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
김현철 지음 | 팬덤북스
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
김현철 지음
팬덤북스 / 2012년 9월 / 248쪽 / 13,000원
PART 1. 우리가 끌어안고 사는 불편한 생각: 나는 지배 관념을 끌어안고 산다
우월감 - 열등감을 느끼지 않으려는 노력
강박이 지배하는 우월감: 점잖음과 교만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강박은 이 종이 한 장 차이를 고상한 매너라는 방패로 내면의 오만함을 덮습니다. 우월함을 향한 욕구는 사실 인류 보편적으로 깔려 있으나 적절한 성장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체념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적절치 못한 성장을 겪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우월함을 향한 욕구를 끊임없이 방출하고 만족해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고 그에 따라 만날지 말지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잘난 사람들만 만날 것 같은 예상과 달리, 이들은 자신이 나눈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다시 말해 통념상 이해 안 될 정도로 열등한 사람들만 골라서 만나고 다닙니다. 자신보다 더 우월한 느낌을 주는 사람은 우월감을 느껴야 할 사람들에겐 꽤 위협적입니다. 상대적으로 초라해질까 겁이 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들은 정말 사귀고 싶은 사람들을 오히려 사귈 수 없는 역설의 늪에 빠집니다. 성숙한 소통을 기반으로 한 친밀감 대신 '열등감을 안 느낄 권리'가 친구 관계를 삼는 기준의 우선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상대방을 향한 경멸까지 가세하면 우월감은 그야말로 '기세등등', '의기양양'하다 못해 '안하무인'의 종점까지 다다릅니다. 하지만 강박은 이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습니다. 아주 섬세하고 꼼꼼하게 상대의 결점을 기억하고 최후의 히든카드로 써먹을 수 있게 모아둡니다. 그래서 이런 분과 같이 일을 하면 한 번쯤은 예상치 못한 '비난 폭탄'에 큰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아파할 필요는 없습니다. 강박이 내뿜는 분노는 스스로가 나약하다는 실체를 깨달을 때 불거지는 일종의 '자폭 감정'이니까요.
강박이 지배하는 우월감에서 벗어나려면 우린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서 다소 멀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의 마음을 쉽게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의 대단함을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접어야 합니다. 실패하고 낙심하는 과정을 비극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마주치는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절대 슈퍼맨이 될 수 없으며, 예측 불가한 세상을 불완전하게 살아가는 '사람'임을 깨달을 때 우월감의 유혹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애써 부정한 채, 우월의 탈을 뒤집어쓴 채 세상을 살아가려고만 한다면 우린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요?
이기는 것이 목적인 반사회성 행동: 선량한 외모에 서글서글한 눈매가 인상적인 병철. 붙임성 있는 말투와 매너, 탁월한 리더십으로 직장과 교회에서 그는 언제나 존경과 선망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요. 퇴근 후 병철은 슈퍼에서 몇 가지 물건을 재미 삼아 훔치기 시작합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있지만 유독 병철에겐 예외였습니다. 경찰에 잡힐 위기도 몇 번 있었지만 매번 다른 사람의 차를 훔쳐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범죄의 결과는 늘 완벽했습니다. 점점 대범해진 병철은 사기, 절도, 마약 밀거래, 심지어 매춘부를 살해하는 등 죄 없는 사람들을 이유 없이 죽이고 자동차를 훔치며 경찰조차 무참히 짓밟아버립니다. 그리고 마이애미, 산 안드레아스, 차이나타운 등지에서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도 몇백만 달러의 보상을 받으며 태연하게 살아갑니다. 컴퓨터 게임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위의 사례가 게임
에 관한 얘기란 것을 이미 눈치챘을 것입니다.
21세기로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게임의 세계에선 권선징악이란 주제는 한물간 지 오래입니다. 플레이어 자신이 게임 속에서 범죄자가 되어 절도와 강간, 살인을 일삼는 게임 는 이미 전 세계의 게임 마니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5탄까지 발매되었습니다. 절도와 살인에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는 이 게임은 버젓이 청소년들에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미 '살인의 추억'에서 '살인의 시뮬레이션'으로 이행기를 밟고 있는 셈이죠.
예상과 달리 실제 얼굴은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라 더욱 소름 끼치는 그들, 정신의학에선 이들을 가리켜 반사회적 인격 장애 혹은 사이코패스라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연쇄 살인과 같은 무서운 범죄를 반복하는 심각한 반사회성 인격 병리를 가진 사람들의 수가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기, 언어폭력, 왕따, 절도, 탈세 등등의 다양한 반사회성 행동의 경우는 심각한 정신 병리가 없는 정상인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이코패스와 같은 반사회성 인격 병리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신경증적인 갈등이나 동료 간의 전쟁, 치정에 얽힌 원한 등으로 인해 우발적 혹은 계획적으로 발생할 수 있어, '반사회성 행동 = 반사회성 인격 장애' 따위의 공식은 없는 것이죠.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캘러헌은 그의 저서 『치팅 컬처』를 통해 현대 사회의 거짓과 편법을 조장하는 과다경쟁, 개인주의, 자화자찬의 문화를 고발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한두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반사회적인 행동을 시작하면 더욱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양심에 둔감해진 채 반사회적 행동을 지속한다고 주장합니다. 반사회성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며, 이기고 나서야만 일련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불이익에 특히 민감하여 잘못된 점을 지적받기라도 하면 "다른 사람도 다 이렇게 하지 않느냐" 하며 뻔뻔한 합리화를 늘어놓습니다. '합리화'는 반사회성 행동의 보편적인 심리적 방어입니다.
