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크로마뇽

브라이언 M. 페이건 지음 | 더숲
크로마뇽

브라이언 M. 페이건 지음

더숲 / 2012년 5월 / 430쪽 / 18,900원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역사적인 접촉



상아로 만들어진 뢰벤멘슈, 즉 사자인간(the lion man)이라고 불리는 조각상은 당당한 모습으로 상체를 앞으로 살짝 기울인 채 팔을 양 옆으로 늘어뜨리고 서 있다. 머리는 사자 같고, 입은 살짝 벌리고 있으며, 귀는 쫑긋 솟아 있고, 갈기가 등 뒤로 폭포처럼 흘러내린 모습이다. 이 사자인간은 3만 4천 년 전 인류의 먼 조상인 크로마뇽인이 매머드의 뿔을 깎아 만들었다.

사자인간을 만든 예술가는 사냥꾼 무리의 일원이었고, 침엽수림과 탁 트인 툰트라에 둘러싸인 지금의 독일 남부 지역에 거주하던 수천 명의 인간들 중 한 명이었다. 이곳에는 거대한 매머드가 얼음으로 덮인 시내에서 목을 축였고, 북극의 뇌조 떼는 물가에서 요란하게 울어댔다. 이곳은 빙하시대의 파라다이스가 아니었다. 사자인간의 창조자는 잦은 배고픔과 혹독한 겨울이라는 잔인한 현실 속에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와 같은 뛰어난 인지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조각가의 조상은 10만 년 전에 더 따뜻하고 건조한 환경을 가진 먼 동남쪽, 현재의 서남아시아에서 도전으로 가득한 이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이후 5천 년도 되지 않아 크로마뇽인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들은 사회적 욕구에 따라 사냥감이나 거주지, 물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다. 이 지역은 기후가 끊임없이 변하고 혹독하게 추운 환경이었는데, 이들은 한 번에 수년씩, 때로는 수세대에 걸쳐 영구적으로 이곳에 거주했다. 이들은 어디에 정착하든 수십만 년 전부터 생물학적, 문화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 있던 유럽 토착민인 네안데르탈인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약 1만 5천 년 후, 즉 3만 년 전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바로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이다.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과의 관계는 수세대에 걸쳐 많은 학자들을 매료시켰다. 원시적인 인류와 현대적인 인류는 서로 가까운 이웃으로 지냈을까? 아니면 크로마뇽인들이 그들의 사냥터에서 이 토착민들을 모두 변두리로 몰아냈을까? 크로마뇽인들의 월등한 지적 능력이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까? 아니면 기후변화와 극한의 추위가 멸종의 주된 원인이었을까? 우리가 알기로 현실은 서사적인 모험담이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저 짧은 역사적인 접촉과 극복할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이해부족과 오해로 인해 갈라지게 된 인류의 이야기다. 위대한 지도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잔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련에 맞서며 빙하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인간들의 이야기다.

크로마뇽인은 해부학적으로 현대 인류와 생김새가 상당히 흡사한 인간이다. 크로마뇽인이 네안데르탈인의 뒤를 이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문제는 학계에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크로마뇽인들은 호모 사피엔스, 즉 유연한 사고를 하고 사전에 계획할 줄 알며, 생각을 완전하고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가진 ‘슬기로운 사람’이었다. 그들이 도착한 후 유럽은 전혀 다른 세계가 되었다. 크로마뇽인은 신체적인 면에서도 네안데르탈인과 달랐다. 크로마뇽인은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작고 다부졌다. 크로마뇽인은 몸에 잘 맞는 털 파카와 긴 바지, 방수가 되는 부츠를 신었지만, 네안데르탈인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으며 맨발로 돌아다녔고 두꺼운 털옷을 몸에 걸치고 가죽 끈으로 묶었다. 그들은 나무로 만든 창과 몽둥이 외에 다른 무기는 지니지 않았다. 이런 무기는 10만 년 전 그들의 조상이 사용하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이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체취까지도 서로 달랐다.

