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홀로 죽는다
시다마 히로미 지음 | 미래의창
사람은 홀로 죽는다
시다마 히로미 지음
미래의창 / 2011년 7월 / 240쪽 / 11,000원
무연사회의 충격무연이란 무엇인가: 무연사회無緣社會라는 말은 2010년 1월 말경에 NHK 방송에서 방영한 〈무연사회: '무연사' 3만 2천 명의 충격〉이라는 스페셜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졌다. 홀로 살다가 무연사에 이른 사람들을 다루며 현대 노인들의 고독한 삶을 강조한 방송이다. 이를 계기로 무연사회라는 단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유행해 일본 사회에 정착했다.
무연사회란 인간관계가 희박해짐에 따라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의 죽음조차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사회를 말한다. 이웃끼리 인사라도 매일 나눈다면 무연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길에서 마주쳤을 때 인사조차도 나누지 않는 사회가 바로 무연사회다. 한때 인기를 누렸던 여배우나 아이돌 스타가 죽은 지 며칠이 되도록 방치된 사건이나. 100세 이상 고령자인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소식이 뉴스에 종종 나온다. 무연사회가 눈에 띄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연無緣 자체는 최근에 등장한 단어는 아니다. 예전부터 이 말을 써왔다. 주로 불교와 관련된 용어로 써왔는데, 대표적인 예로 무연사無緣寺, 무연소無緣所, 무연묘지無緣墓地, 무연불無緣佛 등을 들 수 있다. 불교는 연緣을 매우 중요하게 다뤄왔다. 무연불無緣佛은 공양해줄 연고자가 없는 사체다. 무연묘지란 묘지를 지킬 연고자가 없는 묘지를 말한다. 묘지를 보살피는 사람이 없으면 묘지 관리자는 대금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일정기간이 지나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무연묘지를 처분한다. 무연사회가 문제시되기 전부터 무연묘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잖았다. 무연사회 또는 무연사라는 말은 무연불이나 무연묘지라는 단어 사용의 연장선에서 생겨나 정착했다고 볼 수 있다. 무연사에 이른 고인들은 근친이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이미 소원한 상태라 유체나 유골을 인수하려 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무연사는 무연불과 직결된다.
고독한 죽음에 대한 공포: NHK 방송에서는 고독하게 죽음을 맞은 고인이 장례회사 직원 두 명만 참석한 가운데 화장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유족이 유체 인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화장 비용은 자치단체에서 부담한다. 화장터에서 가족도 조문객도 없이 치러지는 죽음의 의식은 장례라기보다는 사체 처리에 가깝다. 이 장면을 지켜본 시청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 때문에 무연사회라는 단어가 큰 반향을 일으키며 빠르게 널리 퍼져나갔다.
장례식 없이 화장터로 직행하는 장례를 직장直葬이라고 한다. 고인을 인수할 유족이 있더라도 직장으로 빠르게 장례를 치르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여든, 아흔 살 정도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 장례를 치러도 일반적으로 조문객이 그다지 많이 찾아오지 않는다. 나도 친척 장례식에 가서 그런 경험을 한 바 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친척끼리 모여 밤을 지새운 뒤 고별식 같은 절차는 생략하고 바로 화장터로 떠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는 장례식이 시대에 발맞춰 합리적으로 변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직장이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현실은 무연사회의 이미지를 더욱 강조한다.
죽음 자체보다도 고독한 죽음이 두렵다. 이는 단지 홀로 죽은 뒤 며칠이 지나서 발견되는 현상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죽은 뒤 유체나 유골을 인수할 사람이 없는 것도 무연사에 해당한다. 이는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를 수 없다는 뜻이다. 자치단체가 비용을 대고 장례회사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골은 납골함에 담겨 무연불을 공양하는 절에 안치된다. 어쨌든 안치도 되고 공양도 받는 셈이니 진정한 의미에서 무연불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안치된 절은 원래 죽은 자와 아무 인연이 없던 곳이다. 주변에 있는 유골의 주인들 역시 생판 남이다. 세상을 떠난 이야 어떤 취급을 받든 알 도리가 없겠지만, 그를 그리워할 사람이 없다면 무연사나 마찬가지다. 나도 죽은 뒤에 그런 식으로 장례를 치르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고독하기 짝이 없다. 다들 그럴 것이다.
