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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향한 이정표

사이드 쿠틉 지음 | 평사리


진리를 향한 이정표

사이드 쿠틉 지음

평사리 / 2011년 7월 / 360쪽 / 25,000원



서문: 인류의 새로운 리더십과 무슬림공동체




오늘날 인류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인류가 처한 위기는 건전한 발전과 진정한 진전에 없어서는 안 될 가치들이 결여되어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서구인들조차 서구 문명이 인류를 바른길로 인도해줄 건전한 가치들을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과 자신들의 양심을 충족시키고 그 존재 이유를 정당화할 수 있는 어떤 가치도 소유하고 있지 못함을 잘 알고 있다.

무슬림공동체는 단순히 이슬람이 존재하는 공간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더불어 과거 조상들이 이슬람 체제하에 살았던 곳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는 후손들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생활태도, 사상과 관념, 규칙과 규범, 그리고 가치와 기준을 이슬람의 근본에서 찾는 사람들의 모임을 일컫는 이름이 바로 무슬림공동체다. 그러므로 이슬람이 다시 인류의 리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슬람의 원래 모습을 회복한 무슬림공동체의 부활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슬림공동체는 여러 세대에 걸쳐 알라의 뜻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체제의 잔재 속에 묻혀 있었다. 또한 이슬람의 가르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잘못된 법과 관습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곳을 '이슬람 세계'라고 불러왔다.

나는 이슬람을 '부흥'시키려는 시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인류의 리더십을 되찾아오기까지 아주 긴 여정이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무슬림공동체는 오랜 세월 동안 존재감을 상실했고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 기간 동안 인류의 리더십은 다른 이념과 국가, 즉 다른 개념과 제도에 넘겨져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유럽의 천재적인 학자들은 과학, 문화, 법, 그리고 물질적 발명에 있어 놀라운 업적을 달성했다. 이로 인해 인류는 물질적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수많은 진보적 성과를 이룩했다. 이런 놀라운 업적을 이룩한 서방에 대해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소위 '이슬람 세계'라고 부르는 지역이 이러한 물질적 발전에서 완전히 뒤처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창의적인 마인드는 우리보다 한참 앞서 있다. 앞으로도 수세기 동안 이 분야에서 유럽과 경쟁하여 우월성을 가지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대 서구 문명이 가지고 있지 못한 다른 질적인 가치들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인류의 리더십을 담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물질적인 진보 외에 다른 것을 인류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다른 것이란 오직 믿음과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현대 과학과 기술이 제공하는 혜택과 물질적 편안함을 최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믿음과 삶의 방식이 인간 사회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되도록 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무슬림공동체인 것이다.

제1장. 쿠란적 세대의 독특함



어느 나라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이슬람의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슬람 역사의 특수한 측면을 염두에 두고 깊이 연구해야 한다. 이는 이슬람으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이슬람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방법과 관련된 것이다. 한때 이슬람의 말씀은 위대한 한 세대를 만들어냈다. 바로 예언자와 함께 호흡했던 동료들의 세대이다. 이슬람 역사에서, 아니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이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세대는 찾아볼 수 없다. 이들 이후 그런 역량을 가진 세대는 다시 출현하지 않았다.

신이 이들 세대에게 남긴 말씀이 쿠란이다. 쿠란은 아직 변하지 않고 우리 손에 남아 있다. 쿠란 외에 또 다른 말씀은 하디스(Hadith,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다. 예언자의 실제 생활과 성스러운 삶의 족적을 담은 역사다. 예언자의 동료들이 마신 샘물의 원천은 바로 성스러운 쿠란이다. 오로지 쿠란만이 예언자의 언행과 그의 가르침이 흘러나온 근원일 따름이다.

제2장. 쿠란적 방식의 본질



쿠란의 핵심 '라 일라하 일랄라'

알라의 사도 무함마드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전한 최초의 말씀은 그들이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라는 증언을 가슴에 새기라는 것이었다. 무함마드는 누가 사람들의 삶을 진정으로 부양하는지를 가르쳤고, 오직 알라만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데 전력했다.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해력이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방식은 아랍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그리 쉬운 길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아랍인들은 '라 일라하 일랄라(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에서 '일라히(신)'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믿음의 대상으로서 여러 신들을 경배하던 상황에서 알라만을 믿으라는 주장에 담긴 속뜻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함마드가 주창하는 '울루히야'가 '알라의 주권'을 의미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또한 주권이 오직 알라에게 속한다는 주장이 성직자, 부족장, 부유층, 통치자들의 권력에 도전한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이들 세속적인 지배층이 아니라 결국 알라에게 귀속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마음과 양심, 종교적인 규율, 사업과 부의 분배, 정의의 실행과 관련된 삶의 문제 등 인간의 영혼과 육체에 관한 모든 사안에서 오직 알라의 권위만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랍인들은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라는 선언이 알라의 위대한 속성인 주권을 찬탈해온 세속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점도 잘 알았다. 이는 알라의 주권이 찬탈된 상황 하에서 만들어진 모든 세속의 형태에 대해 부정하고 반기를 드는 것이었다. 또, 알라가 인정하지 않은 법들을 제정한 세속 권력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권력이 아닌 신앙의 방식

예언자 무함마드가 알라의 사도로서의 소명을 받을 당시, 아랍 사회는 부의 공정한 분배와 정의가 결여되어 있었다. 소수가 모든 부와 상업 활동을 독점했다. 이들은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더욱 늘렸지만 다른 다수의 사람들은 가난하고 굶주렸다. 부자들은 고귀하고 뛰어난 자들로 여겨졌다. 반면, 일반 사람들은 재물뿐만 아니라 존엄성도 명예도 없는 존재였다.

