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도현신 지음 | 미다스북스


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도현신 지음

미다스북스 / 2011년 9월 / 412쪽 / 23,000원



제1부 서연(書筵): 왕이 되기 위한 특별한 교육




서연_ 왕이 되기 위한 공부

서연은 세자에게 경사(經史),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익히게 하여 유교적인 소양을 쌓게 하는 교육을 말한다. 이는 고려 중엽부터 시작되었는데, 태조 이성계가 세자관속(世子官屬)을 설치하면서 내용과 질이 풍부해졌다. 당초 서연은 세자의 교육만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시대적 상황과 세자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 기능이나 학문적 성향이 바뀌기도 하였다.

조선의 왕족, 특히 왕자로 태어난 이들이 가장 원하는 소망은 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왕이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왕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만 했는데, 그 중에서도 서연을 잘 치러야 했다. 서연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면 장자라도 결코 왕이 될 수 없었다. 예로 태종의 장남이자 정비의 소생인 양녕대군은 결국 왕이 되지 못했다. 유흥과 쾌락을 좋아하는 성품 탓에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고, 걸핏하면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서연을 빼먹기 일쑤였으며, 수시로 궁궐을 빠져나가 불량배나 기생과 어울리면서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조선의 왕위는 장자가 승계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왕을 살펴보면 이런 사례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왕자의 난(태종), 계유정난(세조), 중종반정(중종), 인조반정(인조) 등을 통해 왕이 된 경우나, 궁궐 밖에서 살다가 왕이 된 선조, 철종, 고종, 순종 등을 예외로 하더라도, 조선이 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서연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연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조선 왕실의 교육이 어떠했는지 아는 초석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왕이 되기 위한 교육은 출생과 동시에: 왕위를 적법하게 승계할 왕자, 즉 정실 왕비에게 원자가 태어나거나 원자의 아들인 원손이 태어나면 곧바로 보양청(輔養廳)이 설치되었다. 보양청은 글자 그대로 원자(원손)를 양육하는 관청으로 종2품 이상의 보양관 3명, 문서 처리를 담당하는 수청서리 4명, 서적의 출납과 보관을 담당하는 책색서리 2명으로 구성되었다. 보양청에서는 이들을 양육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원자의 나이가 2~3세에 불과해도 공부를 가르쳤는데, 보통 5~10일에 1회씩 사(師, 세자의 스승으로서 덕행이 높고 학문이 뛰어난 재상급 관리), 부(傅, 세자시강원의 정1품 관직), 빈객(賓客, 외부 초청강사)이 방문하여 원자에게 관리의 복식인 관대와 예법에 맞는 몸가짐인 위의(威儀)를 눈에 익히게 하고, 충효(忠孝)와 인의(仁義) 같은 단어를 들려주었다.

이는 유치원에서 한글을 가르칠 때 글자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들려주어 쉽게 익히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편 원자가 5세가 되면 보양청이 강학청으로 바뀌는데, 원자를 가르치는 스승은 대부분 보양청 담당관이 승계했다. 수업은 매일 아침, 낮, 저녁 등 하루 3번 이루어졌으며, 1회 수업은 3각(45분)동안 진행되었다. 주로 『천자문』과 『소학(小學)』을 주로 가르쳤는데, 명종 이후에는 『동몽선습』과 『격몽요결』등이 추가되었다.서연_ 왕이 되기 위한 공부의 시작이자 끝: 원자가 세자에 책봉되면 서연, 즉 장차 왕이 될 교육을 받아야 했다. 경전을 배우고 익혀 지식과 교양을 다지는 것은 물론, 훌륭한 인품과 도덕성을 겸비한 성군이 되기 위한 것이다. 참고로 태조 이성계는 1392년 7월 28일, 세자의 학문 연구와 호위를 위해 세자관속을 설치했다. 세조가 재위하던 1457년에는 세자시강원이 새롭게 만들어져 세자 교육, 즉 서연을 담당했다. 세자관속과 마찬가지로 세자시강원에서도 세자에게 유교 경전과 중국 및 조선의 역사를 가르쳤다. 서연에 참석한 세자는 일종의 시험인 회강(會講)을 정기적으로 치러야 했다.

