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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레이마 그보위 지음 | 비전과리더십
평화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레이마 그보위 지음

비전과리더십 / 2012년 6월 / 383쪽 / 18,000원





1부 절망, 산산조각 나다



모든 일이 시작되기 전

1989년 12월 31일, 우리 가족은 성 베드로 루터 교회 앞마당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열일곱 소녀였다. 내 새해 소망은 여느 십 대 소녀와 다를 것이 없었다. 대학에서 훌륭한 교수님과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불행이 닥치지 않기를 소망했다. 우리가 살던 곳은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의 주택가였다. 우리 동네는 부촌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제법 살 만해서 집집마다 TV가 있었고 욕실과 현대식 주방도 있었다. 최소한 집 없이 떠돌거나 굶는 사람이 없었고 이웃 간의 정이 깊고 인심도 넉넉했다.

라이베리아는 1822년 미국식민협회가 해방 노예와 자유민으로 태어난 흑인들을 아프리카로 이주시켜 만든 식민지였다. 1847년 미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유의 나라’라는 뜻을 가진 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 되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미국과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미국으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배웠기 때문이다. 미국을 모델로 헌법 및 행정 체제를 수립했고, 미국 달러가 라이베리아 공식 통화였다. 미국과는 행정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사이였다. 내 또래들은 미국 드라마를 보며 자랐고, 미국 프로농구 팀 LA 레이커스의 열렬한 팬이었다.

이 나라는 어느 종족 출신인가에 따라 사회 계급이 정해졌다. 미국으로 향하는 노예선을 탔던 사람들, 일명 콩고족과 백인과의 혼혈로 인해 피부색이 밝은 ‘아메리코 라이베리언’들이 정재계의 엘리트층이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더 개화되고 우월하다고 자부하며 바사족, 지오족, 만딩고족, 마노족, 크란족 등 아프리카 토착 원주민들을 멸시했다. 원주민 학교와 교회를 차별하고 그들을 하인으로 부리면서 자신들이 미국에서 당했던 방식 그대로 그들을 천대하고 착취했다.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 부의 불공평한 분배와 착취에 맞서 자신들의 것을 되찾으려는 원주민들의 열망이 분열의 도화선이 되었다.

딸 다섯에 넷째인 나를 아버지는 ‘복덩이’라고 부르셨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라이베리아 국가안보국에 채용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무선통신 수석 기술자 자리에까지 올랐고, 미국과의 연락 업무를 맡으면서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게 되셨다. 부모님 모두 열심히 일하신 덕분에 우리는 생활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아버지는 푸조를 몰고 다니셨고, 우리 자매는 몬로비아의 명문 학교에 다녔다. 아마 그때 우리 집이 동네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오순도순 다정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주말 밤마다 파티나 클럽에 갔고 바람도 많이 피우셨다. 어머니는 순전히 우리 때문에 꾹 참고 결혼을 유지하셨다. 자신이 부모들로부터 겪었던 그 고통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싫어서 차마 이혼할 수 없으셨다고 했다.