반사회성 행동이 악성을 만들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사회성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악성 자기애 증후군'이 그 원인일 때가 많습니다. 이 용어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에 의해 처음 기술되었습니다. 악성 자기애 증후군을 앓는 이들은 자기애성 인격 성향이 성격에 깊이 깔려 있으며, 남을 가학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갈등이나 고민이 없어 잔인하게 남을 폭행하거나 심지어 살인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또 어떨 땐 지나친 피해의식과 편집증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적이나 혹은 그 반대인 우상으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유 있는' 살인을 저지르는 극단적인 신념을 가진 빈 라덴과 같은 테러리스트의 우두머리가 악성 자기애 증후군을 가진 전형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별하다는 말보다 사랑한다는 말: 4~5세 아이들은 흔히 길바닥에 드러누워 울며불며 부모를 난처하게 만듭니다. 이를 정신의학에선 '분노 발작'이란 용어로 표현합니다. 분노 발작을 부리는 아동에게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 방법은 바로 '무관심'입니다. 아동은 자신의 그러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봐주지 않는다는 걸 느끼면 비로소 발작 행동을 포기합니다. 관심과 유명세는 악성 자기애 성향이 강한 사람들에겐 마약과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애적 성향에서 우러나오는 반사회 성향을 완화하려면 '무관심'이란 사회적 차원의 처방이 필요합니다. 유언비어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글 혹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면 '옜다, 관심!'이란 댓글 또한 올라오곤 하는데, 약간 무례하지만 자극적인 게시물을 막아내는 데 가장 적절한 해법일 수 있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게 만들어 '더 잘난 너'가 되는 과다 경쟁을 당연시하다 못해 장려하는 요즘, 남과 더불어 사는 세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는 '공감(共感)' 능력입니다. 최근 미국의 어느 초등학교에선 저학년을 대상으로 가치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지나친 자기애 성향으로 빠지지 않게 조기 예방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취지인 것이죠. 자신을 특별하다고 여기게 하는 과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회심리학자인 캠벨에 따르면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려고 말해주었던 "넌 특별해"라는 메시지가 자칫 병적인 자기애 성향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혹시 집안에 아이가 있다면, "넌 특별해"라고 말하는 대신 '마법의 주문'을 걸어봅시다. 이 주문은 아이로 하여금 '특별함'을 포기하는 대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아이가 되지 않게 해주면서 재능이나 겉모습에 관계없이 친밀함과 안정을 느끼게 해줍니다.
우유부단 - 확실한 것만을 추구하려는 내면의 욕구
결정하지 못하는 심리: 우유부단함은 강박증 혹은 강박적 인격 성향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우유부단함의 핵심은 의구심입니다. 의구심으로 인해 매사에 100퍼센트 확실성이 보장되는 것만 찾는다든가 위험 부담을 안길 꺼려한 나머지 절대적인 안전이 보장되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결정도 내리길 주저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이런 분에게 매사에 항상 신중하다는 평가를 내리지만, 이 신중함의 이면엔 '한 번 결정 내린 사항은 절대 바뀔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결정에 나름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두곤 합니다. 심지어 고민할 여지가 별로 없는 제안조차도 긍정적인 답을 주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립니다. 충분한 시간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스스로에게 섣부르다는 평가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적어도 강박 성향이 짙은 분들에게만큼은 "중요한 결정은 될 수 있는 한 미루라"는 말은 잘 하지 않습니다.
강박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외형적으로' 가만히 놔두는 걸 좋아합니다. 여기서 '외형적으로'라는 문구를 덧붙인 이유는 마치 수면 위에선 유유자적하며 우아하게 다니지만 물속에서는 쉴 새 없이 물갈퀴질을 하는 백조의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공부하지 않고 주구장창 음악만 듣고 놀기만 한다며 진료실로 끌려온 학생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그 학생의 머릿속은 오히려 다른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그의 머릿속은 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몰라 늘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기어가 맞물리지 않는 공회전이다 보니 머리가 과열되어 음악을 들은 것뿐이었죠.
우유부단이란 난관에 봉착했을 때 떠올려야 할 첫 번째 임무는 바로 "뭐라도 하자!"입니다. 차가 진흙탕에 빠져 갇혔을 때 한 사람은 운전대에 앉아 엑셀레이터를 힘껏 밟고 나머지는 그 차 뒤에서 무조건 힘껏 밀어야 합니다. 핸들을 어떻게 틀어야 할지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들은 곧잘 차가 진흙에서 빠져나온 뒤에 어느 방향으로 튕겨 나갈 것인가까지 미리 걱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엑셀레이터를 밟는 둥 마는 둥 합니다. 만약 조직 내에서 이런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나머지 사람들은 제아무리 뒤에서 밀어봤자 좋은 결과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대신 "일단 어떤 조치라도 취하자"라든가 "일이 생기면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하자"와 같은 마음가짐은 우유부단한 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점화 플러그가 됩니다.
