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다빈치, 꿈을 설계하다
데니스 홍 지음 | 샘터
로봇 다빈치, 꿈을 설계하다
데니스 홍 지음
샘터 / 2013년 3월 / 344쪽 / 14,000원
Chapter 1 인간을 위한 따뜻한 기술
불가능, 그것은 하나의 의견일 뿐
2011년 1월 29일 미국 플로리다 주 데이토나 자동차 경기장, 세계적으로 유명한 롤렉스 24 자동차 경주 대회가 한창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정작 열광하는 것은 멋진 스포츠카가 아닌 평범한 검정색 SUV 자동차 ‘브라이언’이다. 브라이언이 천천히 관중석 앞을 지나는 순간 사람들의 기립 박수가 시작됐다. 운전자가 경적을 울리자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Go! Go!”를 외치며 환호한다. 브라이언은 여유 있게 장애물을 피하면서 마지막 도착 지점을 향해 간다.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오늘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여러분은 기적을 보고 있습니다.” 차가 멈추고 운전자가 내린다. 오른손으로 자동차 문을 더듬고 다른 손으로 흰 지팡이를 꺼내 든다. 운전자의 이름은 마크 리코보노,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다. 그가 운전한 자동차는 우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시각장애인용 자동차이다. 마크가 소리친다. “데니스! 어디 있어?” 나는 차 앞으로 달려갔다. 그가 나를 부둥켜안고 말한다. “Thank you! 데니스, Thank you.” 전 세계 3700만 시각장애인들의 꿈이 하나가 된 순간이다.
이 차는 사실 시각장애인과는 전혀 관계없는 로봇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미국 국방성 산하 고등연구계획국에서는 2005년~2007년 동안 총 3회에 걸쳐 ‘무인 자동차 경주 대회’를 개최했던 적이 있었다. 목표는 시작 버튼을 누른 후 자동차가 스스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교통 법규도 준수하며 다닐 수 있는 전자동 로봇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버지니아텍의 동료 교수들과 팀을 꾸려 2007년 대회(어반 챌린지)에 출전하여 3등을 차지하는 영광을 얻었다. 그리고 얼마 후 미국 시각장애인협회가 새로운 도전장을 던졌다. 자율 주행 자동차 기술을 활용한 시각 장애인 자동차 대회를 열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무인자동차 경주를 위해 이미 개발한 자동차를 그대로 활용할 생각으로 시각장애인 자동차 대회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시각장애인협회와 미팅을 하고 나서 내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원한 것은 시각장애인을 태우고 돌아다니는 전자동 자동차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판단하고 직접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를 원했다. 나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했다. 다른 연구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그들은 “저걸 왜 해? 시간 낭비야.”라고 입을 모았다. 돈도 되지 않고, 상용화도 어렵고, 잘해야 본전인 프로젝트였다. 결국 도전하기로 한 팀은 단 하나, 우리뿐이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외치니까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무모한 용기가 생겼다. 그러자 온몸이 짜릿해졌다. 갑자기 설레고 흥분되는 것은 도전할 기회가 주어져서였다. 만일 성공한다면? “너희들, 이거 못한다고 했지? 근데 내가 해냈어!”
‘맹인’이었던 내가 눈을 뜨다
2008년 봄, 나는 12명의 학부생으로 팀을 짰다. 그리고 단돈 5천 달러의 종잣돈으로 불가능한 도전을 시작했다. 눈앞의 난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감조차 잡기 어려웠다. 우리가 시각장애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를 만들려면 시각장애인이 어떤 식으로 생활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뭔가를 만들 때마다 시각장애인들과 소통했다. 맹인학교에 가서 학생들과 토론하고 새롭게 개발한 기술을 테스트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물리학과 학생이자 시각장애인인 첼시를 같은 팀의 멤버로 영입하기도 했다.
