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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라 일어나라

브루스 레빈 지음 | 베이직북스


Get up Stand Up(깨어나라 일어나라)

브루스 E. 레빈 지음

베이직북스 / 2011년 11월 / 368쪽 / 15,000원



1. 파편화된 사람들 VS 기업정치의 지배




기업정치의 지배

기업정치(corporatocracy)란 사회를 지배하는 기업이 정부와 연합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직접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민중이 직접 통치하고, 공화국에서는 민중이 그들을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대리인들을 통해 권력을 행사한다. 기업정치 사회의 경우 선거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기업과 부유한 엘리트들이 통치하면서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챙긴다. 기업정치 사회의 선거에서 지배계층은 민중이 발언권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도록 복수의 후보자를 출마시킨다. 또한 지배계층의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신세진 사람이 당선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 모두에게 선거 자금을 지원한다. 경쟁력 있는 정당이 2개밖에 없다는 사실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비용 절감 요인이다.



기업정치에서는 기업과 부유한 엘리트가 직 간접적으로 선거 자금을 지원해서 후보들을 채무자 신세로 만든다. 이렇게 빚을 지고 당선된 정부 관료들이 핵심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친기업 인사나 기업 임원을 임명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또한 고위 관료들이 은퇴 후에 고액의 연봉을 받는 로비스트가 되어 현 정부와의 인맥을 이용해 기업의 이해관계를 수호하는 것 역시 일상적인 일이다. 이러한 회전문 인사는 이른바 산업 복합체(industrial complex)의 관행이다. 산업 복합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군산 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 외에도 미국에는 '에너지산업 복합체'와 '농산업 복합체', 그리고 최근에 그 존재를 널리 알린 '금융 산업 복합체' 등이 있다. 금융 산업 복합체의 회전문 인사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골드만삭스의 CEO로 있다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마지막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던 헨리 폴슨이다. 로렌스 서머스는 2008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되기 직전에 헤지펀드 디아쇼에서 520만 달러를 받았다. 오바마 행정부의 재무부 차관 닐 울린 역시 하트포드 금융서비스 그룹의 이사 출신이다. 이들 외에도 금융 산업 엘리트 사회의 일원이었다가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 각료로 임명된 사람이 9명이나 더 있었다.



파편화된 사람들

미국인의 대다수는 사실상 민중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민중주의자란 기업과 정부의 연합체보다 민중의 판단을 더 신뢰하는 반엘리트주의자를 뜻한다. 나는 민중주의자들이 분열을 극복하고 엘리트 지배에 맞서 함께 싸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민중주의자들의 연합을 실현하는 방법도 함께 제시하려 한다.



대기업이 지배하는 미디어는 흔히 미국인들을 '자유주의자'(민주당 성향), '보수주의자'(공화당 성향), '중도파'로 구분하는데, 이것은 다분히 기업정치에 유리한 구분이다. 어떤 집단이 선거에서 승리하든 간에 기업정치의 권력은 변함없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기업정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엘리트주의'와 '반엘리트주의'라는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리고 엘리트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단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들 사이의 심리적 차이를 잘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대다수 미국인들은 기업정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현실을 이해하고 그런 현실에 대해 절망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절망과 분노를 건설적인 행동의 에너지로 전환할 줄 안다. 하지만 엘리트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장기간의 개인적 실패와 정치적 패배,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 비인간적인 환경과의 일상적인 접촉으로 인해 너무 지쳐버려 어떠한 행동의 욕구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엘리트 통치의 진실을 알게 되어도 쉽사리 저항하지 못한다. 고통이 심해질수록 정치 활동의 공간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뿐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분투하는 활동가들은 사람들이 행동하지 않는 이유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르기 때문이거나, 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서 한목소리를 내도록 결집시켜야 하는 단체들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나 역시 세상의 진실이 널리 알려지고 사람들을 조직하는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발전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흔히 훈계하듯 이야기되는 이런 식의 해결책에는 가장 중요한 퍼즐 조각이 누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조각은 다름 아닌 '무기력'이다. 이 책의 목표는 무기력이라는 문제의 해결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모든 사람이 성공에 한 발짝 더 다가가도록 하는 데 있다.



2. 왜, 미국인들이 무기력할까?




