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모
이승욱, 신희경, 김은산 지음 | 문학동네
대한민국 부모
이승욱, 신희경, 김은산 지음
문학동네 / 2012년 6월 / 312쪽 / 14,000원
죽거나 죽이거나 미치거나 : 병든 것이 정상인 아이들
'교육'이라는 야만의 정글에 갇힌 아이들
너, 이러면 정상으로 못 살아: 얼마 전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성적 때문에 자신을 괴롭힌 엄마를 죽인 사건이 있었다. 아이가 매를 견디다 못해 엄마의 목을 조르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 이러면 정상으로 못 살아!" 그러자 아이는 엄마에게 울면서 말했다. "안 그럼, 엄마는 날 죽일 거야." 그 아이가 엄마와 나눈 마지막 말이었다. 엄마가 말한 아이의 정상적인 삶은 과연 무엇이기에 아이는 엄마를 죽여야 했을까?
너무나 비극적이고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이 사건은 지금 대한민국 부모와 아이들이 놓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내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닐 거라고, 나는 그런 엄마가 아닐 거라고 생각할 테지만 실은 부모 자신도 안다. 그 사건이 자신의 집에서 벌어지는 일과 근본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을. 엄마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다니, 내 아이는 그렇지 않겠지…… 자신할 수 없다. 성적과 공부 말고는 관심도, 할 말도 없는 부모에게 아이들은 지금 절망하고 있다.
아이들의 병이 깊어졌다. 교사들은 이제 아이들을 포기한 단계라고 자인한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들의 심신이 병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각종 조사 결과와 통계 수치를 발표한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부모들까지 아이들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걱정하며 자신이 문제라고 미안한 척한다. 온 나라가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우려하지만 그냥 거기까지다. 부모들은 걱정은 하지만 그 이상은 보지 않으려 하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쓸데없는 제도만 자꾸 만들어낸다. 교사는 무기력하고, 언론은 이슈에 편승할 뿐 책임은 지지 않는다. 관료들은 전시행정 대책만 내놓는다. 모두 정작 무엇이 문제인지 절대로 보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이제는 아이들의 정서와 심리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있다.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면 적어도 한두 가지 정도 정신병리적 증상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정상이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 자신의 감정,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부모의 욕망에 따라 '공부 잘하고 돈 잘 버는 사람'이 되려고만 한다. 무한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은 정신적 긴장과 고통에 짓눌린 채 살아가고 있다. 부모에게 호소해보았자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안다. 그래서 아이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자살을 선택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가출하고, 급기야 엄마를 죽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제 아이들의 이야기를 여기에 옮긴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일탈하는 아이들: 살아남기 위해 병드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살아남기 위해 일탈행동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공부만 해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탈이 아니라, 공부만 해야 하는 삶을 견디기 위해, 즉 생존을 위해 일탈을 하는 것이다.
중학교에 다니는 한 여학생은 임신으로 부모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상담실을 찾은 엄마는 아이의 거의 모든 일과를 쫓아다니면서 뒷바라지했는데 도대체 언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 주고, 학교가 끝나면 데려와 집에서 간식을 먹여 학원에 데려다 주고, 학원 앞에서 기다렸다가 수업이 끝나면 다른 학원에 데려가고…… 종일 아이와 일상을 함께했는데 어떻게 아이가 임신할 틈이 있었는지, 엄마는 무언가에 홀린 것 같다고 했다. 아이는 학원에 들어가서 수업을 받지 않고 학원 옥상에 올라가 남학생과 성관계를 맺은 것이다. 대학에 가면 그 남학생과 결혼할 것이라며, 둘이 헤어지지 않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자고 약속했단다.
아이들에게 공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유를 불문하고 그냥 해야 하는 의무 같은 것이다. 미래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라지만 그건 부모의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현재 아이들에게는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그 공부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런 공부를 '해내고' '해드리기' 위해서 아이들에게는 일탈이 필요한 것이다. 연애를 하고, 성관계를 맺고,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시면서 그 힘든 삶을 이겨내고 견뎌낸다. 그래서 일탈은 공부와 경쟁의 삶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자 오아시스다. 일탈의 시간만이 유일하게 의미 있고 재미있는 시간인 것이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교육'이라는 이름의 '야만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은 이렇게 병에 걸리거나 일탈을 한다.
가족, 학교, 사회, 그 모두를 없애고 싶은 아이들
지방의 고등학교에서 성적이 상위권인 경호는 심한 불안과 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다른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 갑자기 가슴이 뛰고 마음이 불안해지면서 조급해진다고 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면 자신이 뒤처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하게 되고, 진도가 자신보다 앞서 나간 옆 자리 친구를 보면 불안해서 손에 땀이 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호에게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자신이 나쁜 아이여서 벌을 받을 것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자면서도 고통을 받고 있었다. 꿈을 꾸면 자신이 누군가를 해치거나 다치게 하고는 도망가면서 들킬까 봐 불안해하는 꿈을 꾸었다. 그럴 때마다 두려움에 잠을 깨곤 했다. 최근에는 낮에 학교에 있을 때에도 이런 상상을 하면서 공포에 시달렸고 학교에 결석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런 증상은 1년 전 그 일을 겪고 나서 나타났다. 학교에서 경호와 가장 친한 친구는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어렵게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친구는 대학에 장학생으로 가야 했다. 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마음이 어수선해서인지 성적이 노력한 만큼 나오지 않아 늘 초조해했다. 경호는 그 친구가 성적이 자꾸 떨어져 장학금을 못 받게 될까 봐 걱정하고 힘들어할 때마다 옆에서 위로해주었다.
