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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부르는 자존감의 힘

선안남 지음 | 소울메이트
행복을 부르는 자존감의 힘

선안남 지음

소울메이트 / 2011년 7월 / 268쪽 / 13,000원



Part 1. 자존감은 무엇인가?




자신을 조건 없이 수용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

자존감은 '나는 괜찮은 사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건강하고 밝은 자기 개념에서 나온다. 학자마다 자존감을 정의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탄탄하고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며 성공적인 삶을 산다는 것, 그리고 불안정하고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일수록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불안이나 우울, 분노,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심리경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심리학자 알버트 앨리스Albert Ellis는 자존감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준에 근거한 판단이 아닌 '사적인 판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느끼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 간의 유기적 연결 관계를 살피며, 비합리적인 신념들을 합리적으로 바꿔줌으로써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중심으로 한 합리적 정서 치료 이론(REVT: 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을 내놓은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자존감의 형성에 자기평가의 과정이 반영된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는 어떠한 객관적인 증거도 존재하지 않기에 자기평가가 비합리적이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자존감은 자존심과 완전히 다르다

첫째, 자존감은 자존심과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정신과 의사 김준세 박사는 어느 인터뷰 기사를 마치며 자존감과 자존심을 이렇게 분리했다. 자존감,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긍정의 힘이다. 이는 자존심과 혼동되기도 한다. 자존감이나 자존심 둘 다 자신을 좋게 평가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존심이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 얻는 긍정이라면,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받아들이는 긍정이다. 자존심은 남과 경쟁을 치러야 하니, 패배할 경우 끝없는 심연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하지만 자존감은 다르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니 결코 배신하거나 도망갈 일이 없다.

자존감을 안정성 면에서도 살펴보자

둘째, 자존감을 살필 때에는 높낮이와 안정성 모두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도 자존감에 기복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안정성은 심리적 건강을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와 관련해 여성들의 거식증과 폭식증 연구를 기반으로 흔들리는 자아의 모습을 이론화한 심리치료사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여자의 심리학』에서 자존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건강한 자아는 자존감과 편안함으로 대변되며,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어제의 모습이 오늘과 같고, 내일이 된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달라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자존감과 우월감의 엄청난 차이

마지막으로 자존감은 우월감이나 열등감과 관련이 있긴 하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자존감이 열등감과 대비되는 말이긴 하나 그렇다고 우월감과 같은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우월감과 자존감은 정반대의 기능을 한다. 왜냐하면 우월감은 열등감의 반대말이 아니라 열등감이라는 동전의 반대쪽에 있는 열등감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잘하는 것이 우리의 자존감을 높이고 탄탄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단지 우월감을 느끼는 데 그친다면 우리의 마음은 힘들어지기 쉽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많은 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지만 마음은 불행한 천재들의 비극을 종종 듣게 된다.

자존감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어떤 사람은 자존감이 높지만 또 어떤 사람은 자존감이 낮다. 같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형제자매라도 저마다 자존감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멋지고 훌륭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힘들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신뢰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칠까?

첫째,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관계다. 어린 시절에 배운 관계의 패턴,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나에 대한 개념은 우리의 자존감에 주요한 뼈대를 구성한다. 그러기에 부모님의 자존감이 아이에게 그대로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가장 좋은 유산이 물질적 상속이 아닌 '심리적 상속'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 역시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 줄 안다. 이런 관계의 법칙은 부모와 자녀사이 같은 친밀한 관계 속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자존감이 높고 안정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자존감이 높고 안정적인 사람으로 커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둘째, 우리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험이다. 어떤 경험을 했는가도 중요하지만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였는가도 우리의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우리의 경험은 우리의 자존감을 탄탄하게 일으켜주는 긍정적 경험과 우리의 자존감을 흔들고 무너뜨리는 부정적 경험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긍정적 경험이란 우리가 수용받고 사랑받는 경험을 말한다. 무언가를 잘해서 칭찬받고 뿌듯했던 적이 있는가? 인정받아서 뿌듯했던 경험, 누군가가 건넨 사랑의 손길,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존중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확장되고 탄탄해진다. 반면 부정적 경험은 우리의 자존감을 흔든다. 보통 우리가 트라우마(trauma)라 부르는 경험들이 그러하다. 우리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는 경험의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나면 우리 마음은 마치 폭풍우 이후 쓰러진 건물처럼 무너진다.

