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용기
레나테 다니엘 지음 | 한스미디어
오직, 용기
레나테 다니엘 지음
한스미디어 / 2013년 1월 / 252쪽 / 13,000원
1부 용기는 결정과 단호함을 필요로 한다
리스크를 고려한다고? 머리와 가슴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람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결정을 한다. 논리적으로 결정을 하거나 기분 내키는 대로 결정을 한다.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자아의 네 가지 상이한 기능, 즉 사고와 감정의 결정기능과 직관과 감각의 지각 기능을 관찰했다. 사람들은 이 네 가지 자아 기능을 똑같이 발휘할 수 없으며, 대부분 어린 시절 한 가지 기능에 특화되는 경향이 있고, 어른이 되어서는 이 주된 기능에 입각해 세상을 지각하고 이에 따라 행동 방식을 결정한다. 과학자 중에는 사고형이 많고, 스위스의 시계 산업처럼 정밀 기계 산업 종사자 중에는 감각형이 많다. 예술가나 디자이너는 직관형이 많고, 남을 도와주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 중에는 감정형이 많다.
어떤 기능을 이용하여 주로 결정하는지를 알면, 두 번째 질문, 즉 "결정을 한 후에 더 편안한가, 아니면 하기 전에 더 편안한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결정을 한 후에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은 어떤 일을 쉽게 결정한다. 이런 사람은 규율과 통제를 높이 평가하며 빠르게 체계적이며 확실하게 행동한다. 한편 결정하기 전에 마음이 편한 사람은 그 상태에 머무르기 위해 최대한 오래 결정을 미루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무한한 가능성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창의력, 자발성, 유연성이 이들의 장점이지만 결단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리스크의 관점에서 결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어느 정도 번복할 수 있는 결정과 절대 뒤집을 수 없는 결정이 그것이다. 임대차 계약에 서명했다고 평생 그 집에 살 필요는 없다. 짧게 자른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기르면 된다. 하지만 틀린 결정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낼 수도 있다. 엄청난 고뇌를 겪거나 재정적 부담을 질 수 있고, 조직의 엄청난 비용 낭비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틀린 결정은 도전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새 집에 이사한 뒤 이웃 사람과의 분쟁이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 이처럼 바로잡을 수 있는 결정이 있는 반면, 이른바 돌이킬 수 없는 결정도 있다. 결혼이 이런 범주에 속했다. 예전에는 배우자와 헤어지려고 하면 큰 문제점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결혼이라는 깊은 결속감에 대한 동경이 있다 해도 이혼의 자유를 단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 있다. 낙태는 하고 나면 돌이킬 수 없고, 암에 걸린 유방은 잘라내면 어쩔 수 없다. 내 삶에서 영원히 사라지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 문제가 된다.
사람들은 중요하고 어려운 결정이 코앞에 닥치면 으레 전문가나 경험자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이들의 의견이 모두 같고 납득할 만한 것이면 그만큼 공감하고 결정을 내리기도 쉽다. 그러나 이들의 의견이 서로 모순되고 몇 가지 다른 대안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당신의 결정 방식을 마음속에 하나하나 떠올려 보라. 당신은 때로 조언을 받아들이는가? 어렸을 때 반항적이든 얌전하든 나름대로 주관이 서 있으면 어린 시절의 행동 방식을 쉽게 떨치지 못한다. 이것은 어른이 되어 결정할 때도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문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당신의 무의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아주 어릴 때부터 누구에게나 예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라면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부모와 같이 살거나 직장 상사나 동료의 요청에 사무실에서 잔업을 떠맡을 것이다. 이와 달리 어려서부터 반골 기질이 있는 사람은 다른 이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한다.
감춰진 롤 모델은 도대체 어떻게 생길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주위 사람들이 보여준 태도와 평가를 받아들이고, 이를 자기도 모르게 자기 것으로 만든다. 의도와 상관없이 부모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내적 동반자 역할을 한다. 부모는 내면화된 롤 모델로서 우리의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감춰진 롤 모델에는 이른바 콤플렉스가 문제가 된다. 누구나 부모, 형제, 이성, 그리고 삶의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어릴 때 부모나 주위로부터 지원이나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심리적으로 억압되고 경시된다. 어릴 때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인생을 보는 관점이 생기면 권위적인 사람과 대면할 때 무의식적으로 콤플렉스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우리는 내면에 형성된 아버지라는 롤 모델에 사로잡혀 더 이상 자유롭게 결정할 수도 행동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어른이 되었을 때 비슷한 권위적 상황에 놓이더라도 그것은 비슷한 것일 뿐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다.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를 정확히 구분해 바라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적으로 분열되면 왜 무기력해질까?
