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
문국진 지음 | 글로세움
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
문국진 지음
글로세움 / 2012년 8월 / 256쪽 / 14,800원
제1장 사인구명과 검시제도
복지국가의 목표는 사인구명에 있다
사람이 사망하는 경우 국가는 의사로 하여금 모든 주검을 검시하게 해 그 죽음을 확인한 후에 사망증명서를 발부하도록 하고 있다. 그 사인이 병으로 인한 자연사인 경우에는 사망진단서만으로도 그 개체의 법적 지위, 권리 및 의무가 말소 처리되지만, 변사인 경우에는 그 죽음에 국가가 개입, 관여하게 된다. 이것을 검시라고 한다.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국가는 인권이 침해된 죽음의 경우 침해된 개인의 권리를 바로잡기 위해 사인을 규명한다. 특히 최근에는 복지국가가 지향하는 목표를 살아 있는 동안의 복지뿐만이 아니라 국민이 사망할 경우 그 사인을 정확히 구명하는 것을 필수조건으로 하고 있다. 이는 사망자 개인 및 이와 관련된 사람들의 모든 권리의 적절한 정리, 그리고 사법작용으로서의 사회질서 유지에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사람이 죽을 때 인체 내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사인이라고 한다. 의학적으로 사인은 죽음과 관계된 신체 변화를 근거로 분류한다. 죽음은 사회적으로 자연사(natural death), 사고사(accident death), 자살(suicide), 타살(homicide)로 분류된다. 그런데 사인은 분명하게 밝혀졌지만 사망의 종류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특히 사고사와 자살의 구명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자살을 사고사, 타살 또는 병사와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병리학적 변화나 소견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의도가 있었느냐에 대한 증명을 필요로 한다. 죽은 자의 의사표시가 중요한 것이다.
조상의 문화 속에서 살아 오늘에 이르다
우리나라 검시제도는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검시제도를 뒷받침한 것은 1438년 발간된 『신주무원록』으로 중국 『무원록』을 번역한 책이다. 무원록은 중국 원나라 왕여라는 학자가 지은 시체 검시를 위한 법의학 서적이다. 이 『신주무원록』의 지식을 토대로 이를 완전히 소화해 우리의 사정에 맞게 개편하여 편찬한 것이 『중수무원록』이다. 『중수무원록』은 훌륭한 검시 지침서였고, 조선시대의 검시는 이 서적에 근거해 실시되었다.
더 훌륭했던 것은 검시제도이다. 어떤 사건으로 사람이 죽으면 초검관이라는 관리가 검시를 했다. 초검관은 율관과 의관을 대동하여 시체 소재지에 가서 검시를 하고, 결과 보고서를 상부관에게 제출하였다. 동시에 인근의 지방관에게 제2차 검시를 의촉하였다. 제2검시를 복검이라 하고 이를 집행하는 관리를 복검관이라 하였다. 복검관은 검시를 마친 후 독자적인 보고서를 상부관에게 제출하였다. 상부관은 초검관과 복검관의 의견이 같으면 그것으로 사건을 처리하지만,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에는 삼검관을 보냈다. 3검으로도 의견이 갈리는 경우에는 4검, 5검도 실시했다고 한다. 이렇듯 당시 검시제도는 민주적이고 매우 우수한 제도였으며 벼슬아치가 되려면 반드시 『무원록』을 공부해야 했다.
