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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아

파멜라 버틀러 지음 | 소울메이트
더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아

파멜라 버틀러 지음

소울메이트 / 2012년 11월 / 332쪽 / 15,000원





나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심판자



결점을 찾고 비난하는 강요된 자아: 다른 사람에게 참견하는 것 같아 자주 자제하는가? 자신이 하는 일이 충분치 않다고 믿는가? 긴장을 풀려면 술이나 신경 안정제가 필요한가? '별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한 일을 못 해내면 마음이 편치 않은가?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한 것이 아니라는 말에 동의하는가? 자주 걱정하고 우울하고 분노하는가? 만약 앞의 질문에 "Yes"라고 답했다면, 당신은 비판적이고 결점을 찾고 비난하는 '강요된 자아'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즉 현재 지나치게 가혹한 표준을 설정하고 심한 벌을 내리는 자기 감시 장치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 심판자를 대면해보자.

이 심판자가 어떻게 발달하는지는 전혀 미스터리하지 않다. 우리는 어린 나이부터 우리 자신과 대화를 시작하는데, 이 '자기대화'는 주변에 있는 중요한 어른들과의 상호작용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만약 영향력 있는 어른들이 가혹하고 비판적이라면, 우리의 '강요된 자아' 역시 그럴 것이다. 또한 영향력 있는 어른들의 요구사항이 현실적이라면, 우리 역시 성취할 수 있는 표준을 설정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타인에게 받은 메시지를 토대로 자기정의를 형성하는데, 이것은 인생에서 많은 것들을 결정하는 일종의 통제 경계선이다.

이렇게 일단 자기정의가 형성되면, 우리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입증한다. 예를 들어 자신을 형편없는 운동선수로 인식하면, 체육 활동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이것은 신체적인 기술을 발달시킬 기회를 잃게 만든다. 나는 학창 시절 이해가 안 되던 것을 알기 위해서 화학 교수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결과 그 수업을 들었던 학생의 40%가 D 또는 F를 받았지만, 나는 좋은 성적을 받았다. 기말고사 이후 교수는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던 학생이 단 2명이었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멍청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이것은 심리학자들이 '자기 실현적 예언(깊이 믿으면 현실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부르는 한 사례다. 이처럼 우리가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평가하기 위해 학습한 틀(강요된 자아의 판단 틀)은 우리가 삶을 이끌어나가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 이 틀에는 정서와 요구(필요)를 위한 공간이 없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판단 구조에 직면해 어떻게 자기대화를 하는지 묻고, 자신의 감옥을 조금씩 해체시키는 것이다.

명령, 금지, 불완전한 사고가 결합된 덫: 코니는 헤지펀드의 차익거래 위기 분석가로 고속 승진하고 돈도 많이 번다. 하지만 즐겁지 않다. 사교생활은 거의 없고, 한 달에 2~3주는 출장을 가야 하고, 패스트푸드를 과하게 먹고 나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단식한다. 코니는 인간관계와 가족을 삶의 다른 목표로 삼지만, 수주째 밀려오는 일의 파도 속에서 희미해지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래서 코니는 내부의 자아와 다음처럼 흥정한다. "일단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시간이 날 거야. 지금 내가 'No'라고 말한다면 일에 무관심해 보일 거야. 헌신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잘릴지도 몰라."

치료 중에 코니는 흥미로운 꿈 이야기를 했다. 꿈속에서 코니의 집이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낯선 사람들이 보석을 훔치고 심지어는 통조림까지 가져갔지만, 그들을 집 밖으로 몰아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꿈속에서 코니는 현재의 위기에 대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자신에게 털어놓았다. 필요한 경계선을 잃어버렸고, 내부 균형점을 넘어서 버렸다. 자신에게 값진 것들을 많이 잃은 것이다. 꿈은 현재 코니의 심리학적 상태를 말해주고 있다. 코니의 심판자는 값진 경험을 훔치고 값진 보석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기본 수단인 음식을 뺏으며 삶을 탈취한다. 만약 우리가 코니의 내면 대화, 즉 자신과의 대화 방식을 들여다본다면, 코니가 명령(조종자), 금지(방해자), 불완전한 사고(혼란자)가 결합된 덫에 걸려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를 긴장하게 하는 조종자: 조종자(driver)는 말 그대로 내부 추진체다. 조종자는 우리에게 "완벽해라, 서둘러라, 다른 사람을 만족시켜라, 열심히 노력해라, 강해져라."라고 명령한다. 조종자라는 용어는 의욕이나 동기와 같은 심리학적인 개념이 아니다. 조종자는 사람 내부의 생동감이나 에너지와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일종의 강요된 자아의 압력과 동기 위에 떠 있다. 코니는 정신분석가 카렌 호니가 만든 용어인 'OO해야 해(should)의 폭압'에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코니가 모르는 것이 있다. 바로 조종자가 요구하는 대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루는 무한대가 아니다. 에너지에도 한계가 있으며, 인내심도 지칠 때가 있다. 하지만 심판자는 이 모든 것들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의 자연스러운 표현을 막는 방해자: 코니의 심판자는 코니가 감정과 욕구를 무시하도록 압박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표현을 하는 것조차 막는다. 흔히 이것을 방해자(stopper)라고 한다. 코니의 방해자들은 코니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균형을 잡지 못하도록 심각하게 방해한다. 예로 코니는 사장이 주말 아무 때나 호출을 해도 받아들인다. 게다가 다른 식으로도 자신을 억제한다. 즐겁지 않다고 휴가를 거의 가지 않고, '준비를 못해' 다음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이 두려워 친구들과 약속을 취소한다. 코니는 완전히 자기 방해자의 덫에 걸려 있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감금당한 것처럼 말이다.

