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줄 게 없는 부모는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라
한희석 지음 | 명진출판
물려줄 게 없는 부모는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라
한희석 지음
명진출판 / 2011년 6월 / 239쪽 / 13,000원
1장 가난한 부모라고 꿈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투잡을 해도 가난한 아빠: 거울이 큰 이모가 중학교 교복을 사 가지고 왔다. 또 신세를 졌다. 교복을 입혀놓은 큰 딸 거울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예뻤다. "아이고 우리 거울이, 조막만 했던 게 벌써 커서 중학생이 되는구나……." 큰 이모는 거울이를 끌어안고 엉덩이를 토닥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내의 표정에 고마움 반, 미안함 반이 섞여 있다. 원래 내 직업은 작가다. 작가란 원고가 팔려야 먹고사는데 무명작가인 내 작품을 덥석 받아주는 출판사는 거의 없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유명한 작가인지가 몇 배나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내 원고는 가뭄에 콩 나듯 이따금 팔렸고,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생계가 유지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또 하나의 직업을 가져야 했다. 그냥 몸을 써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거절하지 않고 다 받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아이들은 아빠의 직업란에 악착같이 '작가'라고 쓴다는 점이다. 게다가 더욱 고마운 것은 지금까지 아이들 선생님 중 누구도 너희 아빠가 무슨 책을 썼느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중학교에서 받아 온 첫 성적표: 학교에서 돌아온 거울이는 안으로 들어서려다 말고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중간고사 성적표."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석차를 확인한 순간, 가슴에서 뭔가가 '쿵'하고 떨어지는 듯했다. 27/36 서른여섯 명 중 스물일곱 번째라는 뜻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먹고살기 바쁘다, 돈이 없다 핑계를 대며 관심을 쏟지 못한 결과가 결국 이렇게 형편없는 성적으로 나타나는구나 싶었다. 막상 이렇게 구체적인 숫자로 실체를 접하고 보니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이대로 내버려뒀다가는……." 끝내 아내는 눈물을 찍는다. 물려줄 게 한 푼도 없는 부모 아래에서 그런 인생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아이들 자신이 경제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찾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조차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제대로 받으면서 성장한, 갖출 것 다 갖춘 아이들이 모두 차지해버리는 세상이라니……. 그럼 우리 아이들은 대체 어찌 산단 말인가.
나는 미국에 있는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네는 7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했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조카는 뉴욕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나는 거울이 얘기를 꺼냈다. 평소 같으면 전화요금이 아까워 안부만 묻고 끊었겠지만 그날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카에게 매달렸다. 그날 저녁상을 물린 후 나는 거울이더러 교과서 한 권을 가져와 보라고 했다. 교과서를 넘겨보았다. 놀랍게도 책은 오늘 받은 듯 너무도 깨끗했다. '외삼촌, 거울이 교과서 한번 보세요. 아마 새것처럼 깨끗할 거예요.' 아까 조카가 말한 대로였다. 난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너희 반에서 1등 하는 애가 누구니? 그 친구 교과서 한 권만 빌려 올 수 있을까?"
거울이가 반 1등 소정이 교과서를 가져온 것은 부탁한 지 닷새 만이었다. 나는 소정이와 거울이의 수학 교과서를 내밀었다. "한번 비교해봐. 소정이 교과서와 네 교과서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5분쯤 지났을까, 열심히 두 교과서를 뒤적이던 거울이가 소리쳤다. "어! 얘는 왜 이렇게 낙서가 많아. 아니, 선생님 말씀을 다 받아 적었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다름 아닌 메모와 필기의 차이다. 필기는 선생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이지만, 메모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재구성하거나 순간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려 자신만의 특별한 부호나 문장으로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부 잘하는 아이는 메모를 중요시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 눈에는 낙서처럼 보일지 몰라도 쓴 사람만의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메모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에 주목했다는 뜻이 된다.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건 많다: 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나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방학을 알차게 보내도록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전시, 공연 소식을 듣게 되었다. 특히 '무료'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인터넷에 접속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전시회나 공연이 있는지 찾아 메모했다. 정보를 더 찾다 보니 구청에서 주관하거나 각 대학에서 열리는 음악회 대부분이 공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게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니 서울 안에서라도 아이들 눈과 귀를 열어줄 기회를 찾아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틈나는 대로 여러 공연과 전시회에 데리고 다녔더니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졌다. 예컨대 판화전을 보고 오더니 미술시간에 심드렁하게 배우고 넘어갔던 판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클래식 음악을 접하고 나서는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이 시시하게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연예계 가십거리를 두고 떠드는 일 대신 쇼팽과 차이콥스키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행위예술과 설치미술이 뭐냐고 묻기도 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예술적 감각과 감성이 풍부해지고 넓어짐에 따라 학습 면에서도 이해력이 급속하게 향상되었다.