친구는 경호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같은 대학에 가자고 말하곤 했다.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안 되는 친구는 학원 같은 거 체질에 안 맞는다고 큰소리쳤지만, 학교가 끝나고 학원버스를 타고 가는 경호는 친구가 쳐다보고 있는 뒤통수가 영 거북했다. 학교에만 가면 가슴이 답답하고 괜히 짜증이 많아진 경호는 부모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친구들과 경쟁하는 것도 싫고, 친한 친구가 성적이 떨어지는데 자기만 시험을 잘 봐도 별로 좋지 않다, 다음 달부터는 그 친구가 성적이 떨어져 우수반에서 빠질 것 같은데 그러면 저 혼자 우수반에 남아서 공부하는 게 미안하다, 차라리 그냥 그 친구와 같은 반에 가고 싶다, 우수반이 아니어도 열심히 공부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아이의 말을 들은 부모님은 어이없어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
저 자식, 저거 누구 닮아서 저렇게 허약하고 바보 같냐"며 화를 냈다. 아버지는 그렇게 약해빠져서는 이 험한 세상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으며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경호는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을 후회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했다.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들에게 남긴 편지에는 가족들 모두 열심히 일하는데 자신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죄송했다는 말만 쓰여 있었다. 경호의 증상은 친구가 죽고 난 몇 주 뒤부터 심해지기 시작했다.
상담 중에 경호는 가슴속에서 뭔가가 터져 나올 것 같아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러고는 엉엉 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울더니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동안 학교와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지르려고 여러 번 계획했다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불을 지를 것인지 여러 가지 생각도 하고 현장답사도 하면서 고민했다는 말을 하더니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네가 불을 지르고 활활 태워서 사라지게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다 말해보라고 하자 아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천천히 단어들을 나열했다. "학교, 집, 사람들, 애들, 가족, 회사, 대학교, 다요, 그냥 다요."
테러리스트가 되려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학교에 가스통을 가져와 폭파해버리고 싶다는 아이, 학교에 불을 지르고 싶다는 아이, 학교 급식에 독극물을 넣어 다 죽인 뒤 자신도 죽었으면 좋겠다는 아이…… 경쟁에서 도태되는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이 부채감, 죄책감으로 자리 잡은 아이들. 이 아이들은 학교와 사회를 버리다 못해 아예 없애려 하고 있었다. 떠나고 버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아예 없애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없애야 이 거대한 학력생산 공장이 멈추게 될지 몰라 화염병을 들고 그냥 그 자리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 아이들을 계속 채찍질해서 강하고 독한 승자로 살아남도록 키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아이들은 정말 부모들이 원하는 강하고 독한 아이가 되어 결국 망설이던 화염병을 부모에게 던질지도 모를 일이다.
어른이 되지 못한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 : 대한민국 부부들의 이야기
그 여자의 복수혈전
두 얼굴의 엄마: 대한민국 엄마들을 보면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대한민국 엄마들의 삶이 '복수혈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상담 중 아이에 대해 말할 때와 자신의 삶을 말할 때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엄마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먼저, 야무지게 다문 입술과 부릅뜬 눈으로 아이와 남편을 통제하며 조금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성취 욕구와 의지로 충만한 얼굴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허하게 허공을 바라보며 넋 나간 표정을 짓거나 자기 삶의 좌절과 고통을 눈물로 호소하는 얼굴도 있다. 딸이라는 이유로 희생과 좌절을 감내해야 했던 여성의 삶과 아이를 틀어쥐고 아이의 삶을 삼키는 포식자로서의 엄마라는 삶. 이 두 가지가 중첩돼 기괴한 모습을 한 사람이 한국 사회의 엄마라는 이들이다.