안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녀는 1년 전 어떤 남자에게 반해 관계를 덜컥 맺고 말았다. 남편도, 장성한 두 아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들통 날까 봐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완전히 다른 두 세계에서 사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녀는 참다못해 두 남자 중에 한 남자를 결정하려 한다. 그녀는 밤에 무수히 잠을 설쳐가며 떠날까 말까를 고민했다. 그녀가 가정을 파탄 내는 것은 산사태나 다름이 없다. 고지식한 부모님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부부가 같이 알고 지내는 친구 관계도 무너질 것이고, 최악의 경우 외톨이가 될 것이다. 공동 소유의 집도 잃을 것이다. 아이들이 의붓아버지에게 갈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녀는 이런저런 고민으로 초조해져 축 늘어졌다. 과감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무엇이 옳은 결정일까?
인간은 선택의 자유가 있는 반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남과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인생은 술술 풀리지만은 않는다. 이혼해도 책임이 따르고 이혼하지 않아도 책임이 따르는 딜레마에 빠진다. 사랑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사랑 없이 같이 살면 상대방에게 사랑을 줄래야 줄 수가 없다. 배우자나 자식을 위해 이혼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 고맙다는 말은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은 이혼하지 않는 데에 무의식적인 반대급부를 기대한다. 안나도 죄책감을 느낀다. 자식, 남편,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재혼 후의 그녀 자신도 고통받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만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자신에게 옳은 결정이 무엇인지 너무 모르고 있다.
사실 안나의 문제는 이혼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남편과의 다툼이 문제였다. 그들은 부부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고 논쟁을 통해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남편은 부부 관계에서 무언가 삐거덕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안나는 대화에 앞서 남편에게 어떻게 접근할지 결정해야 한다. 남편에게 결혼 생활과 관계상의 불만만 이야기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외도를 솔직히 고백할 것인가? 외도 같은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은 배우자에게 무거운 부담을 준다. 배우자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괴로워한다. 격한 비난이 따를 것이고 아내에 대한 신뢰는 크게 손상될 것이다. 반면 어쩌면 남편은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진실을 알게 되어 마음이 놓일지도 모른다. 안나가 외도를 실토하면 마음이 홀가분해질 수도 있다. 더 이상 힘든 숨바꼭질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정직은 긍정적인 작용을 하므로 비밀을 털어 놓으면 더 좋아질 수 있다.
안나가 겪은 부부간의 갈등에서 이혼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두 가지 대안이 나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떤 결정을 하든지 이에 따르는 손실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안나처럼 심사숙고하는 것은 짐이 될 뿐만 아니라 신경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것은 필연적이다. 결정은 빨리 내릴 수도 있지만 늦게 내릴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카이로스(kairos)라고 부른 '적절한 때'를 인식하는 것은 일종의 기술과 같다. 이를 열매에 비유해보자. 열매는 일찍 따거나 늦게 딸 수 있으며, 한창 무르익었을 때 딸 수도 있다. 지금처럼 역동적인 시대에 결정을 천천히 무르익게 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의미 있는 것이다.
2부 용기는 마음을 필요로 한다
가치와 감정이 없으면 용기도 없다
우리는 감정적인 논거가 아닌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논거를 제시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이런 배후에는 감정이 비과학적이고 중요하지 않으며 심지어 해롭다는 확신이 깔려 있다. 그러나 감정은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꼭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누구나 자신만의 감정을 체험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때 그들은 똑같은 감정이 아니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그 차이를 증명할 수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다. 감정은 주관적인 내적 상태를 재현하는 배타적인 체험이다. 우리는 감정이 강렬할수록 활기차고 열정적으로 살 수 있다. 그것이 감정의 힘이다. 용기를 갖고 우리 자신을 넘어 성장하기 위해서는 감정 속에 포함된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떤 감정이 용기를 촉진할까? 바로 긍정적인 자기가치감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치를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인정이든 비난이든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필요로 한다. 다른 사람에 의해 외부로부터 온 피드백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또한 우리는 내부로부터 자신을 지각한다. 이 두 가지 관점이 일치하면 우리는 부담을 덜고 일치하는 평가가 옳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 신뢰의 발달을 위한 토대가 된다. 이 토대는 어린 시절에 만들어지며 부모가 자식에게 신뢰를 심어주고 자식의 특성을 펼치도록 허용하면 자기의식은 강화된다.
안드레아는 20년 동안 남들보다 빨리 승진을 거듭한 끝에 부장이 되었다. 그녀는 일을 즐겼다. 그러나 몇 달 전부터 고객과의 소통 문제로 불안감이 커지더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껄끄러운 감정이 생겼다. 주위에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와 있으면 숨 쉴 공기를 빼앗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때로 심장이 마구 뛰고 몸이 덜덜 떨렸다. 아침에 일어나기 너무 싫었으며 저녁에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아픈 적이 없었던 그녀에게 지금 상황은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이 상황을 상사에게 이야기하기 전날 남편과 함께 상사와의 대화를 준비했다. 일종의 모의시험을 한 것이다. 직원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상사에게 예삿일이 아니다. 이럴 때 업무경감이나 부서 이동 같은 해결책을 요청하면 과거의 성공이 물거품이 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상사가 기대를 접을 수도 있다. 다행히 그녀는 위기를 모면했다. 상사는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고,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녀는 남편과 모의실험을 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녀가 외부로부터의 평가를 덮어놓고 무작정 받아들이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상사의 반응이나 의견에 휩쓸려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자기감정과 인식을 무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모의실험을 통해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었고, 상사의 감정과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위기를 극복하고 이전처럼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다.