2009년 5월 어느 화창한 봄날 캠퍼스 주차장에는 각종 센서와 전자기기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빨간 자동차 ‘데이비드’가 놓여 있었다. 오늘은 데이비드를 처음 시운전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데이비드를 시운전하기 위해 시각장애인 마크와 웨스가 우리 학교를 찾아왔다. 웨스가 운전대에 올라 조심스레 페달을 밟자 데이비드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에 쓴 헤드폰으로 컴퓨터의 지시를 들으며, 운전대의 진동에 집중하며 차를 운전했다. 나는 모니터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엉금엉금 굴러가는 자동차를 보았다. 웨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 순간! 태어나서 그렇게 행복해하는 사람의 얼굴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귀에 입이 걸린 듯한 함박 미소! 헬렌 켈러가 ‘water’를 외칠 때의 표정이 그랬을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사람의 희열이 거기 있었다. 바로 그때, 내가 하는 일이 진짜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진정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알았다. 나의 연구가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저항’은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증거이다
첫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해 여름, 우리에게 데이비드를 시연할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바로 메릴랜드 주립대학에서 열리는 시각장애인 학생을 위한 캠프였다. 우리는 시각장애인 학생들에게 자동차 엔진의 작동원리며, 비시각 인터페이스(인간과 컴퓨터를 연결해주는 장치 기술)에 대한 강의를 해주었고, 타이어 교체, 오일 교환 등 자동차에 대한 여러 체험기회를 제공했다. 마지막 날에는 그들이 직접 데이비드를 운전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큰 주차장을 막고 트래픽 콘으로 길을 만들어 한 명씩 운전하게 했다. 학생들은 엉망으로 운전을 했다. 하지만 모두 운전석에서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비록 앞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그날 데이비드의 운전대를 잡고 자신의 미래를 본 것이다. 언젠가는 스스로 자신의 자동차를 운전하며 자유를 누리는 미래를 경험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워싱턴포스트》 1면에 우리에 대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그 뒤부터 우리의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전화, 이메일, 편지가 쇄도했다. 감사와 칭찬의 편지도 많았지만 욕설을 퍼붓는 편지도 있었다. “맹인을 운전시켜서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기라도 하면 당신이 책임질 건가요? 이건 미친 생각이에요!” 대충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무인 자동차처럼 센서를 이용해 컴퓨터가 운전을 할 수 있다면, 같은 센서를 사용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운전하는 것은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과연 우리 사회가 그런 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협회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렸다. 어떤 협회는 시각장애인의 독립과 평등을 주장하면서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한 반면, 어떤 협회는 혹시 운전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시각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악영향이 생긴다는 이유로 프로젝트에 반대했다. 나는 혼돈과 배신감을 느꼈다. 실망과 슬픔, 회의가 이어졌다. 그때 같은 학과의 원로 교수님이 나를 위로했다. “저항이 있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증거지.” 이 말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압력과 저항은 결국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저항과 부정적인 의견이 생길 때면 이제는 흔들리지 않고 그들과 소통한다.
우리는 다음 단계로 시각장애인들이 진짜 도로에서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부정적인 저항의 슬럼프에서 벗어나 시각장애인협회에 사업 제안서를 제출하고 연구비를 마련했다. 시각장애인들과 매일 실험을 하고 무인자동차 대회에서 사용했던 기술들도 사용했다. 큰 뜻을 품고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인식하며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일한 결과 우리는 1년 만에 ‘브라이언’을 완성했다. 세상을 바꿀 진짜 자동차인 브라이언은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브라이언은 직접 시각장애인의 곁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우리들의 진심이 만들어낸, 그들과 함께 개발한, 그들을 위한 사랑의 자동차였다.