소용돌이 속으로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때인 졸업 축하 잔치가 열리던 바로 그 시각, 무장 반군이 코트디부아르 국경을 넘어 라이베리아 북부 님바 주로 쳐들어왔다. 반군의 수장 찰스 테일러는 사무엘 도 정권의 타도를 주장했다. 상황이 꽤 심각해 보였지만, 부모님은 크게 걱정하지 않으셨다. 우리 집에서 님바 주는 3시간 거리였고, 반군의 규모도 작았기 때문이다. 몇 달 후인 1990년 3월, 나는 라이베리아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정부가 님바 주의 반군을 진압하지 못하자 상황은 여의치 않게 돌아갔다. 찰스 테일러가 이끄는 반군은 남쪽으로 계속 진격해 우리가 사는 곳을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사무엘 도는 1980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톨버트 대통령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했다. 사무엘 도는 크란족 출신으로 라이베리아 최초의 비엘리트층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그의 쿠데타가 성공하자 원주민들은 공평한 대우를 받는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사무엘 도는 곧 부패한 폭군으로서의 본색을 드러냈다. 수억 달러를 착복하는가 하면 정적들을 색출해 죽이기도 했다. 사무엘 도가 정권을 잡자 그때부터 어느 종족 출신인가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돈과 권력이 따르는 좋은 일자리는 크란족이 독차지하고, 지오족과 마노족 같은 소수 종족들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원주민들은 분개했고 차츰 저항 의식이 싹텄다. 때마침 찰스 테일러를 앞세운 반대파가 반정부 조직을 만들어 저항하자 국민들은 수만 달러의 지원금을 모아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반군의 수장인 찰스 테일러는 아메리코 라이베리언 출신이었다. 찰스 테일러를 수장으로 하는 반군은 계속해서 몬로비아로 진군해 왔다. 그는 밤마다 라디오에 출연하여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을 자처했다. 사무엘 도 정권 당시 여성으로서 재무부 장관을 지내다 나중에는 그의 부패에 맞서 반대파로 돌아선 엘렌 존슨 설리프도 외국으로 피신한 상태에서 테일러를 지원했다. 그러나 그 시각, 테일러의 밑에서 지휘관을 맡았다가 결별하고 떨어져 나온 프린스 존슨이 반군을 이끌고 몬로비아로 진격해오고 있었다.

몇 주가 지나자 성 베드로 교회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집에서 피신 나온 성도들로 꽉 채워졌다. 당시 미국 대사관에서 꼼짝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우리가 교회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이라고 하셨다.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고 전기가 끊어졌다. 쌀과 식료품이 얼마나 귀하던지 사람들은 아예 ‘금가루’라고 불렀다. 나는 점점 세상이 무서워졌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사람들은 반군이 무자비하다고들 했지만, 정부군 역시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거리 모퉁이마다 시체들로 뒤덮였다. 어른들의 시체 사이에는 아기들의 시신도 섞여 있었다. 피 흘리며 죽어 있는 임산부들도 눈에 띄었다. 온 나라가 힘겨루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예전과 같은 삶이 불가능해질 것이 불을 보듯 훤했다.

전쟁터에서 치른 나만의 전쟁

얼마 후 사무엘 도 대통령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난민촌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1991년 5월,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의 평화유지군이 몬로비아에 들어와, 망명지에서 돌아온 아모스 교수를 수반으로 한 새 정부를 세웠다. 전쟁이 멈춘 것이다. 그동안 여러 곳을 전전하다 가나의 난민촌까지 흘러들어 간 나는 고향집이 그리워 엄마를 졸라 군함을 타고 먼저 고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곧 후회했다. 항구에서부터 죽음과 파괴의 냄새가 진동했고, 몬로비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사람들은 그런 잔해 속에서 살고 있었다. 내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우리 집은 예전의 그 집이 아니었다.

다니엘을 만난 것은 1991년 7월, 몬로비아에 돌아온 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나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방황하며 밤이면 함께 어울려 술 마실 사람들을 찾아서 밖으로 나돌았다. 다니엘은 근사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자며 내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질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다니엘을 만난 지 거의 20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다니엘을 떠올리면 고통스럽다. 물론 인정한다. 우리가 낳은 아이들이 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을 낳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다니엘과 사는 동안 내가 거의 파멸 직전까지 갔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번도 그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 되돌아보면 이해하기 힘들다.

