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역사에 빠져드는가
이수광 지음 | 소울메이트
왜 우리는 역사에 빠져드는가
이수광 지음
원앤원북스 / 2012년 3월 / 332쪽 / 14,000원
1장 역사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역사에 빠져드는가
역사를 읽는 즐거움: 역사를 왜 읽는가?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읽는 셈이다. 여기서 과거는 잘못된 과거를 의미한다. 한편 오랫동안 팩션형 역사서를 써온 나는 재미있기 때문에 쓴다. '재미'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는데, 내가 모르던 역사에 대한 지적 호기심, 기존의 평가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새로운 평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이는 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을 만나는 즐거움: 역사를 왜 읽는가? 나는 지식의 즐거움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역사를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새로운 평가를 하게 된다. 참고로 내가 쓴 최초의 역사소설은『나는 조선의 국모다』로, 명성황후의 일대기와 한국근대사를 조명한 전 7권의 대하소설이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명성황후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었고, 한국근대사가 얼마나 오점투성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오점을 발견하면서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묻혀 있는 사건을 만나는 즐거움: 역사를 왜 읽는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때 그 답변으로 묻혀 있는 사건을 만나는 즐거움을 꼽을 수 있다. 묻혀 있는 사건은 잘못 인식되어 있거나 크게 부각되지 않은 사건을 찾아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재해석하는 즐거움: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사관인데, 그의 자질에 따라 역사는 많은 편차를 보인다. 이런 편차를 차치하더라도 기승전결이 완전하지 않고 간략하게 서술되거나 누락된 부분이 많이 있는데, 간략한 서술이나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고, 잘못 인식한 부분을 바로잡으면 역사를 재해석할 수 있게 된다. 명성황후와 같은 경우에는 시아버지인 대원군과 대립한 여인, 우유부단한 고종을 치마폭에 휘어 감고 권력을 휘두른 여인으로 폄하된 경우가 많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그녀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되고, 허약했던 조선을 침략하는 서구 열강에 맞선 여인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가 성인이나 위인은 아니다. 그녀가 정권을 잡았을 때 민씨 일족이 세도를 누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인 왕과 세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여인이다.
과거가 없는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 역사는 서술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조명되고,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그러나 역사를 서술할 때는 통찰이 필요하다. 우리의 화두는 통일이다. 진보와 보수가 어떻게 합의를 하고, 북한과 어떻게 통일을 해야 하는지 비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는 상대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그들이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한국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이 없으면서 상대를 헐뜯는다면 통일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은 과거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과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현재가 불행하고, 현재가 불행하니까 미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역대 정권의 독재와 부패 외에는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과거가 없는 미래가 존재할 수 있는가? 보수주의자들은 과거를 향유하고 있다. 그리하여 미래까지 향유하기 위해 진보주의자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에게 조금씩 향유한 것을 빼앗길 것이다. 지식과 정보의 사회에서 이제는 기계의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이 기계의 통제를 받거나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시대에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과거를 부정하면 미래가 사라진다. 우리는 과거를 반성하되 인정해야 한다.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문자로 기록하는 역사: 역사는 사실이고, 서술이고, 전하는 것이다. 사실은 존재하는 것이고, 서술은 기록하는 것이고, 전하는 것은 보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사실을 서술해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술의 문제에 있어서는 문자가 필요하게 된다. 문자가 없던 시기에는 화석이나 벽화가 서술을 대신했다. 지구는 46억 년 전에 탄생되었고, 우주는 150억 년 전에 탄생했다. 하지만 인간이 비로소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5천 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다. 이는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도 의미가 같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한 처음에 빛이 있었다"고 했고, 과학자들은 이것을 에너지라고 보았다. 우리는 에너지에서 온 셈이다.
역사가 꿈꾼 유토피아는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는 사기꾼들: 역사를 이끌어온 사람들은 미래를 가지고 유토피아를 속삭인다. 자신이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고 민중을 현혹한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자와 농민의 지상낙원을 건설한다는 공산주의다. 이 공산주의는 철저하게 자본가와 지주를 배제함으로써 민중들을 유인해 전 세계의 절반을 공산진영으로 만들었으나,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현실의 유토피아는 무엇인가? 그것은 빵이다. 역사가 바뀐 원인을 살펴보면 대부분 '빵'이 배경이 되고 있다.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지만 차선의 이상향은 존재할 수 있다. 빵을 많이 소유한 자와 빵을 조금 소유한 자가 함께 사는 세상이 차선의 이상향이다. 그러나 빵을 하나도 소유하지 않는 자들이 존재하는 세상이거나, 빵을 소유하고 있어도 부족해 굶주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은 개혁해야 한다. 역사는 이러한 세상을 위해 진보해온 것이다.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해 역사를 읽다: 동양의 역사에서 요순시대는 태평성대다. 모든 사람들이 요순시대의 덕치를 꿈꾸었고, 요순시대를 이상향이라고 생각했다. 동양인들이 요순시대를 이상향으로 보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요순시대는 폭정이 없고 전쟁이 없었다. 지도자들이 탐욕을 부리지 않아 백성들이 스스로 빵을 해결했고, 빵을 착취당하지도 않았다. 결국 인간의 원초적인 행복은 '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순시대는 이상향이 분명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신화나 전설에 살을 붙여 이상향을 투영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상향을 위해, 미래에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해 역사를 읽고,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기록한다.
