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신드롬
이동연 지음 | 평단문화사
안철수 신드롬
이동연 지음
평단 / 2012년 8월 / 256쪽 / 12,000원
제1부 새 시대의 패러다임을 겨냥하라
의심 많은 현대인, 진정성에 감동한다
MB는 "내가 해 봐서 아는데..."란 말을 자주 한다. 그는 젊은 시절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했지만 끊임없이 노력해서 상위 1%가 되었다며, 자신의 고달픈 삶을 나라 탓, 정치인 탓, 기득권 탓으로 돌리지 말고 자신을 탓하라고 했다. 이런 태도는 기득권층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과 정확히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이 안철수이다. 그는 의사, 기업가로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길을 걸어왔다.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벤처 회사의 사장으로 새 삶을 시작했던 안철수는 스티브 잡스가 말한 '우직한 바보(stay foolish)'의 전형이다. 우직한 바보란 표준화된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갈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에 휘둘려 산다. 하지만 안철수는 다르다. 그는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산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욱 값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데 삶의 의미를 둔다. 그런 까닭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도덕적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소통의 창구로 온라인을 즐겨 사용한다. 하루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수십 명의 친구를 관리한다. 그렇다 보니 관계를 맺는 것도 쉽지만 정리하는 것도 한순간이다. 정서적인 공감력이 부족한 이들은 자신의 순간적인 기분에 맞춰 행동한다. 하지만 이들도 진정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 신세대들이 안철수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취업을 못 해 괴로워하는 젊은이들에게 "왜 막노동판이라도 가지 않느냐"고 질책하는 기성세대를 안철수는 나무란다. 젊은이들을 무작정 몰아세우지 말고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전체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 신 노마드,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21세기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유목 시대, 컨버전스 시대다. 농경 사회처럼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사는 시대며, 평생 한 가지 직업이 아니라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데 그 직업도 여러 분야가 종합된 것들이다. 이런 시대에는 어떤 인재가 필요할까? 여기서 안철수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새 시대의 인재상으로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가진 'A자형 인재'를 제시한 바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깊은 지식, 인접 분야의 폭넓은 상식, 의사소통 능력을 지녔다.
신유목 시대의 사람들은 잡 노마드(job nomad)로 살아간다. 안철수의 사회적 행보는 그가 잡 노마드임을 보여준다. 그는 의사에서 컴퓨터 백신 전문가로, 경영인에서 교수로, 지금은 정치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편한 길로 똑같이 가려고 한다면 결국 실패할 겁니다. 삶은 항상 불완전하죠. 이를 인정하고 즐겨야 행복과 성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검증되지 않는 새로운 직업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현대인들은 불안을 숙명처럼 안고 산다. 안철수는 이러한 불안을 어떻게 이겨 냈을까? 그는 돈보다는 명예, 명예보다는 마음이 편할 수 있는 기준에서 새로운 직업을 찾았다.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정서를 지닌 사람은 인생에 굴곡이 있음을 인정하며 맹목적 낙관주의 대신 성공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는다. 안철수 역시 이 같은 마인드의 사람이다. "먼저 내 앞에 놓인 현실의 가장 냉혹한 면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해 낼 것이라는 신념을 갖는다." 이런 신념이 있으면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불확실성의 시대, 성공과 도전을 이야기하다
안철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려 한다. 그는 항상 원칙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이런 삶의 철학은 안철수연구소 창립 철학에도 잘 나와 있다. 그는 한국에서도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워킹모델을 만들고 싶었으며, 정직하게 사업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며, 공익과 이윤을 모두 추구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창립 철학은 당시 한국 경제구조에서는 너무 이상적이어서 다소 어리석어 보이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업을 사욕을 채우는 수단이 아닌 사회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던지는 도구로 생각했다. 그는 기업을 경영 마인드가 아닌 기업가 정신으로 이끌었다. 안철수는 자신의 철학에 비우호적인 경영 환경에서 안철수연구소를 창립하고 10년 동안 그 철학을 말뿐인 구호로 외친 것이 아니라 그대로 실천하면서 괄목상대할 성장을 이루어 냈다. 그리고 성공의 정점에서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기업의 목적을 수익창출에만 둘 경우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가 야기되기 마련입니다." 돈 벌려고 기업하지 사회 사업하려고 기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한 우리에게 안철수의 말은 충격적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우리에게 또 다른 충격을 안겨 주었다. 2012년 2월 자신의 지분 절반을 기부해 공익재단을 만들어 자신의 창립 철학을 현실화한 것이다.
