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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서재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


과학자의 서재

최재천 지음

명진출판 / 2011년 8월 / 316쪽 / 15,000원



몸은 서울에서 자라고 마음은 강릉에서 자랐어




나의 꿈은 '딱지'로 시작되었어: 아버지는 육사를 졸업한 육군 장교였다. 내가 아기였던 시절에는 가족이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그러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는 살림을 따로 했다.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은 주로 서울에서 살았고 아버지만 혼자 부임지에서 사셨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으려면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셨기에 그 문제에 대해서만은 아버지 앞에서 용감하게 주장하셨다. 무척 엄하고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도 어머니의 그 생각에는 동의하셨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책을 읽히면서 글을 가르쳐주신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글을 깨우치게 했다. 조금 독특한 방법이었다. 내게 한글을 깨우치도록 도와준 딱지들,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그 딱지들이야말로 훗날 내가 '시인의 마음'을 갖도록 해준 첫걸음이었다.

내 정체성이 둘로 나뉘기 시작했어: 여덟 살이 되자 나는 영등포시장 한복판에 있는 영동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 1학년이 끝난 겨울에 신길동에 있는 우신초등학교로 전학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서서히 나의 정체성이 둘로 나뉘기 시작했다. 내 안에는 '서울생활에 적응하며 자라는 나'와 '강릉의 자연을 그리워하는 나'가 공존했다. 그런 내가 초등학교 시절 중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시기가 있다. 두 달쯤 학교에 다니지 않을 때(6학년 때 한 번 더 전학을 했는데, 전학할 교동초등학교 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공백 기간)였는데, 지금도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 기간 나는 더없이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아이들이 교실에 있을 그 시간에 남산에 올라 구석구석 샅샅이 뒤지며 놀았다. 버찌가 익기 시작하자 돌아다니며 버찌를 따 먹기도 하고, 다람쥐 쫓아다니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고 나서는 가재를 잡느라 개울을 따라 내려가곤 했다.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과외 공부는 나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만들었어: 어머니는 내가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기를 염원하셨기에 무리를 해가면서 전학을 시키셨다. 하지만 교동초등학교에 다닌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특히 어머니를 심란하게 만든 것은 과외였던 것 같다. 당시 군인 월급이라는 게 빤했고, 게다가 바로 아래 동생이 심장병을 앓고 있어 병원비도 만만찮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기어이 내가 과외를 받도록 했다. 형편에 맞지 않게 과외를 받으면서 조금씩 철이 들기 시작했다.

동화전집과 백과사전이 내 재산 목록을 차지했어: 우리 때는 정말 빈둥거릴 시간이 많았다. 공부하기 싫어했던 나 같은 아이에겐 더욱 그랬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거나 집에 가방만 냅다 던져놓고 골목길로 뛰어나가 딱지치기 따위를 하면서 놀았다. 그런데 그러고도 시간은 늘 남았다. 그때는 집안에서 그저 빈둥거렸다. 그렇게 빈둥거리다 발견한 것이 『동아백과사전』이었다. 우연히 백과사전을 펼쳐본 나는 그때부터 틈만 나면 그 책을 끼고 살았다. 어느 쪽을 펼쳐도 읽을거리가 그득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가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을 선사했고, 총천연색 사진까지 실려 있어 더욱 흥미진진했다. 내가 자주 본 분야는 동물에 대한 것이었는데, 사진을 통해 처음 본 신기한 동물들이 나의 호기심을 마구 자극했다. 그러다가 백과사전을 밀치고 나를 사로잡은 책이 등장했다. 바로 '세계동화전집'이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여 수없이 반복해서 읽은 이야기는 1권과 2권이었는데, 1권은 엑토르 말로의 『집 없는 천사』였고, 2권이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의 『사랑의 학교』였다. 이후 내가 나이를 먹고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만들어온 원칙이나 삶을 대하는 자세도 은연중 이 『사랑의 학교』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그 이야기들 속에는 어떻게 타인을 사랑하고 정의와 진실을 지켜나가는지가 들어 있었다. 참고로 세계동화전집을 만나기 전의 나와 만난 후의 나는 달라졌다. 간단히 말하면 그전까지 없었던 사유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상상력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할까? 학교생활을 할 때는 물론이고, 뛰놀 곳 천지인 시골에서도 혼자 가만히 있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의 변화를 지금 내가 쓰는 말로 표현한다면 개체화를 시작했다고나 할까?

