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인생에 답하다
이병욱 지음 | 소울메이트
프로이트, 인생에 답하다
이병욱 지음
소울메이트 / 2012년 6월 / 360쪽 / 15,000원
1부 나의 과거를 알면 현재와 미래가 보인다
프로이트가 남긴 유산이 너무나 값진 이유
"알다가도 모를 것은 사람 마음"이라는 말이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도 한다. 맞는 말이다. 이런 말들은 타인의 속내를 몰라 답답해할 때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나와 상대방의 코드가 맞지 않으면 그 답답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타인의 속내는 고사하고 내 자신의 속마음조차 모를 때가 허다하다. 나의 의지에 반하는 엉뚱한 말이나 행동이 나올 때 우리는 몹시 당혹스러워한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때문에 그동안 쌓아올린 인간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어떤 실수에 대해 책임을 추궁당할 때, 나도 모르게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둘러대기도 한다. 자신을 자기도 모른다면 도대체 누가 안단 말인가?
무의식, 나 자신도 모르는 나의 일부: 프로이트는 그런 행동의 배후에 무의식(unconsciousness)이 있다고 주장했다. 내 안에 나 자신도 모르는 내가 있다는 말이다. 무의식이라는 비밀의 방은 스스로 인정할 수 없고 세상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온갖 원초적인 욕망과 환상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프로이트가 밝힌 요지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은 온갖 부도덕한 탐욕의 쓰레기더미로 가득 찬 용광로와 같은 것이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악의 소굴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인간의 근원적인 성(性)과 공격성을 담고 있는 무의식이 악이라면, 모든 인간은 결국 악마란 말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교묘한 말장난이다. 무엇보다 '선이다, 악이다'라며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도덕적인 판단일 뿐이며, 무의식 세계에는 그런 구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비합리와 몰상식의 세계가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항상 괴로운 법이다.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 자신의 문제, 우리는 그 문제의 실체를 알고 돌파해나갈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인간은 끝없는 심리적 고통의 악순환의 고리에 얽매여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어렵다. 진정으로 고통과 불행을 아는 자는 그 어떤 시련이 다가오더라도 결코 당황하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그런 시련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극복한 인물이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온갖 차별을 겪고 자랐으며, 또한 그 때문에 그토록 원하던 대학교수가 될 수 없었다. 그는 한낱 개업의에 불과했지만, 그 어떤 교수들도 이루지 못한 학문적 업적을 이루어냈다. 구강암 때문에 수십 번의 수술을 받으면서도 초인적인 힘으로 환자를 진료하고, 학계의 냉대와 세상에서 쏟아지는 숱한 비난과 멸시 등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정신분석(psychoanalysis)'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해 그 보급에 힘썼다. 그는 나치 독일에 의해 국외로 추방되었고, 그의 누이동생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그의 이론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반박하고 비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참담한 고통과 시련을 이겨낸 그의 굳은 의지만큼은 누구도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프로이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단순히 그의 학문적 업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몸소 실천해 보여준 남다른 의지와 용기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유산이 아닐까?
진정한 자아의 해방을 위해: 칼 마르크스는 인간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고 부를 고루 분배하기 위해 무력을 써서라도 계급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에, 프로이트는 각자의 무의식적 갈등과 욕구를 이해하고 의식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진정한 자아의 해방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모든 혁명은 폭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누군가의 희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제안은 그야말로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심리적 해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인도주의를 실천한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가 남긴 유산이 값진 이유는 바로 그런 점에 있다. 게다가 그 길은 제시만 할 뿐 누구에게도 강요하는 법이 없다. 그 어떤 종교나 이념과 다른 점도 바로 그런 사실에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분명 우리의 좁은 시야를 넓혀준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관계를 밝혀주고, 우리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인간관계의 실체와 그 의미도 알려준다. 그런 점에서 정신분석은 우리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얽힌 비밀과 더불어 그것에 관련된 심리적 날줄과 씨줄에 얽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행운의 열쇠이기도 하다. 물론 그 열쇠가 황금 열쇠인지 구리 열쇠인지는 각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몰상식한 탐욕으로 가득 찬 무의식의 세계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법이다. 그러나 법만으로 이 세상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윤리라고 부른다. 타인을 해치는 범죄행위는 법을 통해 타율적으로 다스리지만,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서는 윤리라는 자율적인 억제장치를 통해 다스리고자 한다. 또한 보이지 않는 제3의 제동장치가 있으니 우리는 그것을 상식이라고 부른다. 철권통치로 민중을 억압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도 법은 존재한다. 하지만 악용되기 일쑤다. 그런 사회에서 윤리나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윤리나 상식이 실종되고 오로지 법만 존재하는 사회는 이미 건전한 사회가 아니다. 건전한 윤리와 상식의 기반 위에 법이 적절히 운용되는 사회가 안정된 사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각자의 내면에도 그런 상식과 윤리를 뛰어넘는 몰상식한 세계가 존재한다. 온갖 탐욕과 환상으로 가득 찬 무의식의 세계가 바로 그곳이다. 프로이트는 그것을 '이드(id)'라고 불렀다. 프로이트는 이드의 욕망을 견제하기 위해 양심과 윤리를 대변하는 초자아의 기능이 동원되며, 상식을 대변하는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현실과의 타협을 도모하며 나름대로의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고자 애를 쓴다고 했다.