노동조합과 무기력한 노동자들

2010년 1월 8일, 미국 노동부에서는 실업률이 10%이며 1,530만 명이 실직 상태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업률 10%라는 정부 통계에는 920만 명의 비자발적 시간제 근로자와 250만 명 정도의 한계근로자(노동인구에 포함되지 않지만 일자리를 원하고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인들의 18% 정도가 스스로를 실업 상태 또는 반실업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2008년의 마지막 4개월 동안, 그리고 2009년 내내 미국인들은 한 달에 평균 50만 개가 넘는 엄청난 속도의 일자리 감소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사람들은 주위의 이웃과 친구, 가족과 동료가 일자리를 잃는 모습을 보았다. 아니면 자기 자신이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벌이가 괜찮은 제조업 일자리가 없어진다거나,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거나, 중산층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꽤 오래전부터 듣던 것이었다. 그런데 왜 더 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오지 않았을까? 2010년 1월 29일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인 빌 모이어스가 AFL-CIO(미국노동총동맹 산업별조합회의) 위원장 리처드 트럼카에게 던졌던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빌 모이어스: 리치 씨, 저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시위에 나서지 않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우리는 시카고의 노동자들이 공장 폐쇄를 앞두고 연좌농성을 했다는 이야기를 보도했거든요. 왜 요즘은 그런 움직임이 활발하지 않을까요?



리처드 트럼카: 그건 사람들이 너무 지친 나머지 아예 희망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임무는 바로 그 희망을 되살리는 일이죠.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절망해버리는 겁니다. 기업들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정치적 절차를 통제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예 없다고들 생각해요. 물론 그건 틀린 생각입니다. 이제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미국 내의 고통 받는 노동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항의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빌 모이어스의 관찰은 전반적으로 정확했다. 미국의 50개 주를 제외한 미국 영토와 전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2009년 내내 일자리 축소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2009년 10월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수천 명의 노동조합원들이 '2만 명이 넘는 노동자를 정리해고한다'는 정부의 계획에 항의했다. 2009년 스코틀랜드에서는 조니워커 공장폐쇄에 항의하기 위해 2만 명 이상이 거리로 나왔다. 2010년 10월 프랑스에서는 노동자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변경한다는 정부의 계획에 반발하여 주요 노동조합이 모두 전국적 파업에 돌입하는 바람에 비행기와 기차 여행이 모두 취소되고 국민들의 일상생활이 엉망이 되었다. 만약 미국 정부가 사회보장을 받는 연령을 끌어올리려 한다 해도 미국인들이 프랑스 사람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거대한 억압, 미미한 저항

물론 미국에도 대중의 저항 운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하거나 미국 역사 속의 다른 시기와 비교하면 지금의 저항은 너무나 미약해서 도무지 기업정치의 권력자들이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것 같지가 않다. 대다수 선진국과 비교할 때, 미국의 국민들이 억압을 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인들의 노동과 세금 납부는 다른 선진국 국민들과 어떻게 다를까?



명확하고 구체적인 지표는 노동시간과 휴식이다. 대다수 선진국들과 달리 미국에는 기업이 피고용인에게 유급 휴가를 의무적으로 주어야 한다는 연방정부 법률이 없다. 미국에서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간에 노동자들이 연 평균 9일의 유급 휴가를 받고 6일치의 공휴일 수당을 지급받는다. 그리고 미국의 노동자 4명 중 1명은 유급 휴가를 전혀 얻지 못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의무적으로 노동자에게 공휴일을 제외하고 1년에 최소 20일의 유급휴가를 보장해야 한다.



또한 미국의 건강보험 체계는 아픈 사람에게나 건강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는 누군가가 병에 걸리더라도 당사자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건강을 회복할 걱정만 하면 된다. 질병 때문에 경제적으로 파산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누군가가 일자리를 잃더라도 오로지 다른 일자리를 찾을 걱정만 하면 된다. 의료보험이 없는 신세가 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순전히 의료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매년 수천 명이 사망한다. 최근 의료보험 개혁안이 통과되긴 했지만 대다수 미국인이 가질 수 있는 의료보험은 여전히 형편없는 수준이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미국인들은 휴가와 의료보험만이 아니라 고등교육이라는 측면에서도 기만당하고 있다.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 보조금의 비율이 높고 학비가 무료이거나 아주 저렴한 편이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대학 졸업생들이 빚을 잔뜩 안고 사회에 진출하지 않는다. 대다수 선진국들과 달리 미국 연방소득세의 나머지 부분은 불필요한 전쟁에나 쓰이지 국민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



이처럼 대다수 미국인들은 기업 엘리트와 비교해서 자신들이 경제적으로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단순 논리를 따른다면 상황이 나빠질수록 사람들의 저항도 거세져야 하겠지만, 현실에서는 그 논리보다 '심리학적 논리'가 힘이 센 듯하다.



