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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Q -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

타케마에 에이지 지음 | 평사리


GHQ - 연합국 총사령관 총사령부

타케마에 에이지 지음

평사리 / 2011년 8월 / 320쪽 / 18,000원



1장 GHQ의 성립




멜버른에서 토쿄까지

극동육군: GHQ를 이야기할 때 남서태평양군 총사령부를 빼고서는 서술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먼저 미국 극동육군의 창설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일본군의 남진을 예측하고 있었던 미국은 미일 개전 5개월 전에 이미 필리핀군을 흡수하여 재필리핀 미군을 재편성, 미국 극동육군(USAFFE)을 조직했고, 맥아더를 소장으로 현역에 복귀시켜 사령관에 임명하였다. 그 뒤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일본군이 루손 섬에 상륙하여 미국, 필리핀군은 패배를 거듭하였고, 1942년 코레히도르 요새 함락 후 게릴라전에 돌입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대응이 늦었던 미국,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는 협정을 맺어 남서태평양 지역 연합국 통일전선군(남서태평양군, SWPA)을 결성하고 맥아더를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레노 작전계획, Reno Plan: 남서태평양군이 반격작전을 유리하게 전개하기 위해서는 니미츠 태평양 함대 사령관의 협력이 절대적이었는데, 니미츠의 함대는 1942년 5월 산호해 해전, 또 그 뒤 미드웨이 해전, 솔로몬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어, 일본군의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간 보급로 차단 의도를 좌절시켜 일본군에 중대한 타격을 주었다. 이는 또한 미군의 과달카날 섬 반격작전, 뉴기니-파푸아 작전(부나 공략), 라바울 공략을 목적으로 한 '엘렉톤 작전'(1943년 2~5월), 필리핀 탈환을 목적으로 한 '레노 작전', '머스케티어 작전'을 전개하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나는 돌아올 것이다! / 이오지마 / 오키나와 작전: 1943년 가을부터 레노 작전이 착착 진행되어 태평양에서는 11월에 솔로몬 제도의 부건빌, 길버트 제도의 마킨, 타라와의 두 섬, 1944년 1월에는 마샬 제도의 콰잘린과 로이 두 섬을 공략하여, 같은 해 7월에 마침내 사이판 섬까지 도달했다. 이로써 일본 본토는 미국 공군 B29의 폭격권 내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때부터 미국은 일본 본토 침공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1944년 7월 루즈벨트 대통령, 니미츠 제독, 맥아더 원수가 하와이에서 만나, 니미츠가 이오지마, 오키나와를 공격하고, 맥아더가 필리핀을 공격한다는 계획을 입안했다. 이에 따라 맥아더군은 1945년 1월에는 루손 섬에 상륙하였으며, 2월에는 마닐라를 해방시켰다.

한편 해군은 예정보다 조금 늦은 2월 19일 이오지마 침공 작전을 개시했고, 일본군은 격렬히 저항했으나 3월 26일에 섬 전체가 완전히 제압되었다. 이어서 수행된 오키나와 작전은 '아이스버스 작전'으로 불렸으며, 제5함대 사령관 스프루안스 해군 대장이 지휘하였는데, 미군이 오키나와 본토에 4월 1일 상륙을 개시하고, 6월 23일 우시지마 사령관이 자결함으로써 조직적인 저항은 종료되었다.

본토 침공 작전과 진주 작전

AFPAC의 설치: 1945년이 되자 태평양전쟁도 최종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맥아더는 태평양 지역의 육군 지휘관을 통합하기 위해 미국 태평양육군(USAFPAC 또는 AFPAC)의 창설을 본국에 진언했고, 합동참모본부는 그 진언을 받아들여 4월 3일부 지령으로 맥아더를 태평양육군 사령관에 임명하였다. 이 시점에서 GHQ/AFPAC와 GHQ/SWPA가 병존하게 되었다.

다운폴(Downfall) 작전 / 미국과 일본의 전력: 1945년 4월 합동참모본부는 맥아더에게 니미츠 제독, 아놀드 장군과 협력하여 일본 본토에 마지막 일격을 가할 작전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고, 맥아더와 니미츠의 작전 참모는 몇 차례 만나 논의한 뒤 '다운폴 작전'의 최종안을 결정했는데, 이 안에서는 큐슈 상륙 작전을 '올림픽 작전'이라고, 칸토 평야 제압 작전을 '콜로넷 작전'이라고 명명했다. 병력만 놓고 보면 대등하게 싸울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다운폴 작전'에서의 미군 공군력과 해군력의 압도적 우위를 생각해 보면 일본의 패배는 필지의 사실이었다. 만약 일본이 항복하지 않고 이 '결전'을 실행했다면 본토는 완전히 파괴되고 피바다로 바뀌어 국체호지(國體護持)를 운운할 정도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포츠담 선언 수락 여부를 결정할 당시 양측에 가로놓인 객관적인 상황이었다.