트라우마 경험이 우리의 자존감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우리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를 보상하고 상쇄할 수 있는 긍정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 사건을 통해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면 부정적인 경험은 전화위복이 되고,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자존감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상담 치료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자존감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와 저술들을 종합해보면 자존감은 꼭 그렇게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자존감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낮은 자존감의 원인을 인식하고 스스로 과거의 경험 속에서 받은 영향을 이해하고 바꾸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자존감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자존감』이라는 책을 쓴 이무석 박사는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강조한다. 그는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공사 중'인 자신을 인정하고, 완벽주의의 위장을 벗어버리고, 타인의 평가에 나를 맡기지 말며, 자기 위로 기능을 활용하라고 말한다.

Part 2. 낮은 자존감 때문에 힘든 사람들



의심이 많은 사람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오셀로』에는 자존감이 낮은 두 명의 인물이 나온다. 그 중 한 명은 오셀로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확인해보지도 않은 채, 아내가 자신을 속였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질투와 시기심에 눈이 멀어 근거 없는 생각에 집착하다가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이런 그의 의심과 망상, 질투, 그리고 그런 감정의 과잉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를 보며 사람들은 그처럼 매사에 의심하고 다른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고, 특히 연인의 정조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오셀로 증후군'이라 이름 붙였다. '부정망상'이라고도 하는 오셀로 증후군에 빠진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다. 그들은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고 타인을 믿어도 된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기에 모든 상황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의심병은 표면적으로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기 자신과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자신에 대해 의심하고 확신할 수 없기에 타인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의심하느라 사람과 사랑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도 못살게 굴기 쉽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은 세상과 타인을 적대적이며 공격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갈등이 있던 자리에는 협력이, 미움이 있던 자리에는 사랑이, 그리고 고통이 있던 자리에는 치유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이간질하는 데서 자신이 얻을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느꼈을 것이다. 만약 오셀로가 의심하지 않았다면, 이아고가 이간질하지 않았다면 『오셀로』는 비극이 아닌 희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외모에 불만인 사람

외모와 관련해서 위축되거나 불만스러운 마음 역시 우리의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우리의 신체상과 관련이 깊다. 신체상이란 '우리가 주관적으로 그리고 있는 우리의 몸에 대한 그림과 생각,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그림과 생각, 느낌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멋진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도 마음속에 부정적인 신체상을 품고 있을 수도 있다. 건강한 신체상과 탄탄한 자존감을 갖추고 있을 때에 우리는 어떤 꿈을 펼치는 데도 큰 두려움이 없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면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 나의 현실적 모습이 초라할지라도 미래의 내 꿈에만 집중하여 명랑하게 준비하고, 겸허하게 기다릴 줄 알게 된다.

반면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기 어려울 때에 우리는 세상의 작은 뒤틀림도 크게 느끼게 된다. 그럴 때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까맣게 타들어가는 의구심과 외로움에 힘들어진다. 그래서인지 타인의 시선과 사랑을 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에 마음이 힘든 사람이 오히려 더 많기도 하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온전한 사람, 실수하고 부족한 점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래도 있는 그대로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괜찮고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진가를 모르는 사람

어떤 사람은 충분히 잘 해내고 있고, 객관적으로 따져보자면 다른 사람들보다 사정이 낫다. 그는 한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좋은 집에서 좋은 대접을 받고 있으며, 하는 일마다 잘 된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이 무가치하다고 여긴다. 자기 스스로를 미운 오리 새끼처럼 여기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잘 살펴보면 이들이 가진 '잘하고 좋고 괜찮은 정도'에 대한 기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순히 높은 기준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 기준에 비해 자신이 지각하는 현실적인 자신의 모습이 큰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은 이들을 힘들게 한다. 이들은 이상적으로 높거나 비현실적인 기준과 다분히 현실적인 자신의 모습 간의 불일치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 불일치는 이들의 자존감과 자존심을 건드린다.