굳이 따지자면, 금전적 안정감이 이유였던 것 같다. 다니엘은 미국 대사관에서 물류관리자로 일하며 미화 800달러의 월급을 받았고 나에게 아낌없이 썼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본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의처증에 폭력까지 휘두르는 그와의 관계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심한 지 불과 2주도 안 돼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니엘의 통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장을 보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반발심을 가졌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모르게 그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전쟁이 끝났다고 믿어도 될 만큼 평온한 생활이 몇 달간 이어졌다. 하지만 외곽에서는 분열된 반군 세력들이 각기 세력을 넓혀 가고 있었다.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던 이름은 역시 찰스 테일러였다. 테일러의 군대는 거칠기로 소문난 데다 행동 패턴도 예측 불가였다. 부하들에게 독한 술이나 마리화나, 필로폰 등을 제공하기도 했다. 1992년 가을 무렵, 테일러의 군대가 공격을 개시하자 평화유지군이 미사일과 박격포로 반격했다. 지축이 흔들리고 건물들이 무너지면서 피 흘리는 사람들이 거리를 달렸다. 결과적으로 평화유지군이 테일러의 군대를 막아냈지만, 실질적인 승리를 거뒀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어쨌든 전쟁 와중에도, 또 잠깐 평화가 찾아온 그 순간에도 삶은 어김없이 흘러갔다. 첫 아이 조슈아를 낳은 후 다니엘과는 사이가 점점 나빠졌다. 한번은 다니엘이 여자를 집으로 데려와 버젓이 관계를 가졌다. 뇌물을 받다가 직장까지 잃은 그는 이따금 나를 때리고 나서 섹스를 요구했다. 내가 거부하면 또 손찌검을 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잠옷이 갈가리 찢긴 채로 성경책을 집어 들곤 욕실로 뛰어 들어가 욕조 안에 웅크리고 앉았다. “하나님, 말씀으로 저를 인도해 주세요.” 나는 잡히는 대로 성경책을 펼쳤다. 그러자 이사야 54장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이사야 54:6)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이사야 54:11)

나는 그 구절을 마음에 새겼다. 그 뒤로 둘째와 셋째 아이를 낳고 10년 동안 이사야 54장의 구절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다시 찾은 현실

다시 촉발된 전쟁을 피해 다니엘의 어머니가 사는 가나의 아크라로 피신해 있던 나는 그곳에서 말할 수 없는 학대와 모멸감 속에서 세월을 보내며 세 번째 아이까지 출산했다. 그러다가 다니엘이 집을 비운 어느 날, 작별인사도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그 집을 나왔다. 버스로 일주일이 넘는 여정을 거쳐 부모님이 계신 페인스빌로 돌아왔다. 돌아오긴 했지만 어떻게 살아갈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조건 부모님께 기대야 할 처지였다. 스물여섯 살이었던 나는 빈털터리 무일푼에 자식이 셋이나 되었다. 게다가 곧 넷으로 늘어나게 될 판이었다. 떠나오기 전부터 나를 감싸던 불길한 예감 그대로 또 임신이었다. 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이 집에서 나가라! 내 집이 무슨 탁아소인 줄 알아!”

1996년 말에 교전 중이던 파벌들이 또다시 협정을 맺었지만, 이미 나라 전체가 파탄에 이른 뒤였다. 이 나라에서 다시 정상적인 삶이 가능해지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1997년 6월, 마침내 선거가 치러졌다. 한때 찰스 테일러를 지지했지만 이제는 맞서는 입장이 된 엘렌 존슨 설리프를 비롯해 몇몇 후보가 출마했다. 그러나 테일러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라이베리아 국민들이 미쳐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교전의 중지였고, 테일러가 나라를 파괴했으니 그가 재건하도록 맡기는 것이 옳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몇 년 후에 우리는 이 잠깐의 평화가 단지 첫 번째 전쟁의 휴지기였음을 알게 되었다.



2부 희망, 부서진 조각을 찾아 기우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을 뜨다

정신이 들자 무엇보다 일자리부터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도움을 청할지 고민하다가 전쟁 중에 잠깐 몸담았던 구호단체의 지부장 툰데를 떠올렸다. 그는 아직 루터교 세계연맹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무실로 찾아간 나를 툰데는 환한 표정으로 반겨 주었다. “당신이 지금 절망에 빠져 있는 걸 알겠군요. 하지만 내 말을 믿어요. 이 시간도 지나갈 거니까요.” 사실 그도 아내와 별거 중이었다. 그 후로 몇 번을 만나면서 툰데는 내게 사랑을 고백했다. 나는 그의 온화한 성품에 마음이 끌렸다.