무의식의 세계는 낙원일까, 지옥일까?: 상식을 뛰어넘는 무의식의 세계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곳은 낙원일까, 지옥일까? 시공을 초월해 여기저기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환상의 세계, 모든 것이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알라딘의 램프 같은 마법의 나라, 이쯤 되면 낙원도 그런 낙원이 없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가 상상도 못한 또 다른 어두운 측면이 있다. 원수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마귀를 숭배하며, 배신한 애인을 우물 속에 처박아버리는 잔혹한 환상의 세계, 지구가 파멸하고 세상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내게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전지전능한 세계, 나를 괴롭히던 인간들이 끓는 물속에서 죽어가는 끔찍한 세계, 지옥이 따로 없는 그런 세계가 무의식인 것이다. 이처럼 천국과 지옥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 엄청난 성적 욕망과 파괴력이 동반된 세계가 바로 무의식이니 그 강력한 힘에 눌려 사는 우리의 자아는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러나 우리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자아는 나름대로 강력한 대비책을 동원해 총력 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려면 엄청난 자금과 에너지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아가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원이 고갈되면 자신을 방어할 수단 또한 희박해지고, 급기야는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다. 그렇게 완전히 무너진 상태가 바로 정신병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신경이 과민한 상태에 빠질 뿐이다. 프로이트는 그것을 노이로제(신경증)라고 불렀다. 신경증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왜 그런 증상에 시달려야 하는지 이유를 잘 모른다. 그래서 더 답답한 것이다. 그 이유는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분석이나 정신치료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신경증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무의식적 단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끝없는 갈등의 악순환 고리에 말려들고 만다.
상식과 몰상식의 대립과 갈등: 따지고 보면 정신분석을 포함한 거의 모든 정신치료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해결될 수도 없는 난센스의 심리상태를 돕기 위한 것이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상식에 어긋난 일이다. 누군가 항상 곁에 동행해줘야 외출할 수 있는 사람, 70세 노인과 결혼을 강행하는 젊은 여성 등 세상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그런 행동의 배경에는 항상 무의식적 동기가 깔려 있다. 비록 우리의 자아는 상식에 따라 움직이고자 애를 쓰지만, 상식이 통하지 않는 무의식의 충동에 굴복해 생뚱맞은 행동을 할 때도 많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그 무의식적 동기의 실체를 알게 되면 그런 행동은 사라질 수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밝히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런 몰상식한 내면세계의 실상이다. 우리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내면에서는 이처럼 상식과 몰상식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며, 그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나도 모르는 심리적 의미와 동기가 있다
모든 사물에는 의미가 다 있는 것일까? 물론 어떤 것에는 의미가 있고, 또 어떤 것에는 의미가 없기도 하다. 물론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판정은 나 자신이 내린다. 의미를 찾는 행위는 심리적 현상이다. 납득하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다. 그러나 아무리 그 의미를 알아내려 애를 써도 도대체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개인적 의미의 탐색: 우리는 매일 살아가면서 숱한 의미 있는 사건들과 인물들을 겪으며 지내지만, 정확하게 모든 의미를 알지는 못한다. 의미 차원에서 굳이 구분하자면 다음과 같이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나만 알고 남들은 모르는 의미, 남들은 알지만 나만 모르는 의미, 나도 알고 남들도 다 아는 의미, 나도 모르고 남들도 모르는 의미다. 이렇듯 의미에도 서로 다른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한다.
첫째, 나만 알고 남들은 모르는 의미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감추는 비밀이다. 예를 들어 자위행위 후에 자주 목욕을 하는 경우가 있다. 본인 자신은 불결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죄책감 때문에 몸을 깨끗이 함으로써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인데, 타인은 그가 왜 그렇게 자주 목욕을 하는지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
둘째, 남들은 모두 알고 있지만 나만 모르는 의미가 있다. 한 대학생이 찾아와 호소하기를 자신은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 괴롭다고 말했다. 강의실에서 그 누구도 자신의 옆자리에 앉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몸에서는 의사가 느끼기에도 심한 겨드랑이 냄새가 풍겼다. 그는 자신의 체취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 냄새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내온 것이다. 친구들은 그가 무안해할까 봐 차마 말을 하지 않은 것뿐이다. 그는 의사의 권유로 액취증 수술을 받고 활기를 되찾았다.
