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도서관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 세종서적
밤의 도서관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세종서적 / 2011년 5월 / 384쪽 / 18,000원
신화낮 동안에 도서관은 질서의 세계이다. 나는 분명한 목적하에 문자로 쓰인 글들을 읽어가며 이름이나 목소리를 찾고, 주제에 따라 내 관심에 맞는 책을 찾아낸다. 도서관의 구조는 난해하지 않다. 직선들로 이루어진 미로이지만, 방향을 잃게 하기 위한 미로가 아니라 원하는 걸 쉽게 찾기 위한 미로이다. 누가 봐도 논리적인 분류법을 따라 분할된 공간이며, 알파벳과 숫자를 이용해 기억하기 쉽게 맞추어진 분류 체계와 미리 결정된 목록에 따라 배치된 공간이다.
그러나 밤이 되면 분위기는 바뀐다. 소리는 줄어들고, 생각의 아우성은 더 높아간다. 발터 베냐민이 헤겔을 인용해서 말했듯이 "어둑한 밤이 되어야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날개를 편다."지 않은가. 시간이 깨어 있는 상태와 잠든 상태의 중간쯤에 가까워지면, 나는 편안하게 세상을 다시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도둑처럼 움직이게 되고, 내 움직임은 비밀스럽게 느껴진다. 어느덧 나는 유령 같은 존재로 변한다. 책들이 바야흐로 진정한 존재를 드러내고, 독자인 나는 희미하게 보이는 문자들의 신비로운 의식을 통해 어떤 책이나 어떤 페이지에 유혹을 받아 끌려들어간다.
정리도서관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실체이다. 도서관은 얼핏 보면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번식한다. 구매와 기증 및 절도와 차용을 통해서, 또 연상을 통해 빈 곳을 넌지시 알리고 이런저런 보충을 요구함으로써 번식한다. 알렉산드리아, 바그다드, 로마, 그 어느 곳에서든 단어들의 모임인 책이 늘어나면서 분류 체계와 이동식 칸막이가 필요하게 되었다. 분류 체계 덕분에 도서관이란 공간이 확대될 수 있었고, 이동식 칸막이 덕분에 도서관은 알파벳의 한계에 구속되지 않고, 하나의 분류표로 수용할 수 있는 책의 양에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멈추지 않는 성장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문자나 주제명 표목보다 숫자가 더 적합한 듯하다. 이미 17세기에 새뮤얼 피프스는 이런 끝없는 확장을 무리 없이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수의 세계가 알파벳보다 효율적임을 깨닫고, 나름대로 고안해낸 '읽을 책을 쉽게 찾는 방법'으로 자신의 책들을 분류했다. 내가 학교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숫자를 이용한 분류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하는 분류법인 듀이의 십진분류법이다. 줄줄이 주차된 자동차의 번호판을 책등에 옮겨놓은 듯한 분류 방식이다.
듀이는 당시 뉴욕 주립 도서관에 자주 드나들었다. 책들이 알파벳순으로 정리되기는 했지만 '주제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은' 횡포한 분류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더 나은 분류법을 고안해내겠다고 마음먹었다. 옛 학자들의 주제별 분류에 따라 듀이는 '인쇄된 인간의 모든 지식'이란 방대한 분야를 10개의 주제 집단으로 나누고, 각 집단에 100단위 숫자를 붙인 후에 다시 10단위로 하위분류했다. 이런 식으로 내려가면 이론적으로 '무한히' 길어질 수 있다. 예컨대 종교는 200대로 분류되고, 그리스도교 교회는 260대, 그리스도교 하느님은 264로 분류된다.
듀이의 십진분류법의 장점은 원칙적으로 각 집단이 무한히 하위분류될 수 있을 수 있으며, 각각의 속성과 아바타는 다시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질 수 있다. 교회에서 젊은 듀이는 그 엄청난 일을 간단하면서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나중에 당시를 회상하며 "내 마음은 십진법이나 도서관에 관련된 모든 것에 열려 있었다."라고 고백했다.
