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
이영미 지음 | 두리미디어
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
이영미 지음
두리미디어 / 2011년 5월 / 272쪽 / 11,500원
1부. 트로트, 식민지 근대의 비유와 사유방식트로트에 대한 진실과 오해
40~50대는 모태 트로트 팬?: 지금의 20대 젊은이들 생각으로는 40~50대들이 태어날 때부터 트로트 팬인 줄 압니다. <개그콘서트>가 만들어낸 유행어로 말하자면 '모태 트로트 팬'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40~50대 독자 분들 이런 말을 들으면 좀 웃기죠?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가장 격렬하게 반反트로트의 태도를 지닌 세대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젊은이들도 노는 자리에서 망가지겠다고 마음먹으면 <남행열차>나 <어머나>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40~50대들이 어렸을 때에는 달랐어요. 특히 50대들은 더 심했습니다. 소풍가서 장기자랑을 할 때도 트로트를 잘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로 트로트를 경멸하고 싫어했던 거죠.
도대체 이렇게 트로트를 경멸하고 싫어했던 사람들이 왜 나이가 들면서 모두 트로트 취향이 되어버렸나 하는 궁금증이 생기시죠? 40~50대 스스로도 참 이상할 겁니다. 어느 나이부터 트로트가 귀에 들어오고 덜 혐오스럽더니, 그로부터 세월이 더 지나가니까 가슴을 울리는 감동으로까지 다가오는 노래가 생기는 체험은, 유난스럽게 세련을 떨고 살아온 사람들도 경험했을 겁니다. 나이가 드니 수준이 낮아져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참 놀라운 현상이다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여기에서 말하는 트로트 세대란 40~50대 세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청년기를 1930년대부터 1950년대에 보낸 세대들, 즉 지금의 70대 후반과 80대들을 의미합니다.
트로트의 일본풍, 그것이 문제였나?: '트로트는 일본에서 들어온 양식이다'의 답은, '맞다'입니다. 그러나 대중가요 양식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과연 내가 트로트를 싫어하는 것이 왜색이기 때문일까? 혹시 트로트에 대한 혐오감을 왜색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민족적인 이유로 트로트를 싫어하는 것이라면 양색洋色임이 분명한 팝과 록에 대해서도 그렇게 싫어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나 팝이나 록을 닮은 노래들은 트로트처럼 싫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멋지다고 느꼈지요. 이건 분명히 모순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트로트가 싫은 것은 일본풍이기 때문은 아니었는데 '왜색'이라는 논리적 합리화를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솔직하게 제 자신을 들여다봤더니 사실 제가 트로트를 싫어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트로트에서 풍기는 늙고 학력이 낮은 하층민의 느낌이 싫었던 거란 사실을 깨달았지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팝송이나 포크는 명문대 다니는 우리 언니의 취향이었던 것에 비해 트로트는 초등학교도 못 나온 식모 언니의 취향이었습니다. 그다지 고상해보이지 않는 리어카 짐꾼이나 동네 구멍가게 아주머니들이나 좋아하는 노래라고 생각한 겁니다. 입으로는 "인간은 모두 평등해.", "학력과 계층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것은 나쁜 일이야."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나이 들고 학력 낮고 가난한 트로트 취향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부끄러워졌습니다.
왜 나이가 들면 트로트가 좋아지는가
원더풀 청춘!: 포크와 록을 즐기며 트로트를 촌스럽다고 여기던 지금의 중년들이, 왜 나이가 들면서 트로트를 좋아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답에 앞서 한 가지만 더 이야기를 해봅시다. 도대체 언제부터 트로트는 나이 든 사람들 혹은 촌스러운 사람들의 노래가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이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습니다. 식민지 시대와 전쟁기까지 신파적 트로트가 당대의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의 질감이며, 자학적이고 패배주의적 눈물을 흘리는 것에 남녀 구분이 없었습니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만은'이 당대 최고의 가수인 남인수의 노래였습니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는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1960년에 우리는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경험을 합니다. 이때부터 슬픔이 절제되기 시작합니다. '눈물도 한숨도 나 홀로 씹어 삼키며 / 밤거리의 뒷골목을 헤매고 다녀도 / …… /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마라'라고 하는 1964년, 최희준의 <맨발의 청춘>을 보면, 뒷골목 '거리의 자식'임이 분명한 주인공은 당당합니다. 게다가 눈물은 겉으로 흘리지 않고 씹어 삼킵니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만은'에 비하면 얼마나 당당해졌습니까?