큰일 났어, 성적이 바닥을 쳤어: 나는 경복중학교에 응시했고 합격했다. 그런데 문제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공부보다는 놀기를 더 잘하고 더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엔 노는 것 못지않은 관심사가 생겼다. 새로운 관심거리는 바로 '한국단편문학전집'이었다. 어머니께서 지인에게 월부로 구입하신 또 하나의 전집인데 금세 나의 마음을 빼앗았다. 이렇듯 놀기 좋아하고 남은 시간은 소설책에 파묻혀 사는 동안 학교 성적은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결국 중학교 2학년 말에 어머니께서 학교에 불려 오시게 되었다. 담임선생님 앞에서 나와 함께 싫은 소리를 듣고 집으로 오는 동안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 침묵이 바위처럼 무겁게 느껴졌고, '이제 공부를 해야 한다. 자식들 잘되는 것만 바라고 사시는 어머니를 이 이상 실망시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꿈이 많다 보니 방황도 많을 수밖에



나는 시인이 될 운명이야: 처음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고, 시인이 되는 게 나의 운명이라 믿게 된 더 확실한 계기는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찾아왔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놀고 있을 때였다. 애들이 줄을 서서 국어선생님 뒤를 따라 교문 쪽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서 얼른 달려가 물었다. 맨 뒤에 따라가던 아이가 백일장에 나가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국어선생님께 가서 "저도 가면 안 돼요?"라고 했더니 선생님은 잠시 쳐다보시다가 그러라고 하셨다. 백일장이 열리는 곳은 경복궁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원고지를 여러 장씩 나눠주셨다. 그리고 두루마리 족자를 풀었는데, 거기에는 '고궁', '낙엽'이라는 두 개의 시제가 있었다. 한동안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가만히 있다가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시를 써 내려갔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그 대회 장원으로 뽑힌 것이다. 그리하여 졸지에 나는 교내 유명인사가 되었다. 게다가 나중에 교지에 백일장 수상작들이 실렸을 때 장만영 선생님의 심사평도 함께 실렸는데 "중고등학교 통틀어서 최재천 학생이 쓴 「낙엽」이 가장 탁월하다. 하나의 이미지를 잡아 집요하게 따라간 기법이 좋다"라는 취지의 기가 막히게 좋은 평이었다. 이후 국어선생님은 수업시간에도 나를 "어이, 시인!"이라고 부르셨다. 처음에는 쑥스러울 뿐이었는데, 계속 그런 말을 듣다 보니 정말 내가 시인이 될 운명이라고 믿게 되었다.

미술이라는 또 다른 길이 내 앞에 나타났어: 백일장의 장원이 되자 자연스레 문예반에 영입되었다. 그런데 기존에 있던 아이들이 날 그렇게 반기지 않는 듯한 기색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알아차리자 문예반에 가기가 꺼려졌다. 고등학생이 되자 그런 현상은 더 심해졌다. 당시 경복중학교 학생들은 시험을 치르지 않고 그대로 경복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래서 부원들도 거의 그대로였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문예반 활동을 하던 중에 갑자기 미술반에 스카우트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고등학교 3학년이 막 시작된 어느 날이었다. 미술 숙제로 ‘비누로 조각하기’가 있었다. 새까맣게 잊고 지내다 미술 수업 전날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별수 없이 다시 일어나 거의 밤을 새워 조각을 했다. 무엇을 만들까 생각하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불상이었다. 이튿날 미술시간, 오경환 선생님께서는 "모두 과제물을 책상 위에 올려놓아라"라고 하시고는 차례차례 지나가면서 채점을 하셨다. 그런데 나한테 와서 한참 보시더니 "들고 나와"라고 말씀하신 뒤 앞장서서 교탁 쪽으로 가셨다. "나의 미술 교사 역사상 처음으로 만점을 주겠다!" 내가 쭈뼛거리며 조각품을 든 채 서 있는데,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술렁거렸고 나도 깜짝 놀랐다.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자 "방과 후에 교무실로 와" 하시고는 교실을 나가셨다. 교무실로 찾아갔더니 선생님께선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술반에 들어와." "저……. 지금 문예반도 하고 있고요. 그동안 노느라 공부를 안 해서 지금부터라도 공부를 해야 대학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못 하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미술선생님께서는 내가 손들 수밖에 없는 방법을 쓰셨다. "너, 이거 네가 만든 게 아니지?" "분명히 제가 만들었는데요." "네 말이 맞는다면 미술반에 들어와 입증해봐. 내가 왜 100점을 줬겠느냐? 미술반에 들어와서 입증을 한다면 모를까 그냥은 이 점수 못 준다." 어쩔 수 없었다. 단순하게도 나는, 내가 그걸 만들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 미술반에 들어갔다.