수직에서 수평으로, 소프트 파워 시대의 탈권위주의
21세기 리더십의 특징은 바로 '수평적 리더십'이다. 안철수는 "탈권위주의 시대인 21세기의 리더십은 조직 구성원이 리더에게 부여한다"고 했다. 정보의 독점이 깨진 시대에는 적극 참여하고 공유하는 수평적 리더십이 적합하다. 수직적 리더십의 주변에는 아첨하는 사람이 들끓기 때문에 직언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와 관련 안철수는 리더가 귀 기울여야 할 소리로 "자기 주변을 에워싼 만족의 소리가 아니라, 감춰진 불만족의 소리"를 꼽았다. 한 번은 김제동이 안철수에게 물었다. "조금만 힘이 있어도 타인 지배의 쾌감이 있다. 그런 힘을 자랑하고 싶지 않은가?" 안철수는 영화 <스파이더 맨>의 대사를 인용했다. "큰 힘에는 늘 큰 책임이 따릅니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이 가진 힘에 책임감을 느끼고 정의를 위해 싸웠다. 안철수는 자신의 성공을 사회의 빚이라 여긴다. 그는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책임감을 느끼며 비정상적인 현대 사회의 피라미드를 바로잡고자 노력한다.
한반도 안에는 기업, 세대, 학벌, 지역, 가문 등 수많은 단절된 울타리가 있다. 안철수는 이를 '갈라파고스 섬'과 '동물원'에 비유했다. 단절된 울타리를 깨려면 울타리들을 묶을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안철수는 울타리 안에서만 서로 밀고 당겨주고 울타리 밖에서는 가혹할 만큼 상대방을 짓밟는 문화를 꿰뚫어 보고 이를 걷으려는 노력을 해 왔다. 그는 자신을 낮추어 기부 재단을 세웠고, 컴퓨터 백신을 무료 배포하고, 사원에게 주식을 배부하는 등 쉼 없이 자신이 가진 것을 사회 구성원과 공유하고자 노력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며, 대중에게는 꼰대노력을 하는 지도층과 달리 타인에게는 따뜻하게,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행동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무장한 소프트 파워가 탈권위주의를 주도하는 시대적 상황에 안철수의 수평적 소통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고 있다. 제2부 나눔과 소통, 함께하는 미래
내 성공은 사회의 빚, 내가 가진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다
안철수는 말했다.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부채의식이다." 안철수는 부자다. 그는 의사였고 대한민국 IT 업계의 기린아였다. 그런 그가 자신을 빚쟁이라고 한다. 무슨 빚을 졌기에 그런 말을 했을까? 그의 빚은 물질이 아닌 심리적인 것이다. 김제동이 20대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묻자, 안철수는 "미안하다."라는 한마디로 답했다.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마땅한 취직자리를 찾지 못한 청춘들에게 미안하고, 창업을 해 꿈을 펼치고 싶지만 기득권의 촘촘한 방어망에 걸려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성공한 한 사람으로서 한없이 미안하다는 것이다. 이런 미안함이 그로 하여금 사회 구조를 개혁할 수 있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했다.
리더십은 채무자 의식과 채권자 의식으로 양분할 수 있다. 채권자 의식을 가진 리더는 자기 자리가 오직 개인의 노력만으로 달성된 것이므로 대중은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고 본다. 이와 달리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임을 자각한 리더는 채무자 의식을 갖는다. 그가 설사 자수성가했더라도 그 노력이 결실은 맺은 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그래서 자신은 사회에 빚을 진 사람이며, 그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가 말한 부채의식이다. 부채의식을 가진 리더는 어느 상황에서든 자신의 이익보다 일 자체가 우선이다. 의사를 그만두고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를 택할 때 안철수는 "의학 분야는 내가 없어도 별 탈 없으나 컴퓨터 바이러스 분야는 내가 있어야만 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변화를 선택할 때 그의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 그 일에 내가 필요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가? 둘째, 의미가 있는가? 셋째, 재미가 있는가? 그가 대선 후보로 선뜻 나서지 않는 이유도 대통령에 당선되느냐 안 되느냐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신보다 더 잘할 사람이 있느냐, 또 자신이 나서서 잘해 낼 수 있느냐 하는 고민을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여느 정치인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개인의 성공은 사회가 준 선물이다
"왜 안철수냐고요? 그는 깨끗하게 성공했으면서도 따뜻한 사람이잖아요."
"그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어떤 사람이든 그 존재가치를 인정해 줘요."
안철수를 지지하는 이유를 물을 때 제일 많이 나오는 대답이다. 마흔을 넘은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안철수는 어떤가? 관상학을 모르는 필자에게도 그의 둥글둥글 모난 데 없는 외모는 후덕하게 보인다. 그런 외모에 걸맞게 그가 살아온 길도 모난 데가 없다.
