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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음식물의 절반이 버려지는데 누군가는 굶어 죽는가

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 발렌틴 투른 지음 | 에코리브르
왜 음식물의 절반이 버려지는데 누군가는 굶어죽는가

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 발렌틴 투른 지음

에코리브르 / 2012년 7월 / 368쪽 / 18,000원





1부 소비의 광기와 폐기하는 사회



음식은 삶이다

복지사회에서 식품이 얼마나 낭비되는지를 내가 처음으로 예감했을 때가 열여덟 살이었다. 당시에 내 취미는 쓰레기통에 버려지기 전의 싱싱한 복숭아를 모으는 것이었다. 바나나, 키위, 샐러드용 채소, 버섯, 오이 등등 매일 뭔가 다른 게 있었고, 나는 오직 망이나 상자에서 썩은 제품을 골라서 버리는 일을 했을 뿐이었다. 내가 시장에서 남은 찌꺼기들을 가지고 왔다고 얘기하자, 어머니 카타리나는 상당히 낯선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그건 도둑질이야!"라고 말했다. 어머니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전쟁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처럼 빵을 절대 버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먹다 남은 빵을 버리는 것을 죄라고 여겼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가족은 독일어를 말하는 소수민족에 속했는데, 그들은 16세기에 당시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런데 1944년에 불행이 닥쳤다. 러시아 군대가 발칸을 점령하자, 유고슬라비아 유격대들이 독일계 민족들을 감금하여 피비린내 나는 보복을 하려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당시에 여섯 살이었는데, 당신의 어머니(외할머니)와 함께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1일 배급량은 약간의 보리를 넣어서 끓인 희멀건 콩 수프에 옥수수빵 한 조각이었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서로 분리 감금되었지만, 어머니의 어머니는 며칠에 한 번씩 아이들이 감금된 곳을 찾아가서 음식을 건네주었다. 자식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 어머니의 어머니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너무나 굶어서 허약해진 나머지 장티푸스에 걸려 며칠 만에 돌아가신 것이다. 어머니는 그사이 일곱 살이 되었지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빵 한 조각의 가치를 평생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경제기적을 이뤄내고 음식이 절대 부족하지 않은 독일에서 수십 년을 살았음에도 말이다. 아무튼 전쟁은 우리 부모님의 모든 경험을 압도할 정도로 비극적이었고 따라서 우리도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배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독일은 매년 2,000만 톤이나 되는 음식물을 쓰레기로 버리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나는 2009년에 영화 <쓰레기 맛을 봐>프로젝트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는 소위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로 시작했지만, 곧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으로 인해 주의를 끌지 못했다. '왜 우리 사회는 그토록 엄청난 양의 음식을 버릴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쓰레기 맛을 봐>는 전형적인 다큐멘터리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 왜냐하면 조사를 해보니 이미 식품을 폐기하는 문제를 다루는 많은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프로젝트는 삶의 기본이 점점 평가절하되는 현실에 공동으로 항의하는 확성기가 될 가능성은 있었다.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가능할까? 그럴 수도 있지만 필름 하나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고, 캠페인을 펼쳐야만 한다. 캠페인의 주요 내용이 필름에 담겨 있어야 하고 이 내용이 영화관과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이 책에도 소개되어야 한다. 우선 나는 이 문제가 왜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규모를 고려해볼 때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먹는 양만큼을 버리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생산된 식량의 50퍼센트가 밭에서 식탁으로 오는 가운데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낭비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규모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내 눈을 열어준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슈퍼마켓 컨테이너를 뒤져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꺼내는 일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젊은 정치운동가이자 쓰레기통을 뒤지는 이들이었다.

