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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권력의 역사

외르크 뤼프케 지음 | 알마
시간과 권력의 역사

외르크 뤼프케 지음

알마 / 2012년 1월 / 332쪽 / 18,500원



달력, 달력 그리고 달력

달력은 약속, 마감 시간, 빡빡한 일정, 계획이 틀어지면서 생긴 틈, 쫓기는 시간 등 위협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달력이란 시간을 정리하는 파일일까?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실 시간은 달력과 상관없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달력은 문화적 성취물일까? 이런 비유는 달력을 비꼬는 표현이다. 작고 오래된 다이어리 속의 달력은 주인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시간표에 맞지 않게 움직일 때는 무서운 노예 감독관으로 돌변한다. 이처럼 달력은 지배자인 동시에 피지배자다.



우리는 달력을 다채로운 색으로 채운다. 시간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밤을 낮으로, 평일을 휴일로 바꾸기도 한다. 또 달력은 꿈쩍도 않고 군림하는 지배자가 되어 우리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사무실 문을 닫게도 하고, 고속도로를 막히게도 하며, 휴식을 강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나 때가 되면 새해와 크리스마스, 생일 등을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한다. 또한 12월 21일이 되면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5월 1일 노동절이 되면 모두는 아니지만 대개는 늦잠을 자도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일들이 당연해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어쩌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상점 영업시간 연장에 관한 논의를 통해 목요일 저녁만이 아니라 토요일 오후까지도 영업시간이 달라졌다(독일의 상점 영업시간은 목요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오후 6시까지로 제한되었으나, 점차 연장되고 있다. 또 토요일 영업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또한 사회보장 보험의 범위를 늘리면서 휴일을 줄인 것도 이에 해당된다.



아무튼 달력은 태양의 운행과 지구의 자전이라는 자연스러운 주기를 고려해 우리가 주어진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또한 달력은 문화적 생산물로서 모두가 참여해 만든 사회적 구성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달력의 내용은 주나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거나 제도나 종교가 다른 경우에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고 의문시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 책의 제목에 '문화사'(이 책의 원제에는 '달력의 문화사'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라는 말을 넣었다.



참고로 이 책은 유럽에서 주로 통용되는 그레고리력을 이해하려는 시도이지, 학교에서 배운 천문학이나 수학 지식을 되살리고 그 이해를 돕기 위한 기술서적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에서는 달력이 우리와 함께한 것과 우리가 달력과 함께한 것을 동시에 다룰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달력에는 일상을 결정하는 시간의 리듬이 들어 있고, 집단이나 개인에 관한 역사적 침전물이자 상징으로서의 날짜인 기념일과 축제들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달력은 그래픽 형식과 다양한 출판물 형태로 벽에 걸려 있거나 가방 속에 들어 있다.



로마의 달력, 태양 또는 달

멋지게 빛나는 달: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까지의 고대 로마 연구자들의 지식을 바탕으로 가장 오래된 로마력의 상세한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로마에서 행해진 온갖 정치, 특히 법률과 종교 업무를 담당하던 파트리키(Patrici, 고대 로마의 귀족 계급)가 맡았던 신관단을 보조하던 한 저자는 초승달 즈음에 달의 모습을 관찰했다. 반월이 될 때(아니면 이와 비슷한 크기가 될 때)까지 며칠이 남았는지를 어림잡아 계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고위 성직자인 대제사장과 함께 성 안의 신성한 장소로 갔다. 그곳은 쿠리아 칼라브라로 불리는 역사적 기억의 중심지로,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의 오두막에서 가까운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두 사람은 희생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렸다. 이어 후에 소제사장으로 불린 그 저자는 여신을 불러냈다. "당신을 부릅니다. 유노 코벨라! 당신을 부릅니다. 유노 코벨라! 당신을 부릅니다. 유노 코벨라! 당신을 부릅니다. 유노 코벨라! 당신을 부릅니다. 유노 코벨라!"



