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열린책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열린책들 / 2011년 3월 / 632쪽 / 15,800원
인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세 가지 사건인류는 세 차례에 걸쳐 자존심 상하는 일을 겪었다.
첫 번째 사건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제창한 일이다.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기는커녕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으며, 태양 자체는 더 거대한 어떤 체계의 주변에 있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사건은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들고 나온 일이다. 그는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을 넘어서는 존재이기는커녕 그저 다른 동물들에게서 나온 하나의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 사건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선언이다. 인간은 예술을 창조하고 영토를 정복하고 과학적인 발명과 발견을 하고, 철학의 체계를 세우거나 정치 제도를 만들면서, 그 모든 행위가 자아를 초월하는 고상한 동기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그저 성적인 파트너를 유혹하고자 하는 욕망에 이끌리고 있을 뿐이다.
사랑의 네 가지 방식아동심리학자들은 사랑의 개념에 네 가지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첫 단계: 나는 사랑받고 싶다. 이는 아이의 단계다. 아기에게는 뽀뽀해 주고 어루만져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는 선물을 받고 싶어 한다. 아이는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사랑스러운가요?”라고 물으면서 사랑의 증거를 원한다. 처음엔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나중에는 자기가 본받고 싶은 ‘특별한 타인’에게 사랑을 확인하려고 한다.
둘째 단계: 나는 사랑할 수 있다. 이는 어른의 단계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기가 남을 생각하며 감동할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을 외부에 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신의 애정을 특별한 존재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느낌은 사랑받는 것보다 한결 흐뭇하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그것에 엄청난 힘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기분에 취하면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된다.
셋째 단계: 나는 나를 사랑한다. 자신의 애정을 남에게 투사하고 나면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쏟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단계의 사랑은 앞의 두 단계와 비교할 때 한 가지 장점이 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든 주기 위해서든 남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사랑을 주거나 받는 존재에게 실망하거나 배신당할 염려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요구하지 않고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정확하게 사랑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
넷째 단계: 보편적인 사랑. 이는 무제한의 사랑이다. 애정을 받고 남에게 투사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나면, 사랑을 자기 주위의 사방팔방으로 전파하기도 하고 사방팔방에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 보편적인 사랑을 부르는 이름은 생명, 자연, 대지, 우주, 기, 신 등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개념을 자각하게 되면 정신의 지평이 넓어진다.
개미인간이 지구에 나타난 것은 기껏해야 3백만 년 전의 일이지만, 개미들은 1억 년 전부터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도시들은 갈수록 규모가 커져서 수천만 마리의 개체를 수용하는 거대한 돔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그런데 개미들이 선택한 생존 전략을 살펴보면, 어떤 것들은 인간 문명의 현재 수준에 비추어 볼 때 아주 이상하게 느껴진다. 우선 개미들은 대부분의 암수의 구별이 없다. 생식을 담당하는 암개미와 수개미는 사회의 전체 구성원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수개미들은 결혼 비행을 하면서 암개미에게 정자를 주고 나면 모두 죽어 버리고, 정자를 받은 암개미는 여왕개미가 된다. 그 뒤로는 여왕개미 혼자서 계속 알을 낳는다. 여왕개미는 공동체의 상황을 언제나 훤히 꿰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개체들을 양과 질의 측면에서 정확하게 제공한다. 따라서 각각의 개체는 역할이 미리 정해진 채로 태어난다. 개미 사회에는 실업이나 가난, 사유재산, 경찰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위계 제도나 정치권력도 없다. 개미 사회는 아이디어 공화국이다. 나이나 역할에 상관없이 저마다 사회 전체를 위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발상이 좋고 정보가 정확하다면 어느 구성원이 내놓은 의견이든 온 공동체가 그것을 따른다.