무함마드는 귀족과 부유한 계층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그들의 부를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분배하는 혁명적인 사회운동을 시작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약 무함마드가 그러한 운동을 시작했다면, 아랍 사회는 두 계층으로 나누어졌을 것이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권력자들의 폭정에 지쳐 이 새로운 운동을 지지하는 다수와, 모든 것을 소유한 소수로 나누어졌을 것이다. 그 대신 예언자는 알라의 말씀을 사회에 전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택했다.

믿음을 강조한 메카 계시

이슬람은 실용적인 종교다. 즉, 삶의 실질적인 사안들에 질서를 부여한다. 따라서 이슬람은 현실의 문제들을 다루면서 그것들을 유지해야 할지, 고쳐야 할지, 또는 완전히 바꿔야 할지를 결정한다. 결과적으로 알라의 주권을 받아들인 이슬람 사회에서는 법을 제정하는 데 있어 실제로 존재하는 상황들만이 고려된다. 이슬람은 '가정'에 기초한 '이론'이라기보다는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삶의 방식'이다. 따라서 먼저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을 믿는 무슬림공동체가 존재해야 한다. 이 공동체는 알라 외에 다른 모든 권위를 부정하며 오직 알라에게만 복종한다. 또, 이슬람 신앙에 기초하지 않은 모든 법률의 합법성에 도전한다.

제3장. 이슬람 사회의 특성과 올바른 형성 방법



우주 전체는 알라의 권위 하에 있으며, 이 우주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인간은 우주를 지배하는 알라의 법에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 알라의 권위는 인간의 삶을 위한 입법의 토대로서 반드시 인정받아야 한다. 개별적인 체계와 삶의 방식을 발전시킨다는 명분으로 인간이 알라의 권위로부터 자신을 단절시켜서는 안 된다. 인간의 성장, 건강과 질병, 삶과 죽음은 알라로부터 나온 본연의 섭리 아래 있다. 인간은 우주 전체에 널리 통용되고 있는 법을 관장하는 알라의 섭리를 변화시킬 수 없다. 따라서 사람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측면에 있어서도 이슬람의 방식을 따라야 하며, 알라의 법이 삶의 모든 문제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으로써 인간과 우주 만물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에 반하여, 자힐리야는 다른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자힐리야는 우주의 체계에 반하는 것이고, 인간 삶의 자발적인 측면과 자발적이지 않은 측면의 충돌을 가져온다. 때문에 유일신 알라에 대한 완전한 복종을 설파했던 마지막 예언자 무함마드는 물론, 그 이전에 다른 모든 알라의 사도들도 자힐리야의 타도를 강조했다.

인간성을 강조하는 이슬람 사회

이슬람은 무슬림공동체를 출범시키고 이를 활동적인 집단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슬람 신앙을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유일한 근간으로 삼았다. 그 궁극의 목적은 '인간성'을 일깨우고 그것을 발전시키며 강화해 인간 존재에서 발견되는 모든 측면들 중 가장 지배적인 요소로 만드는 것이었다.

인간의 일부 특성에는 동물, 심지어는 무생물의 그것과도 공통된 부분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과학적 자힐리야'의 옹호자들은 인간을 짐승 또는 무기체와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물 및 무기체와 일부 공통된 특성을 갖는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자신을 다른 것과 구별 짓고 또 자신을 특별한 창조물로 만드는 어떤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슬람은 인간적인 사회의 건설을 위해 가장 고귀한 인간 특성을 끌어내고 발전시키고 유용하게 적용한다. 결과적으로, 유일하게 성스런 삶의 방식은 이슬람뿐이다.

제4장. 알라를 위한 지하드



지하드의 특성

(지하드: 알라의 대의와 이슬람 종교를 위해 분투하고 노력하는 개인적 또는 공동체적 단위의 활동)첫째, 이슬람의 방식은 매우 현실적이다. 이슬람 운동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실질적인 상황에 맞추어 대책을 논의한다. 둘째, 이슬람은 단계적으로 진화하는 실천적 운동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각 단계에서 이슬람은 현실 상황의 필요에 따른 대책을 제공하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토대를 구축한다. 셋째, 발전적인 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대책과 방법이 동원되더라도 이슬람의 근본 원칙과 목적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넷째, 이슬람은 무슬림공동체와 다른 집단들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률적 토대를 마련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슬람의 범우주적 메시지를 받아들이려는 사람을 막거나 공격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러한 행동을 하는 자가 있으면 그가 항복하거나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 무슬림의 의무다.

