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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한우성 지음 | 북스토리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한우성 지음

북스토리 / 2012년 10월 / 600쪽 / 14,800원





로마 해방전

1943년 9월 이탈리아에 상륙한 연합군은 결국 '구스타프 라인'을 돌파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았다. 구스타프 라인은 독일군이 북진하는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해 이탈리아 반도 중남부 지역에 마치 허리띠를 친 것처럼 지중해에서 아드리아 해로 이어지는 독일군의 가장 중요한 방어선이었다. 연합군은 구스타프 라인을 북쪽에서 협공하고 로마 공략을 위한 전진기지도 얻기 위해 안지오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안지오는 로마가 서울이라면 인천쯤에 해당하는 로마의 외항으로, 유서 깊은 항구 도시이자 요새였다. 불과 2개 사단으로 감행된 안지오 상륙작전은 한국전쟁에서의 인천상륙작전처럼 대성공이었다. 뿐만 아니라 독일군은 안지오 상륙작전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여 로마에 극소수의 통신대와 순찰 병력만 남겨두고 있어 연합군은 불과 한 시간이면 로마를 무혈점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격적인 안지오 상륙작전에 성공한 미군 사령관 루카스 소장이 지나치게 신중을 기하며 시간을 끌자, 독일군은 즉시 북이탈리아에서 대군을 불러들여 안지오를 포위함으로써 양측은 장기적인 대치 상태에 돌입해 있었다. 5월로 접어들자, 이탈리아 전선의 미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 중장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전에 로마를 점령하기 위해 총공격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클라크 장군은 후일 한국전쟁 때 리지웨이 대장에 이어 주한유엔군 사령관을 지냈던 인물로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단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되면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승리가 빛을 잃을 것이라는 생각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발등에 떨어진 불, 포로 생포: 문제는 독일군이 북이탈리아에서 불러들인 정예 탱크사단을 어디에 배치해 두고 있느냐였다. 연합군은 처음에는 독일군 탱크사단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몇 개월 전부터 탱크사단을 놓치고 말았다. 독일군이 연합군의 주공을 정확히 예측하고 연합군의 공격로에 정예 탱크사단을 매복시켰다면 이 길로 공격하는 것은 집단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공격이 실패하면 안지오 연합군은 지중해로 내몰려 이탈리아 전선의 판도가 뒤집어질 수도 있었다.

적에 대한 정보가 너무 빈약했다. 적정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수단은 포로 생포였는데,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는 포로가 잡힌 적이 없었다. 5군 전체에 독일군 포로를 잡기 위한 비상이 걸렸으나 독일군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5군 사령부로부터 빨리 포로를 잡아오라는 독촉이 6군단 본부로, 다시 34사단 본부로 빗발치듯 쏟아졌다. 보병으로 잔뼈가 굵어 여간해서는 무리한 명령을 잘 내리지 않던 34사단장 라이더 장군도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듯 예하 부대를 심하게 독촉했다. 포로를 잡기 위해 여러 차례 수색대가 파견됐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어떤 때는 1개 중대 전체가 탱크까지 동원해 포로 사냥에 나섰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영옥이 속한 100대대에서도 포로 생포가 발등의 불이었다. 게다가 영옥은 대대 정보참모였기 때문에 포로 생포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해결해야 할 임무라고 생각했다. 영옥은 대대장 고든 싱글스 중령을 찾아갔다. "저를 보내 주시면 포로를 잡아오겠습니다."

"미친 소리!"

"반드시 살아오겠습니다."

싱글스 중령은 펄쩍 뛰었으나 영옥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실 영옥은 대대장을 찾아가기 전에 이미 어느 정도 계획을 세워두었다. 100대대가 소속된 미 육군 34사단은 당시 미군들이 '주인 없는 땅'이라고 부르던 지역을 사이에 두고 독일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영옥은 앞서 포로 생포에 나섰던 수색대들이 실패한 이유가 피아의 경계가 높아지는 야간에 대병력을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쌍안경이나 관측경을 통해 적의 동태를 살필 때 우리는 각자 일정한 구획을 정해 놓은 상태에서 우선 적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다음은 양 진영을 갈라놓고 있는 주인 없는 땅의 움직임을 쫓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움직일 수 없다. 반면 아군 진영에는 무관심하다. 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밤이 되면 경계를 높이다가 동이 트면 경계를 푼다. 이 점 역시 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색대의 수도 문제다. 지금까지 분대나 소대, 심지어 중대까지 동원됐는데 그 자체가 틀렸던 것이다. 병력이 많으면 눈에 띄기 쉽고 소음도 많고 기동력도 떨어진다. 결론은 간단하다. 극소수로 백주에 침투하는 것이다. 밤에 주인 없는 땅을 지나 적당한 장소에 매복해 있다가 낮에 적진에서 움직인다면 승산이 있다.'