검시 결과는 42가지의 사인으로 분류했다. 놀라운 것은 검시 방법 중에서 지금도 충분히 활용될 만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중독사를 판단할 때 은비녀를 조각수로 깨끗이 씻어 시체의 목구멍 안에 넣고 입을 종이로 오랫동안 밀봉한 뒤 이를 꺼내보아 만일 그 색이 푸르거나 검게 변하였으면 다시 조각수로 비녀를 씻어 본다. 그래도 그 빛깔이 없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독약을 먹고 죽은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은채법'이다. 이처럼 우수한 검시제도와 방법들이 있었지만 부검을 실시하지는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의 각 나라들이 문화적인 요소, 즉 신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는 사상 때문에 감히 부검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외부 검사만 했던 것이다. 그 당시 우리 사회가 부검을 허용했다면 아마 서양 의학을 능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권을 보호하는 전문 검시제도가 요구된다
검시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법률적인 판단을 위해 시체 및 그 주변현장을 포함한 종합적인 조사행위를 말한다. 대상은 자연사가 아닌 변사에 한하며, 주체는 형사소송법 제222조에 의한 검사이다. 검시는 사법경찰관이 대행할 수 있도록 하며 시체가 발견되면 검시의 집행은 대부분 경찰관이 하게 된다. 이때 사법경찰관은 검시의 집행을 책임지며, 이를 대행검시라고 한다. 사법경찰관은 변사체를 검사함에 있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변사체의 검안, 탈의, 지문채취, 사진 촬영, 유류품 조사 등은 허용된다. 그러나 시체의 해부, 신체 일부 절단 같은 처분은 검시 단계에서 허용되지 않으며 범죄를 인지한 후 검증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
범죄에 관련될 우려가 있는 변사의 경우 대행검시한 경찰관이 검사에게 보고하고 지휘를 받는다. 검시조서를 검토한 검사가 부검 필요성을 판단하는 경우에는 법원에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한다. 사인 규명을 위해 필요하니 국가가 시체를 압수해서 부검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서이다. 판사가 영장을 발부하면 검찰(또는 경찰)은 이를 근거로 의사에게 부검을 의뢰한다. 이것이 현행 우리나라에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한 검시과정의 줄거리이다. 검시제도는 나라마다 법체계와 여건에 따라 특성이 있으며 다양하다. 공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죽음에 대한 조사가 전문화되어 국민의 억울한 죽음을 없애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검시는 시체를 원형대로 검사하는 검안과, 해부를 통해 사인을 구명하는 부검 두 종류가 있다. 부검을 위해서는 검안소견이 필요하다. 검안을 통해 부검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검안을 시행하는 데 있어 그 대상이 어떤 시체이건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자격을 가졌으면 가능하다. 그러나 해부의 경우에는 비록 의사 면허를 소지하였다 할지라도 원칙적으로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범죄와 관련된 부검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대량재해, 보험관련 사건, 뇌사자로부터의 장기이식, 독거고령자의 이상 시체 증가 등 그 사인을 정확히 규명해야 할 시체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범죄수사를 위한 사법검시만으로는 이러한 사회 환경 변화나 국민의 권리옹호를 위한 사인구명은 묵과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하루속히 사법 및 행정검시 모두가 가능한 검시만을 전담하는 전문직 검시체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
제2장 사인구명 체제의 허점과 뒷이야기
아직도 두벌주검이 문제인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 중에 '두벌주검(한글사전에서는 해부한 송장을 일컬음)'이라는 용어가 있다. 시신에 칼을 대어 부검하면 두 번 죽은 것이라고 믿는 데서 나온 말인 것 같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의 뇌리에는 '사람이 한 번 죽는 것도 억울한데 왜 한 번 더 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이런 연유로 유족들은 부검 자체를 거부해 왔다. 우리나라 부검률이 외국에 비해 매우 낮은 것도 이러한 인식이 크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환자가 생존 당시에 앓고 있었던 병에 대한 진단이 과연 정확했는지, 그 질병에 사용된 약물이 효과적이었는지는 사후 부검을 통해서만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부검 결과에 의한 의료행위의 비판과 반성, 이에 따른 시정이 반복되어야 의학이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부검이 여의치 못해 남의 나라 통계를 이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의학발전을 위한 부검은 고사하고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부검의 경우마저 두벌주검이라는 인식 때문에 부검을 거부하기 일쑤이다.
