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판결은
모리 호노오 지음 | 말글빛냄
당신의 판결은
모리 호노오 지음
말글빛냄 / 2011년 10월 / 246쪽 / 12,000원
제1부. 살의에 사로잡힌 '마(魔)의 순간'<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로버트 와이즈 - 살인사건의 표준은 충동적 살인
살인죄의 기본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안에 있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뮤지컬 영화의 걸작이자 불멸의 작품이다. 뉴욕 다운타운에서 '제트파'와 '샤크파'라는 두 불량 집단이 대립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제트파의 젊은이(주인공)와 샤크파 리더의 여동생(여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런 가운데 주인공이 목숨을 잃게 되는 이유도 허무할 정도로 단순하다. 샤크파의 리더가 제트파의 리더를 칼로 찔러 죽이며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눈앞에서 자기 집단의 리더가 죽는 모습을 본 주인공이 흥분하여 이성을 잃고 샤크파의 리더를 찌르고 만다. 연인의 오빠이자 샤크파의 리더는 죽고, 여주인공을 사랑한 샤크파의 한 젊은이가 주인공을 총으로 쏴 죽임으로써 두 사람의 사랑도 비극으로 끝난다.
여기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꺼낸 이유는 이것이 형사재판에서 상정하고 있는 '보통 살인'이기 때문이다. 실제 형사재판에서는 각 살인사건의 형기를 숫자로 정할 필요가 생긴다. '징역 몇 년'과 같은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 우선 숫자를 정할 규정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살인사건과 징역 연수를 정해두어야 한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 나오는 살인은 우연히도 그 기준에 해당된다.
살인에도 '상' '중' 같은 수준이 있다고?! '보통 살인'이란 무엇인가?: '보통 살인'이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살인은 전부 죄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물론 살인에 '중'이나 '상' 혹은 '특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형벌의 무게를 결정하려면 상대적으로 딱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필요한 숫자(징역 몇 년)를 정할 수 없다. 숫자도 중요하지만 시민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가해 열심히 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열의 자체가 헛되이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술적 의미에서 '보통 살인'의 본질은 어떤 것일까? 다음과 같은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겠다. ① 살해한 피해자가 한 명이고, ② 충동적, 우발적으로 일어난 살인으로, ③ 확실한 살의를 갖고 행위가 이뤄졌으며, ④ 피해자에게 잘못이 없고, ⑤ 피고인에게 이렇다 할 전과가 없다. 이상의 사항에 모두 해당되면 보통 징역 13~14년 형에 처해진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살인은 이 같은 표준 요소에 거의 들어맞는다.
피해자의 잘못은?: 그렇다면 '피해자의 잘못'이란 어떤 경우에 인정되는 것인지 알아보자. '잘못'이라고 해도 넓은 의미로 일상생활에서의 비행이나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피해자의 잘못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살해라는 결과에 이르게 된 객관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으로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협박을 당하던 쪽이 거꾸로 상대방을 살해한다든가, 평소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여성이 가해자를 살해한다든가,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한 아버지나 어머니가 친자식을 해친다든가 하는 경우다. 형사재판에서 말하는 '보통 살인'의 특징은 알다시피 충동적인 살인이라는 점이다. 이에 반해 계획적인 살인은 당연히 죄질이 나빠 형벌이 무거워진다. 살인사건의 경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계획성'이 중시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방인> 카뮈 -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면, 과연…
주인공 뫼르소의 행위는 정당방위인가?: 카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우연히 아파트에 사는 이웃과 아랍인의 다툼에 끼어들게 된다. 그리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해변에서 아랍인을 쏴 죽인 후, 법정에서 살해 동기를 '태양 때문에…'라고 대답해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엄벌을 받을까 두려워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뫼르소는 변명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기분을 솔직히 말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도 오히려 행복하다고 느끼는데,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조금 공감하기 힘든,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태양 때문이다', 그 진술은 인정될 수 있다: 카뮈의 <이방인>에서는 '태양 때문에'라고 한 주인공의 진술은 법정에서 받아들일 가치조차 없다고 여겨졌다. 또 그런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살인을 저질렀기에 뫼르소는 엄벌에 처해진다. 아랍인이 비수를 뽑는 것을 보고 놀란 뫼르소가 거기에 반응했다는 것 이외에는 객관적으로 동기다운 동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잘 알지도 못하는 아랍인을 굳이 살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대방의 공격적인 태도나 흉기 때문에 순식간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행동을 취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뫼르소는 아랍인이 비수를 뽑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자기 방어를 위해 총을 발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은 아무리 봐도 처음부터 죽일 목적이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아랍인이 비수를 뽑는 것을 보고 놀라 순간적으로 저지른 사건이었다고 해석하는 편이 가장 타당하다.