대대장은 영옥의 계획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붙여 연대본부로 보냈고, 연대장 역시 승인할 수 없다는 단서를 붙여 사단본부로 보냈다. 사단본부도 '불가'라는 단서를 붙여 군단본부로 보냈다. 영옥의 계획은 같은 방식으로 5군 사령부까지 올라갔다. 마침내 군사령부는 "자살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반드시 결행하겠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고 회신해 왔다. 대대장은 영옥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영옥이 처음 싱글스 중령에게 수색을 자원한 지 열흘 만이었다.

영옥은 즉시 구체적인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영옥은 대대장에게 그의 결심을 말하기 전부터 사단본부에 지역 항공 사진을 요청했었다. 특정 지역을 정찰 지역으로 정하고 사단본부에 자세한 항공 사진을 요청하자, 사단은 매일 정찰기를 띄워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열흘 정도 지나자 여러 각도와 높이에서 일대의 지형을 찍은 입체 사진 수백 장이 입수되었다. 사진이 어느 정도 쌓이자, 영옥은 100대대가 지휘본부로 사용하던 농가로 들어갔다.

영옥은 쌍안경으로 지역을 관찰하며 사진과 지도를 대조해 나갔다. 사람이 누구나 자신만의 독특한 재능을 한두 가지씩 타고나는 법이라면 영옥에게는 지도를 읽는 능력이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지도를 보면 지형을 그대로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이 능력은 산야에서 전투를 이끌어야 하는 보병 장교에게는 천혜의 선물이었다. 게다가 영옥은 어떤 사물을 보면 그 모습이 마치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머릿속에 남곤 했다. 영옥은 지도를 보며 상상한 지형과 실제 지형을 비교하면서 지형의 높낮이부터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사소한 것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든 것을 머릿속에 담기 시작했다.

기적 같은 포로 생포: 연합군은 안지오를 중심으로 평원에서 해변을 등지고 배수진을 치고 있었고 독일군은 로마 남쪽 산악지대에 진을 친 재 평원 중간쯤에 서로 철조망을 치고 대치하고 있었다. 양측의 철조망 사이는 2미터쯤 됐는데 철조망 사이에 있는 이 지역을 '주인 없는 땅'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곳은 다시 반으로 나뉘어 미군 쪽 반에는 미군이, 독일군 쪽 반에는 독일군이 들개 한 마리도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지뢰를 깔아놓았다. 양측은 다시 철조망 바로 뒤 1미터쯤 떨어진 곳에 철조망을 따라 긴 참호를 파고 그 참호 뒤로 군데군데 개인 참호를 파놓았고, 철조망에서 30미터쯤 떨어진 지점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1개 소대 병력이 들어갈 만한 지하 벙커를 만들어 두고 있었다.

양측 모두 밤이면 철조망 바로 뒤 긴 참호에 병사들이 나가 있다가 동트기 직전에 철수했다. 개인 참호에는 밤낮없이 병사들이 나가 있었다. 양측 모두 움직이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사격을 해댔기 때문에 철조망에서 좀 떨어진 개인 참호조차도 밤이 되거나 동이 트기 전에 교대해야만 했다. 병사들은 참호에 나갈 때는 몇 끼분 식량을 가지고 갔고 용변도 참호 속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부상자가 생겨도 밤이 되어서야 후송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영옥의 계획대로라면 야음을 틈타 아군 지하벙커와 개인 참호를 지나 밤이 새기 전에 아군의 긴 참호, 아군 철조망, 아군 지뢰밭을 통과하고 적군 지뢰밭, 적군 철조망, 적군의 긴 참호를 통과하여 동이 튼 다음 적진에서 움직여야만 했다.