블랙리스트 작전 / 포츠담 선언: 1945년 5월, 맥아더는 일본 본토 침공 작전(다운폴 작전)과 병행하여 일본 항복 후 평화점령을 전제로 한 일본 진주 작전의 검토를 참모 제3부 요원들에게 지시하였는데, 이는 '블랙리스트 작전'이라 명명되었다. 한편 1945년 8월 13일, 맥아더에게 포츠담 선언의 항복 조건을 이행할 권한을 부여하자는 트루먼 대통령의 제안에 영중소 3국 정부가 동의했다. 이때 소련은 맥아더와 함께 바시레프스키 극동군 사령관을 연합국 최고사령관에 임명하여 '쌍두마차'로 일본을 점령하자고 미국에 제안했지만, 미국 측이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8월 15일,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를 정식으로 연합국 최고사령관(SCAP)에 임명했다.

군정국 / AFPAC의 개조: 전쟁은 끝났다. '다운폴 작전'은 불필요하게 되었고, '블랙리스트 작전'이 실시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맥아더는 '블랙리스트 작전'과 병행하여 점령지역의 민정을 담당할 참모 제5부의 설치를 검토했으나, 일본 점령은 비서구적 문명국을 점령하는 것이었으므로 애초의 생각보다 더 큰 규모의 기관이 필요했다. 그래서 8월 5일, GHQ 안에 군정국(MGS)을 설치했다. 구성은 정무, 경제, 재정, 공중위생복지, 홍보, 인사, 정책실시, 보급, 서무, 기록, 통역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맥아더는 8월 15일, 정식으로 태평양육군의 개편을 지시했다. 또한 극히 일부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네덜란드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남서태평양군, 즉 연합군 지상부대, 해군부대, 공군부대는 항복문서 조인 후 해체되기에 이르러 남서태평양 남부 지역의 관할은 영국군에게 맡겨졌다. 따라서 남서태평양군 총사령부(GHQ/SWPA)도 폐지되었다. 이러한 기구 개편에 따라 1945년 4월 5일 이후 두 개였던 총사령부(SWPA와 AFPAC) 중 AFPAC만 남게 되었고, 그 예하에는 일본 점령주력 지상부대로서 제8군과 제6군이 소속되었다.

본토 진주

항복문서 조인식 /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 9월 2일, 토쿄 만의 미국 전함 미주리호 함상에서는 연합국 최고 사령관 맥아더를 비롯한 교전 9개국 대표와 일본 정부와 대본영 대표 사이에 항복문서 조인이 이루어졌다. 이때 맥아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은 상호불신과 악의 또는 증오의 정신을 가지고 여기에 모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승국도 패전국도 함께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신성한 목적을 쫓을 수 있는, 유일하고 숭고한 이념을 향해 떨쳐 일어서도록 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 이 엄숙한 결의에 따라, 과거의 유혈과 만행에 종지부를 찍고 인간의 존엄에 헌신하며 자유, 관용, 정의라는 인류 다수의 바람을 달성할 더 나은 세계가 출현하리라는 것은 나의 희망이자, 또한 전 인류의 희망이기도 하다.' 이것은 전후 세계를 지배한 사상의 원점이며, 일본국 헌법은 이 이념을 바탕으로 제정되었다. 그 뒤 일본 전역에서 점령을 마무리한 점령군은 즉시 점령 정책의 실시에 돌입하여, 9월 17일에 미국 태평양육군 총사령부(GHQ/AFPAC)를 요코하마에서 토쿄로 옮기고, 제일생명관 빌딩을 본거지로 삼았다. 그밖에 많은 빌딩을 접수하여 분산 진주했다. 그러나 아무리 간접 통치 방식이라고는 해도 언어, 관습, 전통이 다른 7천만여 명의 일본인을 통치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민사행정 전문가가 다수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9월 15일에는 경제과학국(ESS)이, 9월 22일에는 민간정보교육국(CIE)이 각각 군정국에서 독립했다. 10월 2일에는 군정국을 발전적으로 해소해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SCAP)를 설치하고, 산하에 9국의 막료부를 두었다. 이로써 맥아더는 연합국 최고사령관(SCAP)과 미국 태평양육군 사령관(CINC/AFPAC)을 겸임하게 되었다.