이 다섯 번의 외침은 달이 반달일 때 열리는 공식적인 모임이 외침이 있던 날을 포함해서 다섯째 날에 거행된다는 것을 참석한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종의 신호였다. 날짜의 간격은 달의 상태에 따라 네 번, 다섯 번 혹은 여섯 번의 외침으로 바뀔 수 있고, 이에 맞춰서 공고되었다. 대제사장의 배우자인 제사의 여왕은 같은 날 레지아, 즉 포럼(Forum, 로마 시민들의 생활 중심지로 정치, 종교, 상업 등의 시설이 밀집되었던 곳이다)의 입구에 있는 신전에서 유노 여신(로마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여신으로 그리스신화의 헤라에 해당한다)에게 암퇘지나 암양을 제물로 바쳤다. 이날에 칼렌다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라틴어로 칼로(Kalo)가 바로 '부른다'라는 외침을 뜻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미 공고했던 날에 모였는데, 이날에는 더 중요한 내용을 발표했다. 그것은 대제사장이 그달에 있는 휴일을 알렸는데, 일정만이 아니라 때에 따라 중요한 의식을 행하는 장소와 참석자의 축제 의상, 선물 등에 대해서도 알렸을 것이다. 우리는 당시 어떤 의식이나 의례가 행해졌는지 모르지만, 이 모임이 상업적 혹은 법률적인 일을 하거나 정치적인 모임을 거행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가정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날의 이름은 보름달이 뜨는 날과의 간격에서 비롯되었는데, '만월일'은 에트루리아어에서 유래한 단어 '이두스(Idus)'로 표현되었다.



'노나이'(Nonae, 라틴어로 아홉째라는 의미)는 이두스의 9일 전이었다. 로마식으로는 당일도 포함해서 계산했기 때문에 9일 안에 이두스와 노나이가 모두 포함된다. 이두스, 즉 만월일은 그달의 정점이었는데, 이날은 온종일 대부분 일을 하지 않는 휴일이었다. 가장 오래된 경기들, 즉 유페테르 혹은 군신 마르스와 관계되는 마차 경주, 일대일 시합 등도 만월일에 거행되었는데, 이런 축제의 패턴은 만월일로부터 8일 후, 로마식 계산법에 따르면 9일 후에도 반복되었다.



그 후에 나온 달력들은 이날 거행된 축제가 오래되었고, 중요하며 인기가 있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예컨대 2월의 페랄리아는 죽은 자를 위한 축제, 4월의 파릴리아는 로마의 건국 기념일, 7월의 넵투날리아는 초막절(유대인의 추수 경축절)이었다. 8월에는 대경마장에서 고대 경주가 열렸고, 끝으로 디발리아는 12월에 동지의 여신 안게로나에게 바치는 축제였다. 로마력의 3월과 5월에는 투빌루스트리움(트럼펫을 정화하는 의식)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것은 해당 달의 다른 행사일정들에 대응하는 제식의 집합체였다. 초하루처럼 어린 양이 제물로 바쳐졌고, 같은 날이나 그 다음 날에 민회가 열렸다.



지금까지 기술한 달력은 여전히 8일 주기다. 투빌루스트리움으로부터 내달 첫날까지는 다시금 눈디눔(다음 장날까지의 기간), 즉 로마식 계산법으로 하면 9일 단위였다. 이로써 경험과 관찰에 근거한 태음월(太陰月)의 한 달 모습을 추론할 수 있다. 중요한 날은 보름달이 뜨는, 유피테르 신에 속한 만월일이었다. 만월일 8일 전에 주민 총집회가 열렸는데, 이 집회는 무엇보다도 축제의 순서를 공고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 모임이 있고 나서 세 번에 걸친 8일 주기의 행사가 있었는데, 이 주기는 이두스, 투빌루스트리움의 축제와 민회 그리고 칼렌다이(다음 달 첫날)의 집회로 끝이 났다. 단지 다음 달 1일과 노나이, 즉 만월일 8일 전의 날 사이의 시간은 달라질 수 있었다. 만월일과 다음번 보름날을 다시금 일치시키려는 목적으로 이 중간 기간은 경험적으로 결정되었으며 공포되었다. 칼렌다이, 즉 매월 1일을 정하는 일도 이를 위한 것이었다. 만월일 이후 그달의 반은 16일로 그전의 기간보다 길다. 따라서 하루나 이틀 혹은 사흘간 달이 어둠에 잠긴 뒤 매월 칼렌다이에 초승달이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내면, 다음번 보름날까지 기간에 대한 신뢰할 만한 날짜 계산이 가능했다. 이런 계산 체계는 달의 경계를 설정하는 데 있어 매월 1일, 즉 칼렌다이보다는 만월일에 더 중요한 위치를 부여했다.