나이 들고 촌스러워진 트로트: 신파적 트로트는 세상에 자신감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즐기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미국풍의 스탠더드 팝은 그리 대중적이지 않았습니다. 대도시의 젊은 고학력자나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스탠더드 팝을 좋아했지만, 그것이 완전히 대중화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식민지 시대에 세련된 음악의 자리를 차지하고, 신민요가 그것에 비해 향토적인(다시 말해서 촌스러운) 음악으로 취급되었던 것에 비해, 1960년대에는 세련된 새로운 음악의 자리를 트로트가 차지했습니다. 그 후로 스스로가 세련되었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트로트를 점점 낙후한 음악으로, 대도시의 젊은이들은 나이 든 세대와 자신을 구별하기 위한 음악으로 취급하고 그 음악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 했던 청년들도: 그런데 이들이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트로트가 귓전에 맴도는 현상을 겪습니다.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하는 청승기가 호소력 있게 다가오고, '두메산골 내 고향에'의 가사를 들으면 울컥하는 경험을 합니다. 제 해석은 이렇습니다. 청년문화 세대들도 드디어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세상에 스스로 굴복하면서 사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0대와 20대까지는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살 거라고, 안 되면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했지요. 부모들처럼 바보같이 살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30이 넘어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늙은 부모의 생계까지 책임지며 살아가게 되면서,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그런 세상에 저항도 못하고 스스로 굴복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겁니다.
세상이 이렇게 자신의 의지와 계획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므로, 세상은 늘 '타향'입니다. 단지 트로트를 듣기에는 질감이 낯설기는 하지요. 혹시 그 소리가 낯설어서 트로트를 좋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영애가 리메이크한 <타향살이> 무반주 버전을 들어보세요. 한영애의 <타향살이> 리메이크는 두 버전이 있습니다. 하나는 곡마단 음악처럼 다소 즐겁게 편곡했고, 다른 한 곡은 원래의 내용대로 아주 청승스럽게 불렀습니다. 무반주곡은 여름밤의 개구리 소리가 한영애의 노래를 받쳐줍니다. 경기도 장흥의 논바닥에서 녹음한 그 노래에서 한영애는 이 시대 중년들의 허허롭고 외로운 마음을 참으로 처량하게 재현함으로써 자신의 부모 세대를 마음으로 껴안고 있습니다.
2부. 포크, 근대의 완성과 반성청년문화 세대의 포크에 대한 이해와 오해
포크가 가장 건강하고 수준 높은 노래라는 선입견: 포크는 저 같은 세대의 사랑을 받아 성장한 음악입니다. 그런데 포크를 즐기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와 선입견이 있습니다. 가히 병적이라 할 만한 수준입니다. 포크 중에서도 특히 1970년대 초중반의 포크, 최근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세시봉 시대의 초기 포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증상이 특히 유난합니다. 가수로 보자면 송창식, 윤형주, 김민기, 양희은, 한대수, 서유석, 이연실, 양병집 등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증상이 뭐냐 하면, 포크가 다른 대중가요에 비해 특별히 건강하고 수준 높은 노래라고 굳건히 믿고 있다는 거지요. 트로트는 포크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음악이고, 나중에 나온 댄스음악은 유치한 음악입니다. 심지어 록까지도 건강하지 못한 타락한 음악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포크 신화는 어떻게 완성되었나: 중년 세대가 포크를 그토록 의미 있는 노래라고 여기게 된 것은 터무니없는 선입견만이 아닙니다. 포크는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최초로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라는 세대의 대립구도를 내세운 청년문화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노래의 질을 떠나 이 대립구도를 두드러지게 내세운 문화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요. 