더 큰 꿈의 시작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동차 개발 프로젝트는 사실 자동차에 대한 기술 개발을 위한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을 찾는 데 있었다. 자동차 운전을 주제로 잡은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시각에 많이 의존하는 대표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입증된 비시각 인터페이스 기술들은 결국 다른 어떠한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우리가 데이토나 경기장에서 세상에 드러낸 것은 가능성의 시작일 뿐이다. 이미 우리의 성공을 지켜본 많은 연구자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본인들이 개발한 인터페이스 기술을 어떻게 바꾸면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을지 말이다. 바로 이것이 아주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지금 나의 주 연구 활동 분야는 로봇 공학이지, 시작장애인을 위한 기술이 아니다. 비시각 인터페이스는 내 전문 분야도 아니다. 얼떨결에 시작해서 불가능할 것이라는 다른 이들의 말에 대한 오기로 도전했고, 결국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따뜻한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가슴 깊이 깨달은 것이다. 그동안 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각장애인들 역시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고, 다른 과학자들에게 우리의 힘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고자 했다.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자유와 독립과 꿈과 희망을 주었고, 사람들에게는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세상을 바꾸는 노력을 하면서 그 시간들을 통해 나 자신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더 큰 꿈의 시작에 불과하다.
Chapter 2 네 꿈을 따라가라!
일곱 살 꿈의 시작, 스타워즈
누구나 어렸을 때는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그 꿈은 시간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포기하기도 하고, 성장해감에 따라 멀어져가거나 또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다 새로운 꿈을 꿀 때도 있고, 많은 경우 현실에 굴복하고 살기도 한다. 자신의 꿈을 찾는 것, 그 꿈을 좇아가는 것, 그리고 간직하던 그 꿈을 이루는 것. 그보다 더 행복하고 값진 삶이 또 어디 있을까. 자신이 꿈꾸던 인생이 다른 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또 도와줄 삶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일곱 살 꼬맹이 때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후 단 한 번도 생각이 바뀐 적이 없다. 그 꿈의 시작은 다름 아닌 1997년 여름 극장에서 본 영화 <스타워즈>였다. 당시 일곱 살 꼬마였던 내게 <스타워즈>는 충격적이었다. 손에 땀을 쥐는 우주선들의 전투장면, 신기하게 움직이며 인간들을 돕는 로봇들이 너무나도 멋져 보였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앞으로 커서 꼭 로봇과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그날의 꿈을 단 한 번도 저버리지 않고, 내가 세운 로봇 연구소에서 ‘내 꿈의 로봇’들을 진짜로 만든다. <스타워즈>는 그저 한 편의 영화였으나,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내 꿈의 시작이었다.
유감스런 이야기지만, 아무리 간절히 바라는 자신의 꿈이 있어도 자질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자질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계속 실패하면서 좌절하고 낙오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꿈은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면서 또한 남들이 인정할 정도로 잘하는 일이어야 가장 바람직하다. 그래야 성공하고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잘하는 일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나는 무엇이든지 잘 고치고 잘 만들어서 칭찬을 많이 듣고 기분이 으쓱해져, 그 일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로 로봇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모두 감탄했고, 선생님들은 작품을 학기 내내 학교 복도의 진열장에 전시해 놓았다. 그래서 방학만 되면 숙제로 만든 작품을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보여주려는 마음에 들떠 개학날만 기다렸다. 이처럼 어린이들이 잘하는 일을 찾고 장려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는 결국 부모들과 선생님들의 임무인 듯싶다.
“미안하지만 강아지는 죽었다”: 스무 살의 독립과 유학 생활
누구나 살아가면서 힘든 시절이 있다. 나라고 예외일 리 없다. 21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기계공학을 공부할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버거운 시간이었고, 처음 교수가 되었을 때 연구 제안서들을 제출하며,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을 때가 가장 힘겨운 고난의 시기였다.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유학을 결심했다. 대학에 진학하여 새로운 걸 연구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서점보다 막걸리집이 더 많은 캠퍼스 앞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속상했다. 나는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큰 결심을 하고 미국 북부 지방에 있는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교에 편입을 했다.