은솔 엄마 김지순씨도 두 얼굴을 가졌다. 그녀는 괜찮은 대학을 나와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은솔이를 낳던 날 그녀는 남편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나는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애들 열심히 뒷바라지해서 공부 잘하는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 나중에 호강하며 살게 할 것이다. 김지순이라는 여자로서는 몰라도 은솔 엄마로서는 절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으니 당신이 할 일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는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겠지만 아이들을 최고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끼지 않을 테니 당신은 그저 돈만 벌어오라고. 남편은 감동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아이들을 위해 살기로 약속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순도 100퍼센트의 강남 아이를 만들기 위해: 지순씨는 요즘 점점 삶이 허무하고 우울하다. 낮에는 괜찮은데 밤이 되면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하고 싸우는 날은 더 그렇다. 아직 중학생이라 공부는 그런대로 잘하지만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게 영 마음에 걸린다. 나도 엄마를 싫어했는데, 아이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불안하기만 하다. 삶의 목표 중 하나가 '내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않는 것'인데 말이다. 나는 저를 위해 사는데 아이는 왜 나를 싫어할까? 필요한 것은 다 마련해주고 학원이니 뭐니 엄마가 미리 다 알아 놓으니 저는 그냥 엄마를 믿고 따르면 된다. 생각만 해도 좋고 든든할 것 같다. 이런 엄마에게 나 같으면 매일 안기고 떼쓰고 투정부리고 칭찬도 받고 싶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지순씨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은솔이는 아직 엄마가 얼마나 비참하게 살았는지, 외할머니가 얼마나 무지한 엄마였는지 모른다. 그런 건 아이가 알 필요도 없다. 그런 아프고 창피한 과거를 아이가 왜 알아야 하는가. 아이들은 자신과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아이들은 강북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강남에 살고 있다. 나는 반은 빈민이고 반은 강남 아줌마지만 아이들만큼은 강남 아이나 다를 바 없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지순씨는 이곳에서 또 살아남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정말 기적같이 비록 전세지만 강남에 아파트 한 채를 차지하고 앉아서 아이를 강남에 있는 학원에 보낼 정도가 되었다. 아직 빚도 많고 생활비에 허덕거리지만 그래도 유지는 하고 있다. 은솔이 세대에서는 강남의 유전자로 완전히 탈바꿈할 것이다. 진짜 순도 100퍼센트 강남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이다. 적어도 거기까지는 가야 한다.
그래서 지순씨는 여기서 멈출 수가 없다. 걱정되는 것은 오직 하나, 은솔이가 지금부터 문제를 일으키면 어쩌나, 만약 아이가 일류대학에 입학하지 못한다면? 이런 생각을 하면 지순씨는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다. 지순씨에게 그것은 간신히 벗어난 빈민의 굴레로 다시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다.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 따위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아주 멀리 달아나야 한다. 그래서 지순씨는 자신을 더욱 담금질한다. 강해져야 한다고. 아이의 엄살에 속아 넘어가선 안 된다고. 지순씨의 복수혈전의 밤은 이렇게 깊어갔다.
그런데 지순씨는 누구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 걸까? 지순씨가 자신의 삶을 고통스럽게 한 대상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회구조가 아닐까? 나라의 희망이니, 국가의 장래니 말로만 떠들고 실제로는 젊은이들을 전혀 돌보지 않았던 이 사회와 국가, 그리고 그것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복수의 대상이다. 부정과 부패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는 눈에 핏발을 세우지만 가난과 소외는 자신들이 해결할 몫이 아니라며 외면했던 재벌과 관료와 정치인, 그들이 복수의 대상이다. 지순씨가 살았던 그 고통스러운 세상은 그들이 만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지순씨의 복수에는 대상은 없고 희생자만 있는 것 같다. 그 희생자가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병들고 있다. 그들이 자라면 순도 100퍼센트의 강남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이 표백된 마네킹 같은 인간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은솔 엄마는 한때 희생자였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것을 가지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아이를 자기 속에 집어넣어 자기 마음대로 요리하려는 포식자 행태를 보이는 엄마들이 대한민국에는 너무 많다. 이제 아이는 또 다른 희생자가 되어 몇십 년이 지나면 엉뚱한 사람에게 다른 형태의 복수를 할 것이다.
부모, 무엇을 배우고 가르쳤는가 : 대한민국 부모들의 연대기
교육, 비빌 언덕 없는 부모들의 유일한 보험?
대학은 생계형 보험? 보험비 버느라 파괴된 가정: 상담실을 찾은,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든 부부의 얼굴은 어둡고 우울했다. 원망과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아내의 복잡한 눈빛과 입을 열면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일부러 굳게 다물고 있는 듯한 남편의 입술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먼저 입을 연 아내는 중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상담을 받게 하고 싶다고 했다. 딸에게 같이 오자고 했으나 거부해서 부부가 먼저 왔는데, 사실은 딸이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고 했다. 다행히 일찍 발견해 살려놓기는 했지만 계속 우울해한다고 했다. 아이가 부모의 부부싸움을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라고 했다. 그때 남편이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남편이 전한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못해 참담했다.
남편은 지인과 함께 작은 철물 도매상을 운영하고 있었다. 결혼한 지 15년 만인 지난해 초 처음으로 남매에게 각자의 방을 줄 수 있는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이사했다. 그러나 매출은 늘 불안했고, 가게도 언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어떻게든 아이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버텨달라고 했다. 아내는 이 궁핍한 삶을 대물림하지 않는 유일한 길은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뿐이라고 믿었다. 아이들에게도 너희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한시름 놓을 것 같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없는 형편에 한 과목 정도 학원에 보내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아이가 열심히 해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남편도 속으로는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졸업해서 대기업 같은 데 취직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