네안데르탈인은 약 20만 년 전 지구상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약 12만 5천 년 전 그들은 이탈리아 지역에서 코끼리와 하마를 사냥했다. 그 후 엄청난 환경변화를 가져온 빙하시대의 최후 빙기가 도래했다. 당시 네안데르탈인들은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른 지역에 분포했지만 인구는 적었고 광활한 빙하시대의 대지에 잠깐 살았던 존재에 불과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끊임없이 경계하며, 포식동물들이 많은 위험한 세상에 살았던 유일한 인류였다. 크로마뇽인들이 네안데르탈인들의 사냥 영역을 침범하며 그들의 단조로운 일상을 방해하기 전까지 수만 년간 그들의 삶의 리듬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네안데르탈인, 환경에 순응하는 생존법을 터득하다



모든 인간은 동일한 아프리카 선조에서 갈라져 나온 후손들이다. 유럽에 거주했던 네안데르탈인의 먼 조상들은 아프리카에서 큰 짐승들을 사냥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이 습득한 사냥법이란 긴 나무로 만든 창으로 사냥하는 방법과 필요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기회주의적으로 협동하는 능력이었다. 그들의 성공적인 사냥은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100만 년도 지나지 않아 몇몇 인간의 무리가 사하라와 서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정착한 것이다.

200만 년 전 아프리카의 기후가 계속 건조해지면서 사바나가 확장되고 이에 따라 코끼리와 영양, 얼룩말, 코뿔소 같은 초식동물의 개체수가 증가했다. 이 동물들은 빙하시대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세계의 다른 지역에 분포하게 되었다. 이 동물들은 영양분이 풍부하고 맛 좋은 식량을 제공했기 때문에 인간은 이들을 따라 움직였다. 이것이 왜 소수의 인간 무리들이 사하라를 건너서 지중해와 유럽으로 이주해 갔는지를 설명해 준다.

최초의 사냥꾼은 호모 에렉투스라고 하는, 네안데르탈인과 매우 다르고 더 오래된 인류의 조상이다. 이들은 직립보행을 했고, 걸음걸이가 빨랐으며, 기본적으로 인간의 팔다리를 갖추고 눈썹 뼈가 강하게 돌출된 긴 얼굴을 갖고 있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의 넓은 지역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먹잇감인 초식동물들이 있는 목초지가 변화함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움직였다. 18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의 일부 무리들이 사하라 사막을 건너 서아시아로 갔다. 그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나와 짧은 기간 동안 기후가 온난했던 시대에 북쪽의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져나간 거대한 포유동물들과 함께 이동했다.

호모 에렉투스가 네안데르탈인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네안데르탈인이 언제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 왔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이들 이전에 존재했던 인류의 이동과 아주 흡사했을 것이다. 바로 다른 포유동물들이 이주하면서 이들을 따라 함께 자연적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스페인의 아타푸에르카에서 발견된 유골들을 통해 약 40만 년 전에 존재했던 이들 미지의 인간들이 네안데르탈인의 직접적인 조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 20만 년 넘게 네안데르탈인의 조상은 극단적인 추위나 장기간 지속된 따뜻함에 순조롭게 적응하는 유연하고 단순한 생활방식을 따랐다. 돌도끼 모양이 서서히 변한 것으로 보아 기술적 혁신은 아주 드문 현상이었다. 삶과 죽음의 길을 따르는 동물들의 삶처럼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인간은 포식자 중에서도 협력할 줄 아는 포식자였고 사냥꾼인 동시에 먹잇감이었다. 또 나무창을 다루는 훌륭한 솜씨와 사냥감을 몰래 추격하는 능력, 그리고 동식물에 대해 어렵게 습득한 지식 덕분에 어떠한 환경에서도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20만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훗날 크로마뇽인과 마주치게 되는 원시 유럽인인 네안데르탈인의 모습으로 서서히 진화해 갔다.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식인풍습이 있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일상에서 놀랍도록 인간다운 삶을 살았지만 여전히 인류가 수십만 년 전 유럽에서 사냥하던 때부터 거의 변한 것이 없는 원시적인 방식을 따랐다. 그들은 짐승을 사냥했고, 그들의 사냥감과 동일한 환경적 영향을 받았으며, 때때로 포식자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일부 네안데르탈인들은 인육을 먹었다. 최후 빙기가 막 시작됐던 시기에 한 무리가 프랑스 아르데슈 지역의 몰라-게르사 동굴에 거주했다. 두 명의 어린아이들을 포함하여 최소 여섯 명에게서 나온 78개의 사람 뼈들이 이 유적지에 발견되었다. 여기서 붉은 사슴의 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도륙 흔적이 발견되었다. 여러 개의 절단된 상처, 골수와 뼈를 꺼내기 위해 망치로 내리쳐 생긴 균열, 뼈를 부수고 벗겨낸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여러 지역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뼈를 근거로 거의 한 세기 동안 네안데르탈인들은 식인 풍습을 가진 미개한 인간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그들은 골수를 빼내지 않았다. 과연 그들은 인육을 섭취 했을까? 아니면 살아있는 인간들이 막 죽은 시체를 통해 힘을 얻는 단순한 죽음의 의식 중 일부를 보여주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네안데르탈인들이 죽은 시체를 매장한 최초의 인류라는 것이다. 매장 자체로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다.