2장 일본 점령



맥아더의 족쇄

극동위원회 / 주도권 싸움 / 또 하나의 족쇄: 천황 위에 군림하며 일본 국민에 대해서 절대적 권한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던 맥아더 원수도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권한은 극동위원회와 미국 정부에 의해 제약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맥아더는 연합국 최고사령관의 입장에서는 극동위원회의 권한 아래에 있었고, 미국 태평양육군 사령관(1947년 극동군으로 개칭)의 입장에서는 미국 정부(합동참모본부 의장, 육군 참모총장, 육군장관,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극동위원회의는 미국, 영국, 중국, 소련, 프랑스, 인도, 네덜란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필리핀 등 11개국(1949년에 미얀마와 파키스탄이 참가하여 13개국이 됨)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임무는 포츠담 선언에 규정된 항복 조항을 실시함에 있어서, 군사적/영토적 문제를 제외한 여타 사항들에 대한 정책과 원칙의 작성, 연합국 최고사령관이 실시하는 정책의 재검토 등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일본 관리의 주도권을 잡고자 한 미국은 미영중소 4대국에 부여된 '거부권'과 미국 정부에 부여되었던 '긴급 시의 중간지령권'을 이용하여 자국의 정책 의도를 관철할 수 있었다. 1947년 초까지 위원회는 국제적인 반파쇼 민주세력의 주장과 여론을 반영하여 건설적인 논의를 했으며, 맥아더의 점령행정에 대해서도 일정한 견제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점령 후기의 극동위원회는 냉전의 영향 아래 무모한 논의로 시종일관했을 뿐, 제 기능을 못하고 거의 정지 상태에 빠졌다.

맥아더를 옭아맨 또 하나의 족쇄는 합동참모본부 의장(리히, 브레들리), 육군 참모총장(아이젠하워, 콜린스), 육군장관(스팀슨, 패터슨, 로얄, 그레이, 페이스)및 대통령이었다.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의 관계는 좋지 않았으며, 종종 대립하기도 했다. 나중에 트루먼은 상위의 권한을 행사하여 맥아더를 해임, 문민통제의 진수를 보여주게 되는데, 이것은 당시 일본인에게는 엄청나게 쇼킹한 사건이었다.

명령 계통 / 간접 통치 / 종전연락사무국: 점령 관리기구의 명령 계통은 미군 점령하의 오키나와 현이나 소련군 점령하의 치시마, 하보마이 촌, 시코탄 촌 등과 같이 '직접 군정'이 설치된 경우와, 일본 본토처럼 '간접 군정'이 설치된 경우 차이가 있었다. 소련군 점령 치하에 대해서는 자료적 제약으로 인해 논술할 수 없지만, 오키나와의 경우는 '미국 대통령(극동위원회가 아닌 점에 주의할 것) > 합동 참모본부 > 극동군 사령관 > 류큐 열도 군정부 > 오키나와 민정부'라는 라인에 따라 명령이 하달되었다. 이에 반해 일본 본토에서 행해진 간접 통치 방식은 점령군이 내각이나 법원 및 각 성의 차관과 국장, 지사 등의 지위를 장악하고 일본 국민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며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최고사령관이 일본 정부에 명령을 내리면,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그 명령의 시행을 대행하는 방식이었다. 참고로 점령군은 일본 정부가 점령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를 체크하기 위해 각 레벨의 군정본부와 도/부/현에 군정부를 설치했다. 한편 GHQ와 일본 정부 사이에서 파이프 역할을 한 종전연락사무국은 점령행정의 원활한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초대 장관인 오카자키, 사무국 차장인 시라스 지로 등은 전쟁 이전부터 면식이 있던 GHQ 고관을 이용하여 어떤 때는 GHQ의 명령에 저항하고, 어떤 때는 그들을 회유하여 각 사안들을 일본 정부에 유리하도록 이끌었다.

점령군의 구성

점령군 / 여군부대 / 영연방군: 처음 진주할 당시 주력군은 제6군과 제8군이었고, 해군부대인 제3함대, 제5함대 소속의 해병대가 그 휘하에서 작전에 참가하고 있었다. 또한 오키나와 현은 제104군 관할 아래 들어갔다. 그러나 1945년 12월에 제6군은 한국으로 이동하고, 일본 본토 점령군은 제8군을 주력으로 제5공군과 주일 해군부대(해병대) 및 영연방의 육해공군 파견부대로 구성되었다. 미국 점령군 중에는 일본인에게 다소 생소한 육군 여군부대(WAC)가 있었는데, 이들의 임무는 운전병, 무선사, 첩보원, 기사, 간호사, 의사, 병참업무, 사무원 등 비전투적 분야에 국한되었다.