미국 뉴욕대학에서 연구할 때 경험한 일이다. 하루는 LA에서 장거리 전화가 걸려 왔다. 내용인즉 자신은 내과 의사인데 아버지가 뉴욕에서 살다가 오늘 아침 돌아가셨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생존 시에 위암과 같은 증상을 보였으므로 아버지를 부검해 정말 위암이었는지를 확인하고, 자신과 자식들은 이에 대비해야 하니 결과를 알려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전화를 받은 나는 한국에서 겪었던 대조적인 사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조부모의 보살핌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농사일을 하던 P군이 있었다. P군은 이웃집 J양을 사귀고 있었는데 J양 집에서는 두 사람의 교제를 못마땅해 했다. 하루는 두 사람이 밀회를 하다 J양 아버지에게 들켰고, P군은 J양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았다. P군의 할아버지가 이에 항의하자 이번에는 J양 어머니가 "누가 부모 없이 자란 싸가지 없는 자식을 사위로 삼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말은 들은 P군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뒷산에서 목매달아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P군 몸에는 많은 상처가 있었고, 또 목을 맨 높이가 자신의 키보다 훨씬 낮은 나뭇가지였다. 동네에서는 J양의 아버지가 불량배를 시켜 폭행을 가하다 죽으니까 자살을 가장해 목을 매달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경찰은 부검하여 자살 및 타살 여부를 규명하기로 하고 나에게 의뢰해 왔다. 내가 현장에 도착하여 시체의 사진을 찍고 메스를 들고 절개하려는 순간 "안 된다."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도끼가 번쩍하면서 꽝하는 소리와 함께 간이식 해부대가 동강났다. "두벌주검을 시킬 수는 없다. 안 된다." 영문을 모르는 내가 고개를 돌려보니 P군의 할아버지가 도끼를 쥔 채 경찰에 의해 저지당하고 있었다. 부검하는 의사를 도끼로 내려치면서까지 부검을 반대하는 노인과 아버지의 부검을 간절히 부탁하는 어떤 미국인, 너무나 대조적이지 않은가. 아직도 팽배해 있는 두벌주검 때문에 부검을 거부하는 우리의 생각이 고쳐지지 않는 한, 우리나라 법의학의 발전은 어려움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돌연사는 의심과 미련을 남긴다
건강한 몸으로 생활하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경우 이것을 돌연사라고 한다. 돌연사는 본인이나 주위 사람들이 전혀 예기치 못한 가운데 갑작스럽게 죽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왜 죽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돌연사의 경우는 일반적인 병사와 달리 의학적인 판단만으로는 죽음이 정리되지 못하고 대개 법적인 개입을 요하게 된다.
N씨는 종합상사의 경리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중년 신사이다. 업무도 잘하고 대인관계도 좋아 회사에서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하루는 점심식사를 마친 후 몸살 기운을 느껴 근처 병원을 찾아서 K의사에게 말했다. "몸살인 것 같으니 몸이 잘 풀리는 주사 한 대 놔 주시오." K의사는 뚜렷한 나쁜 소견이 없어, N부장의 말대로 포도당에다 진정제와 비타민제를 섞어 주사하라고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그런데 주사를 맞던 N부장의 입술이 파래지고 맥박이 약해지더니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다. N부장이 돌연사를 하자 회사 직원들은 N부장의 시체를 부검하여 병원 측의 과실 유무를 따지게 되었다. 부검 결과 N부장의 심장은 죽을 만큼 썩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으며 죽음 직전까지 몸살 정도의 증상만 나타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실제로 몸에는 죽을 정도로 심한 병변이 그 몸 안의 복잡한 내부구조를 통해 외부로 투영되기 때문에 다면적인 증상을 띠게 된다. 이런 현상 때문에 환자 가족이 흥분해 의사를 괴롭히는 일이 종종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검 의사가 사인을 설명할 때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돌연사의 기전을 설명할 때이다. 난처한 것은 유족들은 설명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귀를 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답답한 경우가 자주 생기며,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의사를 불신해 버리기 일쑤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슬픈 현상으로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무소견 부검은 부패한 시체에서 높다