우유부단함에 빠져 있을 때 점검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절대적이며 100퍼센트 확실한 것만을 추구하려는 내면의 욕구입니다. 완벽의 노예가 되는 순간부터 우린 가장 현명한 최선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결국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놓칩니다. 사람이 내리는 결정은 그 어떠한 주제에서도 완벽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행히도 삶에는 완전과 불완전을 나누는 절대적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강한 힘과 절대적 기준을 좇는 대신, 약함을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내려놓는 마음가짐은 불완전함과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을 용해시켜줍니다.
옳은 결정만이 좋은 결정은 아니다: 선택과 결과의 상관관계를 지나치게 과장해 상상하는 습관 또한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 당시에 현명하다고 판단했던 선택이라고 해도 이후 뜻밖의 실망스런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망설임 없이 직관적으로 선택한 일이 의외로 잘 풀리기도 하지요. 우리는 선택이란 디딤돌이 무한정 깔려 있는 시간이란 길을 걸어갑니다. 때로는 길 입구에 첫 번째로 보이는 디딤돌만 잘 고르면 나머지 여정은 순탄할 것이라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실은 우리가 꿰는 모든 단추가 첫 단추고 우리가 취하는 모든 선택이 첫 번째 선택인데도 말이죠. '편의상' 첫 번째 선택이라고 부르는 것 뒤에 수없이 펼쳐진 진짜 첫 번째 선택을 못 보는 근시안이야말로 결정을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모든 선택을 너무 무겁게 여기면 곤란합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양, 극단적인 긴장감으로 일관하게 되니까요.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 하더라도 이상적인 선택은 애당초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A란 계획을 채택했을 때 B라는 계획이 더 그럴 듯하게 보이는 '자체적 의구심' 또한 우유부단한 태도를 키우는 데 한몫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결정이 지체되고 나중엔 피곤해서 생각지도 않았던 플랜 C나 D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고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실은 플랜 A나 B 혹은 C 등은 그리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위험 부담을 안기 싫어 그 어떤 플랜도 선택하기 싫은 바람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린 그 위험이란 암초를 인식하기 싫은 나머지, 이런저런 저울질을 하며 시간을 벌고 뜸을 들이게 되지요. 그러나 어떤 항로를 선택해도 크고 작은 암초는 도사리고 있다는 것, 그것이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는 제아무리 노력해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PART 2. 우리가 끌어안고 사는 불편한 행동: 나는 통제력을 끌어안고 산다
돈과 예의 - 감정을 격리하는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
소유에 몰입하는 사회: 십여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머니 토크>란 영화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돈이 있다면 거래를 하자. 대신 없으면 총알 나간다'는 살벌한 은어인 'Money talks, Bullshit walks'에서 유래된 제목처럼, 영화에 나온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모든 걸 마다하며 쫓고 쫓기는 사투를 벌였지요. 십여 년이 지난 뒤 개봉한 영화 <사랑보다 황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제는 , 쫓는 대상이 다이아몬드에서 황금으로 바뀌었을 뿐,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사람들을 바보처럼 묘사한 건 비슷합니다. 아마도 돈이 중요하긴 해도 반드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프로이드 또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돈과 황금을 각각 똥과 쓰레기를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말대로 우린 누구나 자신이 싼 똥에 집착하는 시기를 거쳤습니다. 이른바 항문기라고 하는 시기가 바로 그때입니다. 만 2~3세 때 우린, 엄마가 지정해준 장소에만 변을 보고, 그렇지 않은 공간에선 변을 꾹 참고 배 안에 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통제했을 때 비로소 성취감에 가까운 쾌락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고착된 사람들은 물질적 자산을 소유하고 아끼는 데만 온 힘을 다하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었을 때에야 비로소 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항문기 성격이라 일컫는 이른바 강박 성향은 이렇게 탄생됩니다. 물질 만능주의와 경제 원칙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는 그래서 지극히 항문기적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미성숙하며 다분히 신경증적인 사회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프로이드의 말을 빌려 '소유에 몰입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라고 추론한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은 지극히 타당합니다.
저 역시 죽어라고 경제 원칙에만 따라 사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하루하루의 생계가 어렵고 위태한 분들은 예외입니다. 남이 봤을 때 꽤 넉넉하지만 오히려 더 악착같이 돈에 집착하고, 거지 근성이야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최우선의 덕목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몇 번의 큰 소비를 제외하고는 통장의 잔고와 큰 상관없이 살아갑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통장에 돈이 아무리 많아져도 칼국수와 된장찌개를 즐겨 드시던 분이 푸아그라를 즐겨 드시진 않습니다. 돈을 쓰는 범위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더라도 우리의 취향은 돈에 따라 잘 바뀌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마치 잔고가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