회강은 한 달에 두 차례씩 열렸는데, 스승과 마주 앉아 배운 책의 내용을 다시 암송하는 형식으로 치러졌다. 회강의 결과는 통(通), 약(略), 조(粗), 불(不) 등 4단계로 매겨졌다. 통은 시험관의 지시에 대답을 잘하여 잘 통과했다는 의미이고, 약은 그나마 잘 되었다는 의미였다. 조는 완숙하지 못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로 학점 D와 같은데, F와 다를 바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불은 시험관의 물음에 전혀 대답하지 못하거나 우물쭈물하여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해 탈락했다는 경고였다. 회강을 치를 때는 빈객을 초청했는데, 이는 부정 응시나 기강 해이를 방지하고, 또 학식과 인품이 뛰어난 재야선비를 만나게 하여 학문의 다양한 관점을 익히고 배우게 하려는 의도였다.

조선 왕실 서연교육의 최고 우등생_ 정조: 조선 5백년 역사에서 훌륭한 치적을 남긴 대표적인 왕으로 세종, 성종, 정조를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세종은 양녕대군이 폐세자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자에 책봉되었고 곧바로 국왕에 즉위했기 때문에 서연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그리고 성종은 13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기 때문에 서연보다는 왕을 위한 교육인 경연에 치중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들 중에서 서연을 가장 성실히 수행한 임금은 정조라고 할 수 있다.

정조는 사도세자가 죽은 후, 곧바로 세손이 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서연을 치러야 했고, 또한 성실히 수행하였다. 참고로 1776년에는 83세가 된 영조가 몸이 쇠약하여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자 정조가 영조를 대신하여 국정을 운영하였는데, 이 와중에도 영조는 서연을 멈추지 말고 규정대로 계속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는 세손이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독려하는 것은 물론, 학문을 좋아하는 손자를 위한 배려였다. 그리고 그해 영조가 사망하자 정조는 즉위식을 거쳐 22대 왕으로 등극했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영리함에 끊임없는 공부로 학문과 지혜를 쌓은 정조의 치세는 조선의 마지막 태평성대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왕자의 공부 1_ 지(知)의 교육: 학문을 익혀 세상의 이치를 배운다

토론_ 나눔으로 앎을 다시 확인한다: 서연에서의 교육은 우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왕이라는 자리는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해서 성공할 수 있는 단순한 직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식을 암기하고 외우는 주입식 교육을 넘어서는 또 다른 방법의 교육과 공부가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서연에서는 대화와 문답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토론을 벌여 자신의 가치관을 논리정연하고 체계적으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참고로 토론에서는 서연의 교육관이 참여하기도 하고, 조정의 대신이 세자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또 왕이 직접 나서 세자와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있었는데, 특히 영조와 정조는 대화를 많이 나눈 것으로 유명하다.

평가_ 회강과 고강: 서연에서는 책만 읽고 토론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11세가 된 세자라면 반드시 정기적으로 회강을 치러야 했다. 회강은 이미 배운 경전을 감독관 앞에서 암송하는 형식의 시험인데, 원칙적으로 매달 1일, 11일, 21일 등 3회가 치러지고, 새로운 교재를 처음 읽는 날에도 시강원의 으뜸인 사부와 이사(貳師)가 참관하는 가운데 치러졌다. 한편 세종 이후 회강을 치르는 날짜는 조금씩 변경되었다. 단종은 매월 초 3일에 경연관에서 1번만 실시하라고 명했고, 세조는 서연에서 매달 초 2일에 회강을 하도록 했다. 참고로 1443년 7월 6일『세종실록』에는 서연에서 치러지는 진강(進講, 신하가 임금 앞에서 글을 강론하는 일)과 회강의 절차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왕자의 공부 2_ 덕(德)의 교육: 예절교육으로 덕을 쌓는다