NHK에서 내보낸 무연사회 방송은 아직 젊은 30대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해고 대상에 오른 비정규 근로자들, 즉 안정된 직장이 없고 어려울 때 조금이라도 의지할 수 있는 가까운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거리를 찾지 못하면 PC방을 전전하며 버티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노숙자가 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들은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비정규 고용 형태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미리 인간관계를 구축해놓지 못한 상태라면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남과 어울리기가 어려워진다. 이처럼 무연사회라는 현실에 압박을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개인을 속박하는 유연사회이상화된 유연사회: 오늘날 세상에 큰 충격으로 다가온 무연사회, 그 반대말은 유연사회다. 무연사회에서는 인간관계가 희박해지고 사람들은 고립된 채 고독한 삶을 살아간다. 그 끝에는 곁을 지키는 사람 하나 없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이와 달리 유연사회는 인간관계가 농밀하고 사람들끼리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죽음 역시 가족이나 친척이 지켜보는 가운데 맞이한다. 유연사회 속에서라면 무연사가 일어나려야 일어날 수 없다. 무연사회가 내비치는 적막감이나 고독함을 접하고 나면 유연사회는 따뜻한 인간관계가 넘실거리는 살기 좋은 사회처럼 보인다. 그리고 무연사회보다는 유연사회 속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무연사회에서 벗어나려는 방법을 찾는 담론의 마지막 지점에는 이처럼 '이상화된 유연사회'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상적인 유연사회는 과거의 유물이자 하나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유연사회의 제1원칙, 만장일치: 벼농사 촌락은 유연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알맞은 인격을 키워낸다. 그런 인격을 갖춘 사람은 고향을 떠나더라도 그곳에서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한 집단과 일체화하려는 성향을 띤다. 결과적으로 일본 조직은 대부분 촌락사회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며 촌락사회 정신을 간직한 사람들의 손으로 유지되어 왔다. 여기에서 말하는 촌락사회의 원칙이란 '만장일치'와 '무소유'다. 민주주의 사회는 일반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을 고수한다. 하지만 촌락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일반적인 민주주의와 다르다. 다수결로 결정하면 다수파와 소수파가 생긴다. 다수결에서 패배한 소수파는 어쩔 수 없이 다수파의 뜻에 따라야 하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응어리가 남게 마련이다.
촌락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그곳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료에게 응어리나 불신을 품으면 어느 순간 그것들이 폭발해 걷잡을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촌락사회를 유지하는 데 번거로운 일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촌락사회는 구성원들이 단결해서 이루어야 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논에 물을 대는 문제처럼 민감한 사안을 다수파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끌어간다면 소수파는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촌락사회는 다수결 대신 만장일치를 선호한다.
만장일치를 끌어내려면 논의에 많은 시간을 써야한다. 한 번 논의로 만장일치를 이끌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몇 번이고 의견을 나누어 일치점을 모색한다. 이것이 촌락사회의 의논 방식이며 사회적인 원리다. 어떻게 보면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렇지만 의견을 계속 나누다 보면 상대의 생각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논의에서 자기 의견을 마음껏 표명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인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자기 생각을 남김없이 털어놓으면 상대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생긴다. 이렇게 논의를 반복하다 보면 이제 슬슬 타협을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조금씩만 양보하면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수없이 논의를 반복해 타협안을 찾아냈다면 그걸로 만장일치가 된 것이다. 결국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의견을 나누고 서로 양보하는 논의 방식이 촌락사회의 만장일치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나아가 촌락사회의 생활을 원활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유연사회의 제2원칙, 무소유: '무소유'는 논농사를 짓는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전농업은 이웃한 논끼리 물길로 연결된 상태다. 한쪽 논이 다른 쪽 논의 수로 역할을 한다. 따라서 각각의 논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마을 전체의 논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논 주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할 수 없다. 또한 논 소유자가 세상을 떠나면 그 자식이 물려받는다. 이때 후계자가 한명이면 부모가 소유한 논 전체를 물려받고, 자식이 둘이면 논을 분할 상속받게 된다. 이렇게 논을 분할하면 자식이 경작할 논의 면적은 부모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든다. 자식이 셋이면 세 등분을 해야 한다. 이제 논농사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려울지 모른다. 이래서야 다 같이 망할 뿐이다. 그래서 장남에게 논을 전부 주고 남은 자식들은 후계자가 없는 집에 양자로 들어가거나 아예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기도 한다.
한 농부가 죽은 뒤 논을 분할 상속하면 각각의 농가가 소유하는 논 면적은 줄어든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특별히 넓은 논을 소유한 대지주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논을 평등하게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촌락사회가 고안해낸 현명한 소유 구조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듯이 완벽한 평등은 불가능하다. 일찍이 남들보다 훨씬 넓은 논을 소유했던 일가도 있을 것이며, 성실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촌락사회는 내부의 원칙과 조정을 통해 다른 사람보다 넓은 논을 소유한 사람들이 면적을 더 늘려 다른 농가를 지배하려 드는 행위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도시에서는 이런 구조를 찾아볼 수 없다. 유연사회 특유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무연을 꿈꾼 시대자유롭고 풍요로운 도시의 매력: 시골에는 촌락이라는 공동체가 건재하며,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공동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촌락과 개인 사이에는 집이 있고, 개인은 특정 집안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집 또한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친척이나 이웃집과 관계를 맺으며, 때로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공동체나 친족, 그리고 집이라는 형태로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 얽매여 있는 개인은 자기 의사에 따라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시골은 말 그대로 유연사회이기 때문이다.
