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죽기 전에 한 번은 유대인을 만나라

랍비 조셉 텔루슈킨 지음 | 북스넛
죽기 전에 한 번은 유대인을 만나라

랍비 조셉 텔루슈킨 지음

북스넛 / 2012년 5월 / 706쪽 / 28,000원



01. 만족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

탈무드의 가르침에 따르면, 토라는 신성이 깃든 친절(게밀룻 체세트 gemilut chesed)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즉 창세기 도입부에는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신 얘기(창세기 3:21)가 나오고, 토라의 마지막 장에서는 하나님이 모세를 안장하신 얘기가 나온다. "하나님은 모세를 모압땅 벧브올 반대편 골짜기에 묻으셨더라(신명기 34:6)."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고 난 직후 그를 방문하셨다. 유대 전통은 자선을 베푸는 일도 높이 평가하지만, 친절을 베푸는 일을 그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 랍비들은 친절이 세 가지 면에서 자선보다 더 위대하다고 가르친다.

- 자선은 금전적으로만 행해지지만, 친절은 금전적으로 행할 수도 있고 몸소 행할 수도 있다(예: 문병 가는 것).- 자선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베풀 수 있지만, 친절은 가난한 사람과 부자 모두에게 베풀 수 있다(예: 슬픔이나 우울함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 자선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베풀 수 있지만, 친절은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에게 베풀 수 있다(예: 가난하게 죽은 사람을 제대로 안장해 주는 것). - 바빌로니아 탈무드, 수카 49b

유대 율법은 친절을 베푸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실제로 친절을 실천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친절을 베푸는 것보다는 금전적으로 자선하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유대 전통은 자기 시간을 할애해 타인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을 베풂의 최고 형태라고 가르친다.

오늘부터 이번 주 내내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세심히 살피기 바란다. 거리에서 무거워 보이는 짐을 들고 가는 노약자를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지인이 의기소침하고 심란해 보여, 그에게 대화 상대가 필요할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매일 함께 산책해줄 동반자를 필요로 하는, 최근 수술을 받고 회복기에 있는 이웃이 있는가? 그런 사람을 보고도 본능적으로 하던 일이나 계속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수 있다. 당연히 나 역시 종종 그런 마음이 든다. 하지만 오늘부터 이번 주 동안만이라도 그런 사람들을 보면 여유를 갖고 이렇게 자문해보기 바란다.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

단 한순간도 낭비하지 말라

예시바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인생 교훈 중 하나는 '비툴 토라 bittul Torah(직역하면 '토라의 낭비'라는 뜻)'라는 개념이다. 이 말은 우리가 토라 공부로 시간을 더 잘 활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대 전통은 토라 공부를 가장 경건하고 가치 있는 일로 여기기 때문에,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잘못된 일 심지어 죄를 짓는 일로 간주한다.

나는 스무 살 때 예시바 케렘 브야브네에서 1년을 보냈는데, 그곳의 다른 학생들을 본보기로 삼으면서 비툴 토라 개념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늘 노트를 들고 다니며 내가 하는 모든 일(심지어 친구들과 잡담하는 것을 비롯해)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기도 시간과 먹고 잔 시간, 친구들과 쉰 시간 등을 빼고도 10시간 45분이나 공부했다는 걸 알고 아주 뿌듯해했다.

지금 위의 글을 읽어보니, 어쩌면 일부 독자들은 그런 내 행동을 강박적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예시바 케렘 브야브네에서 보낸 한 해를 더없이 편하고 행복한 시간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내게 그 이상의 것을 준 시간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곳에서 나는 5분이나 10분은 말할 것도 없고 단 한순간도 중요하지 않은 시간이 없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몇 분간의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그 시간을 어떻게 죽일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켜거나 그냥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우리를 죽이는 것이다. 5분이란 시간은 책을 집어들고 몇 페이지를 읽거나 마음속으로 어떤 개념이 뜻하는 바를 숙고해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예시바 대학의 랍비 총장이 한번은 '5분 공부'란 특별한 모임을 만든 적이 있는데, 먼 곳에 사는 학생들까지 아주 짧은 그 모임을 위해 학교에 다시 와야 했다. 그 모임이 시작되기 전 총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5분 안에도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걸 여러분이 배울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 가족은 여러 해 동안 독실한 유대인 치과의사 요셉 아들러 박사에게 치아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그는 한 환자를 진료하고 다른 환자를 진료하기까지의 막간을 이용해 자기 사무실에서 몇 분간 탈무드를 공부한다. 그렇게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그는 보통 하루에 탈무드 한 장 정도를 공부한다. 그렇게 해서 7년 반마다 탈무드 전체를 독파하는 것이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시간 활용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게 되길 바란다. 나는 내 인생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인 스무 살 때 케렘 브야브네에서 이 소중한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 인생에서 낭비될 수도 있는 시간들을 의미 있는 일로 채우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제2차 세계대전을 그린 허먼 오크의 소설 『케인호의 반란 The Caine Mutiny』(허먼 오크는 이 소설로 퓰리처상을 받았다.)에서 주인공 윌리는 해군 복무 시절 암에 걸려 곧 죽음을 맞게 된 아버지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게 된다.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젊은 시절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성취를 이룬 걸 안타까워하며 아들에게 조언한다. "아들아, 이것만은 기억하기 바란다. 이 세상에서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네게 계속 시간이 주어질 거라 느낄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간을 낭비하면 인생 황혼기는 물론 인생 여명기에도 네 삶이 파멸에 이를 수 있다. 단지 인생 황혼기에 더 분명하게 드러날 뿐이지."