나는 전에 사회복지사 수료증을 받았던 마더 페이턴 보건대학에서 학사에 준하는 교육 과정이 개설된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런데 가을 학기에 입학 허가를 받으려면 수료증을 받은 후 사회복지사 활동을 했다는 실무 체험 증명서가 필요했다. 때마침 라이베리아 루터 교회와 세계연맹이 공동으로 전쟁 트라우마 치유 및 화해 프로그램(THRP)을 만들어 자원봉사자를 모집 중이었다. 그곳 책임자인 바돌로메 목사님은 선뜻 내게 기회를 주셨다.

나에게 있어서 THRP 자원봉사자가 된 것은 평화건설자의 길로 가는 입문 과정이었다. 사실 평화건설이란 두 대립 세력의 중간에 개입하여 조정하고 조약을 체결하여 싸움을 종식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일이다. 그보다는 전쟁 피해자들을 치유하고 한때 서로 총을 겨누었던 사람들이 인간애를 되찾아 다시금 사회의 생산적인 일원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내가 이런 평화건설자로서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며 배운 것과 만난 사람들 덕분에 내 인생은 바뀌었다.

나는 바돌로메 목사님에게 자극을 받아 사회 개혁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특히 예수를 불의와 싸우고 힘없는 약자 편에 선 혁명적인 인물로 그린 존 하워드 요더의 『예수 정치학』을 비롯해 마틴 루터 킹과 간디, 그리고 케냐 출신 작가이자 분쟁과 화해 부문의 전문가인 히즈키아스 아세파의 책들도 읽었다. 아세파는 현대 사회에서의 분쟁, 특히 내란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화해뿐이라고 썼다. 그러지 않으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영원히 복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책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 불이 번쩍 들어오는 것 같았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

그 무렵 바돌로메 목사님이 나를 일깨우는 조언을 던졌다. 이곳 몬로비아에서도 트라우마 치유가 필요한 대상이 있는데, 바로 소년병이었다가 장애를 얻게 된 아이들이라는 것이었다. 부모들도 받아주지 않아 오갈 데 없어진 아이들은 버려진 건물에 살면서 구걸로 목숨을 이어 갔다. 나는 거기서 아이들의 애인이나 아내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그 여자애들도 거칠기가 남자애들에 뒤지지 않았다. 반군 중에는 여자 전투원들도 있었는데, 개중엔 강간을 당하지 않고 몸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게 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어린 나이에 반복적인 강간에 시달려온 아이들이었다. 그러니 폭력이 그들이 아는 유일한 언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가끔씩 그들도 내가 내 자식들에게 하듯이 제 자식들에게 애정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자식들만큼은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길 희망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몇 년 전의 내 모습을 보았다. 깨진 꿈 앞에서 좌절하고 분노에 차 있던 그 모습을 말이다. 내가 전쟁의 피해자이듯 전쟁은 그 아이들의 어린 시절도 망쳐 놓았다.

여자들의 목소리를 찾아 주다

THRP의 일은 내 가슴속에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때 만난 사람이 샘 도우다. 그는 국경을 초월해 민간 조직들을 연결함으로써 평화를 촉진한다는 목적으로 서아프리카 평화건설 네트워크(WANEP)를 창설한 인물이었다. WANEP는 비폭력을 강조하는 한편 폭력과 전쟁, 인권 침해 등을 해결하는 데 여성들의 동참을 유도했다.

1999년 말, 나는 WANEP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가나에서 열리는 회의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다. 히즈키아스 아세파에 의하면,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네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바로 신과의 화해, 자기 자신과의 화해, 자신이 처한 환경과의 화해, 그리고 가해자와의 화해가 그것이다. 나는 트라우마 치유 워크숍을 할 때마다 아세파의 이 개념을 차용했다. “여러분은 분노, 절망, 상처로 가득한 불행의 계곡에 빠져 있어요. 여러분에게 상처를 준 사람, 아니면 여러분을 강간하거나 여러분의 가족을 죽인 그 사람도 그 계곡에 함께 있지요. 따라서 그에 대한 분노를 버리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용서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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