반면에 다른 어떤 사람은 처한 상황도 좋지 않고, 기댈 만한 능력이나 배경도 볼품없다. 운도 따르지 않아서 공들여 하는 일마다 실패와 실수투성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믿음과 삶에 대한 만족감, 그리고 희망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 그는 다만 현실에 바탕을 두어 기준을 세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다른 누군가의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상심하기보다는 자기 안의 빛나는 백조를 연마시키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다.

내가 없는 사람

참된 자기의 모습으로 살지 못할 때 우리의 자존감은 위협받게 된다. 그리고 거짓된 모습과 참된 모습 간의 괴리 때문에 고민이 많아진다. 더구나 인간관계는 똑 떨어지는 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착하고 배려심이 많은 특성을 펼치다 보면 우리의 생각이 넓게 펼쳐진다. 그러면 고민의 크기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줄 알면서도 같은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는 지리멸렬한 '고민의 되새김질'에 빠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울증을 연구한 수잔 놀랜 혹스마는 고민의 되새김질이 우울증, 불안증과 같은 정신질환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관계에 관한 반복적인 고민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를 강조한 것이다. 너무 착하고 너무 배려하는 만큼 나 자신에게 착해지고 나를 배려하기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에 모든 상황 속에서 나다운 모습으로만 살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춰지는가?'라는 고민을 너무 많이 하느라 진정한 내 모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진정한 나를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면 일단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 정체성 확립은 청소년기만의 과제가 아니다. 우리네 삶은 참된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다름 아니다.

사랑이 두려운 사람

우리의 자존감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꼽는다면 그것은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음의 병의 원인은 사랑의 결핍이나 부재 때문에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따금씩 우울해지는 이유, 우리가 성공하고 싶은 이유, 우리가 행복해지는 이유 등 우리를 둘러싼 많은 일들이 바로 이 사랑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사랑의 결핍으로 나타난 자존감의 구멍은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고, 사랑을 표현하지 못해 나타난 메마른 마음은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말랑말랑해진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랑의 힘을 향유하지 못하고, 사랑을 시작하는 단계부터 삐거덕댄다. 사랑을 통해 강해지고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약해지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통해 현대인들이 가진 사랑의 문제를 꼬집는다. 그는 우리가 사랑을 '받는' 것에 집중하느라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고 보았다. 그러니 '어떻게 사랑받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골몰하기보다는 '어떻게 사랑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프롬의 이 말은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느끼는 사랑의 결핍을 타인에게서 채우기 위해 절박한 시도를 하기 쉽기 때문이다.

Part 3. 낮은 자존감이 나타나는 이유



트라우마, 상처 입은 나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는 매일같이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된다. 트라우마란 '우리에게 정신적인 충격과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을 의미한다. 보통 심리치료 과정에서는 엄청난 충격과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을 경험하지만, 이 경험을 제대로 소화시키거나 이로 인한 아픔을 치유하지 못해서 과거의 트라우마 경험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자주 살펴보게 된다. 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을 경험을 트라우마라고 인식하지 않고 잘 대처해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트라우마 경험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우리 존재 전체를 마구 흔든다. 더 이상 이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기도 하고 더 이상 타인을 믿을 만하지 않다고 느끼기도 하고, 더 이상 나 자신이 사랑스럽고 존중받을 만하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삶에 대한 통제감과 자신감이 사라진 것이다.

트라우마로 인해 상처 입은 내 마음과 트라우마로 인해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트라우마로 인해 낮아진 자존감을 다시 들어 올리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1. 혼자가 아닌 우리: 먼저 트라우마로 인해 허물어진 마음이 있다면 이를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상처를 직시하는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지만 무조건 피하다 보면 상처는 우리 안에서 더 크게 곪아간다. 그러니 천천히 내 안의 트라우마를 살펴볼 기회를 갖자.

2. 함께하는 우리: 누군가가 상처 입고 아파한다면 그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트라우마는 고통스러우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에 섣불리 반응하거나 이들의 극적인 감동에 동요하기보다는 그저 담담히 함께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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