공간19세기 말 어느 따뜻한 오후, 중년의 두 사무원이 파리 부르바르 부르동 역의 벤치에서 만나 곧바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부바르와 페퀴셰(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동명 소설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의 이름)는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보편적 지식의 탐구'라는 공통된 목표를 찾아냈다. 그들은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인간이 뭔가를 찾아내려고 했던 모든 분야에 대한 글을 빠짐없이 읽고, 거기에서 가장 탁월한 사상과 업적만을 골라내려고 애썼다. 물론, 끝없는 작업이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플로베르가 사망하고 1년 정도가 지난 1880년에 미완성인 채로 출간되었지만, 두 대담한 책벌레들은 농업, 문학, 축산, 의학, 고고학, 정치학 등에 관련된 많은 학술 도서관을 섭렵하고 깊이 실망한 뒤였다. 플로베르의 두 주인공이 결국 깨달은 것은 우리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좀처럼 믿지 않던 사실, 즉 지식의 축적이 지식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부바르와 페퀴셰의 원대한 꿈은 이제 거의 현실이 된 듯하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모니터 뒤에서 깜빡거리는 듯하기 때문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도 모든 책을 담아낸 완벽하고 보편적인 백과사전을 편찬하려는 부바르, 페퀴셰와 유사한 인물을 창조해냈다. 결국 그 주인공도 프랑스 선배들처럼 실패했지만, 이는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다. 원대한 계획을 포기한 날 저녁, 그는 1인승 마차를 빌려 도시를 한 바퀴 돌았다. 벽돌담들과 주택들, 보통 사람들, 강과 시장 등을 둘러보면서 그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작품이란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짓이란 걸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낸 백과사전, 보편적인 도서관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세상 자체가 바로 그런 백과사전인 동시에 그런 도서관이었다.
그림자도서관은 어느 정도까지 그곳을 드나드는 독서가들의 그림자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현재 이루지 못한 것, 또 앞으로도 이룰 수 없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엄격한 규칙이 적용된 공간에서도 책의 선택은 생각보다 힘들어, 호기심 많은 독서가라면 그곳에서 위험한 책까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도서관이 모든 것을 포괄하지만 중립적인 곳이라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우리의 착각일 수 있다. 미국 시인 아치볼드 매치리시는 의회 도서관 관장으로 재직할 때 "사서들은 자신의 뜻과 달리 중립적일 수 없다."고 말했다. 모든 도서관이 어떤 책은 받아들이면서도 어떤 책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든 도서관은 운명적으로 어떠한 선택의 결과이며, 수용 범위에서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선택이 있을 때마다 배척이 뒤따르며, 따라서 완벽한 선택은 있을 수 없다. 독서 행위와 검열 행위는 서로 끝없는 평행선을 달린다.
이런 암묵적인 검열은 기원전 2000년대 초, 메소포타미아 도서관들에서 시작되었다. 이 도서관들은 특정한 집단의 일상적인 업무와 단편적인 거래를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지만, 공문서 보관소와 달리 일반적인 성격을 띤 자료들도 수집했다. 중요한 정치적 사건을 돌판이나, 금속판에 기록한 왕의 비문(17세기 유럽에서 왕의 명령 등을 알리던 공지문이나 요즘에 시사 문제를 다룬 베스트셀러와 비슷한 것)이 대표적인 예였다. 이런 도서관들은 십중팔구 개인의 소유였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기록된 문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권력자들은 온갖 기발한 이유로 책들을 비난하고 추방한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칠레의 모든 도서관에서 『돈키호테』를 없애버린 사건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가 그 소설에서 시민불복종을 옹호하는 구절을 읽었다는 이유였다. 또 얼마 전에 일본 문화부 장관이 『피노키오』를 비난한 이유는 더 기막히다. 고양이가 맹인 흉내를 내고 여우가 절름발이 흉내를 내면서 장애인을 우롱했다는 이유였다. 2003년 3월, 당시 추기경이던 요제프 라칭거(2005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되었다)는 "해리 포터가 기독교 정신을 심하게 왜곡하고 있어, 어린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오즈의 마법사』(이단적 믿음의 온상)부터 『호밀밭의 파수꾼』(청소년기의 위험한 역할 모델)까지 온갖 책들이 기기묘묘한 이유에서 금서라는 낙인이 찍혔다.