덕은 왕도의 기본이다: 교육은 지식을 익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도덕과 윤리를 배워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해야 하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해야 한다. 즉 참된 교육은 지, 덕, 체가 조화를 이루는 완벽한 인간을 만드는 전인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왕과 세자를 위한 교육 역시 경전의 글귀와 지식을 달달 외우는 암기식 교육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부모와 어른을 섬기는 예절은 물론, 아랫사람을 대하는 방법과 같이 올바른 인성을 깨치는 교육도 받았다. 참고로 세종의 시대가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태평성대를 구가한 것은 그가 가진 지식만큼이나 '마음의 공부를 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더구나 이런 생각이 임금과 신하가 서로 통했으니, 결과가 좋았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을 바르게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덕의 근본은 효의 실천이다: 마음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예절을 익혀야 하는데, 예절 가운데 가장 우선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예절이다. 이는 우리가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모에게 예의를 다하지 않는 사람이 밖에 나가 예절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왕실에서 효를 가장 우선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점에 기인한다. 또 부모를 섬길 줄 알아야 백성을 섬길 수 있고, 자신을 도와주는 신하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 그래서 조선의 왕자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부모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매사에 거친 말이나 욕설을 하지 말아야 했으며, 서연과 성균관에서 스승에게 먼저 절을 하는 등 예우를 다해야 했다.

덕을 쌓아 세상을 다스린다: 1516년 12월 12일 석강에서 검토관 조광조는 제왕의 학문하는 도리와 관련하여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을 다음과 같이 논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근본을 두텁게 하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습니다. 튼튼한 집은 기초를 공고히 하기 때문에 백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견고하게 지은 집이더라도 곧 무너질 것이니 이 점을 유의하소서. 아랫사람을 진작시키는 것은 윗사람에게 달린 것입니다. 임금께서 먼저 덕을 닦아 감동시킨다면 아랫사람도 감동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다스림입니다. 덕을 닦는 것이 곧 근본이니, 이에 힘쓰면 나머지는 수고할 것 없이 스스로 다스려지는 것이나, 근본에 힘들이지 않고 일의 말단에서만 노력하면 수고롭기만 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법입니다."

왕자의 공부 3_ 체(體)의 교육: 건강한 왕이 태평성대를 이끈다

왕자들의 필수덕목, 활쏘기: 공자가 말하기를, 선비는 반드시 여섯 가지 재주, 즉 육예(六藝)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육예란 예절과 음악, 말타기, 서예, 수학 그리고 활쏘기를 말한다. 참고로 태조 이성계는 뛰어난 활솜씨를 자랑하던 신궁이었다. 이성계의 아들이자 세 번째 왕이 된 태종 이방원 역시 아버지만큼 활쏘기를 좋아했는데, 양녕대군에게도 활쏘기를 익히도록 명령했다. 양녕대군이 비록 학문 정진에는 소홀했지만, 활쏘기는 열심히 했다.

활쏘기는 세자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양녕대군의 동생인 효령대군과 충녕대군(세종)도 궁에서 활쏘기 연습을 했고, 무신과 함께 활을 쏘기도 했다. 태종이 양녕대군에게 활쏘기를 익히라고 한 것은 학문을 소홀히 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양녕대군은 활쏘기와 사냥 같은 놀이에 너무 빠져들었고, 학문 연구를 게을리하다가 세자 자리를 박탈당했으니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는 법이다.

말타기와 격구: 조선의 왕자들은 활쏘기 이외에도 말타기와 격구 같은 운동도 자주 했다. 아무튼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지와 덕을 쌓기 위한 기본적인 덕목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을 애써 인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제2부 경연(經筵): 왕이 되고 나서 하는 특별한 교육



경연_ 현군이 되기 위한 공부

왕이 된 후에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세자 시절에는 서연이 있고, 왕이 된 후에는 '경연'이 있기 때문이다. 세자 시절과 마찬가지로 경연에서 신하들과 함께 경전과 역사를 익혀야 했고, 시국에 대해 공부해야 했다. 서연과 경연, 즉 세자와 왕의 교육이 5백 년 동안 나라를 지탱할 수 있었던 조선의 '힘'이었다. 참고로 경연을 빼먹거나 게을리 하는 왕은 연산군처럼 자질이 부족한 폭군으로 낙인찍혀 쫓겨나야 했다.

현군의 길_ 왕이 되어도 공부는 멈추지 않는다: 경연은 군주가 인격을 수양하고 지성을 다지기 위한 것이었으며, 나아가 올바른 정치를 펼침으로써 나라를 번영하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경연은 신하가 왕을 상대로 학문을 강의하고 가르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경연에 참석하여 강의하는 일을 맡은 경연관은 각각 3명씩의 영사, 지사, 동지사와 7명의 참찬관이 주관하였다.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이 영사를 맡았고, 지사와 동지사는 정2품과 종2품계를 지닌 관원들이 맡았다. 참찬관은 승지 6명과 홍문관 부제학 등 7명이었다.