누구를 위한 혁명이고 피였는가
무엇을 위해 독립운동을 했는가: 2007년 러시아와 중국을 돌아볼 때 만주의 도문 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도문 시는 북한의 온성과 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두만강 상류 쪽이라 강폭이 20, 30m밖에 되지 않고 강물도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다. 도문대교의 중간에 붉은 색 선이 그어져 있는데 이 선을 넘으면 북한이다. 내가 러시아와 중국을 돌아본 것은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하기 위해서였다. 최재형을 비롯해 안중근 등이 1908년 9월 의병을 모집해 일본군과 싸우다가 패한 곳을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벌였다. 안중근은 1908년의 회령전투 이후 두 달 동안 일본군의 토벌을 피해 백두산 일대의 밀림을 헤맸다. 처음에는 그를 따르는 의병이 수백 명이 되었으나 두 달 동안 굶주리면서 빗속에서 헤매다가 돌아왔을 때는 불과 네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머지 수백 명의 의병들은 일본군에 토벌되어 회령 일대의 산자락에 묻혀 한 줌의 흙이 되었다. 이제는 그들의 시신을 찾을 길이 없지만 해마다 꽃으로 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자 비감했다.
도문대교 위에 있는 붉은 선,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 앞에서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북한이 한 발자국 앞에 있다는 사실보다 수많은 의병들, 얼어 죽고, 굶어 죽고, 총 맞아 죽은 의병들과 독립군들이 '조국이 이렇게 분단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비통해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에 조국이 분단되어 민족을 서로 죽이는 전쟁이 발발할 것을 알았다면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했을까? 그들이 고통스럽게 투쟁한 독립운동이라는 거룩하고 숭고한 행위도 이러한 역사 앞에서 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도문대교에서 역사의 비극을 보았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본과 투쟁을 한 결과가 '남북 북단'이라는 것은 참혹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그들의 목숨은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하는가?
오늘을 미래에서 본다면: 민중들은 대개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흐른다. 한국은 베트남전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한 1964년부터 휴전협정이 조인된 1973년까지 8년에 걸쳐 베트남에 국군을 파견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유 베트남에 파견되어 피를 흘리고 죽어갔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는지 알았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공산당에 맞서 자유 베트남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은 그들 입장에서 보면 외세와 맞서 싸우기 위한 독립전쟁이었다. 우리는 베트남의 독립전쟁에 군대를 파견해 많은 젊은이들의 피를 흘린 것이다.
1973년의 휴전은 허위에 지나지 않았다. 월맹은 미군이 철수하자 1974년 자유 베트남을 멸망시켰고,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로 통일되었다. 시간이 지나 이제 베트남은 어떻게 되었는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개방을 하면서, 표면적으로만 사회주의 국가일 뿐 실제로는 자본주의 국가나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파견한 미국과 한국의 군대는 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1980년대 이후 공산주의 정권이 세계 곳곳에서 붕괴되었기 때문에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력으로 싸우지 않았어도 붕괴되었을 것이다. 역사는 때때로 엉뚱하게 소용돌이친다. 현재의 역사적 사건들을 현재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평가하는 것은 평가자의 이해가 얽혀 편향되기가 십상이다. 평가자의 이해가 얽히면 역사가 단편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2장 역사는 진실인가
승자가 기록한 역사
권력자에 의한 역사의 왜곡: 봉건시대는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국가가 담당했다. 비록 사관들이 직필로 기록을 한다고 해도 절대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많은 역사가 왜곡되었다. 소현세자는 심양에서 돌아온 뒤 몇 달 만에 죽었다. 이때 소현세자 독살 의혹이 파다하게 퍼졌다.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 일 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외인들은 아는 자가 없었고, 상도 알지 못하였다. 당시 종실 진원군 이세완의 아내는 곧 인열왕후의 서제였기 때문에, 세완이 내척으로서 세자의 염습에 참여했다가 그 이상한 것을 보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도 소현세자의 독살 의혹을 기록했다. 그러나 권력자의 눈치를 보았는지 상도 알지 못했다고 해 인조 연루설을 은폐하고 있다. 인조는 이후 며느리인 강빈을 사사하고 두 손자도 죽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가 죽을 때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상이 토목 공사를 일삼아 대나무로 정자를 짓고 기둥을 조각했는데 몹시 기묘했다. 그리하여 내간에 나무와 돌의 토목공사가 거의 쉬는 날이 없었으나 외부 사람은 아는 이가 적었고 비록 아는 이가 있더라도 또한 정사에 관련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인조는 왜 대나무로 집을 짓고 기둥에 조각을 한 것일까? 이는 악귀가 침입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 살해한 비정한 임금이니 그들의 원귀가 찾아올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든 인조는 말년에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기록자가 권력자의 눈치를 보게 되면 역사는 왜곡되는 것이다.