한편 영연방군은 영국,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군정부에 참가하지는 못하고 오직 실전 부대를 보조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미군이 일본 점령행정을 독점코자 한 맥아더의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영국은 이러한 맥아더의 의도에 반발하여 1948년 12월에 이르러서는 이와테, 히로시마에 약 400명만 남기고 전면 철수하게 되었다.

대일 방침이 결정되기까지

영토소위원회: 일본 점령의 기본적 성격을 결정한 포츠담 선언과 '항복 후 미국의 초기 대일 방침'(이하 '초기 방침')에 대해 살펴보자. 미국은 태평양 전쟁 발발 전후부터 일찌감치 '전후외교정책자문위원회(ACPWFP)' 등을 설치하여,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었던 전후의 외교 정책에 대한 검토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중 영토소위원회(TS)에서 천황제, 경제, 영토 등에 대해 상당한 논의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검토하게 되었던 것은 1942년 8월 국무부 내에 동아시아연구반이 만들어지고 나서이다.

영토소위원회에서는 천황제를 존속시킬 것인지 폐지할 것인지, 중공업을 금지하고 전후 일본의 경제를 경공업만으로 한정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 등을 놓고 '중국파'와 '일본파'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중국파는 국무부 중국과를 중심으로 한 그룹으로, 일본의 자본주의를 약화시켜 침략적 성격을 갖지 못하게 하는 대신, 중국의 자본주의를 강화시켜 미국의 좋은 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파는 국무부 일본과를 중심으로 한 그룹으로, 군국주의는 나쁘지만 천황이나 재벌은 단지 이용되었을 뿐이라는 생각과 함께 일본의 잠재적 공업력을 높이 평가하여, 아시아의 안정을 이루는 데 불가결한 나라로 일본을 생각하고 있었다.

국무부 문서: 1943년 10월, 국무부에 극동지역위원회(FEAC)라는 지역위원회가 생겼다. 이는 국무부 내의 관련 부국 대표가 담당 지역이나 국가에 대한 정책을 사무 레벨에서 조정하기 위해 만든 위원회였다. 여기서 검토되었던 정책 문서에는 이들 위원회의 총칭 '국지역위원회(CAC)'와 함께 번호를 매겼다. 예를 들면 천황제의 경우 「CAC-93e」와 같은 식이었다. 여기서 검토된 문서는 1944년 설치된 전후계획위원회(PWC)에서 다시 검토되어 국무부 공식 정책 문서가 되었다. 이 국무부 문서는 군사문제를 제외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고 있었다. 특히「일본에 관한 합중국의 전후 목적」(CAC-116b=PWC-108b, 1944년 5월)은 초기 방침의 골자를 이루는 것으로, 처음으로 점령의 목적과 기간 및 정책 개요를 밝힌 점에서 주목된다. 즉 전후 정책의 기본 목적을 "일본이 미국 및 여타 태평양 여러 나라들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일본에 다른 나라의 권리와 국제적 의무를 존중할 수 있는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이 문서에는 패전 후 일본의 영토를 카이로 선언(1943년 12월)에서 정한 대로 혼슈, 홋카이도, 시코쿠, 큐슈 및 주변 도서로 한정해 1914년 이후 일본이 획득한 태평양 도서를 박탈하는 한편, 만주, 타이완, 펑후 제도는 중국에 반환하고 조선은 독립시킨다고 명기한 점이 흥미롭다.

SWNCC: 1944년 12월에 대일 점령 정책에 대한 국무부, 육군부, 해군부 사이의 의견 조정을 위해 국무, 육군, 해군 3부 조정위원회(SWNCC)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1945년 4월, 육군부 민사부에서는 SWNCC에 대일 점령 정책의 기본 방침 작성을 요청했다. 요청을 받은 SWNCC는 앞에서 기술한 「전쟁목적」 등의 PWC 문서를 기초로 4월 19일에 초기 대일 방침의 요강을 작성했다. 그리고 1945년 6월 12일, 이 요강은 거의 수정 없이 「초기 방침(SWNCC-150/1)」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정세는 유동적이었으므로 변화에 발맞추어 수정을 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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