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경훈 지음 | 푸른숲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경훈 지음

푸른숲 / 2011년 7월 / 257쪽 / 13,000원



걷는 순간, 비로소 도시가 탄생한다




걷고 싶은 거리 1

길과 거리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헷갈리기도 하고 비슷한 뜻으로 섞어 쓸 때도 있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한자와 영어로 표기해보면 그 뜻은 명확해진다. 길은 '로路'이며 'Road'이고, 거리는 '가街'이며 'Street’다. 길은 한 점과 다른 점을 연결하는 통로를 의미한다. 반면에 거리는 길의 한 범주에 속하는 개념이다. 한마디로 구경거리가 있는 길로서 양편에 늘어선 구경거리들이 만들어내는 수동적 통로인 것이다. 그래서 거리는 연결보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경험의 배경, 공간적 장치로서 더 의미가 있다. 길이 이동과 도착이라는 목적 지향에 충실하다면, 거리는 경험이라는 과정 지향적 성격을 띤다.

길을 숲이나 벌판을 가로지르는 자연의 영역으로 본다면, 거리는 인공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도시의 일부로 구분할 수 있다. 시골길에 고요가 있다면, 도시의 거리에는 활기가 있다. 사진이나 영화 속 노천카페의 낭만은 모두 거리가 낳은 것이다. 따라서 도시가 삭막하다는 것은 거리가 삭막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종종 '다르다'를 '틀리다'로 잘못 쓰는 이유는 표준에서 벗어난 다른 것을 틀렸다고 간주해버리는 무의식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길과 거리의 용어혼용은 거리에 대한 오해의 증표이며, 나아가 도시에 대한 몰이해를 나타내는 방증이다.

걷고 싶은 거리와 걷고 싶은 길은 다르다: "학교가 파하면 해찰하지 말고 바로 집으로 오너라." 등굣길에 어머니는 주의가 산만한 나에게 항상 버릇처럼 이르곤 하셨다. 5학년 때 서울 남산으로 전학 오기 전까지 살던 소읍에서는 아침에는 매일 지각을 했고, 저녁에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등굣길은 볼거리 천지였다. 작은 채마밭에 고추와 깨, 마늘 같은 것들이 돌아가며 꽃을 피웠다. 도랑을 따라가면 신작로가 나오고, 거기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길 따라 가다 보면 나오는 고등학교 앞은 항상 작은 장터가 열렸다. 만년필을 늘어놓고 파는가 하면, 신기한 문구용품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광약 같은 것도 팔았다.

그에 비하면 서울에서의 통학길은 오히려 단조로웠다. 초등학교 때 통학로는 남산 소파길이었다. 부모님께 받은 차비를 아껴 갖고 싶은 걸 사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아침마다 기꺼이 걸었다. 하굣길에 아이스크림을 사 먹어야 했고, 샤프펜슬도 필요했다. 한 달쯤 모으면 모터가 달린 모형 탱크를 살 수도 있었다. 집에서 출발해 남산을 올라 옛 식물원과 어린이회관을 가로지른 다음, 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면 적십자사 바로 밑이 학교였다. 겨울에는 바람이 어찌나 차던지 잠이 덜 깬 채로 걷는 등굣길은 고행이나 다름없었다. 오가는 동안 내내 볼거리라곤 도심의 시무룩한 잿빛 빌딩 숲과 멋없이 서있는 남산의 소나무, 그리고 축대뿐이었다.

서울의 '걷고 싶은 길'에는 내가 좋아하는 덕수궁길도 있다. 서울시에서 지정한'걷고 싶은 거리' 1호이다. '걷고 싶은 거리'는 서울시청에서 선정한 곳이 아홉 군데이고, 각 구청별로 정한 곳들도 따로 있으니 다 합치면 백 군데 정도 된다. 그렇게나 많으니 서울 시민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찾아가 걸어볼 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걷고 싶은 거리'의 의미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많은 시민들이 걷고 싶어 하는 길이라는 것인지, 지금은 아니지만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겠다는 공언인지 뜻이 분명치 않다. 또한 나머지 거리는 어쩌고, 선정된 몇 곳만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그것도 의문스럽다.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은 길과 거리의 개념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소파길과 덕수궁길은 가끔 걷고 싶은 길이지 거리가 아닌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 길과 거리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개념이다. 길이 이동과 도착이라는 목적 지향에 충실하다면, 거리는 다양한 경험의 배경이자 공간적 장치로서 도시성에 더 잘 부합된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가 소통의 공간이 되려면 먼저 거리의 분위기가 활기차야 한다. 도시에서의 아름다움이란 녹지나 공원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가 아름답다는 말이다. 그러니 걷기 힘든 거리로 이루어진 도시는 애초부터 도시가 아닌 것이다.