위서라고 불린 역사
사라진 역사서: 역사는 진실만을 기록하지 않는다. 통치의 수단으로 삼기 위해 종종 허구를 기록한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는 역사도 많다. 기록은 되었으나 사라져버린 역사서도 있다. 고구려의『유기』는 고구려 멸망과 함께 사라졌다. 조선왕조 초기에 존재했던 『조대기』나 『단군세기』, 『삼성기』등도 사라진 역사서들이다. 현대에 와서 대표적인 위서 논쟁을 불러일으킨 『한단고기』나 『화랑세기』는 진본을 찾을 수 없고, 필사본으로 인해 그 내용과 함께 위서로 의심을 받고 있다. 조선에서도 많은 책들이 사라졌다. 보관이 어려워서 유실되었거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유실된 책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치자들이 의도적으로 사라지게 한 책들도 적지 않다.
『고조선 비사』, 『대변설』, 『조대기』, 『주남일사기』, 『지공기』, 『표훈삼성밀기』, 『안함 노원 동중 삼성기』, 『동천록』, 『마슬록』, 『통천록』, 『호중록』, 『도선 한도참기』 등의 문서는 마땅히 사처에 간직해서는 안 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하도록 허가하고, 자원하는 서책을 가지고 회사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ㆍ민간 및 사사에 널리 효유하라.
조선왕조의 세조가 1457년 5월 26일 팔도 관찰사에게 목록에 있는 책들을 진상하라고 내린 명이다. 이로 인해 많은 책들이 조정에 바쳐졌다. 세조가 내린 왕명으로 수거한 책들 중에는 『고조선 비사』를 비롯해 『조대기』, 『삼성기』 등의 역사서가 있는가 하면, 『도선 한도참기』 등 도참설에 대한 책도 있다. 그런데 세조는 왜 이러한 책을 대대적으로 수거한 것일까? 이는 성리학을 조선의 정학으로 삼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국가가 민중을 통제하려는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예종은 1469년 9월 18일 예조에 영을 내려 모든 천문ㆍ지리ㆍ음양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강제로 수집했는데 "숨긴 자는 참형에 처한다"는 무서운 영을 내리기도 했다. 이와 같은 영은 성종 때도 내려졌다. 『조대기』나 『삼성기』 같은 책들은 역사책이다. 이러한 책들을 수거한 것이 세조, 예종, 성종 등이 치세를 할 때 집중되었다는 사실을 추정해보면, 당시의 대신들이 이를 주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은폐된 역사의 진실은 결국 드러난다
역사는 사실이나 때론 은폐된다: 역사는 사실이다. 그러나 때때로 사실이 은폐된다. 조선에서는 임금이 사초나 『실록』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폭군이 등장하면 붓이 꺾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연산군 때 일어난 무오사화는 김일손의 사초가 단서가 되었다. 사초는 임금이 볼 수 없는데도, 이를 담당했던 이극돈이 유자광에게 알리고 유자광이 노사신, 한치형, 윤필상, 신수근 등과 함께 김종직과 김일손이 대역부도를 꾀했다고 연산군에게 보고했다.
"김일손의 사초를 모두 대내로 들여오라." 연산군이 영을 내렸다. 이에 실록청 당상 이극돈, 유순, 윤효손, 안침이 반대했다. 연산군이 재차 "즉시 빠짐없이 대내로 들이라." 하자 이극돈 등은 사초에서 6조목을 절취해 봉해 올렸다. 이리하여 무오사화의 피바람이 일어나게 되었다. 김일손의 사초는 스승인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지었는데 김일손이 '충분에 부쳤다'라고 사초에 기록했다. 조의제문은 항우가 초회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된 것을 비난한 것이다. 김일손은 이를 단종을 죽이고 보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에 비유해 연산군의 조상을 비난한 것이다. 무오사화는 김일손이 사초에 은폐된 진실을 기록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김일손은 스승인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내세워 이를 비판했다가 필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은폐되었던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고 말았다.
지도자의 탐욕, 그리고 의문의 죽음들
국민을 선동하는 천박한 엘리트: 여야 정치인들,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을 보면 끔찍하다. 특히 유언비어를 대단한 비리를 폭로하는 것처럼 대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면서 주장한다. 대학생들은 거짓 폭로에 경악해 정부가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고, 이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급속하게 퍼져나간다. 이튿날 이와 같은 사실을 한 신문이 보도하자, 강사는 입에 거품을 물고 신문사를 비난하고, 강사를 추종하는 네티즌들이 신문기자에 대해 원색적인 욕설을 퍼부었다. 강사는 인기를 끌기 위해 거짓 폭로를 했다. 그러나 그는 도덕적인 책임을 전혀 지지 않고 국세청이나 정부에서도 이러한 폭로에 대응하지 않고 있다. 강사는 어차피 사기꾼이고 모리배라고 하지만, 이러한 사람의 정체를 모르고 동조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두려워진다. 모리배에게 동조하는 것은 결국 모리배가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20년 후면 대한민국은 모리배가 가득한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역사는 이들을 준엄하게 심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