개미들은 농사를 짓는다. 개미집 안에 마련되어 있는 버섯 재배실이 그것을 말해 준다. 어떤 개미들은 장미 나무에서 진딧물을 방목한다. 개미들의 세계에도 목축이라는 개념이 있는 셈이다. 어떤 개미들은 도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나뭇잎 두 장을 꿰매어 천막을 치는 개미들의 경우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개미들에게는 화학이라는 개념도 있다. 항생 작용을 하는 침을 이용해서 애벌레들을 보살피고 개미산으로 적을 공격하고 있으니 말이다.
건축 분야를 보자면, 개미들은 도시를 건설할 때 알을 보관하는 햇빛 방이나 먹이를 저장하는 창고, 여왕개미의 거처, 버섯 재배실 등이 들어갈 자리를 미리 마련해 둔다.
그런데 만약 개미 사회에서 모든 구성원이 노동에 종사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사실 전체 구성원 가운데 3분의 1은 잠을 자거나 한가로이 돌아다니면서 빈둥거린다. 또 다른 3분의 1은 쓸데없는 일을 벌이거나 심지어는 다른 개미들에게 방해가 되는 일을 저지른다. 예를 들면 지하 통로를 뚫는답시고 일을 벌이다가 일껏 만들어 놓은 다른 통로를 무너뜨리는 식이다. 나머지 3분의 1은 앞서 말한 사고뭉치들의 실수를 바로잡으면서, 도시를 제대로 건설하고 관리해 나간다. 이들이 있기에 도시 전체가 원만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투가 아무리 치열해도 모든 개미가 나서서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동을 하든 안 하든, 전투에 참가하든 안 하든, 공동체의 성공에 기여하려고 애쓴다는 점에서는 어느 개미나 마찬가지다. 개미들에게는 집단적인 성취가 개인적인 성공보다 중요하다.
개미들은 자기네 도시 주위의 사냥감이 고갈되었다 싶으면, 모든 시민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 그럼으로써 개미들의 도시와 자연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진다. 개미들은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땅속에 공기가 통하게 하고 꽃가루가 널리 퍼져 나가게 하는 데 기여한다.
개미들은 성공한 사회적 동물의 본보기를 제시한다. 개미들은 사막에서 북극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학적 환경을 차지했다. 개미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떨어졌을 때도 살아남았다. 개미들은 저희끼리 서로 방해하지 않고 지구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간다.
쥐 세계의 계급 제도낭시 대학 행동 생물학 연구소의 한 연구자가 쥐들의 수영 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동물의 사회 행동』이라는 저서를 낸 바 있는 이 연구자의 이름은 디디에 드조르. 그는 쥐 여섯 마리를 한 우리 안에 넣었다. 우리의 문은 하나뿐이고 그마저도 수영장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먹이를 나눠 주는 사료 통은 수영장 건너편에 있었다. 따라서 쥐들이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헤엄을 쳐서 수영장을 건너야만 했다. 여섯 마리의 쥐들이 일제히 헤엄을 쳐서 먹이를 구하러 갔을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이 이내 확인되었다. 마치 쥐들 사이에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여섯 마리의 쥐는 다음과 같은 네 부류로 나뉘었다. 두 마리는 수영을 해서 구해온 먹이를 빼앗기는 피착취형이었고, 다른 두 마리는 헤엄을 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남이 구해 온 먹이를 빼앗아 먹는 착취형이었으며, 한 마리는 헤엄을 쳐서 구해 온 먹이를 빼앗기지도 않고 남의 것을 빼앗지도 않는 독립형이었고, 마지막 한 마리는 헤엄을 치지도 않고 먹이를 빼앗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형이었다.
먼저 피착취형에 속하는 두 쥐가 먹이를 구하러 가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우리로 돌아오자, 착취자들은 그들을 공격해서 애써 가져온 먹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피착취자들은 착취자들이 배불리 먹고 나서야 남은 것을 먹을 수 있었다. 착취자들은 헤엄을 치는 법이 없었다. 그저 헤엄치는 쥐들을 때려서 먹이를 빼앗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독립적인 쥐는 튼튼하고 힘이 세기 때문에 스스로 헤엄을 쳐서 먹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착취자들의 압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의 대가를 온전히 누렸다. 끝으로 천덕꾸러기 쥐는 헤엄을 칠 줄도 모르고 헤엄치는 쥐들에게 겁을 줄 수도 없었다. 그러니 그저 다른 쥐들이 싸우다가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주워 먹을 수밖에 없었다.
