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름의 끝
다이앤 듀마노스키 지음 | 아카이브
긴 여름의 끝
다이앤 듀마노스키 지음
아카이브 / 2011년 7월 / 422쪽 / 18,000원
긴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 눈앞의 미래위험한 문명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이 지구를 지배했다고 해서 이와 동시에 근대를 이끌어온 진보의 신화가 약속했던 자연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당장에 시급한 문제는 이런 변화의 상황에서 지구가 복잡하게 상호 연관되어 있는 전 지구적인 문명을, 나아가 인간의 생명을 부양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 20년간은 오존층 파괴, 기후 변화, 세계적인 규모의 종의 상실, 해양에 대한 위협의 증가, 지구의 모든 곳에서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먹이사슬에 대한 화학적인 오염 등과 같이 인류에 의한 전 세계적인 규모의 환경 파괴 중에서도 특정 증세들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더 폭넓은 행성 수준의 고통 가운데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우리의 딜레마는 '환경 위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근대의 세기는 급진적인 문화 실험과 같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단기간에 이전 어느 때보다 더 큰 부와 안락함을 대단히 성공적으로 누리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공에는 위험한 도박이 뒤따른다. 오늘날 지배적인 전 지구적 문명은 좀 더 장기적으로 인류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생활양식에서 근본적으로 멀어져버렸다. 이런 행성 수준의 시급함을 해결하고자 할 때는 이런 일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이런 긴박함에 기름을 끼얹었으며, 동시에 어떻게 우리가 긴박한 결과에 점점 더 취약해졌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중요한 갈림길
만일 엄청난 격변과 기후 변동성의 증가가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나타날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는 이제껏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목표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바로 인간의 시스템이 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근대적인 생활 방식이 일으키는 혼란과 불안에 취약하다. 상호 의존과 세계화로 치닫는 오늘날의 경향은 인간의 취약성을 증대시킬 뿐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세계화 과정은 정말로 위험한 전략이다. 만일 우리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환경에 살고 있고, 내일이 오늘과 거의 똑같다는 사실을 합리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면, 이 정도 강도의 통합은 도박이긴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지 모른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를 마주해야 할 때 이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심각한 도전 과제가 곧 들이닥칠 수 있는 상황에 처한 우리는 인간사회를 더욱 튼튼하게 재구조화해서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그동안 보여준 강인한 특성들을 다시 인간 시스템에 도입해야 한다. 지구 시스템이 그동안 상당한 복원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기능의 중복, 모듈구조, 구획 같은 몇 가지 구조적인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능의 중복은 수많은 다양한 종들이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을 말하고, 모듈구조는 상대적으로 자족적인 더 작은 단위들로 구성된 전체를 말하며, 구획은 시스템의 부분들이 전체에 제한적으로만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세계화에서 다 함께 후퇴하자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류는 이제 행성 차원의 충격 때문에 같은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전 지구적 규모에서 검토해야 하며, 아마 결과적으로 효과적인 전 지구적 기구를 통해 관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막 지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 행성의 세기
살아 있는 행성
우리는 이제 막 지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구는 인체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단순한 생태계의 집합이나 종들의 목록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 대양, 대기, 토양, 암석들의 상호 작용에서 출현하는 역동적인 전체다. 지구는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살아 있는 유기체(미생물, 동/식물), 암석 풍화, 화산 분출, 지각을 구성하는 구조판 침하 같은 화학 과정과 지질학적 과정에서 좌우되는 전 지구적 물질대사가 진행되는 통일적인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바로 이런 커다란 전 지구적 물질대사가 지구를 생명에 맞춤한 곳으로 유지해준다. 이런 꾸준한 행성 차원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지구는 최근에야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서 촬영한 사진을 통해 전체적으로 확인한 것과 같은, 매혹적인 자태로 구름에 싸여 있는 아련한 청록색 구슬 같은 모습을 띠지 못했으리라.
