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어린 시절
아네트 라루 지음 | 에코리브르
불평등한 어린 시절
아네트 라루 지음
에코리브르 / 2012년 11월 / 560쪽 / 28,000원
집중 양육과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
늦은 봄 오후, 개릿 탈링거는 교외에 있는 자신의 집 뒷마당 수영장에서 웃고 떠들며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있다. 백인인 개릿은 초등학교 4학년이고 집에는 침실이 네 개 있다. 여느 때처럼 아빠는 저녁 식사를 빨리 끝낸 다음 개릿을 차에 태우고 축구 연습장으로 간다. 축구는 개릿이 참여하고 있는 여러 가지 활동 중 하나다. 개릿의 형은 다른 곳에서 야구를 한다. 개릿의 부모는 저녁때 휴식을 취하며 와인을 즐기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 밤은 그런 날이 아니다. 부부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아이들이 미리 예정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서둘러 준비를 갖춰주느라 정신이 없다.
개릿의 집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인 흑인 남학생 알렉산더 윌리엄스가 참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탄다. 알렉산더의 엄마는 베이지색 렉서스를 몰고 있다. 수요일 저녁 9시다. 윌리엄스 부인은 직장 일에 지쳐 있고 내일은 기나긴 목요일이 될 터였다. 다음 날 일 때문에 다른 도시에 가야 하는 그녀는 새벽 4시 45분에 일어나 출근한 뒤, 밤 9시 이전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8시 15분에 있는 알렉산더의 개인 피아노 레슨과 뒤이은 합창 연습 그리고 이어지는 축구연습까지 아들의 운전사 노릇을 톡톡히 할 것이다. 어두운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알렉산더의 엄마는 조용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질문을 하는 등 대화를 나눈다.
중산층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자녀 양육의 특징 중 하나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토론이다. 많은 중산층 부모처럼 윌리엄스 부인과 그녀의 남편도 스스로를 자녀를 '발전시키는' 사람으로 여기며, 집중적으로 알렉산더의 재능을 키우려 애쓴다. 엄마와 아빠에 의해 만들어지고 통제받는 조직 활동은 개릿과 알렉산더 같은 중산층 아이들의 삶을 지배한다.
중산층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이런 교육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집중 양육 과정에 참여케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아이들에게는 권리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뿌리를 내린다. 이와 같은 의식은 위의 예에서처럼 여러 기관을 통해 수행하는 교육 환경에서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로써 중산층 자녀들은 비교적 동등한 위치에서 어른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운다.
앞에서 예를 든 곳에서 약 20분 거리에는 주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거주한다. 그곳의 공영 주택가에는 앞서 소개한 아이들과 사뭇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이 살고 있다. 노동자 계층인 백인 아빠 야넬리는 4학년인 아들 '리틀 빌리'가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마치면, 곧바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다음 야넬리 씨는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리틀 빌리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놀러 나간다.
밤이 되면 둘은 이따금 집 밖 인도 위에 앉아서 카드놀이를 하기도 한다. 청소 대행업체에서 일하는 빌리의 엄마가 오후 5시 30분쯤 직장에서 돌아와 저녁을 차리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한다. 대가족은 이들의 삶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야넬리 부인은 '매일 모든 가족'에게 전화를 한다. 한편 빌리의 삼촌은 밤에 빌리의 집에 자주 들른다. 가끔은 자신의 막내 아이와 함께 온다. 봄이 되면 리틀 빌리는 그 지역에 있는 야구팀에서 야구를 한다. 개릿과 알렉산더가 일주일에 적어도 네 번 학교 수업 외 활동을 하는 것과 달리, 리틀 빌리에게 야구는 1년 중 학교 밖에서 하는 유일한 조직 활동이다. 같은 동네에 사는 노동자 가정의 백인 소녀 웬디 드라이버 또한 여자 사촌들과 함께 거실에서 팝콘을 먹으며 비디오를 보면서 저녁 시간을 보낸다.
여기서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4학년 흑인 소년 해럴드 맥앨리스터는 여름이면 저녁마다 남자 사촌 2명과 함께 자신이 살고 있는 공영 주택 마당에서 놀이를 한다. 이런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지만, 어떤 날은 농구공을 찾지 못해 텔레비전에서 하는 스포츠 중계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도 있다. 날이 어둑해지면 그 애들은 물풍선 싸움을 하러 밖으로 나간다. 해럴드는 이웃에 사는 라티파 아줌마를 맞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사람들은 아파트 건물 사이 마당에 있는 하얀 플라스틱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고, 음악과 텔레비전 소리가 창문과 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려온다.
빌리, 웬디, 헤럴드의 부모 역시 아이들에게 최상의 것을 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엄청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기본적인 생계를 꾸리기도 바쁘다. 집을 마련하고, 안정되지 못한 이웃과 대화를 하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고(종종 오지 않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아이의 옷을 세탁하고, 아이를 재우고, 다음 날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준비해주는 것이 고작이다.