신문 칼럼을 오려 건네다: 많은 부모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거울이가 중학교에 간 뒤로 논술과 서술형 문제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그때그때 파악하면서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글 쓰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신문만한 게 없다. 신문 칼럼은 체계적이며 논리적인 글이다. 칼럼을 쓰는 이들은 사건 하나를 이야기하는 데도 뭉뚱그려 다루지 않는다. 발단을 소개한 뒤 여러 가지 예측 가능한 결과를 조심스럽게 유추해놓고 전문가의 간단한 의견까지 정리해 덧붙인다. 한 신문의 칼럼니스트라고 하면 이미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명사들인데 그들의 특징 중 하나가 독서량이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되 사족이 없다. 군더더기 없는 간단한 문장 몇 개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충분히 전달한다. 그러니 칼럼이야말로 최고의 논술 교과서 아니겠는가.
아이의 눈높이를 고려하여 될 수 있으면 정치적 성향이 짙은 내용은 배제하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 사고나 유명인들이 쓴 세상사는 이야기 정도를 갖다 줬지만 먼지만 수북해졌다. 화가 났지만 꾹 참았다. 여중생에게 신문 칼럼이 과연 얼마나 흥미를 끌겠는가. 하지만 글이란 어려서 볼수록 더욱 효과가 크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두 달이 지나도록 흥미를 보이지 않던 거울이는 아빠의 애걸에 못 이겨 마지못해 칼럼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년쯤 지났을까. 밥을 먹는데 거울이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아빠는 사형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토록 기다리던 거울이와의 토론이 드디어 시작되는 것인가. 우린 한동안 지지와 반대의 입장에서 각자 의견을 피력했다. 그날 토론은 시작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사회적 사건에 관심을 보이며 묻더니 점차 폭이 넓어졌다. 거울이가 2학년에 되고부터는 정치적인 문제까지 놓고 토론을 벌였다. 그러면서 거울이의 토론 솜씨는 나날이 발전해갔다. 선생님에게 매달려라: 거울이의 성적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거울이에게 수학 교과서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거울아, 아빠 앞에서 이 문제, 설명하면서 풀어볼래?" 익숙하지 않은 거울이는 잠시 더듬거렸다. 내가 계속 괜찮다고 다독이고 용기를 북돋아 주자 조금씩 설명을 해가면서 종이에 문제를 풀었다. 난 절대 모른다. 거울이의 풀이법이 옳은지 그른지,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거울이가 그 문제 풀이법을 알고 있는지, 모르면서 대충 넘어가려 하는지를 말이다. 다섯 문제 중 세 문제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드럽고 막힘이 없었지만 나머지 두 개는 자꾸 얼버무리려 하면서 더듬거렸다. '모른다!' 난 직감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학원에 보낼 것이다. 학교에서 부족한 것을 학원에서 채우라고. 그러나 우린 그럴 형편이 못된다. 학원 없이 해결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는데, 조카가 들려준 얘기가 떠올랐다. '삼촌, 선생님 말고 다른 방법은 없어.' 저녁을 먹으면서 거울이에게 말했다. 앞으로 수업시간에 이해가 안 되는 문제가 있을 때는 지금처럼 넘어가지 말고 곧바로 선생님을 찾아가 물어보라고.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다. 선생님들로 가득한 교무실에 들어가 모르는 문제를 물어본다는 것은 상당한 배짱이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거울이에게는 몹시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행동으로 나서기에 교무실 문턱은 거울이에게 너무 높았다. 한 분만 계시면 모를까, 많은 선생님의 눈이 자기에게 쏠릴 것 같고, 더구나 공부를 잘하는 처지도 아니었기에 주눅이 든 것이다. 거울이는 몇 번 더 거짓말을 했다. 타이르고, 또 용기를 주어가며 '딱 한 번'을 입술이 부르트도록 강조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이가 대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왔다. "아빠! 찾아갔어. 교무실에 들어가서 수학선생님께 질문했는데 가르쳐주셨어.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니까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거 있지.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거울이가 공부하기로 마음먹었구나' 하셨어." 일사천리. 한번 질문이 시작되자 거울이는 참지 못했다. 교무실 출입이 잦아지면서 선생님들 사이에 거울이의 존재가 조금씩 알려졌다.