네안데르탈인의 뇌 용량은 현대인의 것과 비슷했지만 행동양식은 상당히 달랐다. 그들은 생활터전을 가로지르며 먹이를 찾아 다녔는데 이를 통해 생활에 언어가 크게 필요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두뇌를 활용했다. 그들은 타인과의 협력을 위해 수천 년 동안 진화된 정교한 의사소통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고고학자 스티븐 미슨은 네안데르탈인의 의사소통에 대해 놀라운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음악을 만드는 활동이 네안데르탈인들이 사냥에서 상호작용과 협력을 촉진하는 방법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인간 유전자에 아주 오래전부터 음악을 만들고 듣는 경향이 입력되어 있다고 추측했다.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고 음악은 감정을 표현하고 유발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음악적 표현의 한 형태가 네안데르탈인의 존재의 기초가 되었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네안데르탈인은 석기를 제작했고, 모든 종류의 동물을 사냥했으며, 20만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큰 기후변화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들은 언어가 없었고, 문화는 수십만 년 넘게 사실상 변하지 않았다. 상징적 또는 이론적 인지능력이 있었다는 증거도 없다. 그들의 삶은 생사의 문제에 직면한 결정으로 가득 찼다. 어디서 사냥을 하고, 어떤 동물을 누구와 사냥할 것인지, 누가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 등 이런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정보처리 능력과 함께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네안데르탈인은 감정이 매우 풍부했고 자신들의 감정을 몸짓이나 음성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생존은 서로 협력하고, 수렵과 채집 활동을 통해 함께 힘을 모아 작업하고, 타인의 안녕을 위하는 일에 달려 있었다. 다른 무리들과의 교류가 극히 제한된 세계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했고, 어쩌면 집단으로 노래하거나 춤추는 것을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생 인류의 일만 번째 할머니, 아프리카 이브



현생 인류의 기원을 찾는 연구는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유럽에서 근동 지역으로 옮겨갔다. 1929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고고학자 도로시 게로드는 이스라엘의 카르멜 산에 있는 두 개의 동굴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남긴 거주 흔적과 네안데르탈인 무덤을 발견했다. 그리고 미국의 고고학자 테드 매카운은 그곳에서 100미터 떨어진 동굴에서 네안데르탈인 도구가 함께 묻힌 8개의 무덤을 발견하였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골들은 유럽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뼈와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그들은 약 4만 년 전에 생존했던 사람들로 그들의 뼈는 원시적 특징과 현대의 특징이 혼합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발견으로 매카운과 게로드는 고대 인류에서 호모사피엔스로의 전환이 유럽이 아닌 근동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믿었다. 1938년 게로드는 크로마뇽인의 조상이 그 지역에 살았다고 주장하는 유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곳에서 새로운 기술과 사냥 방법을 가진 소수의 무리들이 중앙유럽과 서유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1965년에는 프랑스의 고고학자 버나드 밴더머슈가 이스라엘 내륙에 위치한 카프제 동굴의 네안데르탈인 문화층에서 일곱 개의 호모 사피엔스 매장지를 발굴하면서 게로드의 이론이 더 확고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분자 생물학자 레베카 칸을 비롯한 3명의 학자들이 1965년 《네이처》에 실은 논문을 통해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했다. 그들은 신생아의 태반에서 얻은 미토콘드리아 DNA를 수집한 결과를 증거로 제시했다. 147명의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호주인, 유럽인, 뉴기니인으로터 샘플을 채취하여 133개의 전혀 다른 타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확보한 것이다. 이들 DNA 중 일부는 수백 년 전 살았던 한 여성의 후손인 것처럼 매우 비슷한 배열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논문 초록에 이렇게 적었다. “모든 미토콘드리아 DNA는 아마도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으로부터 나왔다.” 과학 기자들은 그들이 말한 미지의 조상을 ‘아프리카 이브’라고 명명했다. 학자들에 따르면 그녀는 우리의 일만 번째 할머니로 그녀가 생존했던 세계의 얼마 안 되는 무리들 중 한 사람이었다.