태음력에서 태양력으로: 지중해 다른 지역의 태음력과 마찬가지로 로마력도 한 해의 흐름, 농업과 항해, 전쟁 수행의 가능성을 결정했던 태양년과 안정된 관계를 가지고자 했다. 이런 달력상의 일치는 13월을 간간히 넣어줌으로써 가능했다고 알려져 있다. 2년이나 3년마다 윤달을 삽입하면, 태음력과 태양력 사이의 관계는 장기적으로 똑같이 유지된다. 이런 시간 계산 체계는 태음력 대신에 달의 변화와 태양의 진행을 함께 고려한 역법, 태음태양력으로 간주되었다. 이 시간계산법은 지구 둘레를 도는 위성(달)의 주기와 태양의 둘레를 도는 지구의 공전 기간을 어느 정도 훌륭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한편 윤달 삽입을 법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이미 기원전 5세기에 있었다. 이것은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얼마나 분분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달리 부를 명칭이 없는데, 첫 번째 '로마의 달력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런 달력 체계에 어떠한 변화도 가져와서는 안 되었다. 추측건대 달력 체계를 바꾸려는 어떤 시도도 해서는 안 되었던 것 같다. 이런 흐름에서 종지부를 찍은 사람이 독재자 카이사르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로마가 태음력에서 태양력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적절하게 평가하려면, 로마의 내적 상황과 외적 정황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오래된 역사를 대할 때면 항상 그렇듯이 자세한 사항은 알 수가 없다. 날짜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기원전 5세기 중엽에 일종의 위기 정부였던 로마의 두 번째 10인 위원회가 달력과 관련해 행했다는 불분명하고 꾸며졌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보다는(율리우스력 개정이 있기 전에 10인 위원회에서 윤달 삽입에 대한 새로운 법을 제안했으며, 1년을 새로 정했다고 한다), 기원전 4세기 말의 달력 출판에 관한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달력 개혁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신빙성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파스티 안티아테스 마이오레스에서 알 수 있듯이, 달력 개혁의 내용은 율리우스력 이전의 달력 형태에서 추론할 수 있다. 이 달력은 첫눈에 보기에도 로마의 태음력과 일치하는 것 같다. 즉 칼렌다이, 노나이, 이두스, 투빌루스트리움 등이 모두 안티움 달력에 보인다. 마찬가지로 13월이자 인터칼라리스, 즉 '그 사이에 넣는 것'이라 불린 윤달도 보인다. 달력 구성과 관련된 혁명적인 특성은 이제 달력의 마지막 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달력 개혁은 달의 길이와 관계되는데 1월은 29일, 2월은 28일, 3월은 31일, 4월은 29일, 5월은 31일 등으로 각 달의 일수가 고정되어 있다. 모두 더하면 355일이 되는데, 평균적인 태음년보다 하루가 더 많다. 이것은 우선 경험적인 태음월이 관례적으로 고정된 태음월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생겨나는 오류, 즉 월상(月相) 뒤에 남은 날짜는 27일밖에 되지 않는 윤달을 통해 조정되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는 모두 다른 지역에서 행해진 변화의 틀 속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윤달을 보면 놀라운 점이 눈에 띈다. 윤달의 마지막 5일은 2월에 속한다. 이 사실은 고대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윤달은 2월의 마지막 5일을 포함하면서 실제로는 27일이 아니라 단지 22일(때때로 23일)이었다.

레기푸기움, 즉 '왕의 도주 축제날'(로마 제정기 작가들은 이를 기원전 6세기 말, 로마 왕정의 마지막 왕을 추방한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해석했다) 대사장은 도피를 하는 대신에 2월 24일을 그냥 윤달의 첫날로 불렀다. 그런데 이것은 한 달의 길이가 고정되어 있을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이듬해의 만월일이 어쩔 수 없이 5일에서 6일까지 어긋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력은 전체적인 용어와 제식적인 장치를 유지하기는 했지만, 음력 체계와는 완전히 결별했다. 달과 태양의 진행을 함께 고려한 달력에서 순전히 태양년이 되어버린 것이다.