폭발적인 경제 성장
이처럼 경이로운 지구의 물질대사와 날로 지배력을 더하는 엄청난 인간의 경제 활동이 만나면서 행성의 시대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빠르게 행성 차원의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는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화석연료와 이산화탄소로 자연을 변형시켰다는 단순한 대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찍이 러브록Lovelock이 인식한 바와 같이 생명체는 주변 환경에서 자원을 흡수하고 변형한 뒤 폐기물을 배출하는 등의 생명 활동을 통해 어쩔 수 없이 환경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근대 산업 경제가 도래하면서 지난 2세기 동안 인간의 활동은 그간 상상하지 못했던 전례 없는 '속도'와 '규모'로 지구를 탈바꿈시켰다. 지금도 날로 가속화되는 이 심오한 변화 속에서 지구 전역의 모든 것이 변모하고 있다.
부의 물리적 기반
모든 살아 있는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는 꾸준한 에너지 흐름으로 스스로를 유지한다. 그리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사회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1인당 에너지의 양은 많아진다. 선구적인 화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이며 주류 경제 이론에 대한 독창적 비판가인 프레더릭 소디는 80년 전에 "에너지 흐름이 경제학의 1차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뒤 니콜라스 제오르제스쿠-로에겐과 케네스 볼딩 같은 경제사상가들이 인간의 경제시스템과 열역학 및 에너지에 대한 물리적인 법칙들의 관계를 심도 있게 조명했다. 하지만 이름 있는 경제학자들은 아직도 부의 물리적 기반에 대해 합당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화석연료는 유한한데 우리는 이것을 깜짝 놀랄 만한 속도로 써댔다. 최초의 유정油井이 개발된 지 150년 만에 이 편리한 농축 연료는 이미 최소 40%에서 절반 가까이 고갈되었다. 최고의 효율성에 이른다 하더라도 화석연료에 기반한 인간의 문명은 이번 세기까지 버티지 못할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은 막간극일 뿐이다."라고 표현도 한다. 게다가 이로 인한 환경 부담은 이산화탄소 수준뿐만 아니라 기하급수적인 변화의 혼돈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결국 빠른 시일 안에 화석 문명을 종식시킬 것이다. 커다란 불길은 최소한 몇몇에게 인류 역사상 최고의 시절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모두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
근대 문명이 지구를 위협하는 법 - 오존 구멍에서 얻은 교훈오존의 발견
오존 분자는 원자 세 개로 구성된 드문 형태의 기체다. 하지만 오존은 그 자체로는 불안정하고 자외선에 의해 쉽게 파괴되기 때문에 곧 다시 두 개의 산소 원자와 한 개의 산소 원자로 쪼개진다. 그리고 이들은 적절한 상대를 만나면 다시 반응해 오존을 만들어낸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단일한 산소 원자가 오존을 만나 재결합해서 평범한 산소 분자 두 개를 만들면 오존층에서 오존은 사라진다. 저 높은 곳에서 쪼개졌다 결합하는 끊임없는 산소의 소용돌이를 통해 오존층은 수억 년 동안 역동적이면서도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다. 이 과정을 통해 해로운 중파장 자외선이 흡수되지 않았더라면 이 자외선은 지표에 도달했을 것이다. 대신 오존층은 자외선을 열로 바꾸어 성층권을 데우고 동시에 생명체를 지켜준다.
잘못된 가정의 역사
오존 구멍과 관련된 이야기는 세계의 본질에 대한 위험천만하리만큼 잘못된 가정들로 이어진 역사다. 이것은 그동안 발명된 화학물질 중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은 가장 위험한 것으로 밝혀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화학물질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져 약 반세기 동안 널리 사용되면서 근대 기술의 완전한 기적으로 인식되다가 결국 전 행성 규모의 악몽일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 주목할 이야기는 행성 차원의 물질대사를 파괴하는 데서 오는 위험을 조명할 뿐만 아니라, 과학이 그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는 오존 구멍이 주는 이렇게 중요한 교훈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기후 변화를 상대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역시 기대는 어긋났다. 기후 변화는 거의 모든 과학자가 예측한 것보다 더 심하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긴박한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은 세상을 지배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은 막대한 권력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통제하지는 못한다. 이것을 이해하면 근대의 세기가 막을 내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새로운 행성의 세기에 자연은 인간의 역사를 위한 배경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연은 의미 있고 예측할 수 없는 행위자가 될 것이다.