거리는 어떻게 우리를 걷게 만드는가



걷고 싶은 거리 2

도시는 기본적으로 상업적 공간이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도시의 거리가 지닌 기본적인 역할과 그로써 형성된 도시적 공간의 전형을 보여준다. 넉넉한 주차장과 쾌적한 공원이 없는 가로수길은 도시의 거리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모범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적당한 폭의 인도와 거리를 메우고 있는 상점이야말로 가장 도시적이며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상점의 쇼윈도는 교류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데다, 무엇보다 '걷게 하는' 도시의 장치로서 의미가 크다. 그런데 가로수길에만 있고 다른 곳에 없는 것을 찾다 보면 서울을 옥죄고 있는 엄숙주의를 마주하게 된다.

온갖 광고와 욕망이 집약된 물신주의가 팽배한 도시임에도 안 그런 척 근엄한 표정을 지으려는 가식이 서울을 망치고 있다. 이에 비해 쇼핑몰은 도시의 블랙홀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사람들이 쇼핑몰을 도시적 공간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쇼핑몰은 현대적이며 서구적이긴 하지만 도시적이지는 않다. 사실 쇼핑몰은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 건물을 지어 그 안에 도시의 거리를 재현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태어난 가상의 거리에 상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쇼핑객들이 북적거리는 동안 실제 도시의 거리는 텅 비고 점점 피폐해진다.

광화문 '광장'은 왜 어색할까?: 2009년 개장한 광화문광장은 아직까지 논란거리이다. 그보다 몇 년 앞서 생긴 시청광장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광화문이 제 모습을 찾았고, 시청 앞도 온통 자동차로 미어터졌던 시절에 비하면 진일보했지만 두 광장은 여전히 찬사보다는 비판 앞에 놓여 있다.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비아냥거림이 말해주듯 별다른 시설 없이 광장이라는 이름만 붙인 결과다. 이에 대한 논의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도로 포장 문제를 거론하거나 '나무를 심자'는 등의 착하기만 한 목소리가 힘을 얻을 뿐이어서 아무래도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 보아왔던'도시 광장'이 되기는 힘겨워 보인다.

광장은 '공공의 공간'이다. 공간이란 말은 말 그대로 비어 있는 장소를 말한다. 그런데 이 공간의 형태가 중요하다. 물을 담는 바가지가 오목한 형태를 이루고 있어야 하듯, 사람을 담는 광장은 일정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마치 어렸을 적 만들었던 모래집 같은 것이다. 주먹을 쥐고 모래를 덮고는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하며 모래를 다진 후 주먹을 빼내면 주먹 모양의 공간이 생긴다. 도시의 광장도 이렇게 만들어진다. 공적인 공간, 즉 광장을 얻기 위해서는 주변 건물의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적 이익을 어느 정도 희생한다는 것. 그래서 한 도시가 품은 이상과 뜻이 시각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광장이다.

광장의 마지막 조건은 상업 시설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도시의 거리는 상점들이 즐비한 길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도시의 광장은 상점들이 에워싸고 있는 공터를 말한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늘어선 가게들이 없었다면, 베니스의 산마르코 광장을 에워싼 카페들이 없었다면 그곳의 광장은 그저 답답한 지옥이었을 것이다. 쇼윈도를 눈으로 살피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상업적 행위들과 상점이 사람들을 광장에 머물게 한다. 광화문광장이나 시청광장에서 생수 한 병 사서 마시려면 바다같이 넓은 길을 건너고, 광장을 가로질러야 하는 것과는 퍽 대조적이다.

