적으로 전례 없는 유형의 글로벌 통합성을 전개한다고 해서, 역사적인 이전 시대들의 글로벌화와 다른 것일까? 만약 글로벌화가 실제로 역사의 그리고 인간 경험의 중심적인 특징에 도달하는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한다면, 20세기 후반이 아니라 발견ㆍ노예 무역 그리고 “생태적 제국주의”라는 사건이 펼쳐지던 근대 시기 초엽에 이미 그런 전환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글로벌화의 또 다른 추진력은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운송과 정보 전달의 산업화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화는 19세기 말에 이미 대다수 인류의 삶에 영향을 주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훨씬 더 광대한 구역에 사는 세계 인구가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20세기 인간들의 경험은 특히 경제적인 세계 위기, 세계 전쟁 그리고 즉각적이거나 점차적인 세계의 황폐화 가능성이라는 실체화한 체험에 영향을 미쳤다. 1913년의 경제적 교류 규모는 이후 미약해지다 197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 복원될 정도였다. 그리고 어떤 지역에서는 아직 1913년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글로벌화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다시금 가속화할 무렵, 글로벌 통합성은 더 이상 독자적이고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