지구의 기후는 급격하게 바뀔 것이다 - 자연의 귀환급격한 기후 변화
자연계는 전반적으로 신뢰할 만하다는 이 오래된 신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이미 많은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다. 'Natura non facit saltum’, 즉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라는 라틴 속담이 아직도 전해 내려올 정도로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신념은 서구 사상 속에 뿌리 깊고 강력하며 끈질긴 확신으로 자리 잡았다. 학자들이 이 신념의 근원으로 추적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상에 법칙을 부여하는 신의 명령에 따라 자연이 합법칙적으로 진행된다는 유대교적 이념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 현상을 종교적으로 설명하다가 자연주의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게 된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전환이다. 그 뒤 자연이 법칙에 맞추어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지속성을 갖는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종교, 철학, 과학과 깊게 얽혀 복잡한 역사를 이루었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 그 자체는 이 완강하고도 유서 깊은 확신을 뒤엎고 있다. 이산화탄소 수준이 상승하는 데 대한 우려에서 시작된 지구 기후사 연구는 자연은 기계적인 에스컬레이터처럼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세등등한 용처럼 활개를 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지구의 기후시스템은 빈번하고 급작스럽게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펄쩍 뛰듯이 변화했다. IPCC(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간 패널)는 2001년에 발간한 한 보고서에서 "장기적인 관찰과 실험을 통해 얻은 통찰에 따르면 '부드러운 또는 규칙적인 행동은 법칙이 아니라 예외'라는 것이 아주 확실하다."고 건조하게 선언하면서, 이것을 이미 정해진 일로 인정했다.
깜빡이는 경고
과학자들이 이번 세기에 기후 변화가 어떻게 전개될까라는 긴급한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이미 과거에 대해 밝혀낸 지식은 우려를 자아내고도 남는다. 그린란드의 빙핵은 20여 년 전 월리 브뢰커가 처음으로 이야기했던 급작스런 기후 변화에 대한 기록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영거 드라이아스'라고 알려진 약 1만 2,900년 전의 충격적인 사건은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에 급격하고도 재빠른 기후 변동이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이 급격한 온난화로 말미암아 이미 현생 인류가 살고 있던 북미와 유럽, 중동 등의 지역에서는 기후로 인한 충격이 일었다. 이렇게 급격한 기후 변화가 지금처럼 인구가 밀집한 상태에서 벌어졌다면 '근대 문명이 파국을 맞았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기후시스템이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바뀔 때,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 몇십 년 동안 '깜박거리는'경향이 있다. 어떤 기후 상태와 다른 상태 사이에서 거칠게 요동치는 이와 같은 깜박임은 농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거칠게 도약하거나 이렇게 깜박이지 않는 경우에도 온난화 때문에 기후가 훨씬 심각하게 요동칠 위험이 있다. 이 또한 농업과 종업(농업에 기반한 여타의 산업들)에 근거한 문명을 위협할 것이다. 영거 드라이아스가 끝난 뒤 1만 1,700년 동안은 공동체를 쓸어버린 참혹한 홍수와 문명을 무너뜨린 재난과도 흡사한 가뭄 같은 사건들이 있긴 했지만, 기후 변동성이 극히 낮은 시기에 속한다. 기후 전문가이자 저술가인 윌리엄 버로스에 따르면, 10년 단위의 변덕스럽고 고된 기후의 변동이 인류의 삶과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만일 이처럼 난폭한 기후가 규칙적인 유형으로 나타났더라면 70억에 가까운 인구를 먹여 살리고 복잡한 문명을 부양하는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농업은 불가능했으리라.