루이스 칸의 미술관과 도시의 의미: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I. Kahn은 20세기 건축을 완성했다는 평을 받는 미국의 건축가이다. 쉰이 넘어서야 첫 건축물을 지었는데, 그 후 그가 작업한 모든 건축물은 건축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화재가 되었다. 그는 재료의 물리적 특성을 반영한 절제된 형태, 극적인 빛의 도입으로 건축을 철학적 경지에 올려놓았다. 특이한 점은 그의 유작인 '영국 미술관'의 1층을 상점으로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근엄하고 존귀한 존재도 도시에서는 상업성과 결합해야 빛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도시都市라는 한자어는 도읍都과 시장市이 합쳐진 말이다. 도시에는 시장의 기능이 필연적으로 포함되었다는 뜻이다. 도시의 성격을 군사도시, 위성도시, 행정도시, 교육도시 등으로 분류하기는 하지만 상업도시라는 말은 없다. 이미 도시라는 말 속에 상업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동어반복이기 때문이다. 도시 자체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은 가장 도시적인 장소다. 남대문시장이 고궁과 수려한 자연을 제치고 서울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이태원이 거리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상가가 없었다면 외국인이 즐겨 찾는 거리가 되었을지 되돌아봐야 하고, 동대문 상가가 밤새도록 북적거리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럼에도 건축에서만큼은 "상업적인 것은 안돼."라는 위선적인 말 한마디가 서울을 도시에서 멀어지게 한다. 공공의 공간을 문화적인 시설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착해 보이기는 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다. 그리고 그 패인을 시민 의식에 돌리는 태도는 더욱 위험하다. 프랑스의 '카페', 영국의 '펍', 미국의 '바'처럼 도시를 윤택하게 만드는 공유 공간은 모두 상업 시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상업은 탐욕스럽지 않을뿐더러 저급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든다.

우리 주변엔 너무나 많은 울타리가 있다



방음벽

서울은 스스로 울타리를 두르면서 자발적인 게토(서양 도시의 낙후된 구역, 유대인 거주 구역)가 되어가고 있다. 방음벽은 그 자체의 흉물스러운 모습만이 문제가 아니다. 장벽은 소음뿐 아니라 바람도, 사람도, 풍경도 막아선다. 도시의 풍경은 자연과는 달리 시민의 노력과 희생으로 만들어진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고 소집단의 사사로운 이익을 희생하는 것이 도시적이라면, 방음벽은 분명 반도시적 증표다. 아파트나 학교 주위를 둘러싼 방음벽은 도시성의 후퇴다.

소음을 줄인다는 사적인 쾌적함을 위해 그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도시 전체에게 지우는 것은 천민자본주의가 낳은 행태라고밖에 볼 수 없다. 혹자는 선진국에서도 방음벽을 설치했다고 강변하지만, 그것은 도심이 아닌 고속도로 주변 교외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도심에 방음벽을 높게 세우기를 당연시하는 풍토는 한국 건축이 도시라는 새로운 공간적 배경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이며, 도시성에 대한 철학과 의식이 부족한 건축가들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방음벽은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다: 방음벽은 서울에만 있는 장벽이다. 처음부터 방음벽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라는 동요 가사처럼, 예전에는 불가피한 소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차츰 방음벽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제는 서울 어디를 가나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고속도로 주변은 물론, 차량통행이 드문 이면도로에까지 설치되어 있다. 요즘은 아파트 공사를 시작하면 먼저 거대한 장벽부터 설치하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방음벽은 주변에 시끄러운 도로나 철길이 있을 경우 소음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다. 어디를 가나 방음벽을 볼 수 있을 정도니 서울은 점점 중세 도시처럼 금속의 성곽도시가 되어간다.

도시는 태생이 인공적이다: 한국의 주거 공간을 자연적 공간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경계가 불분명한 자연과 인공의 공간이 있고 그 만남은 절묘하고 또 아름답다. 주변의 산에서 가져온 나무며 흙이며 바람이 촉촉하게 인공의 공간으로 침투하는 것이다. 굳이 곧은 나무를 고집하지 않고 적당히 휜 나무를 기둥으로 대들보로 걸쳐놓은 여유가 있다. 정원은 그저 아무 보살핌 없이 놓인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자연이 스스로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가꿔서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며, 그렇기에 거스르지 말아야 할 순리이기도 하다.