용기 있는 사람은 감정과 욕구에 '예스'라고 한다
최근 이혼한 프란치스카는 집을 수리하다가 생각지도 않게 이웃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녀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지만 애써 떨쳐버렸다. 그가 음악은 좋아하지만 책은 거의 안 읽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녀는 새로운 관계를 바라면서도 한사코 저항했다. 그녀는 홍수처럼 댐을 파괴할 열정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열정보다 가치 있는 것이 있을까? 열정을 포기한 사람은 고만고만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들은 "흥분하지 말라. 도가 지나치면 안 된다. 충동을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는 훈련과 단념과 한계를 요구한다. 한계 뒤에는 억제되지 않고 길들이지 않은 것이 도사리고 있다. 거기서 우리는 욕망, 도취, 그리고 우리를 완전히 사로잡을 열정을 경험한다.
40대 후반의 마리아는 높은 질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도시에서 남편과 살고 있다. 그녀는 지금의 삶에 불평하고 싶지 않지만 몇 달 전부터 모든 것이 하찮게 보여 맥이 빠졌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녀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실직, 질병, 이혼 같은 문제가 없기 때문에 그녀의 불만은 터무니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마음은 일반적인 합리적 관념을 따르지 않고 모순된 상태에 있다. 예전보다 훨씬 안전하게 살고 있지만 안전에 대해 불안해하고, 기대수명이 예전보다 높아졌지만 죽음에 대해 더욱 불안해하는 것이다.
칼 구스타프 융은 마리아의 문제가 인간의 다른 모든 기본적 갈등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존재한다고 보았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에나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동화들은 수천 년 전부터 이런 것들을 이야기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옛날에 어떤 부부가 살았습니다. 부부는 부유해서 모든 것을 다 가졌으나 딱 하나 자식이 없었습니다. 아내는 자식이 없는 것을 밤낮으로 슬퍼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풍족함과 부족함이 동시에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부부가 아이를 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아이라는 모티브는 새로 펼쳐질 미래의 삶을 의미한다. 동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현실에서 원하는 것이 모두 실현되고 원하는 목표가 달성돼도 미래의 전망은 결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는 과거에서 잘못과 원인을 찾을 것이 아니라 미래로 눈을 돌려야 한다. 스스로에게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 내게 부족한 것을 뭘까?"라고 물었을 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새로운 가능성, 관계 또는 과제일 수 있다. 이것은 나의 미래를 살 만한 것으로 만들고, 용감하게 삶의 한가운데에 뛰어들게 하며, 나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것들이다. 이 새로운 것, 즉 마음속의 아이는 진짜 육신을 가진 아이처럼 기쁨을 가져다 줄 수도 있고, 불면의 밤이나 혼란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마음속의 아이가 새로운 삶의 가능성과 생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영감, 감동, 매혹이라는 씨앗이 필요하다.
누군가 어떤 책을 추천할 때 우리는 그 책이 우리를 매혹시킬지 말지를 의식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사물, 현상, 인간에 대한 관심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우리 안의 그 무엇이 사로잡히고 감동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드는 개성의 핵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내적 중심이자 정신의 원동력이다. 융은 이를 자기(self)라고 말한다. 우리의 자아를 삶에 끌어들이고 휩쓸리게 하는 매혹이라는 현상은 바로 이 개성에서 나온다. 우리는 무언가에 반할 때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른 채 매혹된다. 그냥 매혹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머릿속에 이른바 조건 프로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도 불꽃은 튀지 않는다. 불꽃은 의식적 자아의 의지가 아닌 개성의 핵에서 일어난다. 인생과 소명의 불가사의함은 이것에 뿌리를 둔다. 이것은 누구나 소명의식을 가질 수 있고,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개성의 핵에서 울려 나오는 내적 목소리가 강하고 열정적일수록 우리의 자유 의지, 즉 의식적 자아는 그만큼 적게 저항한다.
3부 용기는 힘을 필요로 한다
언제, 왜 비겁해질까?
비겁한 사람은 때로는 비열한 방법으로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과 화해하기를 피한다. 예를 들어 뺑소니 운전자는 자기 책임을 전가하고, 어른들 몰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숨는다. 이웃집의 멋진 차를 보고 배가 아파 몰래 차를 긁어버리는 사람은 비겁하다. 이처럼 몰래 질투하는 사람은 발전이 없고, 자신의 파괴욕을 충족시키는 것 외에 실제로 얻는 것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시기심을 창피하게 여긴다. 그러나 시기심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좋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웃의 고급 차를 부러워하지만, 걷기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그런 차에 관심이 없다. 우리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 시기심을 이용할 수도 있다. 남을 부러워한다는 말은 상대방과 내가 차이점이 있다는 뜻이다. 차이점은 늘씬한 몸매일 수도 있고, 근사한 집이나 직장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차이점 때문에 분발하지만 대부분은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남는다. 이는 고통스럽지만 불가피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