인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 폭풍 속의 진화인간 진화의 토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지구의 역사는 우리 상상 속의 과거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그 소란스런 연대기는 진보의 불가피성 서사와 서로 어긋나고 우리 선조들이 태곳적 에덴이 아니라 기후 지옥의 시련을 뚫고 출현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인류가 진화의 장에 등장하기 훨씬 전인 약 5,500만 년 전 에오세의 지구는 인간이 상상했던 에덴과 조금 닮았다. 행성 전체가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온난하며 촉촉한 기후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열대우림과 식물들이 널리 뻗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안정되고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아름다운 경치는 전반적인 기후 악화와 함께 사라졌고, 결국 인류 진화의 무대가 마련되었다.
인류의 진화가 어떻게 이 놀라운 지구의 역사와 조화를 이루었는가는 위기가 한창 진행 중임을 고려했을 때 당연히 시의적절한 주제다.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인류의 기원을 담당하는 역량 있는 연구원 릭 포츠는 인류의 과거에 대한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강조한다. 인류는 지구 역사상 가장 불안정하고 역동적인 환경에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 소란은 지난 1만 1,700년 동안 복잡한 문명이 싹틀 수 있게 해준 '긴 여름의 고요함'만큼이나 인간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포츠는 최근 과학자들이 지구의 다사다난한 과거에 대해 밝혀낸 사실들과 인류의 진화를 보여주는 화석 증거들을 모아서 이 변덕스러운 자연 안에 있는 우리의 '생태적 기원'에 대한 명석한 해석을 완성했다.
인류의 가능성에 대한 이 같은 관점은 오늘날의 딜레마, 즉 석기시대의 마음을 간직한 인류가 21세기형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보는 이 부조화에 대한 비관적인 설명과 날카롭게 대비된다. 오늘날 인류는 갈수록 혹독해지는 극단적인 기후의 잔혹한 갑옷을 뚫고 그 풍성했던 과(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이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과(科)를 호미니즈라고 불렀지만, 최근에는 동족에 대한 새로운 유전적 증거에 기초해 호미닌스라고 이름을 고쳤다. 포츠는 "지구를 소유하는 것이 달콤해 보이고 지구를 지배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로, 종으로서의 인류의 존재는 쓰라린 기적"이라고 설명한다.
생존과 소멸
18세기 중반 스웨덴의 자연주의자이자 근대 생물 분류법의 아버지인 칼 린네는 인류에게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명한 사람이라는 이 이름은 우리가 아직 실현하지 못한 계몽주의적 낙관론을 반영하는 야심 찬 이름이다. 만일 문제를 제기할 여지가 적은 적합한 이름을 택한다면 유연한 사람을 의미하는 이름이 적절할 것이다. 유연성이라는 경로를 택한 인류의 조상들은 육체적인 진화가 아니라 문화적인 혁신과 지식 전수를 통해 변화하는 세상에 더 많이 반응해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화적 진보가 육체적인 진보를 대신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 둘이 창조적인 변증법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며 진화함으로써 우리 선조들이 현생 인류를 낳은 커다란 진보의 도약을 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인간의 문화는 역설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적 재능은 극한적인 진화상의 시련이 닥쳤을 때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기도 했지만,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포츠의 표현을 빌리면 '위기 제조자'이자 이 복잡한 전 지구적 문명과 인류 자체의 생존에까지 점점 더 큰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서구 문명이 그랬듯이 문화는 극적으로 변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는 수천 년에 걸쳐 놀라울 정도로 똑같이 유지될 수도 있다. 만일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늘날의 사회에 산다면 이들은 자신이 베이징에 있는지, 아테네에 있는지 당연히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이것은 단순히 거주자들의 물리적인 겉모양 때문은 아닐 것이다. 문화적 관성은 정체를 낳고 새로운 조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한번 힘이 활성화되면 문화는 놀라운 속도로 뿌리 깊은 변화를 추진해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