변사체 부검에서 집도의사가 가장 어려움을 겪을 때는 부패된 시체를 부검하는 경우이다. 부패시체는 해부해도 뇌를 비롯한 장기가 이미 부패로 망가졌기 때문에 사인이 된 소견을 찾아낼 수 없다. 그렇다고 부패시체를 마다할 수는 없다. 법의학의 사명은 정확하고 공정한 사인구명에 의한 국민의 권리옹호이다. 따라서 썩은 시체나 그렇지 않은 시체나 똑같이 취급해야 하지만 솔직히 부패시체의 해부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법의관 또는 검시관과 같은 전담 검시제도가 실시되는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겸임 검시제도의 나라보다 부패된 시체를 부검하는 경우가 훨씬 적다. 변사보고가 법의관 또는 검시관에게 직접 들어오고, 그러면 그들은 즉시 현장에 출두해 부검 여부를 그 자리에서 결정해 부검에 해당하는 경우 현장검증을 마치고 그대로 부검실로 운반해 부검에 착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변사신고는 경찰이 접수하고, 경찰관이 출두해서 검시조서를 작성해 검사의 지휘를 받아 만일 부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법원에 시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한다. 이를 검토해 영장이 발부되어 의사가 부검을 하기까지 48~72시간이 필요하다. 여름날 현장보존 때문에 시체가 2~3일 방치되는 경우 시체가 많이 부패하여 사인구명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는 것이다. 시체의 부패와 관련해 사회적인 문제로 등장한 것이 '고독사'이다. 저출산, 고령화 영향 탓에 독거노인이 죽어서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거나 동거인이 있어도 장기간 방치되어 부패가 심한 상태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경우 의사는 부패로 인한 사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인불명' 또는 '고독사'라는 사인의 시체검안서를 발부한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판단이 어렵다고 사고나 타살의 가능성이 100% 없는 것은 아니다. 고독사한 사람 중에는 죽을 때까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던 사람도 있다. 노인의 섭생과 간호를 포기해 죽을 때까지 방치한 경우도 있어 유족을 살인용의로 체포했다는 보도를 보면 '고독사'를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곤 한다.
사건 현장의 확인이 어렵다
모든 사건의 시체 발견 현장에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법의학적 증거물이 남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건 현장을 보지 못하고 시체만을 부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따라서 검시를 하는 의사들에게 사건 현장의 검사는 필수적이며 이것이 가능해질 때 우리나라의 과학수사는 보다 발전할 수 있다. 검시관이나 법의관 제도를 실시하는 다른 나라에서는 부검 실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수사관의 현장검시에 앞서 검시관 또는 법의관이 먼저 현장을 보고 나서 부검 여부를 결정한 후 일반수사관이 투입된다. 다음은 현장검사를 하지 않고 부검하다가 사인불명으로 처리될 뻔한 사례이다.
여관에서 중년 남자의 변사체가 발견되어 부검을 하게 되었다. 종업원에 따르면 그 전날 투숙한 남자는 저녁을 먹겠다고 나가서는 밤늦게 어떤 여자와 같이 들어왔다고 한다. 새벽이 되자 여자는 나가 버렸고, 남자는 점심때가 되도록 인기척이 없어 방문을 열어 보니 죽어 있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시체를 부검한 결과 청산염 중독이었다. 그렇다면 청산을 자기가 먹었는지 아니면 동숙했던 여자가 먹였는지가 수사의 초점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소지했던 지갑에는 돈이 하나도 없었고, 손목에는 시계 자국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수사관들은 함께 여관에 왔던 여인을 의심하였다. 현장 사진을 보니 시체 옆에 컵 세 개가 있었는데 모두 깨끗이 비어 있었다. 그 컵 세 개를 증거물로 확보해 독물검사를 의뢰하였다. 그리고 나는 자살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청산염을 사용해 타살하는 경우 마시게 하던 커피나 주스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게 마련이지만, 자해행위일 경우에는 이미 각오한 일이기 때문에 많은 물을 입에 넣어 컵을 거의 비우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 세 개의 컵 중 하나에서 청산염 반응이 나왔다. 경찰이 문제의 여인을 찾아 문초를 하자 여인은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그 사람이 죽으려고 마지막 선심을 썼군요.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주고서도 모자라 차고 있던 시계까지 주더군요." 그렇다. 남자는 이미 죽을 결심을 하고 마지막 선심을 쓰고 간 것이다. 이러한 사건은 부검 의사가 처음부터 현장을 검증하고 부검을 했다면 쉽게 풀릴 수 있었던 사건인데, 후에나마 증거가 확보되고 동침했던 여인을 찾을 수 있어 자살로 처리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