눈 주위에 쌍안경 자국이 남을 정도로 침투 지점을 물색하고 있는데 적군 철조망 너머로 나무 한 그루 없는 평평한 밀밭이 눈에 들어왔다. 독일군은 미군이 감히 그곳으로, 그것도 환한 대낮에 침투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쌍안경은 독일군이 밤새 깨어 있다가 동이 트면 아침을 먹고 잠든다는 사실도 가르쳐 줬다. 더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영옥은 병사 한 명만 데리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낮에 적군 눈에 가장 잘 띌 수 있는 곳으로 침투해 포로를 잡아온다는 계획은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기에 같이 갈 사람은 지원자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모회의를 마치고 정보과로 돌아온 영옥이 말을 던졌다. "독일군 포로를 잡아와야겠다. 함께 갈 사람 없나?" 마치 다음 날 피크닉을 같이 갈 사람이 없느냐고 묻는 말투였다. 영옥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부산을 떠는 일이 없었다. 영옥의 그 같은 태도는 병사들에게 늘 깊은 신뢰를 심어 주었다. 영옥이 이야기를 하자 데리고 있던 병사 네 명 모두 자원했다. 그동안 치른 전투로 사상자가 많이 발생해 정보과에는 병사가 다섯 명밖에 없었다. 지원자 각각의 상황을 심사숙고한 뒤 영옥은 마침내 아카호시 일병과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영옥은 아카호시 일병이 평소에는 아주 내성적이지만 일단 마음을 정하면 여간해서 흔들리지 않는 성격이어서 포로 생포 임무에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결정을 내린 영옥은 즉각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5월 16일이었다. 영옥이 침투로로 택한 지역은 B중대 담당 지역으로 중대장은 사카에다 다카하시 대위였다. 영옥은 다카하시 대위에게 반드시 밤10시 이후 미군 쪽 철조망을 한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절단해 두고 지뢰도 제거한 다음, 중대 최고의 브라우닝 기관총 사수 3명과 함께 밤 10시 30분에 B중대가 지휘본부로 사용하는 농가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브라우닝 기관총조는 적진에서 탈출할 때를 대비한 엄호 병력이었다.

영옥은 아카호시 일병을 데리고 정각 10시 30분에 약속 장소로 갔다. 무장은 각자 권총 1정, 톰슨 기관단총 1정, 수류탄 2발이 전부였다. 영옥은 움직이기 편하도록 철모 대신 털모를 썼다. 영옥과 아카호시 일병, 그리고 다카하시 대위의 엄호 병력은 곧바로 농가를 떠나 네 시간 만에 미군 쪽 철조망 바로 뒤에 있는 참호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영옥과 아카호시 일병만이 움직이기로 돼 있었다. 출발 직전 잠시 영옥을 바라보던 다카하시 대위가 갑자기 영옥을 끌어안으며 울먹였다. "영, 너는 미친놈이다. 죽을 게 불을 보듯 뻔한데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다니. 우리의 만남도 오늘로………." 영옥도 무언가 말해주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당장 지나야 할 독일군 지뢰밭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영옥은 옆에 있던 아카호시 일병에게 고갯짓으로 출발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영옥과 아카호시 일병은 미군 철조망과 지뢰밭을 통과한 다음, 땅에 엎드려 한 뼘 한 뼘 손으로 더듬으면서 독일군 지뢰밭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손목에서 다섯 개 손가락 마디 끝까지 퍼져 있는 모든 신경을 동원해 바닥을 더듬고 지면에서 조금 떨어진 허공까지 확인하면서 두 사람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폭이 1미터밖에 안 되는 독일군 지뢰밭을 통과하는 데 40분이 걸렸다. 둘은 독일군 철조망에 바짝 다가가 숨을 죽이고 잠시 동정을 살피다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철조망 절단기를 들이댔다. 다행히 바람이 세게 불어 철조망이 끊어지는 소리는 곧바로 바람 속에 묻혔다. 둘은 조심스럽게 철조망을 통과했다.