도시로 나온 사람들 역시 집을 소유한다. 홀로 생활하기도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시대였으므로 대부분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도시에서 말하는 집과 시골에서 말하는 집은 다르다. 도시 친족과의 관계나 지역과의 연결이 약하며 다수의 집을 포괄할 수 있는 공동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핵가족 형태는 단순히 가족구성원이 적을 뿐 아니라 집이 단독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럴 경우, 개인이나 개별 집안의 의사에 따라 대부분의 일을 진행할 수 있다. 촌락처럼 공동체 전체의 합의라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도시에서의 이런 생활은 자유롭고 구속이나 속박이 적어 매력적으로 보인다.
물론 고도경제 성장기에 지방에서 도시로 상경한 농촌의 차남, 삼남이 도시 생활에 동경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상속권이 없는 그들은 고향에 남는다 해도 삶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이 없었기 때문에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스스로 바라서 고향을 떠났다기보다 고향으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시로 향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도시에서의 삶은 점점 풍요로워졌다. 도시에서는 시골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새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도시 생활이 점차 쾌적하게 변해가자 지방 사람들은 도시를 향한 동경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쫓겨나듯이 떠나는 게 아니라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도시로 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시골 생활의 속박이 싫어 도시로 나온 사람들, 그렇다면 이는 무연을 소망한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유연사회인 시골에서 무연사회인 도시로의 이동은 끝없이 이어졌다. 이 시대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무연을 소망했다. 무연은 속박에서 해방된다는 의미이며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한 기본조건이기도 했다. 오늘날 제기되는 무연사회에 관한 논의는 이런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 무연을 추구했던 과거를 잊고 마치 없었던 일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샐러리맨 사회가 낳은 무연화세대 계승이 불가능한 샐러리맨 사회: 제2차세계대전 후 일본 기업은 공동체 성격이 강화되었다. 기업이 촌락사회의 대체물로서 기능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연화에 방치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업이 아무리 공동체 성격을 강화하더라도 촌락사회와 같아지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기업은 원활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샐러리맨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대학을 졸업해 부모와 마찬가지로 샐러리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특히 이런 경우가 늘고 있다. 겉만 보면 샐러리맨이라는 직업이 '가업'으로 계승된 것처럼 보인다. 농업이나 자영업의 경우는 아이가 부모와 같은 일을 한다면 당연히 부모가 하던 일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이다. 부모와 같은 밭을 경작하고, 같은 거래처와 일하는 것이다. 그러나 샐러리맨은 다르다. 가족경영 회사가 아닌 이상, 자녀가 부모 일을 그대로 물려받아 똑같은 인간관계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일하지 않는다. 이것이 농업 가정과 샐러리맨 가정의 결정적이 차이점이다. 샐러리맨은 진정한 의미에서 가업이 될 수 없다.
샐러리맨 가정의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와 다른 기업에 취업한다. 업종도 다르다. 부모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해서 정년이 될 때까지 한 직장에서 일했다면 40년 가까이 회사에 적을 둔 셈이다. 나름대로 회사를 위해 공적도 쌓아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공적은 다른 기업에 취업한 자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부모가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쌓아 올렸듯이 자녀 역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 논밭을 전혀 물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연사로 향해가는 독신자'골드 미스'의 탄생: '골드 미스'라는 신조어가 있다. 최근에 생긴 말로, 30대가 되어도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없이 혼자 사는 여성을 말한다. 그들은 일에도 열심이고 소비활동도 적극적이다. 과거에 여성은 사회적 통념상 일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반드시 결혼을 해야 했다. 실제로 많은 여성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과거에는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 생활을 영위할 만큼 충분한 수입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면서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늘어났고 여성들은 경제적인 자립에 성공했다.
'결혼해서 가정에 속하기보다는 혼자 힘으로 자유롭게 살겠다.' 이런 생각을 품은 여성이 늘어나면서 골드미스가 탄생했다. 미혼율이 높아지고 고령에 결혼하는 여성도 많아졌다. 높은 이혼율도 골드 미스의 증가를 도왔다. 이혼을 해도 부모 품으로 돌아가지 않고 혼자 사는 여성이 늘었기 때문이다. 미혼인 채로 골드 미스가 된 여성들도 처음에는 대부분 결혼을 염두에 두고 남성과 교제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경제적 격차가 줄다 보니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사라졌다. 출산하기 전까지야 부부가 함께 일한다고 해도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문제다. 현실적으로 보면, 남편 수입만으로 가정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또 결혼과 함께 서로에 대한 제약도 늘어난다. 그렇다면 독신인 것이 낫지 않을까? 이런 사고방식은 시대 흐름상 당연하다.
골드미스가 늘어간다는 것은 결혼하지 않은 남성, 즉 골드 미스터 역시 늘고 있다는 의미다. 남녀 할 것 없이 미혼율은 치솟고 있고, 40대가 되어도 결혼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일자리가 있고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면 혼자 살아도 문제없다. 사회적으로도 골드 미스나 골드 미스터가 생활하기 편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일찍이 무연화는 도시 상경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집을 나와 고향을 떠나면서 촌락공동체라는 유연사회에서 멀어져 도시에서 무연한 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예전처럼 대단한 기세는 아니다. 그 대신 도시 내부에서 무연화가 진행되고 있다. 골드 미스, 골드 미스터와 같은 독신자의 탄생도 이런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