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인문학을 만나라
최효찬 지음 | 행성:B잎새
마흔, 인문학을 만나라
최효찬 지음
행성:B잎새 / 2012년 9월 / 400쪽 / 16,000원
1장_ 경서를 읽기에는 겨울이 좋다! 그 정신이 전일한 까닭이다
: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철학의 향연
처세술의 영원한 딜레마, 줄서기
일찍이 공자는 "군자는 두루 어울리지만 떼거리 짓지 않고, 소인은 떼거리 짓지만 두루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한 문장에서 우리는 인간관계와 처세의 진수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두루 어울린다는 의미는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신념과 생리에 맞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무리 없이 어울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쉬운 선택을 한다. 무리를 짓는 것이다. 자신과 의견이 같고 노선이 같고 이익을 줄 만한 사람에게 다가가고 그들의 환심을 사는 것이다. 일명 '줄서기'이다. 하지만 두루 어울리면 결코 줄서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공자가 던진 화두가 심오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떼거리 짓고 줄서기를 하면 당장은 기득권을 만끽할 수 있지만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줄서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로마 황제도 줄서기를 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절대 권력을 지닌 왕이나 황제조차 자신의 권력기반의 하나로 귀족과 군인 세력 중 하나를 선택하고는 했다. 귀족이 사병(私兵)을 두면서 계급적으로 우위에 있을 때에는 귀족을 택했다. 군인의 세력이 강대해지면 황제는 군인에게 아첨하면서 권력을 유지했다. 지지세력을 무시하거나 '줄'을 잘못 선 왕의 경우 치명적인 위기를 맞곤 했다.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에서 우리는 아주 인상적인 대목을 만날 수 있다. 로마 황제들도 살아남기 위해 '줄'을 섰다는 사실이다. 로마의 권력 기반을 이루는 3대 집단은 귀족, 시민, 군인이다. 그런데 로마 황제는 늘 귀족(원로원)과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시민들은 황제의 관심사 밖이었다. 시민들에게 아무리 지탄을 받아도 황제는 요동하지 않았고 오로지 귀족과 군인들에게만 관심을 두었다. 왜냐하면 귀족, 시민, 군인 모두를 충족시키는 정치는 불가능했고, 그러다 보니 자신의 권력 기반에 힘이 되어줄 세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시민은 수는 많았으나 세력이 약해 언제나 황제의 선택지에서 고려대상이 되지 못했다. 황제가 시민과 귀족을 만족시키는 정책을 펼치면 군인들이 반기를 들었다.
군인에게 중점을 두는 정치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군인과 시민을 동시에 충족시키기란 매우 힘들었다. 시민은 평화로운 삶을 좋아해 온건한 군주를 원하는 데 반해, 군인은 호전적이고 탐욕스러운 황제를 좋아했다. 군인들의 탐욕을 충족시키려면 당연히 희생이 뒤따랐는데 그 희생의 대부분은 시민에게서 나왔다. 황제가 시민들을 거칠게 다룰수록 군인들의 탐욕은 충족되었다.
마키아벨리의 분석에 따르면 로마 황제는 귀족과 시민, 군인을 선택해야 했을 때 대부분 '군인'을 선택했다. 권력을 유지하려면 가장 강력한 집단의 미움을 받아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즉 군인이 강력한 집단일 때 군인의 비위를 맞춘 황제는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황제는 비운을 맞았다며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렇게 갈파한다. "군주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일을 피하는 것이 좋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어느 한편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때문에 미움을 받는 일을 피할 수 없을 때에는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집단이 부패했든 아니든 그것은 상관없다.
착한 것보다 착한 '척'하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주변을 보면 '착한 사람'이 마음고생을 많이 한다. 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나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사람은 정말 얄밉게도 오래 산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일이다. 『군주론』에서도 이율배반적인 덕목을 발견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덕과 악덕을 다음과 같이 나눈다. "잘 베푸는 사람과 탐욕적인 사람, 자비로운 사람과 잔인한 사람, 충직한 사람과 신의가 없는 사람, 단호하고 기백이 있는 사람과 여성적이고 유약한 사람, 붙임성이 있는 사람과 오만한 사람, 절제 있는 사람과 호색적인 사람, 강직한 사람과 교활한 사람, 융통성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진지한 사람과 경솔한 사람, 경건한 사람과 신앙심이 없는 사람."