음식은 쓰레기가 아니다

옌스가 녹색 컨테이너 뚜껑을 열었을 때 냄새 때문에 우리 둘 다 고개를 돌렸다. "악취는 밑에서 올라오는 거야"라고 쓰레기통을 뒤지던 그가 말해주었다. "위에 있는 것들은 전혀 상하지 않았어. 여기, 홍당무 한 다발을 봐!" 그럼에도 홍당무는 쓰레기와 함께 있어서 그런지 역겹기는 했다. "물론 깨끗하게 씻어야 해. 나도 썩은 건 먹지 않거든." 옌스는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옌스는 계속 뒤져서 콜라비, 오렌지가 들어 있는 망, 비닐 속에 들어 있고 전혀 상하지 않은 파프리카 세 개를 찾아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비닐봉지에 넣었고, 그 위에 꽃다발을 얹었다. 이 꽃다발도 쓰레기 컨테이너에 들어 있었다. 왜 슈퍼마켓은 그야말로 아무 하자 없는 물건들도 버리는 것일까? "아마도 신선한 제품이 도착했는데, 진열장에는 자리가 없어서 그냥 버렸을걸", 옌스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좀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글쎄, 힘들지 않을까 싶어. 우리는 항상 가득 찬 진열장에 익숙하잖아."

옌스는 계속했고 나는 뒤를 따랐다. 첫 번째 컨테이너는 뚜껑을 열어볼 수 있는 곳에 있었지만, 이번에는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이 등장했다. 3미터 높이의 금속 문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바닥에 납작 누워 문 밑에 나 있는 틈 사이로 팔을 하나 집어넣어 상자 하나를 끌어당겼다. 훈제 연어와 홍합이 진공 포장된 상태로 있었다. 생선과 해물은 잠시만 냉동하지 않고 두어도 상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오늘 밤에는 기온이 0도 정도였으니 옌스는 아무 걱정 없이 음식을 가져가도 되었다. "생선 한 마리와 홍합 한 팩이면 충분해.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도록 놔둬야겠어."

집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설현장의 컨테이너에 돌아오자 옌스는 커다란 냄비에 물을 부어 전기 레인지 위에 올렸다. "홍합부터 일단 삶아야겠어. 유통기한이 내일이면 끝나거든." 국물에 채소를 약간 넣고, 후춧가루와 백포도주, 그리고 생화를 식탁 위에 올렸다. 이렇게 멋진 식탁을 차리자 옌스는 금세 음식을 향유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옌스는 벌써 10년 넘게 음식을 쓰레기 컨테이너에서 가져오는데, 가난해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그는 직업 교육도 받아서 철물공으로 일했지만, 공장에서 이 일을 하면서 늙고 싶지 않아 철물로 예술품을 만드는 일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로 생계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옌스가 사는 방식은 빈자의 삶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스타일이었다.

"이것마저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지." 옌스는 불만을 털어놓았다. "큰 할인매장은 쓰레기를 압착해서 버리거든. 그러면 주울 게 없다니까." 이보다 더 화나는 일은, 슈퍼마켓이 아무도 가져가지 못하도록, 먹을 수 있는 물건에 염소나 화학물질을 뿌리는 것이란다. "미친 세상 아냐? 식품에 독을 뿌리는 것은 허용하고, 컨테이너에서 식품을 가져가는 일은 금지하는 세상 말야." 독일 법에 따르면 식품이 이미 쓰레기통에 들어가더라도 슈퍼마켓의 재산이라고 한다. 따라서 쓰레기통에서 식품을 꺼내가는 사람은 쓰레기통을 털어가는 도둑인 셈이다.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이미 독일 법정에서 여러 차례 판결이 난 바 있다. 예를 들어 작센 주에 있는 되벨린에서 이런 판결이 나왔다. '약식 처벌 명령. 2010년 4월 13일 피고인들은 …… 자신들이 사용할 목적으로 …… 커다란 쓰레기통에서 포장된 여러 개의 식료품을 가져갔다. 검찰은 형사소추에 대한 공공의 특별한 관심 때문에 단호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바이다.' 그러나 두 피고인 프레드릭과 크리스토프는 일일 할당 벌금액 10유로를 10~20일 동안 지불하라는 벌금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음식물 폐기를 반대하는 자신들의 노력에 대중들이 관심을 갖도록 벌금형이 아니라 징역형을 감수하려고 했다.