이제부터는 적진이었다. 철조망과 참호 사이의 거리가 불과 1미터밖에 되지 않는 데다 적군들이 있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둘은 바짝 땅에 엎드렸다. 손만 뻗으면 적군의 철모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땅의 냉기가 온몸을 엄습해 왔지만 기침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대로 꼼짝없이 엎드린 채 4시간쯤 지나자 멀리서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참호 속이 소란해지면서 참호에서 나온 독일군들이 대열을 지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철조망 바로 뒤의 참호는 낮에는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교대 병력은 없었다. 야간에 참호를 지키던 보초들은 1개 소대 병력인 것 같았다. 영옥과 아카호시 일병은 10~15미터 간격을 두고 포복 상태로 독일군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적군들은 밤을 무사히 넘기고 자기 진영에서 진지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는지 주변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둘은 독일군들이 지하 벙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영옥이 항공 사진에서 매복 지점으로 보아두었던 작은 도랑으로 들어갔다. 둘은 그곳에 엎드려 날이 완전히 새기를 기다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갑자기 주위가 잠잠해지면서 이번에는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옥은 조심스럽게 왼쪽 팔을 끌어당겼다. 9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이 시간은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모두 뜬눈으로 밤을 새고 나서 아침을 먹고 잠드는 시간이기 때문에 독일군 보초들도 긴장을 풀었던 것이다. 구릉 지대에 설치된 관측소의 독일군이 감시를 하겠지만 감히 자기 진영에서, 그것도 낮에 미군 한두 명이 들어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맞아떨어지기만을 기대하면서 영옥은 아카호시 일병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둘은 볼을 땅에 바짝 붙이고 기면서 등이 높아질까 봐 숨도 크게 쉬지 않고 도랑에서 나와 옆에 있던 밀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하 벙커에서 보이지 않도록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토치카(사격 진지) 뒤로 돌아가기 위해 낮게 기기 시작했다. 완전히 포복한 상태로 조금 기다가는 멈춰서 상황을 파악하고 다시 기다가는 또 멈춰서 상황을 파악하기를 되풀이했다.

미군 진영의 수많은 눈동자가 숨을 죽이고 이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대장 싱글스 중령도 영옥이 침투에 앞서 적진을 관찰했던 농가 2층 바로 그 자리에서 쌍안경으로 두 사람을 좇고 있었다. 밀밭은 무릎 높이 이상으로 자라 있어 포복하는 둘을 감싸 주는 데다 다행히 바람이 세차게 불어 둘의 체중이 밀밭에 남긴 흔적도 금방 사라졌다. 아카호시 일병 앞에서 기어가던 영옥이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토치카 부근의 예기치 않은 지점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토치카 옆의 작은 개인 참호에서 독일군 병사 두 명이 아직도 잠을 자고 있었다. 아카호시 일병에게 곧장 정면으로 다가서게 하면서 영옥은 작은 반원을 그리며 참호로 다가갔다. 좁은 참호 속에서 독일 병사 둘은 양쪽 무릎을 접어 세운 다리 사이로 서로 상대방의 다리를 낀 자세로 머리를 약간 뒤로 참호 벽에 기댄 채 입까지 벌리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영옥과 아카호시 일병은 조용하고 신속하게 톰슨 기관단총 총구를 두 독일군의 벌려진 입속으로 들이밀었다. 차가운 금속이 입안으로 들어오자 갑자기 잠을 깬 독일군 병사들의 얼굴에 공포가 번졌다.

영옥은 말없이 방아쇠에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건 채 기관단총을 받쳐 들고 왼손 집게손가락을 입술로 가져가 곧추세우며 소리 내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무기를 내려놓고 두 손을 올리라는 제스처를 하자 독일군 병사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호시 일병이 그들이 내려놓은 소총을 발로 밀어 치우자 독일군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허리에 차고 있던 자동권총까지 빼서 내려놓고는 참호에서 나왔다. 참호에서 나온 독일군들은 영옥이 시키는 대로 앞서 기기 시작했다. 맨 앞은 독일군, 다음은 아카호시 일병, 다음은 또 다른 독일군, 마지막이 영옥의 순서였다.

일단 포로를 붙잡은 다음에는 직선 코스를 택했다. 일행이 넷으로 불어났기 때문에 머뭇거릴수록 발각될 가능성이 컸다. 다행히 돌아올 때에도 독일군은 자기 진영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영옥 일행은 미군 철조망을 지날 때까지 그대로 포복을 계속했다. 돌아올 때는 대낮이었기 때문에 지뢰밭을 통과하는 것이 훨씬 쉬웠다. 둘은 브라우닝 기관총조가 대기하고 있던 참호에 다다르자 포로들을 먼저 밀어 넣고 참호 속으로 몸을 굴렸다. 영옥은 곧바로 무전기로 싱글스 중령에게 임무를 완수했다고 보고했다. 남은 일은 그대로 밤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오후 7시가 되자 다시 어둠이 깔렸고, 양측 참호에 다시 초병들이 도착했다. 포로들을 데리고 B중대 본부로 귀환했을 때는 이미 사단본부에서 나온 지프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두 독일군은 하사와 일병이었는데 많은 정보를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미군은 심문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들이 그렇게도 얻고 싶었던 정보를 이미 얻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복장과 부대 마크는 그들이 탱크사단 소속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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