여기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면 전자의 성품을 '구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는 군주가 전자의 성품을 갖추고 가꾸는 것은 해롭고,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유용하다고 장담했다. 아울러 '착한' 리더는 성공할 수 없고 '착한 것처럼 보이는' 리더가 성공한다며 선한 군주가 군인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두 가지 기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군주는 짐승처럼 행동하는 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여우와 사자의 기질을 모방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자는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늑대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정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여우다운 기질은 잘 위장하여 숨겨야 한다고 부언했다. 겉으로 드러나면 본색이 탄로 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마키아벨리가 한 말을 정리하면 '줄서기를 하려면 제대로 된 줄에 서고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부터는 결코 미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강력한 집단에게 결코 '미움'을 받는 일은 피하라고 조언한 마키아벨리의 삶은 어땠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이유는 신생 군주인 메디치 왕조로부터 공직을 얻을 야심으로 헌정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메디치 왕조로부터 미움을 받았고, 끝내 아무런 공직도 얻지 못한 채 15년 동안 은둔하다 죽고 말았다. '공화주의자'로 낙인찍힌 그를 메디치 왕조가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냉혹성을 리더십과 접목해 예리하게 분석한 최고의 명저 『군주론』으로 인해 불운한 마키아벨리는 역사에 남을 수 있었다.
계획은 또 다른 선택, 인생은 선택의 연속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 했다. Birth(탄생)와 Death(죽음) 사이 Choice(선택)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선택'은 '자유'와 동의어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 순간 새로운 기획을 만들어 내고 그 기획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기획은 또 다른 선택이다. 그 선택은 또한 개인의 자유에 의한 것이다. 인생은 새로운 선택과 새로운 기획의 연속인 셈이다. 인간은 새롭게 인생기획을 세우고 이 기획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인생기획을 세우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불안'을 인간의 자유를 실현하는 기획의 동력으로 삼았다. 끝없는 기획의 연속이 바로 우리네 삶인 것이다. 사르트르는 매번 선택을 하면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하고 또 새로운 기획을 추진해야 하는 이 필연성을 '쫓기는 쫓음(la poursuite-poursuivi)'이라고 정의했다.
인생의 중년, 꿈을 리모델링할 시간: 사르트르의 실존 철학을 생각하다 보면 또 하나의 책이 떠오른다. 심리학자 대니얼 레빈슨의 『남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이란 책이다. 이 책은 40명의 남자들의 삶을 10여 년에 걸쳐 추적하고 연구한 결과로, 선택과 새로운 기획이 이어지는 인간의 삶을 사계절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 인생을 봄(22세까지), 여름(22~45세), 가을(40~60세), 겨울(60세 이후)로 나누면서 인생의 사계절은 변화와 안정의 순환 과정이며, 환절기처럼 인생의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옮겨가는 과정에는 변화와 성장을 위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특히 중년의 전환기에는 누구나 인생에 대해 다시금 회의에 빠진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다운 욕망과 가치, 재능과 야망을 펼칠 수 있는 삶을 갈망하지만 인생이란 뜻대로, 기획대로 되는 게 아니다. 그걸 중년의 전환기에 알게 된다는 것인데, 다시 말해 중년의 전환기가 되면 20대에 갈망했던 꿈이 사실은 우리를 기만했던 환상의 실체임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가령 '성공을 하고 나면 그 후의 인생은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이 중년의 전환기가 지나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대부분 사람들은 성공이란 '생계형 꿈'을 쫓는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본원적인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러다가 현실을 쫓아 생계형 꿈이 어느 정도 실현되면 비로소 공허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제안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갈망하던 꿈은 무엇인가. 그 꿈이 어떤 것인지 찾았다면 '생계형 꿈'을 이룬 후에 '본원적 꿈꾸기'로 진입하는, '단계적 꿈꾸기'로 자신의 꿈을 이루라는 것이다.
20대에 꿈을 저버리면 대가를 치른다: 꿈과 성공은 어쩌면 별개일 수 있다. 사회적인 성공을 쫓다 보면 자신의 꿈을 계속해서 유보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의 봄에 해당하는 초심자 단계(17~33세)에서는 꿈과 성공의 함수관계를 조화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꿈을 형성하고 인생 구조 안에 그 꿈을 배치하기, 스승(또는 상사)과 관계 맺기, 직업을 선택하고 이력을 쌓아가기, 결혼하고 가족을 이루기 등의 과제를 잘 진행해나가야 한다고 레빈슨은 조언한다. 꿈을 접은 채 사회적 성공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자칫 '인생을 헛되이 살았다'는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년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인생 중반기에는 '꿈의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직장인으로 성공하기'에 매달려 자신의 꿈을 유보한 채 살아왔다면, 이제라도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레빈슨은 "20대에 꿈을 저버린 사람들은 후에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환경도 꿈도 변하기 마련이다. 오직 하나의 꿈만 쫓는 삶은 인생을 경직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꿈은 흐르는 물과 같아야 한다. 20대에 꾸었던 꿈이 자기 인생에서 전부는 아니다. 그 꿈을 이루기가 여의치 않다면 인생의 중반기에 다시 새로운 꿈을 꾸면 된다.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새로운 기획은 새로운 변화를 위한 자신의 선택행위이고 이는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2장_ 문집을 읽자면 봄이 제격이다! 그 기운이 화창하기 때문이다
: 작가와 시대를 관통하는 문학의 향연
창조적인 상상 에너지는 직관에서 나온다
시인들은 직관을 중시한다. 세상을 뒤흔든 리더들도 대부분 직관을 중시한다. 지금은 타계하고 없는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흔히 직관의 산물로 시를 꼽는데, 스티브 잡스는 시 중에서도 시인 겸 화가였던 영국의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시에 깊이 빠졌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붙들고 / 시간 속에 영원을 붙잡아라."