형사재판은 사람을 판결하지 않고, 행위를 판결한다: 어떤 형벌에 처할지를 결정할 때 고려할 사항은 ① 범죄 상황과 ② 일반 정황의 두 가지로 크게 구별할 수 있다. ① 범죄 상황이란 행위 자체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일이고, ② 일반 정황은 그 이외의 생활배경과 같은 일반적인 사항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재판 보도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범행의 계획성'은 ①에 속한다. 이것은 행위의 잔혹성이다. 이에 반해 소설에서 뫼르소가 규탄 받고 있는 그의 비도덕적인 행동은 전부 ②에 속한다. 따라서 이 점은 재판에서 중시하지 않는다. 아무리 검사가 이 점을 규탄하더라도 뫼르소의 형벌을 무겁게 할 수는 없다.
제2부. '계획범죄'의 사각지대<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 라스콜리니코프는 정말로 사형일까?
라스콜리니코프의 마지막 고백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걸작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는 자신을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존재인 '비범인非凡人'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리는 이상적인 자신과, 가난 때문에 대학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현실의 자신을 비교한다. 그는 비범한 사람이 사회에 백해무익한 사람에게서 금품을 빼앗는 행위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유익하고 올바른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난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탐욕스러운 전당포의 노파를 죽이고 금품을 빼앗아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더운 여름 밤, 그는 하숙집에서 도끼를 품에 숨겨 전당포 노파의 집으로 향한다. 그는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노파를 끔찍하게 살해한다. 작품의 주제에 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해두고 현실의 재판으로 눈을 돌려보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끝부분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갈등 끝에 마침내 죄를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경찰에 자수해 전당포 노파와 여동생을 살해한 경위를 진술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지 않고 '노파에게 열쇠를 빼앗은 상황'을 시작으로 범행 경위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마지막으로 노파에게 빼앗은 물건을 숨긴 위치가 '대문 안쪽에 있는 돌'이라고 알려주는데 그 돌 밑에서 노파의 지갑과 귀중품이 발견되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고백을 법률적으로 살펴볼 경우 재판에서 우선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과연 어디일까? 그것은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대문 안쪽에 있는 돌'이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재판의 보물 '비밀의 폭로': '대문 안쪽에 있는 돌'이라는 작은 부분을 중요시할 것이 아니라 라스콜리니코프의 고백 전체를 갖고 판단해야 인간다운 재판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판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일단은 처음에 솔직히 자백을 했더라도 나중에 그것을 부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사형이 구형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시점에서 겁을 먹고 범행을 부인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부정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비밀의 폭로'이다. 비밀의 폭로가 있는 경우에는 나중에 자백을 번복하더라도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거기다 비밀 폭로의 '비밀성'이 상당히 높을 경우, 자백의 진실성에 대한 판정 정도를 넘어 그 자체가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태양은 가득히> 르네 클레망 - 알랭 들롱의 시체 없는 살인사건
주인공의 행위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강도 살인: 알랭 들롱이 연기하는 리플리는 태양이 작열하는 어느 날, 바다에서 자신의 친구를 찔러 죽인다. 요트에는 그 둘뿐이었기 때문에 목격자는 없었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시체를 무거운 돌과 함께 로프로 묶어 바다 깊숙이 던져 수장한다. 죽은 친구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리플리는 값비싼 옷을 걸치고 죽은 친구의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친구의 아버지에게 송금을 받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는 친구의 약혼녀까지 손에 넣는다. 하지만 '재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범죄는 강도 살인이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의 금품을 뺏기 위해 저지른 강도 살인은 강도 살인 중에서도 상당히 원시적이고 근시안적인 범행이라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동물적인 범행이다.