선생님께서는 다른 미술부원들과는 달리 내겐 처음부터 조각만 시키셨는데, 그래도 기본적으로 데생은 해야 했기에 따로 시간을 내어 직접 가르쳐주셨다. 그러다보니 미술이란 장르에 점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용기를 내서 아버지께 여쭈었다. "아버지, 저 미대에 진학해 조각가가 되면 어떨까요? 선생님은 재능이 있다고 하시는데요……." "미술대학에 가겠다고? 그게 장부로 태어나 한평생 할 만한 일이더냐? 넌 우리 집안 장남이다. 장남으로 태어나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이 있다." 미술가의 꿈은 장부와 장남이라는 절대명제 앞에서 존재감을 상실한 채 안개처럼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때 조각을 했던 경험이 동물학자가 된 후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문학이라는 꿈을 꾸다가 또 다른 꿈을 예감했어: 시인이 되고 싶었으면서도 나는 시보다 소설을 더 많이 읽었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해서는 노벨상 수상 작가들의 문학전집을 읽었는데, 이 작품들은 내게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전까지의 책 읽기가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충족시켜주었다면, 노벨전집은 그와 더불어 다른 나라의 역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지식과 정보도 얻도록 해주었다. 이후에도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집이 출간되면 한 권씩 사다가 읽었다. 솔제니친의 작품도 있었는데,『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암병동』등을 읽는 내내 러시아의 침울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정작 내 관심을 끈 것은 소설보다 책 뒷부분에 실린 다음과 같은 「모닥불과 개미」라는 수필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속에 썩은 통나무 한 개비를 집어던졌다. 그러나 미처 그 통나무 속에 개미집이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통나무가 우지직, 소리를 내며 타오르자 별안간 개미들이 떼를 지어 쏟아져 나오며 안간힘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나는 황급히 통나무를 낚아채서 모닥불 밖으로 내던졌다. 다행히 많은 개미들이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개미들은 좀처럼 불길을 피해 달아나려고 하지 않는다. 가까스로 공포를 이겨낸 개미들은 다시 방향을 바꾸어 통나무 둘레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 많은 개미들이 통나무를 붙잡고 바동거리며 그대로 죽어가는 것이었다. 그 어떤 힘이 그들을 내버린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일까?

동물학자가 된 이후에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나도 솔제니친과 마찬가지로 개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정말 궁금했다. 그러다가 훗날 미국 유학을 가서 꽂혀버린 학문, 사회생물학을 접했을 때 순간적으로 솔제니친의 그 수필이 생각났다. 그간 수많은 문학작품을 읽고 고독을 즐기는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삶의 수수께끼들을 껴안고 살았는데,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이 그것들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대답해주었다. 사회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타주의다. 자기가 손해 보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어떻게 일반화될 수 있는지 이성적으로는 해답을 찾기 힘든 문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인간사회에도 있고 동물 세계에도 이러한 이타주의가 존재한다.