《네이처》에 기고된 논문은 폭풍 같은 논란을 일으켰다. 생체고고학자들이 두 부류로 나뉜 것이다. 한쪽은 다지역 기원설을 주장하는 학자들로 호모사피엔스가 고대 세계의 몇몇 지역에 거주했던 고대 인류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반대편은 《네이처》에 논문을 실은 세 사람의 주장과 ‘아프리카 탈출(out of Africa)’이라 이름 붙인 가설을 지지했다. 이 가설에 의하면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은 열대 아프리카에 있으며 훗날 후기 빙하시대에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한 세대가 지난 뒤 미토콘드리아 DNA와 Y 염색체와 관련된 새롭고 더 정교해진 연구가 발표되면서 학계의 논란이 수그러들었다. 유전적 증거가 무엇보다 압도적이었다. 확실한 것은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약 17만 년 전 생존했던 공통된 조상에서부터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생 인류(크로마뇽인)는 약 5만 9천 년 전 이후에 아프리카에서 이주했다.

아프리카 이브는 현대인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것을 증명한 분자생물학에 의해 탄생된 허구의 인물이다. 이 인물이 실제 존재했다면 그녀는 검은 머리에 검은 피부를 가졌으며, 작은 사냥 무리에 속했을 것이고, 인간의 살을 손으로 찢고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힘이 셌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특정 유전자가 그녀로부터 오늘날 현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을 만큼 많은 아이들을 낳았을 것이다.

뛰어난 이동성, 아프리카에서 서아시아로 다음엔 유럽으로



7만 년 전 갑작스런 한파가 찾아온 시기, 그 이전에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소수의 현생 인류가 근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토바 화산 폭발 이후 ‘화산 겨울(volcanic winter)’이 지구를 덮친 시기에 그들은 선사시대 기록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근동 지역이 춥고 건조해지면서 사막이 상당히 넓게 확장되었고 소수의 현생 인류는 물 공급과 삼림이 부족한 지역에 고립된 것으로 보인다. 최초로 아프리카를 벗어났던 호모 사피엔스 무리는 점차 감소추세를 보이다가 결국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6만 년 전 크로마뇽인들이 근동 지역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많은 네안데르탈인이 그 지역에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식량공급이나 물이 한정되었기 때문에 그 지역의 수용 능력은 많은 사람들이 살기에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이주자(크로마뇽인)들은 원시 거주자(네안데르탈인)들을 변방으로 몰아냈을까? 아니면 근동 지역에 거주하던 네안데르탈인들은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멸종해버렸을까? 이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4만 5천 년 전 이후로는 네안데르탈인 화석이 더 이상 고고학적 유적지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소수의 현생 아프리카인들이 가뭄에 시달리는 땅을 다시 점령하면서 그들은 멸종된 것으로 보인다.

무덤에서 나온 유골을 보면 새로운 이주자들은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며 긴 다리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열대 기후에 생물학적으로 적응한 이런 신체 조건은 현생 인류가 건조한 스텝 사막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들은 이전의 인류와는 다른 어느 정도 완성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정보를 교환하는 모임과 타인과의 접촉이 상당히 중요했던 건조한 지역과 넓은 사냥 영역을 빠르게 이동하는 일에 익숙했다. 현생 인류는 처음에는 네안데르탈인과 유사한 단순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기술혁신과 변화, 그리고 필요에 맞게 새로운 돌을 깎는 기술과 도구를 개발하는 능력이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