나를 두렵게 만드는 혼란자: 코니는 직장에서 잘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회사 업무와 개인 생활의 경계선을 긋는 것은 살얼음판 위에 있는 것만큼 코니를 두렵게 만든다. 바로 이것이 혼란자(confuser)이며, 세상에 대한 명료한 사고를 막는 인식과 사고방식이다. 코니는 혼란자 때문에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해 인정하지 못한다. 게다가 매 순간 무장 감시를 받고 있다. 또 자신의 부정적인 추론을 완전히 믿기 때문에 확인해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직원들이 개인 생활을 적절히 해나가는 것을 볼 때조차도 일을 잡고 있다는 믿음에 매달려 있다.

상황 + 자기대화 = 감정과 행동: 코니가 '강요된 자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면, 자신과의 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내면의 목소리는 코니를 조종하거나 방해하거나 혼란시키지 않고, 코치를 해주거나 안내해줄 것이다. 그리고 또 내면의 목소리는 코니를 보살펴주고, 코니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는 내면의 동료가 될 것이다. 아울러 이 내면의 동료는 코니에게 좋은 부모나 의지할 수 있는 친구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이처럼 스트레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이 '강요된 자아'가 심판자 기능을 하는지, 아니면 안내자 기능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이렇게 언급했다. "인간은 사물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상황 A는 결과물 C로 자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중간에 자신과의 대화 B를 거치면서 교정되거나 악화되는 것이다. 인지치료의 시조인 알버트 엘리스가 이것을 'A + B = C'로 단순하게 공식화했다. 실제로도 상황이 자기대화를 거쳐 감정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결국 스트레스의 총체적인 수준은 자신과 어떻게 대화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외부 상황은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자동 테이프를 바꾸자



조종자, 혼란자, 방해자들에 대처하는 다섯 단계 지침: 부정적인 심판자를 몰아내고, 우리를 지지해주는 새로운 코치와 내부의 안내자를 받아들이는 간단하고 효과적인 다섯 단계 지침이 있다.

1단계 - 자기대화로 인식하자: 자기대화에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여보자. 이것이 변화를 향한 첫 번째 단계다. 흔히 우리는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자동 테이프를 잘 모른다. 우리가 운전을 배우거나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울 때, 점차 배경으로 흡수되어 인지되지 않는 자기교수(self-instruction)처럼, 우리의 자기대화는 내부에 깊숙이 감춰져 있다. 다행히 자기대화로 접근할 수 있는 지대가 있다. 바로 찬사, 비난, 새로운 프로젝트나 활동, 친밀한 공유의 기간 같은 외부유인 요인이다. 내부유인 요인 또한 내면의 풍경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놓고 있다. 바로 감정, 신체적 증상, 회피 경향인데, 한마디로 부정적인 자기대화를 미리 알려주는 것들이다. 이런 내면의 언어를 발견하려면 외적인 요소와 내적인 요소, 둘 다 이용하면 된다.

2단계 - 자기대화가 도움이 되는지 평가하자: 자기대화가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아니, 도움이 되지 않아."라고 대답하면, 부정적인 내부 언어에서 벗어나는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일단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분노ㆍ우울ㆍ불안의 감정을 자기 자신이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인정하면, 당신은 개인적인 권위와 신념으로 심판자에게 도전할 수 있게 된다. 자신에게 "나의 자기대화가 사실인가?" "나의 자기대화가 현실적인가?"라고 묻지 마라. 이런 질문을 하면 잘못된 길로 들어가 오히려 판단의 틀에 갇히게 된다.

자기대화가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표현해보자. 이전의 자기 메시지 목록에서 일반적인 예를 골라서 이렇게 질문해보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 도움이 되는가?" 그리고 만약 대답이 "아니."라면, 자기대화가 감정, 행동, 자기 존중감, 대인관계, 스트레스 수준, 이 다섯 가지 기본 영역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해보라. 당신의 자기대화는 다섯 가지 영역 중 한두 가지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비용을 치를지 분명하게 알면 알수록 부정적인 자기대화를 바꾸기 위한 동기가 더 많이 생길 것이다.