중산층 부모와 달리 이들은 아이의 집중적인 발전, 특히 조직적인 여가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교육이 훌륭한 양육에 필수적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탈링거나 윌리엄스 네와 달리 이런 가정의 부모는 집중 양육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이들에게 부모의 중요한 책임은 자녀의 감정이나 의견, 생각을 이끌어내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한다. 이런 부모들은 대체로 지시를 내리는 편이다. 설득하기보다 그냥 아이들에게 해야 할 일을 말해준다.
부모가 계획한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꾸준히 성장하는 중산층 아이들과 달리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아이들은 여가 활동에 많은 선택권을 갖는다. 이들은 보통 이웃에 사는 친구 및 친척들과 밖에서 마음껏 뛰어논다. 요컨대 이들의 부모와 보호자는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를 지향한다. 물론 이 아이들과 부모도 자녀 교육과 관련 집중 양육 방식을 장려하는 학교 같은 사회 주요 기관들과 교류한다.
하지만 이들이 가정교육에 적용하는 자녀 양육에 대한 문화적 논리와 기관들의 기준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 결과 부모가 집중 양육 전략을 택한 아이들은 자기 권리에 대한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빌리, 웬디, 해럴드 같은 아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교육 기관에서 거리감과 불신 혹은 속박 따위를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기회의 땅일지 모르지만 또한 불평등의 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또 중산층(상위 중산층을 포함해서)ㆍ노동자 계층ㆍ빈곤층을 심층 탐구하고 인터뷰한 결과, 문화의 구조에 불평등이 침투해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가정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모여 자녀 양육에 대한 문화적 논리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각 가정의 차이는 의미 있는 유형으로 범주화되는 것 같다. 현재 중산층 부모들은 자녀 교육과 관련해 아이의 집중 양육을 강조하는 문화적 논리를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 부모들은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 과정에서 아이들은 오랜 여가 시간, 자기 주도적 놀이, 어른과 아이의 뚜렷한 경계, 친척과의 일상적인 상호 작용을 경험한다. 이런 아이들은 심각한 경제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부모에게서 자유롭게 자신의 긴 여가 시간을 주도하며 종종 한층 '아이다운' 삶을 누린다.
반면 중산층 아이들은 친척과의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고, 여가 시간을 마음껏 누리지도 못하지만, 주요 교육 기관이 제공하는 이점(최소한 잠재적으로라도)을 누릴 수 있다. 집중 양육이라는 경험을 통해 이들은 미래, 즉 사회생활을 하는 시기에 유용한 기술을 배운다.
연구를 통해 나는 중산층 백인 및 흑인 아이들이 노동자 계층 아이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차이는 사회 계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 사이에 존재한다. 요컨대 계층의 차이 그리고 이 차이를 가정생활 및 자녀 양육에서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아이들로 하여금 다른 세계와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보는 방식을 결정한다.
문화적 레퍼토리: 교사, 의사, 상담사처럼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하는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해 일치된 의견을 보인다. 물론 때때로 각기 다른 가정 및 아이에게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가에 따라 의견이 일치하지 않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책을 읽다 발음이 틀릴 경우 부모가 아이의 책 읽기를 멈추고 교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두어야 하는지를 놓고 교사마다 의견을 달리할지도 모른다.
상담사의 경우, 엄마가 아이를 과잉보호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이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부모의 적절한 양육으로 아이의 교육적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이러한 대원칙에는 아이와 대화를 하고, 교육에 대한 아이의 흥미를 높이고, 아이의 학교생활에 부모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마찬가지로 양육 지침서들은 대부분 아이를 이성적으로 설득하고, 완력보다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지침들은 아주 일반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부모의 양육과 관련한 일련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연유로 이러한 지침들이 모여 아이의 양육 방식에 대한 일련의 지배적인 문화적 레퍼토리를 형성한다. 아이의 양육과 관련한 대원칙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확산된 이런 의견 일치는 우리 사회에도 널리 퍼져 있다. 그 결과 얼마 되지 않는 전문가들이 잠재적으로 대다수 부모의 양육 태도를 결정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최선의 방법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은 지난 2세기에 걸쳐 규칙적으로 변해왔다. 처음에는 병에 담긴 분유를 먹이며, 엄격한 체벌(부모가 아이의 응석을 받아줌으로써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무서운 경고와 더불어)을 동반한 양육을 강력히 권고하다가, 현대에는 모유를 수유하며 정서적 온기를 전하고 이성과 타협을 통해 양육하는 권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중산층 부모는 노동자 계층 또는 빈곤층 부모보다 더 빠르고 철저하게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의 태도를 바꾼 것처럼 보인다. 전문가들이 자신의 권고를 분유에서 모유로, 엄격한 대응에서 따뜻한 공감으로, 체벌에서 행동 제한으로 전환했을 때 가장 빠르게 반응한 부류는 중산층 부모들이었다. 게다가 최근 수십 년 사이 미국의 중산층 자녀들은 중산층이 '몰락'할 것이라는 전망에 직면했다. 따라서 자녀가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중산층 부모들은, 더더욱 자녀의 발전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현대 전문가들의 조언을 따라 집중 양육 모델에 주목한 중산층 부모는 자녀의 발전을 자극하고, 그들의 인지적ㆍ사회적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계획적으로 노력한다. 반면, 자녀 양육 면에서 경제적 도전이라는 엄청난 요구에 직면한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 부모는, 편안함, 음식, 주거를 비롯해 기본적인 생활필수품 마련이라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 결과 자녀에 대한 계획적 양육이나 중산층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여가 활동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래서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 가정에서는 자녀의 자연적 성장을 유지하는 것이 하나의 성취로 간주된다.