유학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일상적인 영어 회화는 문제가 없었지만 공부와 학교 생활은 달랐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다른 영역이었다. 팀 프로젝트와 토론을 중시하는 미국 대학에서 자기주장을 펼치고 발표까지 해야 하는 건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럼에도 적응이 빨랐던 것은 나의 열정이 한몫했던 것 같다. 내가 연구하던 로봇에 대해 뭔가를 막 신나게 설명해주면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그러면 나는 신이 나서 얘기했다. 그러기를 반복하니 영어로 생활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미국에서 처음 공부할 때는 사소한 것도 몰라 헤맸다. 숙제도 어떤 식으로 제출하는지를 몰라 허둥대기 일쑤였다. 그래서 누가 요구한 것도 아닌데 리포트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멋지게 꾸며 제출했다. 리포트에 3차원 그래픽 작업까지 하면 미국 친구들도 모두 감탄할 정도였다. 기억에 남는 과제는 열역학 프로젝트였다. 당시 신문에 밀폐된 공간인 자동차 안에 있던 강아지가 죽었다는 기사가 한참 화제였고, 그것을 기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과제가 주어졌다. 나는 수업시간에 배운 열역학 공식을 사용하여 햇빛 아래 주차된 자동차 실내의 온도 상승과, 얼마만큼의 열을 빼내야 강아지가 안전한지를 계산했다. 그리고 차 밑바닥에 연결된 파이프에서 태양열을 사용해 물을 분사시켜 실내의 열을 식히는 방법을 고안해 멋진 장치를 개발했다. 제목은 ‘Hot Dog Cooler’, 핫도그 모양의 로고 마크와 포스터도 만들어 세일즈맨이 새 제품을 광고하듯 재미있고 신나게 발표했다. 모두가 즐거워했고 인기도 최고였다. 하지만 공식 계산이 틀리는 바람에 발표 직후 교수님이 “데니스, 미안하지만 강아지는 죽었다.”라고 해서 모두들 깔깔 웃었다. 결국 B학점을 받았지만 지금도 즐거운 에피소드로 남아 있다.
돌아보면 처음 유학 생활이 힘들었던 것은 유학 자체가 아니라 독립 때문이었던 것 같다. 외롭고 또 외로워서 빨리 극복하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랐다. 서울에 있는 친구와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고 친구들을 사귀면서 허전한 마음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공부와 운동만 하는 규칙적이고 착실하고 건전한 삶을 살았다. 밤낮으로 공부만 하니 성적도 좋았다. 학부 학생으로 로봇공학 연구실의 교수님 밑에서 배울 기회도 주어졌다. 이렇게 먼 나라에서 혼자 지내는 외로움과 스무 살의 책임을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느라 대학 시절은 너무나 빨리 흘러갔다.
Chapter 3 세상을 이롭게 할 내 꿈의 로봇들
내가 만든 로봇들 중에는 사람들이 놀랄 만큼 독특하게 움직이는 로봇들이 많다. 그 로봇들은 내가 일상을 관찰하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다. 초등학교 때 나는 학교 연못의 물을 컵에 받아다가 현미경으로 별의별 모습의 생물체를 들여다보았다. 외계생물처럼 생긴 단세포동물들이 물속을 헤엄치는 것을 보면서 감탄했다. 나는 언젠가 아메바처럼 위족으로 움직이는 로봇을 꼭 만들어보고 싶었다. 교수가 된 후에 미국 과학재단에서 주는 ‘커리어 어워드’라는 상에 도전하면서 나는 생물학과 연관된 로봇을 주제로 삼기로 했다. 그때 아메바를 본뜬 로봇이 떠올랐다. 아무도 꿈꾸지 못한 개념의 젤리나 액체 같은 로봇이 가능할까?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아메바를 공부하고 생물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메바가 세포질 유동이라는 신기한 방법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아메바의 몸속 액체가 젤리 표피로, 또 젤리 표피가 몸속 액체로 변환되면서 움직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