2장 가난한 아빠에게 비장의 무기는 부지런함입시 설명회에서 얻은 소득: 거울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부터 나는 매년 대학입시 설명회에 참석했다. 공부 자체는 내가 도와줄 수 없으니 정보라도 빨리, 많이 얻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던 것이다. 내가 두 번째로 참석한 대입 설명회는 명성이 자자한 모 입시학원에서 열리는 것이었다. 그곳 설명회는 소위 SKY 대학과 그 밖의 대학으로 이분화되어 있었다. 난 당당하게 SKY 설명회에 들어갔다. 분위기가 달랐다. 내 선입견 때문인지 몰라도 참석한 사람들에게서 돈 냄새가 물씬 풍겨났다. 난 위축되지 않으려고 어깨를 쫙 편 채 나눠준 팸플릿을 열심히 읽었다. '과연 3년 후에 내가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당시 거울이 성적이 상위권이긴 했지만 팸플릿에 적힌 높은 점수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설명회에 참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부욕이 타올랐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을 보지 않았다면 그 정도로 승부욕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은 정보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는 그들을 보면서 나 역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렇게 많은 부모들이 자식의 미래를 염려하고 그들 대부분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 부을 텐데 내가 어떻게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도 이렇게 정신적으로 자극받을 필요가 있다는 걸 체험으로 터득했다.
중학교 마지막 성적표: 거울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초조하게 집을 지키고 있었다. 대문을 밀고 들어오는 거울이의 웃음이 미묘했다. 난 거울이가 건네주는 성적표를 펼치고 가장 먼저 석차를 보았다. 1/33, 1/211 난 다시 쳐다보았다. 내 나이 마흔다섯, 그토록 짧은 글을 그렇게 오랫동안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다.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동안 거울이 교육문제로 나와 다투기도 하면서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던가. 우리 거울이 불쌍하다고 베갯잇을 적시며 숨죽여 울던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시쳇말로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했다. 내가 거울이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중학 시절에 1등을 한 번 해보라고 채근했던 것은 느낌, 즉 체험을 위해서다. 1등과 2등은 단순히 등수 하나 차이가 아니다. 한 번 1등을 해 본 아이는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여야 1등을 할 수 있는지 느끼게 된다. 설혹 다음 시험에 2등이나 3등으로 미끄러져도 상관없다. 아이는 자신이 왜 1등을 지키지 못했는지 이미 1등을 해봤기 때문에 잘 안다. 앞서보다 더 열정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거울이는 이제 1등을 해봤기 때문에 다음에 밀려나더라도 어떻게 해야 그 자리를 탈환할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3장 성적관리와 인생관리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하라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천지 차이: 원고를 쓰다가 마음이 답답해져 밖에 나와 홍제천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던 거울이가 나를 발견했나 보다. 함께 집에 들어선 거울이가 가방을 뒤적이더니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고등학교 들어가서 본 첫 중간고사 성적표였다. 성적표를 펼쳐 든 내 표정은 굳어지고 말았다. 분명히 중학교 3학년 기말고사 때 전교에서 1등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서른여섯 명의 아이들 중 5등이다. 전교에서는 14등이었다. 난 며칠 동안 곰곰이 원인을 생각해보았다.