재벌 회장이나 전직 대통령 등 기득권층은 기를 쓰고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부를 자녀에게 상속하기 일쑤다. 그러나 안철수는 다르다. 그는 정직하게 일군 안철수연구소의 보유 지분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고자 했다가 적대적 인수합병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는 주변의 만류 때문에 절반만 기부했다. 재단 이사장은 안철수와 사적인 인연이 전혀 없는 여성운동계의 대모 박영숙이다. 물론 안철수도 그의 성공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성공을 100% 개인화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는 사회가 자신에게 기회를 준 데 감사하고, 자신이 그 기회를 누림으로써 다른 사람이 그 기회를 못 가졌을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가 거액을 기부하자 정치권에서는 안철수가 정치 참여를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가 별다른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지 않자 호사가들은 그에게 정치 감각이 부족하다, 권력의지가 약하다 등등 별의별 평가를 내놓았다. 그래도 안철수는 묵묵부답이다. 자신의 기부가 생색을 내려는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지켜 온 삶의 한 원칙일 뿐인데 이를 지나치게 과장되게 해석하는 외부의 반응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리더는 인간을 움직이는 동기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의 정치인은 그동안 입으로만 동기 부여를 했다. 일단 당선되고 나면 선거철에 남발한 선심성 구호를 제대로 이행하는 후보는 드물다. 사람들이 솔선수범하는 리더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솔선수범의 동기 부여는 주도적 동기 부여다. 어느 분야든 천재는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는 "외적 보상을 쫓지 말고 자신이 즐기며 지적 만족을 주는 일에 몰입하라."라고 했다. 그래야 창의적인 업적을 이루며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골프 선수는 게임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골프 자체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한다.
외재적 동기로 정치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국가를 수익 창출 모델로 보고 어마어마한 인센티브나 챙길 국가 정책을 모색하게 된다. 왜 우리 대통령들은 재직 당시나 은퇴한 후나 거액의 로비 자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까? 그 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스웨덴 국회의원들은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미국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급여를 삭감하는데 유독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각종 특혜와 특권을 누리면서도 스스로 국민의 종복이라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이처럼 사회 모든 분야가 내재적 동기로 일하는 사람보다 외재적 동기, 특히 물질적 보상을 노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면 총체적 부실 사회가 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는 내재적 동기로 성공 사례의 대표 모델을 제시했다. 지도층의 행태에 염증이 난 사람들에게 안철수의 행보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실패를 용인하는 관용이 혁신의 싹을 틔운다
사실 안철수는 성공이라는 말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안철수 자신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성공 기준은 남이 아니라 '어제의 안철수보다 나은 오늘의 안철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공을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 생각하다. 그러나 대다수 한국인들의 성공개념은 완료 지속형이다. 이미 성공했으므로, 그리고 주류에 들어왔으므로 그때부터 그동안 억눌렸던 설움을 풀기 위해, 주류 사회에 편입해 줄 세우기를 하고 비주류의 체면을 깎고 비웃는 재미로 산다. 우리끼리 경쟁이 아닌 전 세계적인 무한 경쟁 시대에 이런 심리는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하나의 잣대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는 한국적인 줄 세우기는 이제 끝나야 한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가족 사이에 오직 하나의 잣대가 아닌 다양한 잣대가 허용되어 각자 자유롭게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한국의 문화 풍토가 개선되어야 한다. 국민들은 비주류나 주류나 아무런 차별을 느끼지 않는 사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패자 부활이 가능한 열린 사회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한 번 주류가 지겹도록 장기간 주류의 자리를 지키는 철밥통 사회를 지금의 지도층은 바꾸려 하지 않는다. 여기에 국민은 진절머리를 내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 사회는 성공한 1%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99%의 서민을 자신 아래 묶어 두려 한다. 이런 사회 구조에서는 개인의 창의력이 발휘되기 어렵다. 안철수는 실리콘밸리를 언급하면서 기득권 공고화 사회를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실리콘밸리가 성공의 요람이라 잘못 생각하는데 그곳이야말로 1%만 성공하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 문화와 다른 점은 실패한 99%가 어떻게 하면 다시 도전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 기회를 주는 실패의 요람이다." 실패와 성공은 늘 함께한다. 에디슨 같은 발명가도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것을 깨달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야 사회도 발전한다. 거대 권력을 갖게 되더라도 따뜻한 바람처럼 서민을 위로해 주며 칠전팔기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 그런 지도자가 절실하다.
제3부 허울을 벗고 인간 본연의 정서로 회귀하라
기득권 과보호, 인간의 초자아를 억누른다
인간의 초자아는 집단 초자아와 개인 초자아로 구분된다. 무의식은 욕망의 덩어리고 초자아는 도덕과 당위성의 덩어리다. 개인의 초자아는 자제력을 기르는 가운데 형성된다. 양심이라 불리는 초자아는 부모의 양육 방식에 따라 형성된 뒤 교육, 종교 등 사회문화적 규범이 덧붙여지며 내면화된다. 따라서 초자아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오선악을 외부의 관점에서 판단한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가치, 도덕, 윤리를 습득해야 한다. 이것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초자아 속에 형성된 양심과 자아 이상이 객관적으로 올바른지는 관계가 없다. 사회와 시대가 건전해야 개인의 양심인 초자아도 바르게 형성된다. 기득권이 과보호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초자아는 억눌려 뒤틀려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안철수는 이렇게 말했다. "로마 등 한 나라의 멸망 과정을 보면 그 공통점은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고, 기득권이 과보호되며 사회 전반적으로 부패가 만연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기존 정치권의 거의 모든 정책이 기득권을 위한 것임은 그들도 알고 우리도 안다. 기득권이 지나치게 공고한 사회는 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는 개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