3. 전투에 임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배경 지식




고독, 인터넷, 관료주의의 시대

2000년 인구 센서스에 의하면 미국인의 25%가 혼자 살고 있었다. 1인 가구가 7%에 지나지 않았던 1940년대와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였다. 2006년 《미국 사회학 리뷰》에 게재된 대규모 연구는 이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었다. <미국의 사회적 고립: 지난 20년간 지인 네트워크의 변화>라는 제목의 이 연구는 미국인들의 '절친 네트워크'를 조사했다. 여기서 절친이란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거나 조언을 구할 만큼 가까운 지인을 뜻한다. 조사 결과 1985년에는 미국인의 10%가 절친이 없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2004년에 이르러서는 절친이 없다는 응답이 25%로 늘었다. 결론적으로 지난 20년 동안 미국인들은 친밀한 지인을 잃었고, 특히 가족이 아닌 지인의 수가 크게 감소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친구들끼리 또는 이웃들끼리 직접 접촉하는 일이 갈수록 줄어든다.



인터넷은 어떨까? 어떤 사람들은 페이스북이나 마이스페이스에 수백 명의 '친구'가 있다지만 그것은 절친이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 전문가들은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등의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가 사람들에게 허구적인 연계의 느낌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시적으로는 기분이 좋아지지만 실제 인간관계와 똑같은 지속적인 만족감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페이스북 이용자가 급격히 늘었다는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연계에 굶주려 있음을 보여준다. 문자 메시지와 트위터와 같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또한 오히려 고립감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중이 억압적인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람들이 고립되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이 불행한 원인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확인할 기회가 없다. 그럴 때 사람들은 자신들이 개인적 능력이 부족해서 희생양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억압에 도전하는 데 필요한 집단적 자신감을 공급해주는 결속을 가지지 못한다.



사회적 고립이 심해지는 원인들 중 하나는 사회가 점점 관료화된다는 것이다. 관료화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단조로운 기계음으로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대답하는 전화기에 대고 30분 동안이나 큰 소리로 질문에 답했는데 정작 내가 원했던 것이 기계의 '메뉴'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어떤 심정이겠는가? 기계가 헷갈려 하다가 진짜 사람을 연결해 주기를 바라면서 전화기에 대고 횡설수설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자존감과 품위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것은 우리 사회의 관료화와 비인간화 과정의 아주 작은 단면일 뿐이다.



오늘날 미국인들 대다수는 의미라든가 사회적 연계를 향한 그들의 인간적 요구와는 무관한 직업에 종사한다. 지난날의 자본주의에서는 사람들이 비록 이윤의 도구로 전락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지만 이윤을 요구하는 주체는 피와 살을 가진 상사와 사장들이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사람을 상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들의 처지가 개선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감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는 가능했다. 하지만 자동응답기에 대고 어떻게 분노를 표현하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자포자기하고 더 깊은 무력감에 빠져든다.



거짓말쟁이, 위선자, 이기주의자, 그리고 기업 미디어

이 책의 목표는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원하는 미국인들의 단합을 촉구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아주 폭넓고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 또한 거짓말쟁이, 이기주의자, 위선자들의 농간에 넘어가서 집중력을 잃거나 분열하거나 패배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14세 소년이었던 1970년, 베트남 전쟁이 확전을 거듭하자 나도 슬슬 징집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전쟁이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았고, 그 예상은 어김없이 맞아떨어졌다. 나와 멀리 떨어진 존재인 권력 기구들은 냉담하기만 하고 나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내가 다리를 잃거나 생명을 잃어도 그들은 상관하지 않을 터였다. 만약 내가 전쟁 포로가 된다면 전쟁을 지속할 구실이 하나 더 생기기 때문에 그들이 기뻐할 것도 같았다. 이것이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이다. 그런 현실이 두렵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나에게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니.



열네 살짜리 소년도 알고 있었던 바와 같이, 우리를 베트남 전쟁에 밀어 넣은 것은 민주당이었다. 그리고 전쟁을 확대한 사람은 닉슨 이전의 대통령이었던 린든 B. 존슨이었다. "헤이, 헤이, LBJ, 오늘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죽이셨나요?"(베트남전 당시 청년들이 풍자적으로 외쳤던 구호이다.) 나는 정치인들과 그들에게 조언하는 엘리트들이 대부분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닉슨은 베트남전 종전에 관한 비밀 계획에 관해 거짓말을 했고 캄보디아 폭격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미국의 어른들은 닉슨과 존슨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래서 나는 성인이 되면 거짓말쟁이를 알아보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다.



또한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위선적인 엘리트주의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우파 진영의 위선적인 엘리트주의자들로는 '치킨호크(chickenhawk)'와 '네오콘 콘맨(neocon con man)'이 있다. 치킨호크란 전쟁과 군사개입을 지지하면서 자기는 군복무를 극구 기피하는 정치인과 전문가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네오콘 콘맨이란 자유와 애국이라는 개념을 이용해서 엘리트에게 이익이 되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사기꾼들을 말한다. 자신이 대중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훌륭한 이상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엘리트는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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