작품 하나하나를 보면 그다지 특별하고 뛰어날 것이 없었는데도, 당시에는 매우 중요한 문화적 의미로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작품자체가 의미심장하다기보다 문화적 맥락이 작품의 의미를 구성하고 창출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말하자면 청년문화세대는 실제 포크의 실상과 무관하게 머릿속으로 기성세대들의 것과 전혀 다른 대중가요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970년대 포크와 록의 가장 큰 차이, 악기와 학벌: 우리나라 초기 포크가 기성의 다른 대중음악에 비해, 심지어 당시 록에 비해서도 독특한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포크가 일반 대중가요와 달리 뭔가 순수하고 덜 타락해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 즉 덜 상투적이고 창의적이며 뭔가 '있어 보이는'(이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이유가 분명 있다는 거죠. 이것은 아마추어리즘과 엘리트주의가 창의성이라는 좋은 결과로 귀결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순진하기도 하면서 잘났다는 겁니다. 잘났고 자신만만하기에 돈이나 상업성에 물들지 않고 순진할 수 있겠지요. 이 기본적인 힘은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이들의 학벌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잘난 고학력자들의 여유와 자유로움: '잘난 인간들'. 이 말이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잘난 인간들의 감수성과 취향이 항상 우월한 것은 아닙니다. 취향이란 상대적인 것이니, 우월이니 열등이니 말하는 것이 우스운 것이지요. 그런데 꼭 그 사람들은 자기네 것을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동류로 보이지 않는 사람은 은근히 무시해서 매우 불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남다르고 싶은 욕구, 차별 짓기의 욕구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정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묘한 돌파력을 갖고 있습니다. 칭찬하기 위해서만, 혹은 비판하기 위해서만 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둡니다. 저는, 한국 포크의 태반이 바로 이 잘난 인간들의 태도가 그 시대와 조우하여 만들어낸 특유의 세계 인식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포크 음악이 그저 통기타 팝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구석이 있다는 겁니다.
논리적이고 섬세한 근대적 지식인의 체취, 김민기
오래된 신화, 김민기: 김민기에 대해 제가 무어라 덧붙일 말이 있을까요? 이미 김민기는 신화가 된 지 오래고, 수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침이슬>이 나온 그때부터 대중음악 평론가 최경식은 이 작품이 한국 대중가요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수작이라고 평했지요. 『김민기』라는 책을 편집한 김창남은 '미국 포크송에서 발견한 긍정적 요소를 한국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게끔 소화시킬 수 있는 건강한 의식의 소유자', '대학가 노래운동의 정신적 지주', '지식인적 한의 정서에서 민중적 한의 정서로 접근'등으로 평가했습니다.
이해는커녕 오해도 힘든 사람: 1970년대 포크의 중심인물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피해갈 수 없는 사람이 바로 김민기입니다. 세시봉 관련 프로그램에서 멤버들은 항상 김민기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민기는 방송은 물론 콘서트에도 나타나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1980년대 말까지 일간지 신문사 중에 그의 변변한 얼굴 사진 한 장 제대로 갖고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조영남은 어떤 글에서 김민기에 대해 이해는커녕 오해하기도 힘든 사람이라고 썼습니다. 조영남의 말재주가 빛나는 표현이지요. 아무튼 그는 한국 대중가요사를 통틀어 매우 별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대중가요를 한다면서 여태껏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작품을 한 편도 짓지 않았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서도 그렇게 유명해졌다는 것도 믿기 힘든 부분입니다.
일관성과 논리성: 김민기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내용의 독특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작품 하나하나가 지닌 높은 완성도 때문이기도 합니다. 남들이 흔히 짓는 사랑 노래도 아니니 가사를 쓰기가 쉽지 않을 텐데, 김민기의 노랫말은 의미와 이미지 전개나 구조가 깔끔하게 떨어집니다. 흔히 노래가 괜찮다 싶은 것도 가사만 떼어 읽어보면 횡설수설이다 싶은 것이 많지요. 오로지 음악이 붙었을 때 괜찮은 노래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김민기의 노래는 음악을 떼고 읽어도 의미의 앞뒤가 꼭 맞고 전개가 매끄럽습니다. <아침이슬>의 가사에서 '긴 밤'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까지의 시간적 전개에, '작은 동산'에서 시작하여 해가 뜨면서 시야를 따라 광야까지 이르는 공간적 이미지의 전개가 매끄럽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시처럼 분석하면서 읽어도 될 정도로 깔끔합니다.