쾌활한 태도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샴마이가 말했다. "모든 사람을 쾌활하게 맞이하라." - 아버지의 윤리 1:15



샴마이의 위의 말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다른 사람을 쾌활하게 맞이해야 한다는 뜻일까? 탈무드는 그렇다고 답한다(물론 당신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 침울한 기분인데도 미소를 지으며 돌아다녀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당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 당신의 행동도 통제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당신을 맞이하는 다른 사람의 태도가 쾌활하고 다정하길 바라듯, 당신 역시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맞이하도록 하라.

언젠가 나는 한 학생으로부터 약혼 소식을 직접 전해들은 어느 랍비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주 기쁜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은 심각한 표정으로 약혼 소식을 랍비에게 전했다고 한다. 랍비는 그 학생에게 축하의 말을 건넨 뒤 그를 거울 앞에 세워 웃는 연습을 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방금 자네가 약혼 소식을 전하며 지었던 표정으로 약혼녀에게 말한다면, 자네 약혼녀는 자네가 자신에게 화가 난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할 걸세."

이 랍비는 침울함과 변덕스러움은 누군가를 희생자를 삼는 '죄악'이라는,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을 직시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침울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종종 그 침울함이 자기 탓인 것 같은 느낌을 갖곤 한다. 침울해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 감정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부인할지 모르지만, 자신들 역시 침울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유쾌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쾌활한 사람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침울한 사람 대다수도 쾌활한 사람과 어울리는 걸 더 좋아한다.

위의 일화는 사람들을 쾌활하게 맞이하는 것은 지인이나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샴마이의 권고를 상기시켜 주는데, 가정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이 특히 더 중요하다. 언젠가 나는 어느 중년 남성이 아버지가 형을 맞이할 땐 눈이 빛났지만 자신을 맞이할 땐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런 가정 분위기에서 여러 해를 살면서, 그는 자신은 사랑받지도 못하며 사랑받을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행복은 진중한 문제이다 Happiness Is a Serious Problem』의 저자 데니스 프레이저는 다음과 같은 말을 좋아한다. "우리에겐 최대한 행복해져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탈무드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은 고대 유대 격언을 인용함으로써 데니스의 말과 샴마이의 가르침에 힘을 더한다. "친구에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사람이 친구에게 우유를 건네는 사람보다 낫다(케투봇 111b)." 이 말은 웃음이 매우 효과적인 자양분이라는 걸 가르쳐준다.

02. 무엇을 배울 것인가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어라

탈무드는 페르시아 도시 베 레페트의 시장을 찾은 랍비 베로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시장에 있던 랍비 베로카 앞에 어디선가 불현듯 선지자 엘리야가 나타났다. 랍비 베로카가 선지자에게 물었다. "앞으로 도래할 세상에 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 이 시장에 있습니까?" 이에 엘리야가 "없느니라."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두 남자가 지나가자 엘리야가 베로카에게 말했다. "저기 두 남자가 '도래할 세상'에 갈 자격이 있느니라." 이에 랍비 베로카가 곧장 그들에게 가서 직업을 묻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코미디언입니다. 우울한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직업이죠.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싸우는 걸 볼 때마다, 우리는 그 둘을 화해시키려 애씁니다(타아닛 Ta'anit 22a)."

그들 코미디언이 잘 이해하고 있었듯, 진정한 친절은 상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일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들에만 집착해 웃음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삶이 고통스럽지만은 않다는 걸 상기시켜주어야 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영원한 보상을 받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의 본보기로 삼을 만큼 삶에 대한 두 코미디언들의 자세를 높이 평가하셨다는 걸 알 수 있다.