다음날 난 밤 9시가 넘어 거울이네 학교로 올라가 창문 너머로 공부에 열중인 학생들을 보았다. 뭔가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난 교실을 둘러보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수준 차이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수준 차이와는 다르다는 것. 고등학교는 수능을 앞두고 있기도 하지만 배움의 수준에서 현저히 차이가 난다. 그야말로 본격적인 학문에 들어서는 것이다. 열일곱이면 성인으로 접어드는 시기다. 대학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일생일대의 대과(大科)를 놓고 마음을 다잡는 아이들이 생긴다. 아무리 고액 학원에 보내고 뛰어난 과외교사를 붙여주어도 자신이 하려고 마음먹은 학생은 절대 이길 수 없다. 진짜 무서운 경쟁자는 스스로 하려는 아이, 즉 자기주도학습에 눈뜬 아이들이다. 중간고사까지는 선행 학습한 아이들에게 밀리겠지만 당장 기말부터는 스스로 하는 학생들을 당해내지 못한다. 여기까지 진단을 했으니 이제 아빠로서 내놓을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거울이 자신도 중학교 때보다는 훨씬 강도 높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어떤 식으로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할지 그 길을 찾아야 한다.
부모가 할 일은 한눈팔지 않고 지켜보는 것: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성적표. 아내와 나는 둘 다 긴장을 해서 얼른 펼쳐보지 못하고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가시내, 올랐으면 올랐다 떨어졌으면 떨어졌다 말이라도 할 일이지. 딸아이의 침묵에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우리는 성적표를 펼쳤다. 학급 석차는 3등, 전체 석차가 10등이었다. 나는 과목별 점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확실히 중간고사 때보다 점수는 올라 있었다. 거울이가 한마디 했다. "아빠 얘기 그대로야. 중간고사 때 3, 4등 했던 애들이 전부 5등밖으로 밀렸어." 거울이 반이 그랬다면 다른 반 역시 중간고사와 비교하여 석차가 뒤바뀌었을 것이 분명하다.선행학습은 필요하다. 그러나 독이 되는 아이들이 있고 약이 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한발 앞서 교과서를 공부하는 아이들이 얼른 생각하기에는 훨씬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걸음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뛰라고 다그치거나 이제 막 공을 갖고 놀기 시작하는 유소년들에게 축구 전술에 관해 얘기하면 어찌 되겠는가. 아이들마다 이해력이 다르고 지능이 다르다. 같은 공부를 해도 어떤 아이들은 수업 내용을 90% 이상 소화하는가 하면,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문제는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선행학습을 시키는 경우다. 결론부터 말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선행학습은 주로 상위권 아이들에게 필요한 방법이지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무서운 독이 된다.
시간이 흐르고 학년이 오를수록 나의 맥박과 호흡도 빠르고 거세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전한 의문, 아니 무서움 때문이다. 과연 내 교육 방법이 옳은 걸까. 그렇게 자신이 있었고, 공부는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또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능시험이 점점 다가오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상당수 부모들은 승부수를 띄운다. 공부란 때가 있고 한번 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이치를 아는 부모들이기에 이름난 과외교사를 부르거나 아니면 유명 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등의 과감한 방법을 선택한다. 그런 우월한 여건과 환경 속에 있는 아이와 아무런 경제적 도움 없이 공부하는 거울이 사이에 종국에 가면 어떤 차이가 나타날까. 우리 거울이는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이 들었다가도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밀려오는, 하루하루가 생사를 넘나드는 듯 힘겨운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