대학에 두 번씩이나 떨어지다니: 고3이 되어 원서를 쓸 때 아버지께서는 법대를 가라고 하셨다. 부모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나는 별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내 원서를 본 담임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돌려주면서 허락할 수 없다고 하셨다. "이과에서 법대라니, 말이 되느냐?"며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은 이 핑계 저 핑계 대시며 반대하셨다. 그렇게 면담이 사흘 정도 이어지고 있던 어느 날, 반전이 일어났다. 아버지께서 집에 돌아오셔서는 갑자기 "너, 의대 가라" 하시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마음을 바꾸신 것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적성검사 전문가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사가 나의 적성이었는지는 몰라도 나의 길은 아니었다. 만약 내 길이었다면 우리 학교에서 아홉 명이 서울대 의예과를 봤는데 나만 떨어지는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재수를 하여 의예과에 재도전했지만 다시 낙방을 했다. 그런데 1차는 떨어졌지만 2차 지망에 합격했다. 내가 쓴 기억은 없는데 어쨌든 1차 지망이 의예과였고, 2차 지망이 동물학과였다. 아마 담임선생님께서 써주셨던 모양이다.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동물학과에 들어갔어: 이름도 알지 못했던 학과에 그것도 내 의지보단 타의로 입학했으니 공부에 흥미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동아리 활동은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특히 'Poiesis'라는 이름의 독서동아리가 재미있었다. 동아리 모임에서 한번은 『성장의 한계』를 가지고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성장의 한계』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현재 하는 방식대로 성장일변도의 경제를 유지해나간다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것이다.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내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고, 금방이라도 서울이 망할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왜 내가 도시에 마음을 못 붙이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방황의 늪에서 나를 건져준 한 권의 책: 4학년이 되면서 모든 활동을 한꺼번에 정리한 뒤 평소 나를 아껴주시던 윤용달 조교 선생님의 연구실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일을 도우며 연구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 연구실에 가보니 할 일은 많은데 인원이 적어 다들 엄청난 양의 일을 하고 있었다. 나도 거기 끼어들어 상당히 많은 일을 했다. 그럴 무렵이었다. 우연히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종로 골목에 있던 외국서적 책방을 기웃거리다가 제목이 너무나 매력적인 얇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겉장을 들추자 책 첫머리에 인용된 데모크리토스의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열매들이다."라는 말이 가슴 한복판을 파고들었다. 그 책이 바로 자크 모노가 쓴『우연과 필연』이었고, 손에 잡는 순간부터 놓을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기가 막힌 책이었다. 이 책은 내게 생물학이 그저 흰 가운을 입고 세포나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인간 본성을 파헤치고 철학을 논할 수 있는 학문이란 걸 알려줬다. 또 그 책은 내게 생물학에 몸바쳐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내 인생에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되었어: 대학 3학년 때 일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김계중 교수가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우리 동물학과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집중해서 수업을 듣고 질문도 하는 내가 교수님 눈에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학생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한 학기 계시는 동안 나를 거의 당신 조수처럼 부리셨다. 교환교수 일정이 끝나 교수님이 한국을 떠나시던 날 내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재천아. 꼭 미국으로 공부하러 와라. 넌 공부해야 할 사람이다. 여기서 우리 분야는 공부에 한계가 많아." 알겠다고 대답을 했지만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김계중 교수님과의 짧은 만남이 지나가고 4학년이 되었다. 어느 날 실험실에 있는데 누군가 노크를 했고, 가방에서 편지를 꺼내 들더니 '자에 춘 초에'가 누구냐고 물었다. 편지를 확인해보니 그건 내 이름이었다. 내 영어 이름 'Jae Chun Choe'를 이 양반이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읽은 것이다. "당신이 찾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그러자 편지 내용을 끝까지 읽어보라고 했다. 그 편지는 김계중 교수님이 써준 것이었다. 교수님은 미국으로 돌아간 뒤 곤충학회에서 조지 에드먼즈 교수, 즉 지금 내 눈앞에 서 계신 이 분을 만났다고 한다. 그때 에드먼즈 교수가 내년에 잠깐 한국에 가야 한다고 말하자, 거기 가면 조수로 쓸 녀석이 있다고 하면서 편지를 써주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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