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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지음 | 베이직북스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지음

베이직북스 / 2012년 6월 / 256쪽 / 9,000원





PART 1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대답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의 시대적 관점을 반영한다. 19세기는 사실을 숭배하는 시대였다. 1830년 독일의 역사가 랑케는 역사가의 할 일은 "오직 틀림없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역설하는 실증주의자들은 "우선 사실을 확인하라. 그런 다음 사실에서 결론을 추출하라."고 사실 숭배를 조장했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모든 역사가에게는 공통되는 기초적인 사실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헤이스팅스 전투는 1066년에 벌어졌다는 사실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역사가가 우선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이와 같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그러한 기초적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확정하는 것은 사실 자체가 지닌 어떤 성질이 아니라 역사가의 선험적인 결론에 의거한다는 것이다. 흔히 사실을 스스로 말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사실은 역사가가 사실에 생기를 불어넣을 경우에만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실에 어떤 순서, 어떤 문맥으로 발언을 허용하느냐 하는 것은 역사가의 소임이다. 우리가 1066년 헤이스팅스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오직 역사가들이 그것을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1880~1890년대 역사에 있어서 사실의 존중과 자율성의 학설에 대한 도전이 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철학자 크로체가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선언했다. 1910년 미국의 역사가 칼 베커는 "어떤 역사가가 그것을 창조하기 전까지 역사상의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사상가 콜링우드는 『역사의 개념』이라는 책에서 "역사철학은 역사 그 자체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과거 그 자체에 대한 역사가의 사상을 다루는 것도 아니며, 상호관계에 있는 양자를 다루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콜링우드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상의 사실은 순수한 형식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나 기록자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굴절되어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책을 읽을 때 최우선 관심사는 그 책이 나타내는 사실이 아니라 그 책을 쓴 역사가가 되어야 한다. 둘째, 역사가는 자기를 다루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 행위의 배후에 있는 사실을 상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9세기 중세사 연구가 빈약했던 이유는 중세 사람들에 대한 상상적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기 종교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고 교육받은 19세기 역사가들이 30년 전쟁(1618년~1648년,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제국 사이에 벌어진 최대·최후의 종교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셋째, 사실은 현재의 눈을 통하지 않고는 과거를 바라볼 수 없고, 또 과거를 이해하는 데 성공할 수도 없다. 역사가는 자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며, 인간 존재의 조건으로 그 시대에 얽매여 있다. 역사가가 사용하는 말 그 자체, 즉 민주주의, 제국, 전쟁, 혁명이라는 말은 그 시대의 뉘앙스를 지니며, 역사가는 이런 말들을 그 뉘앙스에서 분리할 수 없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역사를 사실의 객관적 편집이라 생각하고 해석보다 사실의 무조건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이론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는 역사상의 사실을 밝히고 그것의 해석 과정을 통하여 정복하는 역사가의 주관적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역사가는 자신의 해석에 따라서 자신의 사실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사실에 따라서 자신의 해석을 만들어 놓는 연속적인 과정에 놓여 있다. 따라서 한쪽을 다른 쪽 위에 올려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므로, 이 상호작용은 또한 현재와 과거의 상호관계를 포함한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겠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PART 2 사회와 개인



"사회와 개인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냐?"라는 문제는 닭과 계란의 문제와 비슷하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하나의 사회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며, 그 순간부터 벌써 이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사에 관한 상식적인 견해로 본다면 역사란 개인이 쓴 개인에 관한 기록이다. 실제로 이 견해는 19세기 자유주의 역사가들에게 의해 수용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불충분한 견해이다. 역사가의 지식은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여러 나라에서 그 축적에 참여한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즉 그 행위를 연구하는 당사자들만 하더라도 진공 속에서 행위한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과거 어느 사회의 관계 속에서 또 그것에 충동을 받아 행동했던 것이다.

역사가도 하나의 개인이다. 따라서 그는 여타 개인과 똑같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며, 그가 속한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사회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대변인이다. 그런 자격으로 그는 역사적 과거의 사실에 접근해 가는 것이다. 1840년대 영국의 역사가 그로트는 『그리스사』에서 영국의 진보적인 신흥 중산계급의 소망을 아테네 민주정치의 이상화된 모습에 담았다. 거기서는 페리클레스가 개혁자의 역할을 하고, 아테네는 일시적으로 들뜬 상태에서 제국을 이룬 것으로 되어 있다.