랍비 베로카가 이 일을 겪은 후 대략 1,500년이 지난 어느 날, 랍비 이스라엘 살란터의 몇몇 제자가 스승이 길거리에서 한 지인과 장시간 시시콜콜한 일상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놀랐다. 랍비 살란터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는 걸 탐탁찮아 하는 걸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제자들 중 한 명이 그때 그의 행동에 대해 묻자, 랍비 살란터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남자는 극도의 슬픔과 우울증에 빠져 있어, 그의 기분을 북돋아 근심걱정을 덜어 주는 것이 필요한 친절 행위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나 도덕성을 길러야 할 필요성에 대한 얘기로 그 일을 할 수 있었겠느냐? 당연히 세속적인 문제에 대해 유쾌한 이야기로만 그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오르 이스라엘 Or Yisra'el, 112쪽)." 성경의 전도서는 우리에게 울 때와 웃을 때가 있다는 걸 일깨워준다(3:4). 그에 덧붙여 가끔 다른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온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

유명한 탈무드 문구는 하늘나라 자리를 곧바로 얻는 사람들이 있다고 가르친다(아보다 자라 Avoda Zara 10b). 이 가르침은 다른 사람을 위해 영웅적인 행동을 하거나 (가끔 자신을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생명을 거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위대한 행동을 하기 전까진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심지어 몇 가지 심각한 죄를 범했을 수도 있고 윤리적인 실수로 고통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훌륭한 선행은 이전의 모든 악행을 덮고도 남는다. 랍비 로렌스 쿠슈너는 자신의 저서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 Invisible Lines of Connection』에서 버스에 탔던 한 평범한 남자가 그런 위대한 인물이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탈무드를 공부하는 나의 학생 중 하나인 시프라 펜지아스가 내게 이런 얘기를 해줬다. 나치 독일 치하의 뮌헨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눈이 조금 내리고 있었고,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치 친위대가 갑자기 시내버스를 세우더니, 버스에 올라와 승객들의 신분증명서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녀의 고모할머니인 수지는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버스에 타고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단순히 성가신 일로 여겼지만, 몇몇 승객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유대인들은 버스에서 내려 근처에 있는 트럭을 타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버스 뒷자리에 앉아 있던 수지는 나치 친위대원들이 승객들의 신분증명서를 검사하며 점점 뒷자리로 걸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나이 지긋한 남자가 눈치채고 그녀에게 왜 우는지 정중히 물었다.

"내겐 신분증명서가 없어요. 유대인이거든요. 저들이 날 끌고 갈 거예요." 그 말에 대뜸 남자는 혐오감을 내보이더니 이성을 잃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향해 욕을 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 멍청한 계집." 그는 계속해서 고함쳤다.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군." 나치 친위대원들이 그에게 왜 고함을 지르고 난리냐고 물었다. "빌어먹을 여편네 같으니라고." 그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 "제 아내가 또 신분증을 잃어버렸다지 뭡니까. 정말 진절머리가 납니다.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친위대원들은 한바탕 웃고는 지나갔다. 수지는 그 이후 그 남자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의 이름도 몰랐다고 한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운 걸 뻔히 알면서도 비겁하게 또는 무관심하게 행동한 사람은 이 세상을 지옥처럼 느끼며 살 수도 있다. 알베르트 까뮈의 소설 『타락 The Fall』에는 한 소녀가 강에 빠져 익사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남자는 소녀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외면하고 그 자리를 뜬다. 그 후 그는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의 삶은 순식간에 황폐해진다. 소설 말미에서 남자는 이렇게 기도한다. "오, 소녀여, 내가 우리 두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다시 물에 빠져다오."

"우리 두 사람!" 그렇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는, 하나님의 형상을 한 생명체이다. 쿠슈나가 결론짓듯, "우리의 상호의존성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우린 우리의 가장 사소한 행동이 암시하는 바를 더 많이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서로에 대한 신성한 책임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심지어 뮌헨의 버스 안에서도."

두 장의 종이

하나님이 태초에 오직 한 사람, 아담만 이 세상에 살게 하신 것에서 랍비들이 추론해낸 한 가지 교훈은 우리 개개인이 "나 자신을 위해 세상이 창조되었다(미슈나, 산헤드린 4:5)."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세상이 창조되었다."라는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면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랍비들은 분명 개개인들이 자신을 특별하게 느끼길 바랐던 것 같다.

사람들이 탈무드의 이 가르침으로부터 잘못된 교훈을 얻는 걸 방지하기 위해, 19세기 초의 하시디즘 스승인 랍비 심차 부남은 모든 사람이 주머니에 두 장의 종이를 넣고 다녀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 장의 종이에는 "나 자신을 위해 세상이 창조되었다."라는 문구를, 그리고 다른 한 장에는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말아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할 때 암송했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니(창세기 18:27)."라는 문구를 써서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둘 중 하나를 꺼내보라는 것이다. 즉, 당신 자신이 오만해질 때, 그러니까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걸 성취했고 더 똑똑하고 인자하며 통찰력 있고 재치 있으며 인기 있다고 느껴질 때는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니."라는 문구를 보아야 한다. 어쨌든 이 말을 한 사람은 아브라함이다. 설령 당신이 동료들보다 실제 더 많은 걸 성취했다 해도, 과연 아브라함보다 더 많은 걸 성취했을까?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