시체 없는 살인사건은 어떻게 될까?: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경우 '시체 없는 살인사건'이라 불린다. 이따금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경우 살인죄에서 무죄가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죄체罪體'라는 단어로 인한 착각 때문에 나온 발상이다. '범죄의 입증을 위해서는 우선 죄체가 입증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이 '죄체'라는 것은 범죄의 실체, 즉 범죄의 객관적 측면을 일컫는 말이지 몸(사체)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살인죄에서 고의(살인) 등 주관적인 면을 제외한 객관적 행동(살인이라는 행위)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죄체'는 반드시 입증되어야만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하고 있을 뿐이지, 시체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시체 없는 살인사건에 어떻게 유죄를 선고할 수 있을까?
상황 증거의 누적이란?: 그렇다면 '시체 없는 살인사건'과 같은 경우 용의자에게 특히나 불리한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피해자의 돈(금품)을 횡령했다거나 처분했다거나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런 행위는 피해자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저지르는 행동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횡령이나 처분을 한 사람은 피해자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의심을 받기 쉽다. 결백한 사람이라면 그런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낮게 마련이다.
<태양은 가득히>라도 지혜롭지는 않아…: 리플리는 친구의 사인을 흉내 내고 전화로 목소리를 따라하며 자신이 또 다른 존재인 것처럼 꾸며댔지만 이것은 역효과만 불러 일으켰다. 피해자가 실제로 언제 사라졌는지는 결국 밝혀지게 마련이다. 그럴 경우 피해자의 물건을 횡령하거나 처분한 후 피해자 행세를 한 사람이 있다면 사건에 관여되어 있었다는 혐의가 매우 짙어진다. 영화나 소설에서라면 몰라도 실제 재판에서는 어리석은 리플리는 금방 들통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제3부. 범인과 피해자의 '여러 가지 정황'<개선문> 레마르크 - 애인의 복수를 위한 살인은?
사랑과 복수를 위해 살아가는 망명의사 라비크, 옛 연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남자를 살해: 파리의 개선문에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그림자가 엄습한다. 독일의 나치로부터 도망친 망명의사 라비크는 루마니아 출신의 떠돌이 가수 조앙과 센 강의 다리 위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라비크는 망명으로 인해 자신의 조국도, 의사 자격도, 생활의 터전도 모두 잃어 버렸다. 두 사람 모두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 곳을 잃은 불안정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레마르크의 <개선문>은 망명의사 라비크와 가수 조앙의 부평초 같은 불안정한 연애를 그리고 있다.
어느 날 파리 시내를 걷던 라비크는 잊을 수 없는 인물을 보게 된다. 독일에서 지내던 시절 자신과 연인을 고문하고 연인을 학대한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한 전 게슈타포 대원이었다. 그를 본 라비크의 마음에 복수심이 불타오른다. 라비크는 복수의 대상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환락가를 어슬렁거리던 남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접근해, 고급 사창가를 안내해주겠다고 속여 차에 태운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남자의 머리를 스패너로 가격한다. 상대방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라비크는 복수의 증거로 자기 손으로 직접 남자의 숨을 졸라 마지막 숨통을 끊는다.