셋째, 나도 알고 남들도 아는 의미는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성적은 좋지 못해도 항상 자신감에 차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그런 자신감이 돈 많은 재벌을 아버지로 두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자신도 알고 친구들도 다 아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넷째, 나도 모르고 남들도 모르는 의미로, 그것은 바로 무의식적 의미다. 무의식적 의미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성숙한 자아가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
누구나 살다 보면 삶의 위기를 맞이한다. 예기치 못한 불행으로 좌절할 수도 있고, 본의 아닌 실수로 낭패를 겪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삶의 좌표를 수정해간다. 자아의 발달은 그래서 정상적인 통과의례를 거치는데, 프로이트는 그 발달과정을 섹슈얼리티에 근거해 구강기(oral stage), 항문기(anal stage), 남근기(phallic stage), 성기기(genital stage)로 구분했다. 이 중에서 프로이트가 가장 역점을 둔 시기는 역시 오이디푸스 갈등을 겪는 남근기였다. 그러나 '왜 모든 기준이 남근이냐'가 비난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남아의 거세불안(castration fear)이야 그렇다 치고 모든 여아는 남근을 부러워한다는 남근선망(penis envy)을 주장함으로써 졸지에 그는 남성우월주의자로 매도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예고 없이 다가오는 삶의 위기: 프로이트는 모든 노이로제의 기원을 오이디푸스 갈등에서 찾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본격적인 갈등의 위기인 셈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위기를 나름대로 극복하며 계속 성장해나간다. 그러다가 청소년기나 성인기에 이르러 그 위기를 다시 반복한다. 위기는 오히려 자신의 심리적 성장을 위해 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는 일이다. 위기가 온 줄도 모르고 안이하게 대처하다 더 큰 낭패를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든다. 위기에는 그 어떤 법칙도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지나간다. 한여름의 태풍처럼 말이다. 문제는 위기 때문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는 것이다.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정신을 놓아버리면 안 된다. 이를 악물고 버티고 견뎌야 한다. 그러다 보면 길이 열리게 되어 있다.
2부 프로이트를 통해 삶의 진실을 배운다
우리의 마음은 창살 없는 감옥이다
'마음의 감옥'이라는 말은 '마음의 지옥'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다. 고통과 번뇌에 빠진 인간은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지옥을 체험하고 있는 셈이며, 창살만 없다 뿐이지 감옥에 갇힌 것이나 진배없다. 사람들은 정신과 폐쇄병동에 갇히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지만, 실은 마음속의 감옥이 더욱 큰 문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결함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나의 불행을 무조건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현상은 매우 유아적인 방어기제에 속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자아를 내적인 욕망과 외적 현실 사이를 오가며 타협을 모색하는 딱한 모습으로 묘사했다. 무의식적 욕망과 환상의 압력에 항상 짓눌려 사는 자아의 처지는 감옥에 갇혀 지내는 수감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말 자체가 행복과 불행, 쾌락과 고통의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천국은 하늘 위에 있는 것이요, 지옥은 땅속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 명칭이 어떠하든 모든 것은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 하루를 살아도 마음 편하게 지내면 그것이 천국이요, 가슴이 터질 듯한 증오심에 사무쳐 있으면 그것이 곧 지옥이다.
마음의 감옥은 어떤 구조인가: 프로이트는 마음의 감옥에도 보이지 않는 층이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의식, 무의식,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전의식의 층이다. 나중에는 그런 감옥의 구조를 자아와 이드, 초자아의 기능으로 재구성했다. 마음의 감옥에는 부술 창살도 없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굳게 잠긴 방문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열쇠의 개발에 일생을 바친 것이다. 그 비밀의 열쇠는 과연 어디서부터 삶이 꼬이기 시작했는지 그 원인을 탐색하고, 갈등의 매듭을 풀어줌으로써 자물쇠가 열리도록 돕는다. 그렇게 해서 감옥문을 나서게 되면 자신의 삶에 대한 시야가 확대되고, 전혀 다른 세상이 눈앞에 전개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심코 지나치던 언덕 위의 소나무도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을 종교에서는 영적 깨달음이라 부르고, 정신분석에서는 심리적 통찰이라고 부른다.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희망의 반대말은 절망이다. 절망은 낙담이나 실의의 단계를 넘어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를 말한다. 사람이 절망에 빠지면 시력과 청력도 함께 잃는다. 인간의 감정은 그렇게 우리의 모든 감각과 생각까지도 마비시킬 정도로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그럴수록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여 자신과 세상을 응시하고 들어야 한다.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이나 절망은 없다. 절망의 늪에 빠질수록 주위를 잘 둘러보라. 겉으로는 나보다 행복하고 잘나 보이는 사람들도 제각기 가슴속에 묻어둔 괴로움이 있다. 이 세상에 나만큼 불행한 인간은 없다고 단정 짓는 일은 엄청난 착각일 뿐이다. 나만 빼고 모두들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단정 짓는 우를 범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