자녀 양육에 대해 이토록 다른 철학과 접근 태도를 보이는 양 진영의 결과는 어떨까? 간단히 말해, 서로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가정보다 중산층 가정에서 더 많은 대화가 이루어졌다. 이는 아이들에게 한층 나은 언어적 민첩함과 풍부한 어휘력뿐 아니라, 권위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감을 부여하고 추상적 개념에 더 익숙하게끔 만든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기관이나 가정에서 권위 있는 인물들과 상호 작용을 할 때 태도의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개릿 탈링거와 알렉산더 윌리엄스 같은 중산층 아이들은, 어리지만 어른과 악수를 하며 어른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을 배운다.
면접에 대한 연구에서, 조사원들은 고용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좋은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눈을 마주치고 힘차게 악수하며 면접하는 동안 면접관들에게 편안한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해럴드 맥앨리스터처럼 빈곤층 가정의 구성원들은 대화할 때 보통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은 오랫동안 쳐다보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이웃들과 함께 살아간다. 맥앨리스터 가정에서 배우는 유형의 사회적 능력도 분명 가치 있지만, 개릿 탈링거와 알렉산더 윌리엄스가 배운 것들이 나중에 더 유용하게 쓰일 가능성이 높다. (예로 취업 면접에서.)
이번 연구에서 관찰한 중산층 흑인 및 백인 아이들은 중산층 특유의 새로운 권리에 대한 의식을 보여주었다. 이 아이들은 자신의 취향이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아는 것처럼 행동했고, 교육 기관에서도 여유롭고 능동적인 태도로 교류를 주도했다. 또 중산층 아이들은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고 남의 이목을 끄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개중에는 남들보다 덜 사교적인 아이도 있었지만, 중산층 자녀들은 전반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의 상호 작용을 조정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예로 알렉산더 윌리엄스는 의사의 관심을 (새 디오더런트 때문에 생긴 팔 밑의 혹에) 집중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엄마가 의사를 대할 때는 거리낌 없이 증상을 얘기하라고 가르치며 격려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산층 흑인 여자아이인 스테이시 마셜의 엄마 역시 딸에게 체육 선생님이 스테이시의 개인적 학습 방식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처럼 중산층 아이들은 기관 대표자와 상호 관계를 구성하는 '게임의 규칙'에 대해 교육을 받는다.
물론 중산층 아이들이 모든 사교적 기술에 능숙한 것은 아니었다. 예로 여름 방학이나 주말 동안 시간을 체계적으로 보내는 일이나 어른들과 떨어져 오랫동안 지내는 일, 혹은 어른들과의 관계에서 나서지 않고 복종하는 일 등에서는 꽤 서툴렀다. 하지만 중산층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따라 하거나 직접적인 가르침을 통해) 어떻게 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쪽으로 인간관계가 흘러가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논리적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가정교육이 훗날 아이가 각종 사회 기관에서 수행하게 될 협상에서도 잠재적 이점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권위 있는 어른들 역시 아이의 이런 상호 관계 설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4학년 교실을 관찰한 결과, 중산층 아이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 자기 스스로를 대변했다. 덧붙이면 이 아이들은 선생님이나 의사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절차를 조정해달라고 개별적으로 요청했다.
이와 반대로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자녀들의 경우는 각종 기관과의 상호 작용에서 스스로 제약받는다는 느낌을 의식했다. 그리고 빈곤층 자녀들은 자신의 욕구에 맞춰 상호 관계를 조정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또 노동 계급인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기관 내의 권위 있는 어른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이따금 은근히 반항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노동자 계층 및 빈곤층 부모 중 몇몇은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자녀가 숙제를 잘 하지 않아도 이를 모르고 지나쳤다.) 또 학교 교칙을 불합리한 것으로 치부하는 부모도 있었다.
예를 들어, 웬디 드라이버의 엄마는 학교에서 웬디를 괴롭히는 남자아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 애를 "때려버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빌리 야넬리의 부모는 아들이 학교에서 정학 처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장에서 다른 남자아이를 '때려눕힌'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노동자 계층의 부모들은 또한 '학교 측'에 자신의 우려 사항을 전달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야넬리 부인은 학교라면 "치가 떨린다"고 얘기하면서, 아들에게 학교라는 중요한 교육 기관에 대해 무력하고 절망적인 인상을 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