그들의 항의는 정치성을 띠었다. "전 세계에서 매일 영양실조로 2만 명 이상이 죽어가는데, 매일 식량을 폐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범죄와 같다!" 두 사람은 자신들을 도와줄 무리를 얻었는데, 이 무리는 공판이 있는 날 행동으로 보여줄 계획이었다. 텔레비전 팀이 변장을 하고 되벨린의 광장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홍당무를 마이크로 사용해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 지구상에 참으로 기묘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에 쓰레기통 안에 있는 물건을 훔쳤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재판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행동으로 지나가는 여성 행인 몇 명이 정말 재판장에까지 오게 되었다. 그들이 법원에 도착했을 때,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

행동주의자 두 명이 유서 깊은 법원 건물 앞에 있는 깃대로 기어 올라가 현수막을 펼쳤다. "쓰레기란 무엇인가? 식료품 폐기를 멈추어라!" 급히 소방차를 불렀으나 이미 늦었다. 경찰들은 깃대에서 내려오게 하려 노력했으나 행동주의자들은 거절했다. 재판관들은 약간 지체하다가 '쓰레기통을 뒤진 도둑'에 대한 재판을 하기 시작했다. 판사는 피고인들이 변호사 없이 참석했지만 법률 지식이 결코 없지 않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재판은 14시가 조금 넘어서 시작되었다. 프레드릭과 크리스토프는 엄청난 자료를 가지고 원래 1시간으로 정해져 있던 재판을 22시까지 끌고 갔고, 마침내 판사는 지쳐서 포기하고 재판을 연기하고 말았다. 이런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지방에서 벌어진 익살극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일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로부터 6주도 채 지나지 않아 뤼네부르크 법정에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났다. 피고인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비스킷을 훔쳤다. 버린 비스킷을 훔친다는 게 말이 될까? 물론 몇몇 판사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이용해서 이런 일은 지극히 사소한 사건으로 간주하여 사회봉사나 벌금형을 내리는 데 그친다. 이런 결과는 매우 독일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찍었고 많은 나라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을 만났다. 빈에서도 뉴욕에서도 쓰레기통을 뒤져서 뭔가를 가져갔다고 해서 벌을 주는 판사는 없을 것이다.

<쓰레기 맛을 봐>를 만들기

스웨덴의 연구가 얀 룬트크비스트가 아마도 최초로 전 세계적인 통계를 추정한 사람일 것이다. 즉 전 세계에서 식량 생산량의 절반이 폐기되며, 우리가 먹는 양만큼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토록 많은 국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떤 규칙성이 있을 것이다.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오로지 경영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기업은 가능한 한 제품을 적게 폐기하는 데 오히려 더 관심을 가질 텐데 말이다. 나는 경제단체, 기업, 학자들에게 물어보았다. 독일에서는 그 누구도 얼마를 폐기하는지 말해주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만 대답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폐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틀렸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이 보여주지 않는가. 하는 수 없이 나는 외국에서 조사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2010년 말까지 식량 낭비에 관한 이야기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격렬하게 논쟁을 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에 가두에서 판매되는 대형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아주 작은 지방 신문들조차도 지난 3년 동안 '버리는 광기'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영국에서는 '쓰레기 버리지 않기' 캠페인을 시작하지 않은 슈퍼마켓이 없을 정도이다. 예를 들어서 모리슨스의 경우에 '맛은 탁월하고 쓰레기는 줄이고'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슈퍼마켓 체인점들은 고객들에게 구입할 품목을 미리 계획하여 불필요한 품목을 사지 말라고 요청한다. 또 가능하면 오래 먹을 수 있도록 채소를 보관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그리고 남은 채소로 아주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요리법도 가르쳐준다.