이외에 이들을 보좌하는 낭청과 특진관도 있었다. 시독관, 검토관, 시강관이 낭청을 맡았는데, 시독관은 교리와 부교리가 맡았으며, 검토관은 수찬과 부수찬이, 시강관은 전한과 직제학 및 응교와 부응교로 채워졌다. 특진관은 1품과 2품의 대신 중에서 선별되었다. 한편 조선 말기에 접어들면서는 산림(山林)이라고 하여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재야에 있는 학식과 명망이 높은 학자를 경연에 참석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경연은 하루에 4번, 조강과 주강과 석강과 야대로 구성되었다. 조강은 아침에, 주강은 낮에, 석강은 저녁에, 야대는 밤에 하는 학습이었다. 그러나 야대는 늦은 밤에 하기 때문에 성종과 같이 학문을 특별히 좋아하는 왕이 아니면 시간상 제약이 있어 실시하기 어려웠다.

경연에서 쓰이는 교재는 유교의 경전인 『논어』, 『소학』, 조선의 국학인 성리학에 대해 강론한 『성리대전』,역대 왕의 사적을 기록한 『국조보감』등이었다. 그 밖에 당나라 황제 태종 이세민과 신하의 대화를 엮어 만든 역사책인 『정관정요』, 송나라 때 편찬된 중국 역사책인 『자치통감』등도 사용되었다. 태조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 역대 국왕들은 대부분 경연에 열심히 참가했는데, 순종의 재위 시기에는 경연이 실시되지 않았다. 한편 경연은 신하가 책의 한 구절을 읽은 후 뜻을 해석하고 논평을 달면, 왕이 질문을 하고 신하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참고로 경연에서는 당시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이나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사건 등도 의제에 올려 왕과 신하가 생각을 주고받으며 토론하기도 했고, 중요한 국정의 문제를 결정하는 일도 있었다. 경연은 1897년까지 계속되었는데, 이후 홍문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07년 사라지기까지 조선왕조 5백년 내내 계속되었다.

현군의 길_ 경연의 핵심으로서의 논쟁과 토론: 1471년 3월 13일, 장령 박숭질은 성종에게 경연의 핵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연은 모름지기 임금이 순문(詢問)하여 유학을 깨치는 것이 요체입니다. 성현의 이루어 놓은 법이나 고금의 정치적 이익과 손해 및 백성의 삶은 책에 자세히 실려 있습니다. 다만 뜻이 오묘하거나 의심나고 어려운 곳이 있으면, 질문을 해서 뜻을 밝혀야 학문이 진보할 것입니다." '순문'이란 임금이 신하에게 묻는 것을 말한다. 박숭질은 성종에게 '만약 그 내용의 뜻을 잘 모르거나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자신을 포함한 신하들에게 망설이지 말고 질문해서 그 내용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참된 교육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주입식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가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면서 보다 나은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시사 교육_ 경연에서 다스림의 묘(妙)를 배우다: 경연에서 유학 경전과 역사를 주로 다루었다고 하지만, 가장 많이 다룬 주제는 현실의 문제였다. 성종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경연 중간이나 경연을 마친 후에 정국 문제를 신하들과 논의하곤 했다. 예로 1470년 5월 22일, 성종이 경연을 마친 후 영사 김질에게 지방의 부패한 탐관오리에 대한 처리에 대해 말했다. "요즘 가뭄이 심해 백성의 삶이 척박한데, 지방 수령들이 탐욕스럽고 포악하여 세금을 많이 걷고 백성에게 부역을 무섭게 지우지 않느냐? 그런 자를 알아내어 파직하고자 한다." 이에 김질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탐욕스럽고 포악한 자는 마땅히 쫓아내야 합니다. 다만 가뭄이 심하기 때문에 백성의 삶은 이미 고달프고 괴롭습니다. 마땅히 그런 자는 내쳐야 옳으나 옛 관리를 보내고 새 관리를 맞이하는 과정의 폐단 또한 적지 아니합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