달력을 둘러싼 역사

벽걸이 달력 속의 시(詩): 로마의 집정관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는 기원전 189년에 그리스 도시 암브라키아(지금의 아르타)를 정복했는데, 그가 기원전 179년에 감찰관이 되었을 때 작은 헤르쿨레스 사원의 한 주랑을 넓혀서 그곳에 암브라키아에서 가져온 9개 신들의 조각상을 진열하도록 했다. 또 그는 이 사원에 하나를 더 장식했는데, 그것은 벽화 형식의 달력이었다. 오늘날에는 사원도, 달력도 보존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달력이 대략 100년 후에 완성된 안티움 벽 달력의 전범이었을 가능성은 높다. 로마의 골동품상들이 이 달력은 인용했는데, 이 달력에는 여러 줄로 된 제목이 있었고, 그 제목에 따르면 달력은 정치적인 결정의 산물로, 즉 시민의 법적인 구조를 복사한 것으로 설명된다.



우리는 이 달력에서 그날의 법적인 성격을 결정하는 페리아이의 명명 외에도 처음으로 단순한 봉헌일 혹은 교회의 봉헌 축일이 거론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봉헌 축일은 네파스, 즉 법정의 휴일은 아니었지만, 제식이나 때때로 대중적인 행사가 열릴 수 있었다. 풀비우스가 신의 이름을 때에 따라서는 장소를 적는 형식으로 달력에 기입한 것은 역사적 연상물이었다. 이로 인해 달력은 더욱 역사적이 되었고, 더욱 종교적이 되었다. 이전에는 파스티에서 단지 재판일과 잠재적인 민회일 그리고 신에게 속하고 바쳐지는 제식일을 (눈앞에 다가온 일을 위해 이날을 피할 목적으로) 추론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제물로 가득한 날이 달력에 기록되었다.



기억은 장소와 연결된다: 기억은 장소를 가지고 있다. 첫 등교, 첫 키스, 첫 자동차 사고 같은 사건들은 어떤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고, 그에 관한 기억은 장소와 떨어질 수 없다. 집단적인 기억 역시 장소를 가지고 있다. 이런 장소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슷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말하자면 공유된 과거를 환기시킨다. 이런 일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지만 대개는 문화적으로 조정된다.



기억 공간을 세분화하는 데는 달력이 적절하다. 달력은 365(태음월로는 354)개까지 다양한 위치를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특정한 시간이나 날이 일찌감치 배제되어야 한다면, 이에 대한 이의 제기는 실질적으로 날이 적어서가 아니라 달력이 하나라는 단수성에 해당되는 문제다. 달력이 필요할 정도로 기억 공간이 복잡한 곳에서는 여러 공간들이 겹치는 것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특정한 달력은 전체 기억 공간을 재구성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이 달력에서는 누가 여기서 기억되고 어떤 기억이 지속되어야 하며, 누가 그 기억을 갱신할 것인가 등이 주요 요소로 작용한다. 이런 물음들은 특정한 역사적인 텍스트로서의 달력에게 향한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인 텍스트 자체가 기억의 장소, 즉 실제적인 기억 장소 너머에 있는 가상의 기억 장소가 된다.



풀비우스의 벽 달력은 그러한 기억의 장소였다. 이 벽 달력에서 승전은 사원 건립일과 전쟁에서 이긴 최고사령관의 이름을 통해 기념되었다. 그리고 감찰관과 달의 이름이 각각 건축 프로젝트와 로마사에 연결되었다. 특정한 패전도 기록되었다. 디에스 알리엔시스, 즉 기원전 387년에 도시 로마까지 점령한 켈트족에게 패했던 날에 대한 기록이 명시적으로 새겨졌다.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의 대패배는 집정관의 죽음 뒤에 그의 후계자를 명명함으로써 암시적으로 기록되었다.



머릿속의 달력

연, 월, 주, 일; 시간 의식의 구조: 달이 달력의 가장 중요한 단위를 구성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많은 지역에서 보편적이거나 중요한 활동에 국한된 주기로 취급된다. 이런저런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 사회와 비교할 수 있는 다른 사회에서 달력 사용을 강하게 특징짓는 것은 일주일 단위의 리듬임이 분명하다. 물론 일상생활의 복잡한 요구를 맞추려면, 말하자면 시간 관리, 공공 교통수단, 시간표, 문화프로그램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계가 꼭 필요하다. 시계의 역사는 달력의 역사가 계속되는 것을 의미하고, 시간의 역사는 모든 것의 속도를 높이는 역사로 보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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