격동기의 역사가들 중에는 그 저작 속에 하나의 사회적 질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질서와 계기를 반영하는 사람도 있다. 독일의 역사가 마이네케가 좋은 사례이다. 그는 1907년 출판된 『세계 시민주의와 민족국가』에서 비스마르크의 독일 제국을 독일의 민족적 이상 실현으로 확신했다. 1925년 출판된 『국가적 이성의 관념』에서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를 대변했고, 1936년의 『역사주의의 성립』에서는 역사적인 상대성과 초이성적인 절대자 사이를 불안한 듯 동요하며 절망스러운 이야기를 하였다. 1946년 『독일의 파국』에서는 역사란 맹목적이고 냉혹한 우연에 좌우되고 있다는 신앙에 맥없이 빠져들기도 하였다. 심리학자라면 개인 마이네케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겠지만, 역사가에게 흥미 있는 것은 특정 시기가 선명한 대조로 연속하여 존재하는 현재를, 마이네케가 역사적 과거 속에 반영시키고 있는 광경이다.

'역사가의 연구 대상은 개인들의 행동인가, 아니면 사회적인 세력들의 작용인가?' 역사에 있어 창조력을 개인적인 천재에게 돌리려는 경향은 역사 인식에서 원시적 단계의 특성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서사시는 호메로스의 것으로 돌렸고, 법률이나 제도는 솔론의 업적으로 돌렸다. 이러한 전통이 이어져 20세기 초까지도 '역사는 위인의 전기이다'라는 것이 여전히 긍정적인 금언이었다. 영국의 역사가인 웨지우드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개인으로서의 인간 행동이 집단이나 계급으로서의 인간 행동보다 더 흥미롭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에 동조할 것이다. '존 왕은 악당, 엘리자베스 여왕은 좋은 군주'라는 학설은 최근 들어 특히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는 두 가지 명제가 결합되어 있다. 첫째 명제는 개인으로서 인간의 행동은 집단 또는 계급의 일원으로서의 인간의 행동과 구별되며, 그중 어느 한쪽을 택하여 논하는 것이 역사가의 정당한 권리라는 것이다. 둘째 명제는 개인적인 인간의 행동에 관한 연구는 그들 행위의 의식적 동기에 관한 연구라는 것이다. 첫 번째 명제와 관련하여 나는 인간을 개인으로 보는 견해가 인간을 집단의 일원으로 보는 견해보다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것은 양자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으려는 태도이다. 하지만 두 번째 명제는 언뜻 보기에 매우 이상하게 생각된다. 인간은 언제나 일반적으로 자기가 완전히 의식하고 있는 동기나 자기가 스스로 인정하는 동기에 의해서 행동하진 않는다. 따라서 무의식적인, 혹은 본인이 시인하지 않은 동기에 대한 통찰을 무시하려는 것은 일부러 한쪽 눈을 가린 채 일을 시작하는 것과도 같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 역사가의 의무라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존 왕의 나쁜 점은 폭군이 되기 위한 그의 탐욕에 있다고 말하는 것에 만족하는 한 여러분은 동화의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인적인 선악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존 왕은 봉건제후의 대두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의 무의식적 도구가 되어 있었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이제 역사적 사건은 개인의 의식적 행위에 의해 정해지지 않고 그들의 무의식적 의지를 안내하는 외부의 전능한 힘에 의해서 정해진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오류이다. 나는 신의 섭리나, 세계정신 같은 흔히 여러 사건의 과정을 인도한다고 생각되는 추상적 관념은 믿지 않는다.

역사상의 사실은 분명 여러 개인에 관한 사실이지만, 고립된 개인의 행위에 관한 사실도 아니고, 진실이든 가공이든 여러 개인이 스스로 행위의 동기라고 부른 것에 관한 사실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의 여러 개인의 상호작용에 대한 사실이며, 또한 여러 개인의 행위로부터 그들 자신이 의도한 결과와는 다른, 때로는 반대의 결과마저 낳은 사회적인 여러 힘에 관한 사실인 것이다. 콜링우드 역사관의 가장 중요한 오류는 행위의 배후에 놓인 사상이 행위라는 개인의 사상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가정이다. 역사가가 연구해야 할 것은 행위의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행위라는 개인의 의식적인 사상이나 동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PART 3 역사와 과학, 그리고 도덕



역사는 특수하고 개별적인 것을 다루며, 과학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다룬다는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롯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는 일반적 진리를 다루고 역사는 개별적 진리를 다루기 때문에 역사에 비하면 시가 더욱 철학적이고 심오하다고 말했다. 후대에 와서 콜링우드를 비롯한 많은 저술가들도 과학과 역사를 구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과학자도 그렇지만, 역사가는 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일반화와 필연적으로 관련된다. 펠레폰네소스 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은 매우 다르고, 각각 독자적인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둘 다 전쟁이라고 부르며, 이에 반대하는 것은 오직 현학적인 사람들뿐일 것이다. 영국의 역사가 기번이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한 기독교의 공인과 회교의 대두를 혁명이라고 했을 때, 그는 두 가지 독자적인 사건을 일반화한 것이다. 현대의 역사가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및 중국의 혁명에 관해 논할 때도 같은 일을 한다. 역사가가 참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 있는 일반적인 요소이다.