인류의 자유를 위한 이슬람

이슬람은 단지 아랍인들의 자유를 위한 선언이 아니다. 그 메시지 또한 아랍인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슬람은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 적용 범위도 지구 전체를 아우른다. 이슬람의 시각에서 보면 노예 상태는 인간이 만든 법을 따르는 것이다. 이슬람에서 복종의 대상은 오직 알라일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알라 이외의 다른 존재나 인간을 섬기는 자는 알라의 종교 밖에 있는 것이다.

영토가 아닌 인류를 위한 지하드

역사적 사건들을 찬찬히 돌이켜보면서 우리는 이슬람의 본질에 내재한 측면, 자유에 대한 보편적 선언과 그 실질적인 방식에 관해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러한 본질적인 것들과 일시적으로 제시되는 방어의 필요성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침입자들에 대항해 이슬람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알라의 권위와 그에 대한 복종에 기초하는 특별하고 영원한 사회를 건설하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이슬람 지하드이며, 이를 위해 우리 주변에 있는 자힐리야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지하드의 목표다.

이슬람을 위해 투쟁이 필요하다면, 이는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호오好惡의 문제가 아니라 영원히 공존할 수 없는 두 체제, 즉 이슬람과 자힐리야 간의 불가피한 싸움인 것이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이런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슬람 지하드가 침략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기능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주도권 장악을 위한 지하드

중요한 사실은 지하드를 통해 주도권을 장악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알라가 아닌 다른 인간의 노예 상태에 놓인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해 특정한 지리적, 인종적 한계에 의해 제약받지 않고 주도권을 잡아 전체 인류를 구하는 지배적인 세력이 되어야 한다. 그 제약을 허용한다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를 악, 혼란, 인간에 의한 노예 상태에 방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시각의 틀을 적용한다면 이슬람 지하드는 알라가 명하신 삶의 체계인 무슬림공동체를 확립하는 것이다. 알라의 정치적 권위를 인정하는 이 공동체가 어디에 존재하든 지상에 신성한 알라의 체제를 세울 권리를 갖는다. 신앙의 문제는 개인의 양심에 따르도록 내버려두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알라가 무슬림들로 하여금 일정 기간 동안 지하드를 금지한 것은 원칙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전략의 문제였으며, 신앙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운동의 필요 요건에 관한 문제였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이슬람 운동 지하드의 다양한 단계를 설명한 쿠란 구절들을 이해할 수 있다.

제5장. 라 일라하 일랄라 - 이슬람적 삶의 방식



다양한 유형의 자힐리야 사회

우선 자힐리야 사회는 무슬림 사회가 아닌 다른 모든 사회다. 좀 더 명확한 정의를 내린다면 믿음과 사고, 경배의 수행, 그리고 법적 규율에 있어서 유일신 알라에게 복종하지 않는 사회는 모두 자힐리야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현재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사회는 자힐리야 사회이며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공산주의 사회로서, 명확히 자힐리야 사회에 포함된다. 두 번째 유형은 우상 숭배 사회로서 이 또한 모두 자힐리야 사회에 속하며 흔히 인도, 일본, 필리핀, 아프리카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세 번째 유형의 자힐리야 사회는 오늘날의 모든 유대교와 기독교 사회다. 이들 사회는 원래의 믿음을 왜곡하고 알라의 특별한 속성들을 다른 존재들에 적용해왔다. 알라를 다른 존재들과 결합하는 이런 형태는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예수를 알라의 아들로 인정하는 삼위일체론이 그 대표적인 예다. 때문에 진정한 알라의 실체와는 동떨어진 알라의 개념이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현존하는 모든 '무슬림' 사회들 또한 자힐리야 사회다. 그 이유는 그들의 삶이 유일신 알라에 대한 철저한 복종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알라의 유일성을 믿고 있을지라도, 그들은 알라의 절대 권한인 법의 제정과 관련한 권위와 절차를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위탁하고 그 권위에 순종하고 있다. 또한 이 세속적 권위로부터 그들의 제도, 전통과 관습, 법, 가치와 기준 등 삶의 거의 모든 측면들을 도출해 내고 있다.

제6장. 보편적인 법, 샤리아



인간은 우주의 일부이며, 인간의 본성을 지배하는 법은 우주를 관할하는 법과 다르지 않다. 알라는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의 창조주다. 인간의 신체는 지상의 물질로 만들어졌지만, 알라는 인간에게 남다는 특성을 부여해 지상의 어떤 물질보다 인간을 더 중요한 존재로 만드셨다. 알라는 이런 특성을 인간에게 의도적으로 부여했다. 우주와 인간을 창조한 그분, 그리고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에 인간도 복종하도록 만든 그분은 인간의 자율적인 행위를 조절하기 위해 샤리아(이슬람교의 율법이며 규범 체계)를 내렸다. 만약 인간이 이 법을 따르면 그의 삶은 자신의 본성과 조화를 이룬다. 이런 관점에서 샤리아는 인간의 물리적, 생물학적 측면들까지 포함한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법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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