드조르는 스무 개의 우리를 만들어서 똑같은 실험을 해보았다. 어느 우리에서나 똑같은 역할 배분, 즉 피착취형 두 마리, 착취형 두 마리, 독립형 한 마리, 천덕꾸러기형 한 마리가 나타났다. 드조르는 그러한 위계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착취형에 속하는 쥐 여섯 마리를 따로 모아서 우리에 넣어 보았다. 그 쥐들은 밤새도록 싸웠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그들의 역할은 똑같은 방식으로 나뉘어 있었다. 피착취형이나 독립형이나 천덕꾸러기 형에 속하는 쥐들을 각 유형별로 여섯 마리씩 모아서 같은 우리에 넣어 보았을 때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났다.
드조르는 더 커다란 우리에 2백 마리의 쥐들을 넣어서 실험을 계속했다. 쥐들은 밤새도록 싸움을 벌였다. 이튿날 아침 세 마리의 쥐가 털가죽이 벗겨진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 결과는 개체수가 증가할수록 천덕꾸러기형의 쥐들에 대한 학대가 가혹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낭시 대학의 연구자들은 이 실험의 연장선에서 쥐들의 뇌를 해부해 보았다. 그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쥐는 천덕꾸러기나 피착취형 쥐들이 아니라 바로 착취형 쥐들이었다. 착취자들은 특권적인 지위를 잃고 노역에 종사하는 날이 올까 봐 전전긍긍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다니엘의 예언기원전 587년, 히브리인들의 유다 왕국은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이끄는 바빌로니아인들의 침략을 받았다. 최초의 성전은 파괴되었고 여호야킴 왕과 귀족들은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어느 날 밤, 네부카드네자르는 이상한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그는 꿈의 의미를 짐작할 수가 없어서 마음이 불안했다. 그래서 주술사, 점쟁이, 점성가 등 해몽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왕의 요구는 단순한 해몽이 아니라 꿈의 내용을 먼저 알아맞히고 그 의미를 설명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왕의 분노를 샀다. 그때 유다에서 끌려온 히브리 귀족 가문의 한 젊은이가 해몽을 알 수 있다고 나섰다. 왕은 그를 데려오게 했다.
젊은이의 이름은 다니엘이었다. 그는 먼저 왕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 이야기했다. 왕이 꿈에서 본 것은 무시무시한 거인이었다. 거인의 머리는 금으로 되어 있었고, 가슴과 팔은 은으로, 배와 넓적다리는 청동으로, 아랫다리는 쇠로, 발은 쇠와 진흙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돌 하나가 날아와 쇠와 진흙으로 된 발을 부수자 거인은 산산조각이 되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이어서 다니엘은 꿈의 의미를 설명했다. 금으로 된 머리는 바빌로니아 왕국의 지배를 나타내는 것이었고, 은으로 된 가슴과 팔은 그보다 못한 나라가 뒤를 이어 지배하리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우리는 이것을 기원전 539년에서 331년에 걸쳐 메디어 왕국과 페르시아 제국이 지배했던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청동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는 그다음에 지배할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었고(그리스인들은 기원전 331년에서 168년 사이에 지중해 연안 지역을 거의 다 점령했다). 쇠로 된 아랫다리는 쇠처럼 모든 것을 부숴 버리는 강건한 나라의 지배를 상징하는 것이었다(로마인들은 기원전 168년에서 기원후 476년에 걸쳐 이 지역을 지배했다). 쇠와 진흙으로 된 발은 앞의 강대한 나라가 둘로 갈라지리라는 뜻이었다(로마 제국은 4세기에 동서로 분열되었다). 끝으로 다니엘은 돌 하나가 산에서 떨어져 나와 금과 은과 청동과 쇠와 진흙을 부수듯이, 하느님이 세우신 나라가 앞의 모든 나라를 부수어 멸망시킬 것이라고 했다.