우리 시대에 정부의 검열은 과거만큼 극단적이지 않지만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 1996년 3월, 프랑스 문화부 장관 필립 두스트 블라지는 오랑주 시의 시장 - 장 마리 르 펭 극우정당 당원 - 의 문화 정책에 반대하며, 그 도시의 시립 도서관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3개월 후 언론에 발표된 보도에 따르면, 오랑주 시립 도서관 사서들이 시장의 지시에 몇몇 서적과 잡지를 서가에서 치운 것으로 밝혀졌다. 르 펭의 추종자들이 달갑게 생각지 않는 출판물, 그들의 정당에 비판적인 작가들의 책, 진정한 프랑스 문화의 유산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외국 문학(예컨대 북아프리카 민담) 등이었다.
검열자를 비롯해 누구나 알고 있듯이, 독서가는 자신이 읽는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2001년 9월 11일에 있었던 사태의 여파로, 미국 의회는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이나 일반 서점에서 판매한 책에 대한 기록 열람권을 연방 수사기관에 허용하는 조문이 담긴 '애국법'을 통과시켰다. "전통적인 수색영장과 달리, 이 새로운 법에 따르면 수사관들은 범죄의 증거를 확보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그들이 점찍은 사람이 용의자라는 증거를 법정에 제출할 의무도 없다. 도서관 직원들은 용의자에게 조사받고 있다는 사실을 귀뜸조차 해줄 수 없다." 애국법 때문에 미국의 많은 도서관은 당국의 압력에 머리를 조아리며 구입하는 책을 선정하는 데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형상현재까지 전해지는 최초의 중세 도서관 설계도는 정사각형 구조를 띠고 있다. 스위스 장크트 갈렌 수도관의 설계도는 820년경에 라이헤나우 수도원에서 2층 구조로 그려졌다. 1층에 있는 필사실의 양면에는 7개의 창문 아래로 같은 수의 작은 탁자가 놓이고, 가운데에는 커다란 책상이 배치되는 구조이다. 위층에는 책을 보관하는 공간이 있고, 그곳에서부터 이어진 복도 끝에는 전례용 서적을 보관하는 널찍한 성가대석이 있다. 복도와 성가대석을 제외하고 생각하면, 전체적인 구조가 완벽한 정육면체이다. 아래층에서 제작된 책은 위층에 보관되고, 다시 필경사들에게 옮겨 쓸 거리를 제공하면서 문헌의 생산을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이 설계도대로 도서관이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건축가는 정사각형의 조화로운 형태가 책을 제작하고 보존하며 참조하기에 이상적인 공간이라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직선 형태의 도서관은 부문, 즉 주제로의 분할을 뜻하기 때문에, 구획화되고 계층화된 우주라는 중세의 관념과 일치한다. 원형의 도서관은 독서가에게 마지막 페이지가 곧 첫 페이지라는 생각을 불어넣기에 알맞은 구조이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많은 독서가에게 도서관은 옛 성당의 바닥처럼 두 형태의 혼합, 즉 원형과 직사각형, 타원형과 정사각형이 혼합된 모습일 것이다. 기발한 것에서부터 지극히 실용적인 것까지, 애서가들이 제안한 형태는 독서가들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으면서도 그들이 책을 읽는 공간에 최적의 효율성을 부여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대해 탐구해온 증거라 할 수 있다.
일터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훨씬 전부터, 작가의 혼령과 서재의 혼령이 뒤섞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1986년 제네바에서 죽음을 맞았지만, 그전까지 오랫동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책들과 함께 살았다. 그러나 50대 초반에 시력을 잃으면서 책을 읽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의 작은 아파트는 산 마르틴 광장 모퉁이 부근에 위치한 평범한 건물 6층에 있었다. 보르헤스가 우주를 책이라 칭하고 낙원이 '도서관의 형태'를 띨 것이라 말했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그리며, 손님들은 책들로 가득한 공간, 책들로 넘치는 서가, 발 디딜 틈 없이 현관부터 막고 있을 인쇄물 더미, 요컨대 잉크와 종이의 정글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책이 반듯하게 정돈된 아담한 아파트를 보았을 것이다.