감정을 통제하며 모든 것에 의미를: 김민기 작품의 주인공은 적게 움직이고 많이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걸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듭니다. 노래가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해소시켜주지 않고 계속 논리적으로 생각하게 하니까요. 시회 비판적인 노래라고 다 이런 것은 아닙니다. 정태춘이나 안치환의 노래는 감정을 절제하고 의미를 논리적으로 짜 맞추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듣고 부르기가 편합니다. 그런데 김민기의 노래를 불러보면 선율이 특별히 어려운 것도 아닌데 감정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근원적 불편함이 그 작가의 질감이라고 생각됩니다. 김민기는 평론가나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힘들고 불편한 사람입니다. 분석하고 글 쓰는 사람도, 그 작가의 감각과 감수성, 그리고 강한 이성적 통제를 모두 감당해야 하니까요.
너무도 다른 윤형주와 송창식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가수네: 윤형주와 송창식으로 이루어진 남성 듀엣 트윈폴리오를 설명한다는 것이 새삼스럽네요. 세시봉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말하는 사람은 조영남이었지만, 실제 사람들의 궁금증은 그 시대의 음악을 대표하는 트윈폴리오의 멤버인 두 사람에게 모여 있었습니다. 지금은 1968년, 그들의 시작이 한국 포크송의 시작이라고 역사적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트윈폴리오는 활동기간이 채 2년도 되지 못한 단명한 팀이었습니다. 여고생과 여대생들에게 인기를 모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인기는 찻잔 안의 폭풍 같은 것이었습니다. 12시 통행금지가 된 시각에 검문하던 어느 경찰이 "가수가 되려면 남진, 나훈아 정도는 해야지."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이로부터 5년 후에 남진, 나훈아의 전성시대는 끝나고 그들이 펼쳐놓은 포크가 한국 대중가요계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순수한 목소리의 엘리트, 윤형주: 윤형주는 대중적 관심을 받기에 충분한 여러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경기고등학교 출신에 연세대 의대 학생이라는 것부터 그렇습니다. 조영남의 인기가 서울대 성악과 학생이라는 프리미엄이 크게 작용한 것처럼, 윤형주 역시 그랬을 겁니다. 얼굴에서 흐르는 귀티에서 알 수 있듯이 워낙 집안이 좋습니다. 아버지는 경희대 교수이고 어머니는 성악 전공자였답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시인 윤동주는 그의 육촌형이지요. 뿌리 깊은 기독교 집안에 성악 전공자의 유전자까지, 하여튼 그는 일찌감치 서양 음악을 접하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할 수밖에 없는 인자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트윈폴리오, 깨진 것이 다행이다: 윤형주가 티 없이 맑고 순수하며 명랑하고 감각적 세련미까지 갖춘 노래와 목소리로 청년문화 맹아기에 빠르게 활짝 핀 꽃이었다면, 송창식은 은근하게 자신의 색깔을 만들고 발전시킨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윤형주가 학교 공부 때문에 한창 잘나가던 트윈폴리오를 그만둘 때 그로서는 섭섭했겠지만,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보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습니다. 포크 초기의 트윈폴리오는 윤형주의 색깔이 호소력을 발휘하는 팀이었고, 송창식은 자신의 색깔을 찾지 못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트윈폴리오 시절에는 묻혀 있던 송창식의 깊은 우수와 기발한 발상, 스케일이 크면서도 독창적인 음악과 가창력이 창작곡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윤형주와 김세환이 갖지 못한 깊은 우수가 있었습니다. 인생의 밑바닥을 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의 느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