3단계 - 자기대화에 들어 있는 조종자, 방해자, 혼란자를 확인하자: 자기대화에 들어 있는 구체적인 조종자ㆍ방해자ㆍ혼란자를 알아낼 때, 우리는 부정적인 내부 언어를 일으키는 잠재된 신념을 알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자신을 긍정적인 대안으로 향하게 하고, 이것이 변화를 위한 발판을 만든다. 따라서 자기대화로 이런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은 지인들 모두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거야.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어. 올해는 그 요구를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아. 지금 일한다는 사실과 어울리지 않을 뿐이야." 자기대화를 통해 이렇게 깨닫기도 한다. "난 종일 게으르다고 날 자책했어요. 그러나 나도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오늘 나는 비번이에요. '서두르며' 보내지 않을 거예요." 자기대화의 전환은 우리가 하는 것, 느끼는 것, 그리고 믿는 것에 영향을 미치며, 부정적인 자기대화에서 자기를 지지하는 것으로 이동할 때 우리의 감정은 가벼워질 것이다. 자신을 지지하는 언어를 습득하자



4단계 - 허용과 자아확인으로 자신을 지지하자: 자기지지의 자기대화는 외국어처럼 새로 습득해야 하는 언어다. 다시 말하면 유창하게 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고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종자, 방해자, 혼란자의 반대편에 있는 허용] 자신을 허용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징벌 없이 실수하고, 감정을 느끼고, 인간적인 경험을 할 자유를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유연한 허락은 우리를 제일 효율적이게 한다. 그런데 허용은 안도감과 부담감의 경감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부정적인 자기대화로 심한 압박을 받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리차드는 누구나 꿈꾸는 멋진 작업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세 달이 지날 때까지 소설을 한 페이지도 쓰지 못했다. 책상에 앉는다는 생각만으로 속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고, 결국 술을 마셔야 했다.

나는 리차드에게 표준이완(릴렉세이션) 절차를 거치게 한 후에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고, 글 쓰는 행위는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것 정도로 여기고 완벽하게 할 필요가 없음을 상기시켰다. 게다가 절대 서두르지 말 것을 당부했다. 원고를 수정할 시간은 이후에도 충분하니 일단 종이 위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적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10여 분 정도 글을 쓰고 나면, 뜨거운 욕조에 앉아 있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잡지를 읽는 즐거운 활동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리차드는 내 주문대로 긴장을 줄이고 시각화할 수 있었다. 나중에 리차드는 말했다.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니 글을 쓰는 것이 부드러운 공간에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끝없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처럼 조종자가 있던 자리를 허용으로 채우면 부드러운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 속에서 리차드는 '서둘러라, 완벽해라.' 대신 '천천히 해도 괜찮아. 실수를 해도 괜찮아.'로 자신을 허용했다고 할 수 있다.

[자아에 대한 긍정의 선언인 자아확인] 자아확인(자기긍정)은 자아에 대한 긍정의 선언인데, 그것의 초점은 성장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자아확인은 내재된 자아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예로 '서둘러라, 열심히 노력해라' 조종자의 압력을 받는 여성이, 권위 있고 성과급이 있는 프로젝트를 수락하지 않고, 자기 시간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을 택함으로써 자아확인을 할지 모른다. 그러면 당연히 그녀의 친구들은 놀랄 수밖에 없다. '강해져라' 조종자의 압력을 받는 남자는 지난날 '남자답게 받아들여라.'라는 숨 막히는 메시지와 정반대로 울 수 있게 된 것을 큰 성장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자아확인을 한다는 것은 자기 내부의 중심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언제, 그리고 어떻게 지지할지 결정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이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unconditional positive regard)'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내재된 자아를 기본적으로 확인(긍정)하는 것을 말한다. 간단히 말해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든 하지 않든, 일을 할 때 완벽하든 부족하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든 받지 못하든 상관없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자기지지의 완충장치 만들기] 자기지지의 완충장치는 우리가 실망, 비판, 거절, 불만에 직면했을 때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고 중심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또 우리를 타인의 심판자에게서도 보호해준다. 내 자신을 위해 완충장치를 만들었다는 것을 처음 인지한 것은 아동발달 수업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당시 나는 학습이론과 아이들의 행동 문제의 응용에 대해 꽤 전문적인 강의를 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학생들 몇몇이 다가왔고, 내 주제가 너무 '이론적'이라고 비판했다. 나는 그들의 비판을 귀담아듣고 수업을 약간 변화시켰다. 그러자 학생들은 좀 더 보람 있는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나는 더 쉬운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나 자신과의 대화가 부정적인 의견을 파괴적으로 내면화하지 않고 쿠션 역할을 해줬다는 것이다. 나처럼 '완벽해라, 다른 사람을 만족시켜라'의 영향을 받는 사람에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만들어낸 완충장치는 마음속으로 '내가 학생들에게 호감이 아니어도, 매 순간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아. 완벽한 선생이 될 필요는 없어.'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들끼리 속닥거렸을 때조차도 나에게 이 허용을 반복했다. 그 결과 비판을 즐겁게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완충장치가 들어오는 정보를 차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의 비판을 들었고 그들이 요구하는 쪽으로 변했다. 또 그들에게 반격을 시도하지도 않았고, 학습의욕이 없다고 우회적으로 학생들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완충장치로 강한 비판 속에 있는 판단의 요소를 중화시켰을 뿐이다. 그것은 자기평가의 고통을 최소화시키면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게 해줬다.



자신의 안내자를 발달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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