보르헤스가 50대 중반일 때 당시 새파란 젊은 작가이던 마리오 바르가스요사가 찾아와서는 보르헤스에게 책으로 넘치는 화려한 집에서 살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런 지적에 보르헤스는 화를 내며 그 철없는 페루 작가에게 "'리마'에서는 작가들이 그렇게 살지 모르지만, 여기 부에노스아이레스 작가들은 요란스럽게 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네."라고 따끔하게 말했다. 그러나 작은 책장들은 보르헤스에게 자랑거리였다. 언젠가 그는 내게 "자네에게 비밀 하나를 말해주지. 나는 맹인이 아닌 척하며 눈이 보이는 사람처럼 책을 탐내네. 새로 출간된 백과사전도 당연히 탐나지. 백과사전의 지도에 그려진 강을 따라 내려가, 이런저런 항목에서 재밌는 그을 찾아내는 상상도 해본다네."라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국립 도서관에 갔지만 너무 수줍어 사서에게 책을 부탁하지 못하고, 개가식 서고에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중 하나를 집어 들고 아무 항목이나 펼쳐 눈이 빠져라 읽던 때를 즐겨 이야기했다. De부터 DR까지 다룬 백과사전을 집어, 고대 켈트 족의 신앙이던 드루이드교, 시리아와 레바논의 이슬람교 광신자인 드루즈파, 영국 시인 존 드라이든에 대해 알게 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그는 알파벳 순서대로 정리된 백과사전의 행운을 믿는 습관을 결코 버리지 않아 가르찬티 백과사전, 브록하우스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에스파사 칼페 백과사전을 방문객에게 소리 내어 읽도록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특별히 흥미로운 정보를 듣게 되면, 책 읽어주는 사람에게 그 부분을 쪽수와 함께 책의 뒷면에 기록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서재는 그 주인, 즉 그곳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던 독서가에게 '에우테미아(euthymia)'를 준다. 세네카는 에우테미아가가 '영혼의 행복'을 뜻하는 그리스어라고 설명하며, '트란킬리타스(tranquillitas, 평온)란 단어로 번역했다. 모든 서재는 궁극적으로 에우테미아를 갈망한다. 에우테미아는 방해받지 않는 기억이며, 글을 읽는 시간의 편안함이다. 요컨대 공동체원과 함께 하는 날에도 갖는 혼자만의 시간으로, 우리가 책을 읽는 사적인 공간에서 추구하는 것이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말한다. "사탄도 찾아내지 못하고, 사탄의 감시원들도 찾아내지 못하는 순간이 매일 있다. 그러나 부지런한 사람들은 그 순간을 찾아내 배가하리라. 그 순간을 찾아내고 적절히 사용한다면 하루의 그 순간은 매일 새로워지리라."
정신우리가 소장한 책은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증인이다. 우리가 소장한 책은 생명의 책에서 우리에 대해 할애된 부분이다. 따라서 우리 자신과도 같은 책에 의해서 우리는 심판받는다. 도서관이 그 주인의 면면을 반영한다는 사실은 서가에 꽂힌 책들의 제목만이 아니라, 그런 책들에서 연상되는 관계망에서도 확인된다. 우리는 어떤 경험을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경험을 하고, 어떤 기억을 근거로 다른 것을 기억한다. 또 우리는 어떤 책에 영향을 받아 우리만의 책을 장만한다. 달리 말하면, 다른 책들에 영향을 받아 우리가 책을 구입하는 방향이 달라진다. 따라서 문학 사전을 제외하면 책들을 구입한 역사까지 어렴풋이 그려진다.
또한 책들은 읽혀지는 순서에 따라 변한다. 『킴(Kim)』을 읽은 후에 읽는 『돈키호테』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은 후에 읽는 『돈키호테』와 분명히 다르다. 여행과 우정과 모험에 대한 생각이 먼저 읽은 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만화경 같은 책들은 끊임없이 변해서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롭고 다른 느낌을 안겨준다. 모든 도서관이 우리 마음처럼 자신의 모습을 비추며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고정된 도서관은 궁극적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알찬 책들로 가득한 물리적인 도서관에 적용되는 엄격함이 정신의 도서관까지 옭아매지는 않는다.
섬구약성경 전도서에서 자주 인용되는 "책을 많이 쓰는 것도 끝없는 일이고"라는 구절은 두 방향에서 해석된다. 하나는 뒤에 이어지는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몸을 피곤하게 한다."는 구절을 같은 말의 되풀이로 보아, 도서관의 끝에 이르려는 불가능한 일 앞에서는 위축되기 마련이라고 해석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환희, 즉 하느님의 자비심에 대한 감사의 기도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이런 해석에서는 연결어미 '이고(and)'를 '이지만(but)'으로 바꾸어 "책을 많이 쓰는 것도 끝없는 일이지만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몸을 피곤하게 한다."라고 전체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