역사가는 증거를 시험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반화를 이용한다. 리처드 3세가 런던탑에서 왕자들을 죽였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증거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역사가는 왕위를 노릴 가능성이 있는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이 당시 지배자들의 습관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의 판단은 이 일반화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일반화가 역사와 거리가 멀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이다. 역사는 일반화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화라는 것이 조금의 여지도 없이 맞춰 넣을 수 있는 개별 사건이 거대한 역사 체계의 구성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특수성과 일반성의 관계에 관심을 둔다. 여러분이 역사가라면, 사실과 해석을 분리할 수 없듯이 특수성과 일반성을 구별할 수 없을 것이고, 또한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우위에 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일반화 문제는 '역사는 교훈'이라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일반화에 관한 진정한 핵심은, 우리가 일반화를 통해 역사를 배우려 하고, 어떤 사건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다른 사건에 적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일반화를 부정하고, 역사는 오직 특수한 것만을 다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보면 역사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인간이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주장은, 명확한 많은 사실들에 의해서 반박되고 있다.

예를 들어 17~19세기 유럽 사람들이 구약성경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검토해 본다면 보람 있는 성과를 거둘 것이다. 그것을 빼놓고는 영국의 청교도 혁명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선민사상은 근대 민족주의의 발흥에서 필수적인 중요한 요소였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결코 일반적인 과정일 수 없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 양자를 더 깊이 이해시키려는 데 있는 것이다.

과학과 달리 역사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역사로부터는 어떤 교훈도 배울 수 없다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과학법칙이라는 것도 구체적인 경우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예측하는 것은 아니다. 인력의 법칙은 특정한 사과가 땅에 떨어질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법칙이 무가치하거나 원리적으로 확실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역사가는 일반화를 하고, 일반화를 함으로써 그는 특수한 예언은 아니더라도 미래의 행동을 위한 타당하고 유효한 일반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그러나 특수한 사건을 예견할 수는 없다. 특수한 것은 독자적인 것이고, 거기에는 우연의 요소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역사가의 모든 관찰에는 불가피하게 역사가의 주관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역사에는 어디까지나 상대성이 따라다니는 법이다. 그러나 모든 관찰에 반드시 그의 편견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역사 연구에 있어 또 하나의 진리는 관찰과정이 관찰되고 있는 것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행동이 분석이나 예측의 대상이 되는 경우, 인간은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의 예측에 의해 미리 경계할 것이고, 따라서 그 때문에 자기의 행동을 바꾸어 예측을 빗나가게 만들 것이다. 볼셰비키는 프랑스 혁명이 나폴레옹 같은 인물의 등장으로 끝난 것을 알고 있어서 자기들의 혁명도 그런 결말에 이르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도자들 중에서 나폴레옹과 가장 유사한 트로츠키를 경계하고, 나폴레옹을 가장 닮지 않은 스탈린을 믿었다.

과학자와 역사가는 같은 연구의 서로 다른 부문에 속하고 있다. 즉 어느 것이든 인간과 그 환경, 환경에 대한 인간의 작용, 인간에 대한 환경의 작용에 대한 연구인 것이다. 연구의 목적은 동일하다. 곧 자기의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과 지배력을 늘리는 것이다. 물론 물리학자, 지질학자, 심리학자, 역사가의 전제나 방법은 다르다. 나는 더 과학적인 역사가 되려면 자연과학의 방법을 더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그러나 역사가와 과학자는 설명을 구하는 근본 문제에 있어서나 문제를 제출하고 이에 대답하는 근본 절차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다른 모든 과학자도 그렇지만, 역사가도 줄곧 '왜?'라고 묻는 동물이다.



PART 4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투스는 자기의 목적을 그리스인과 야만인의 행위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 '특히 무엇보다도 그들 사이에서 왜 싸움이 일어났는가 하는 원인을 밝히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18세기 몽테스키외는 『로마인의 위대성, 흥망성쇠의 여러 원인에 관한 고찰』에서 '모든 사건은 원인을 따른다'는 원리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 후 거의 2백 년 동안 역사가와 역사 철학자는 역사적 사건의 원인과 역사적 사건을 지배하는 법칙을 찾아내고 인류 과거의 경험을 조립하려는 시도에 열중해 왔다. 그런데 최근 사정이 좀 달라졌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의 '법칙'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원인'이라는 말도 흘러간 유행어가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는 철학적 모호성에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결정론을 유추하게 하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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