이 땅에서 한국의 전통 건축과 도시는 서울 인구가 20만이 채 안 되던 20세기 초에 이미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화나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에 일제강점이 시작되었고, 성곽과 궁성이 파괴되고 근대주의적 신식 건축이 강제로 이식되었다. 기차역, 중앙청, 은행 또는 백화점 같은 새로운 용도와 그에 걸맞은 신식 건축 형태가 식민 공간을 만들어냈다. 도시화는 일제 식민지배와 동일시되었고, 이는 민족적 반감과 혼합되어 타도의 대상으로 굳어져갔다. 한국의 전통공간에 대한 향수는 그 대표 키워드인 자연과 어우러졌고, 그 결과 자연은 '한'이나 '흥'같은 민족 고유의 대표어가 되었다. 한국인의 몸으로 경험했던 자연은 종교가 되고 신화가 되었다.

그러나 도시는 분명 자연의 혜택보다는 문화와 문명의 혜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연과 문화는 상대적 개념으로 성립되는데, 여기에서 자연은 나무와 흙, 맑은 물 같은 구체적인 대상보다는 말 그대로 스스로自, 그러한 것然, 다시 말해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스스로 존재하는 대상의 통칭으로 보아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문화는 인간의 지력으로 창조한 여러 종류의 제도와 사회적 공간에 관한 광범위한 개념이다. 따라서 도시는 문화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도시는 자연보다 열악하고 타도해야 할 악이 아니라, 자연과는 다르지만 나름의 생태계적 질서와 미덕을 지닌 인간 최고의 발명품으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방'은 아무리 모여도 도시가 되지 않는다





우리말에서 '집'은 'House'와 ‘Home’을 모두 포함하는 중의적이며 복합적인 기호이고 상징이다. 단순한 건물로서의 의미를 넘어 인간 정주의 기본 단위이며 그 안에서의 기초적인 공동체가 생성되는 공간적 장치인 것이다. 전원에서의 집은 'House’로서의 주택뿐 아니라 'Home'으로서의 가정과도 의미가 맞아떨어지지만, 도시에서의 집은 그 의미가 최소화되는 경향이 있다. 즉, 전통적으로 집 안에서 이루어지던 행위의 대부분이 도시에서는 일종의 공유 공간으로 확장되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방'이다.

집 안의 부엌과 식탁에서 이루어지던 식사를 밖에서 하게 되는 외식 문화나 세탁을 공동으로 하는 빨래방, 노인들이 모여서 여가를 보내는 경로당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프랑스의 카페, 영국의 펍 같은 공간적 장치 또한 이러한 도시적 특성에서 유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유 공간 대부분이 노래방, 찜질방처럼 '방'이라는 폐쇄적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은 도시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방'문화는 기존 관계를 심화시킬 수는 있어도, 새로운 도시적 관계를 확장하기에는 부적합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안쪽 방으로 주세요: 서울은 방의 도시다. 방의 종류도 많고 그 기능도 다양하며 지대하다. 노래방에서 시작해서 PC방, 비디오방, 보드방에서 차마 글로 옮기기 민망한 방들까지 가득 차 있다. 비디오방이 DVD방으로 재빨리 전환되는 과정을 보면, 서울의 방은 아무리 새로운 기술이 생겨도 언제나 재빨리 수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는 유연하며 탄력적인 공간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는 동시에, 어느 지역에서나 가능한 일이 벌어지는 일종의 초공간이기도 하다.

2004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한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의 주제는 '방'이었다. 영어의 'Room’과는 의미와 차원을 달리해서 '방'이라는 고유명사를 새롭게 창조한 것이다. 비엔날레 참가 작가인 김광수 교수는 찜질방을 이렇게 묘사한다. "각자의 집 안방을 한 곳에 죄다 풀어놓은 형국이다. 사적인 영역은 신발장과 라커룸에 국한될 뿐, 그 밖의 모든 사생활이 노출되어 다른 사생활과 뒤섞여 있는 기이한 광경인 것이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