쇠처럼 강건한 나라가 히브리인들의 나라를 점령한 뒤에 결국 붕괴하게 되리라는 다니엘의 예언은 이후에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특히 꿈속의 거인을 부순 돌이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메시아의 예언일 거라는 해석이 생겨나면서 메시아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숱하게 나타났다. 그들의 대다수는 로마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로마인들 역시 다니엘의 예언을 알고 있었고, 쇠처럼 강건한 자기들의 제국이 붕괴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선발예전에 미국 중앙 정보부에서는 첩보 요원이 될 사람들을 선발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그중에는 아주 간단한 방법도 하나 있었다. 먼저 신문에 구인 광고를 낸다. 이 광고에는 시험을 본다거나 이러저러한 서류를 제출하라는 얘기가 없다. 개별적으로 추천서를 받아 오라거나 이력서를 내라는 요구조차 없다. 누구든 관심이 있으면 모일 아침 7시에 모처의 사무실로 오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고 나면 백여 명의 후보자들이 찾아와 대기실에서 함께 기다린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그들을 데리러 오지 않는다. 다시 한 시간이 흐른다. 참을성이 없는 후보자들은 기다림에 지쳐서, 사람을 오라 해놓고 이게 뭐하는 거냐고 투덜대면서 자리를 뜬다. 오후 1시쯤 되면 반수 이상이 문을 쾅 닫으며 가버린다. 오후 5시쯤이면 4분의 1 정도만 남게 된다. 마침내 자정이 된다. 그때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은 한두 명뿐이다. 그들은 자동적으로 고용된다.
타지마할타지마할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1607년의 어느 날, 그러니까 무굴 제국 황실이 황실 전용 시장을 일반에게 특별히 개방하는 연례행사 날이었다. 이날은 평소에는 금지된 일들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일종의 사육제라고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황실 하렘의 여인들은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 큰 소리로 떠들거나 백성들 틈에 섞여서 향, 화장품, 보석, 의복 등을 살 수도 있었다. 또 상인들과는 물론 시장을 찾은 다른 손님들과도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의 신분을 모르는 채로 대화를 나눴고, 젊은 귀공자들은 예쁜 아가씨를 유혹하기 위해 서로의 시를 겨루는 시합을 벌이곤 했다.
이해에 자한기르 황제의 아들인 쿠람 황자는 열여섯 살의 소년이었다. 용맹한 전사이자 각종 기예에 출중한 미소년이었다고 전해지는 이 황자는 친구들과 함께 시장을 구경 나왔다가 한 미소녀를 발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고귀한 혈통의 공주였던 아르주만드 바누베굼이었다. 황자는 그 자리에서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다음 날, 쿠람 황자는 아버지를 찾아가 아르주만드와 결혼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한다.
황제는 기본적으로 결혼하는 것은 승낙하지만, 얼마간 더 기다리라고 이른다. 그리고 그 이듬해, 황제는 황자를 페르시아 공주와 결혼시킨다. 또 이슬람의 관습에 따라 황자는 페르시아 공주 외에도 다른 여러 여인을 취해야 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연인과 만나지도, 말 한마디 나누지도 못한 채로 꼬박 5년을 기다려야 했던 쿠람 황자는 1612년 5월 10일 마침내 황실 점성술사들의 허가를 받아 그토록 갈망하던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며느리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된 황제는 며느리에게 ‘뭄타즈 마할’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이는 ‘궁전의 빛’이라는 뜻이다.
그날 이후로 황자와 공주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부부는 열네 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중 일곱 명이 살아남았다. 1628년, 쿠람은 역모를 꾸며 아버지를 퇴위시키고 자신이 황좌에 오르며, 이때부터 “샤 자한”이라는 명칭을 쓰게 된다. 황제가 된 쿠람은 흥청망청 놀기만 좋아할 뿐 관리 능력은 형편없었던 선황이 수많은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을 남겨 놓았음을 알게 되고는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또 그는 반역한 봉신(封臣)과 전쟁도 벌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