복수를 위한 살인은 얼마나 정상참작이 될까?: 그렇다면 라비크가 저지른 복수를 위한 살인은 어떤 판결을 받게 될까? 예를 들어 자식을 잃은 부모가 자식을 죽인 범인을 살해함으로써 복수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혹은 능욕당하고 살해당한 아내의 복수를 위해 범인을 살해했다면 어떻게 될까? 자식이나 아내를 위해 저지른 복수가 정상참작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나 아내가 그 상대로 인해 죽었다는 사실이 확실해야 한다. 그것이 복수가 될 만한 이유, 즉 사건의 대전제가 된다. 그런데 실제 '복수 살인'에는 이 점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문제가 된다. 재판에서는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피고인을 무죄로 보는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에, 판결이 나기 전까지 피고인은 무죄로 간주된다.
또 다른 문제로는 누구를 위한 복수인지라는 것이다. 자기 아이나 부인이라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것이 만약 형제를 위한 복수라면 어떨까? 아니면 조카를 위해서라면, 혹은 애인이나 친구를 위해서라면? 더 나아가 자기 두목을 위해서라거나 아니면 귀여워하던 애완동물을 위해서라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복수인지 제한이 없어진다. 실제로 두목이나 부하의 원수를 갚기 위한 '보복 살인'은 전혀 정상참작이 되지 않는다.
주인공 라비크의 복수에는 문제가 있다: 이상의 논법으로 보면 라비크의 살인도 그다지 정상참작이 되지 않는다. 라비크 자신은 연인을 학대해 죽인 남자에게 복수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옛 연인이 사망한 원인이 그 남자에게 직접적으로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라비크의 연인은 게슈타포 대원에게 고문을 당한 후 사흘 뒤 여자 강제수용소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또 '옛 연인'을 위한 복수라는 것도 문제가 있다. 라비크의 연인은 그 게슈타포 대원과 서로 부담 없이 식사를 하거나 연극을 보며 데이트를 즐겼다. 결국 라비크의 복수 살인은 전형적인 복수 살인(아내나 자식이 살해당해 어쩔 수 없이 복수한 경우)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
저 자기 자존심을 위해, 나쁘게 말하자면 자기 만족을 위해 저지른 복수로 보일 가능성이 크다.
<대부> 프란시스 코폴라 - 마피아와 폭력조직이 관련된 살인
폭력조직끼리의 살인을 가볍게 보는 불가사의: 영화 <대부>는 전 세계적으로 기록적인 흥행을 올린 영화다. 폭력조직이나 마피아는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잃어버린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앞에서는 '폭력 반대'라든가 '폭력 조직 근절' 등에 대해 대놓고 말하지만, 역시 힘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어느 시대나 존재한다. 게다가 일반인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폭력조직 간의 피의 투쟁이나 의리 없는 전쟁이 펼쳐져도 별로 상관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폭력조직들의 암투는 실제 재판에서도 형이 가벼워지는 경우가 있다. 살인을 저질러도 가볍게 봐주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법무성 공식 자료에 의하면 세 명 이상을 살해하더라도 사형을 선고 받지 않는 열외적인 경우로 '가족 동반자살' 등과 함께 '폭력조직 암투'가 열거된다.
폭력조직원에 의한 일반 시민의 살해는 엄벌에 처한다. 그렇다면 시민에 의한 폭력조직원의 살해사건은?: 폭력조직원들 간의 살인이라는 전제에서 폭력조직원 간의 싸움에 대한 형벌은 가볍게 처리한다. 반대로 일반인이 폭력조직원을 살해한 경우는 어떻게 될까?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일어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일반인이 폭력조직원에게 협박당하거나 공갈을 받다가 살해하는 경우도 가끔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폭력조직원 두 명을 살해한 일명 '오사카 폭력조직 살인사건'이 그것이다. 폭력조직 간부가 타고 온 차를 들이받아 그 간부를 깔아뭉개고, 차에서 내려 손에 칼을 들고 있었던 부하 조직원에게 맨손으로 달려들어, 조직원에게 칼을 빼앗아 순식간에 찔러 죽인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피고인은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