블레이크가 쓴 <순수의 전조(원제: Auguries of Innocence)>라는 시의 도입부이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붙들고'라는 표현에서 언뜻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가 연상되지 않는가? 이 시를 읽으면 어떤 영감과 직관의 분위기에 사로잡히는 느낌을 받는다. 잡스가 영감을 얻고 그 영감을 테크놀로지로 현실화할 수 있었던 것은 블레이크의 시가 영향을 미쳤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잡스에게 영감을 준 시인의 상상력: 블레이크는 어린 시절부터 비상한 환상력을 지녀 천사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언덕 위에 올라 하늘을 만진 체험을 했다고 한다. 그러한 경험과 상상력이 직관에 근거한 신비로운 시풍을 만들어냈다. 특히 『순수의 전조』에서처럼 그의 시에서는 동양적인 선(禪)의 이미지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직관의 철학적 정의는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을 뜻한다. 직관은 풍부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일종의 경험적 사유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하는 말로 '그 판에 빠삭해야' 직관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구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이성을 신봉했고 직관을 멀리했다. 그러나 이성적 사유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예가 그 유명한 '뷔리당의 당나귀'이다. 당나귀가 같은 거리에 있는 똑같은 두 개의 건초더미 앞에서 굶어 죽었다. 그 이유는 두 개의 건초더미가 너무나 똑같아서 당나귀가 선택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구에서 '순수한 이성'이라는 견고한 신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십 년밖에 안 된다. 1956년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몬이 '제한적 합리성'이란 용어로 학계에 대대적인 변혁을 불러일으킨 것이 그 시발점이다. 그가 말하려 했던 핵심은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사전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논리를 통해 기존의 사실을 증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을 얻지는 못한다. 새로운 지식의 습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직관이다."라고 말했다.
직관은 모든 것을 통달했을 때 비로소 나온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직관적이고 창조적인 리더 스티브 잡스의 '위대한 직관력'은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잡스는 이른바 '델포이 방식'으로 푸앵카레가 말한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쳐줄 사람을 자기 주변에 직접 두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가 넥스트를 창업하고 로고를 만들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세상에서 로고를 가장 잘 디자인하는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그가 폴 랜드이다. 또 건축에 관심을 가졌을 때에는 지식인들에게 누가 건축가로서 가장 성공했는지를 물어보고 그를 찾아 지식을 구했다. 이 비공식 설문에서 1위를 한 인물이 바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였다.
잡스는 이렇게 인재를 모으는 방식을 델포이의 신탁을 받는 것에 비유해 '델포이 방식'이라고 불렀다. 새로운 혁신을 이루어낸 그의 직관은 이처럼 우연한 산물이 아니라 최고의 전문가와 함께 작업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잡스가 '델포이 방식'으로 인재를 구하고 의사결정을 한 이유는 자신에게 부족했던 '확신'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잡스는 늘 자신이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의 평가를 신뢰하고 존중했다. 대학을 중퇴했기에 예술과 미학에 관한 직관은 지닐 수 있었지만, 통달함으로써 생기는 자신감은 부족했던 탓이다. 미술이나 건축, 디자인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는 상태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한계였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 델포이 방식으로 인물을 선정하고 나면 모든 것을 빠르게 배워나갔다. 그래야만 그 자신이 최고의 인재와 함께 작업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잡스는 인재를 구할 때에도 관습을 탈피했다. 그는 면접심사에서 지원자들에게 첫 성 경험은 언제였는지, 마약을 사용해본 적은 있는지를 묻기도 했다. 이러한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면 입사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지원자들의 자유로운 태도를 다른 어떤 기업가보다 높이 평가한 것이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남의 인생을 사느라 삶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낸 결과에 얽매여 사는 도그마에 갇혀 있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의견이 여러분 내부의 목소리를 잠식하도록 놔두지 마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슴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가슴과 직관은 여러분이 진실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모든 것은 부차적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상상력과 직관에 의한 결단력이 필요하다.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슴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라고 한 말은 이제 그가 세상에 남긴 위대한 창작만큼이나 큰 울림으로 메아리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