2007년과 2008년에 밀의 거래가가 마구 오르고 이와 함께 대부분의 곡물 가격도 치솟자,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고든 브라운은 제3세계 국가들처럼 식량 확보 문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정부는 "음식을 사랑하고 쓰레기를 미워하자"는 슬로건을 내세워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정부는 동네마다 캠페인을 벌이기 위해 여성단체와 협력했다. 이 여성단체는 '남은 음식의 날(Leftover Day)'을 홍보했는데, 그러니까 과거처럼 그 주에 남은 음식을 그날 소비하자는 얘기였다.

또한 고객들에게 제품을 팔기 위해 '원 플러스 원'으로 판매하는 슈퍼마켓들도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덤으로 준다고 하면 고객들은 물건을 사기 때문이다. 슈퍼마켓 체인 세인즈베리스는 아주 창의적으로 세일을 탈바꿈시켰다. 즉 "오늘 하나를 구입하면, 다음에 다른 하나를 가져가기"이다. 이를테면 빵을 하나 구입하는 사람은 상품권 한 장을 얻게 되는데, 이것으로 나중에 빵 하나를 가져갈 수 있다. 물론 필요할 때. 그리고 마침내 2009년에 당시 노동당 정부는 식품 낭비를 줄일 수 있는 20년 계획을 마련했다. '푸드 2030'이라는 이 계획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량 정책과 관련한 최초의 마스터플랜이었다. 새롭게 정권을 잡은 보수당 정부도 그의 캠페인을 이어받았다.

특히 예민하게 건드린 부분도 있다. 환경부 차관이었다. 힐러리 벤은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되는 유통기한을 언급하며, 상할 수 있는 제품은 'Use before' 기한만 표시해두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이 기한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현재 불필요한 내용 'Best before'나 'Sell by'는 소비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니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환경부 차관은 이렇게 말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식품을 버리는데, 그 식품을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품에 붙어 있는 유통기한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거든요." 사람들은 유통기한(Best before)과 소비기한(Use by)을 혼동한다. 소비기한(육류, 생선과 달걀에만 해당됨)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반면, 유통기한은 기한이 지났다고 해서 못 먹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생산자들은 이 유통기한으로 제품의 품질을 보증할 뿐인데, 이를테면 요구르트는 공장에서 금방 생산했을 때처럼 크림 같다는 뜻이다.

왜 누구도 소비자에게 설명을 해주지 않을까? 상인들은 그런 점에 관심이 전혀 없다. 만일 알게 되면 소비자들은 물건을 더 적게 구입할 것이고, 총매상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생산자들도 마찬가지인데 더 많이 팔고 싶지, 더 적게 팔고 싶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 정치권이야 경제계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우리도 독일에서 캠페인을 벌일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만일 국가가 영국에서처럼 앞장서야겠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단체들이 연대하면 어떨까? 우리는 조사단원과 캠페인을 벌인 사람들로 팀을 모집했고 그들에게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함부르크의 그린피스, 베를린의 옥스팜, '독일 타펠연합'이었다. 또 기독교 개발봉사단, 세계기아원조, 독일자연보호협회, 환경과 자연보호 단체, 슬로푸드를 비롯한 많은 단체들이 동참했고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다.



2부 우리의 소비 태도가 초래하는 전 세계적인 결과



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식사를 빼앗는 것일까

인구증가와 굶주림: 칼로리로만 계산한다면 전 세계 수확량은 모든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 필요한 양보다 3분의 1이 더 많다. 하지만 이는 실제 영양 섭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수확량의 많은 부분이 사람들의 식량으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쌀, 밀 그리고 옥수수의 절반 이상은 가축 사료로 이용된다. 또 정제하거나 연소하여 바이오 연료로 이용되고, 바이오매스로 전기를 만드는 데도 사용된다.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의 추정에 따르면, 지금 이 순간에도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고, 개발도상국에서는 모든 아이들의 3분의 1이 체중미달로 태어난다. 그리고 5분마다 열 살 이하의 아이 한 명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아이들은 영양실조와 질병(설사나 폐렴 등)으로 죽는데, 쇠약해진 아이들의 몸과 면역체계는 그런 질병에 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양실조는 건강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손상을 입히는데, 이는 굶주림과 가난을 더욱 촉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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