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의 시련
미르체아 엘리아데 지음 | 북코리아
미로의 시련
미르체아 엘리아데 지음
북코리아 / 2011년 3월 / 414쪽 / 20,000원
1장. 기원과 그 의미이름과 기원
R(클로드-앙리 로케): 미르체아 엘리아데, 아주 멋진 이름입니다.
E(엘리아데): 그런가요? 엘리아데라는 성은 본래 그리스어에서 유래하는데 아마도 거슬러 올라가보면 헬리오스까지 갈 것입니다. 처음에는 헬리아데라고 썼는데, 태양을 뜻하는 헬리오스와 그리스인이라는 헬라데와 음이 비슷해요. 사실 아버지의 진짜 성은 예레미야였는데, 어린 시절 이름으로 놀림을 받았던 아버지는 성인이 되자마자 19세기의 유명한 작가의 성을 따서 엘리아데로 바꾸게 된 것이지요. 예레미야보다 엘리아데라는 성을 물려준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나는 어떻게 철학자의 돌을 찾았는가?
R: 꿈, 연금술, 비법을 전수하는 상상 속 인물. 초기 저술에서부터 선생님 일생에 걸친 형상과 테마들이 나타나는데요. 이건 우리가 어릴 때부터,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지를 막연히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까?E: 잘 모르겠네요. 나에게 그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내가 열두세 살 때, 과학적이고 진지한 방식으로 물질을 탐구했고 동시에 문학적 상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R: 과학은 밝은 면, 시는 어두운 면입니까?
E: 예. 문학적인 상상은 신화적인 상상이고 형이상학의 거대구조를 발견하는 것이에요. 밤과 낮, 둘이지요. 상반의 합일, 위대한 전체, 음과 양.
R: 선생님은 한편으로 학자이시고 다른 한편으로 작가이신데요. 그 양면이 신화라는 기반 위에서 서로 만나는군요 .E: 맞습니다. 신화 이론들과 신화의 구조에 대한 관심도 역시 밤의 삶, 그 밤의 창조성의 메시지를 풀어 보려는 바람이지요.
다락방
R: 대학에서는 같은 세대의 젊은이들과 더불어 여러 관심사에 열정적이셨는데요. 개인적으로 특별히 끌렸던 건 무엇이었습니까?E: 무엇보다 오리엔탈리즘이었어요. 그리고 종교학과 신화도 물론이지요. 또한 연금술의 역사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건 다른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던 분야입니다. 난 유일하게도 동양과 종교학, 이 양쪽에 열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고대의 동양뿐만 아니라, 현대의 동양, 간디나 타고르, 라마크리슈나에게 깊은 관심이 있었어요. 종교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듯이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를 읽었고, 그 후에 막스 뮐러의 책도 읽었습니다. 사실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건 프레이저의 전집을 읽기 위해서였어요.
R: 종교학도가 되게 했던 개인적인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은데요.
E: 우리 집안은 '종교적'이긴 했지만, 아시다시피 동방교회 전통에서의 종교란 습득된 관습과도 같아서 거의 가르치지를 않습니다. 예컨대 교인들은 교리문답반에 가지 않아요. 중요하게 여기는 건 성찬식, 의례적인 생활, 예배 자체, 회중 찬송, 성례전이에요. 누구나 하듯이 거기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결코 그런 것들이 내 생활의 본질적인 건 아니었습니다. 나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어요. 그때 나는 철학도로서 위대한 철학자들을 공부해갈수록, 어떤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대의 종교적 체험 단계를 알지 못하고서는 인간의 운명과 세계 안에서의 인간의 특정한 존재 양태를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전통 안에서만 기독교의 진정한 의미와 메시지를 발견해 낸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좀 더 깊게 파보려고 한 것이에요. 먼저 구약성서,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지중해 지방, 인도까지 파내려간 것입니다.
2장. 인도의 정수산스크리트 초보 학자
R: 어떻게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기 시작하셨죠?
E: 산스크리트어 학습에 한해서는 이탈리아의 인도 학자인 안젤로 드 구베르나티스가 그의 자서전인 『기질』에서 밝힌 방법을 따랐습니다. 그건 문법책, 사전, 텍스트를 가지고 하루에 열두 시간씩 공부하는 것입니다. 실력이 빨리 향상되었다면, 그건 산스크리트어 외에 다른 건 공부하지 않겠다는 내 결심 덕분이었을 겁니다. 그 몇 달 동안 신문이나 탐정소설, 어떤 것도 집지 않았으니까요. 단 한 가지 목적, 산스크리트어에 전적으로 집중했던 게 놀라운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언제나 내가 새 언어를 배우려고 한 것은 새로운 작업 도구를 얻기 위해서였어요. 나에게 언어란 의사소통의 가능성입니다. 언어학은 바다와 같아서 어떤 종착점이 없어요. 아랍어를 배우고, 그 후에는 시암Siam어, 그 다음에는 인도네시아어, 또 폴리네시아어, 계속 끝이 없지요. 나에게는 신화나 그 문화에 연관된 의례들을 읽어 내고, 그 이해를 시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히말라야의 요기
R: 구루(Mento, 스승)를 어떻게 선택하셨습니까?
E: 당시에 잘 알려진 분은 아니었지만, 나의 구루는 스와미 쉬바나난다였습니다. 그때는 저술을 내지 않았는데, 나중에 300여 권의 책을 펴내기도 한 분이지요. 수행자가 되기 전에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유럽 의학을 배운 의사로서, 아마 랑군에서 개업도 했었죠. 어느 날 갑자기 그 모든 걸 내던졌어요. 그리고 유럽 옷을 벗어 버리고, 마드라스에서 리쉬케쉬까지 일년 가량 걸린 도보여행을 했답니다. 학문적인 의미에서 특별히 잘 교육받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히말라야에서 수년간의 경험도 갖고 있었죠. 요가 수행의 모든 것, 모든 명상 기법을 알고 있었어요. 또한 그는 의사이기도 해서 요가 수행시의 실제 문제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었죠. 호흡 조절, 명상, 정관의 실제적 측면에서 도움을 주었던 건 바로 그분이었어요.
R: 요가란 뭡니까? 신비한 길입니까, 아니면 철학적 교리 혹은 삶의 기술인가요?
E: 요가는 하나의 자세, 좌법坐法으로 부동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처럼 행동하기를 그치고, 대신에 하나의 돌이나 식물처럼 행동하는 것이에요. 호흡은 원래 리듬이 없는데, 조식調息은 엄격한 리듬으로 숨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적 삶은 끊임없는 동요의 상태에 있습니다. 그걸 치타브리티, 즉 '의식의 소용돌이'라고 정의하는데, '집중'은 그러한 소용돌이를 통제할 수 있게 해줍니다. 요가는 그런 점에서 본능에, 생명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내가 요가의 테크닉에 관심을 가졌다면, 그것은 위대한 인도학자들이 쓴 세상을 하나의 환상이라고 보는 베단타 철학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그것만으로는, 또는 거대한 의례 체계만으로는 인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는 인도가 위대한 시인들과 놀라운 예술을 낳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딘가에 참으로 중요한 제3의 길이 존재하고, 그건 요가수행과 연관됐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에요.
R: 요가 수행의 결과라는 기적이랄지, 경이로운 일들에 대한 어떤 검증을 얻으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쓰신 책 가운데, 요기들이 늙어서도 젊음을 유지한다는 언급이 있는데요. 하나의 상이한, 확장된 시간 척도에서 명상하는 것이 육체 자체에서도 굉장한 장수를 유도한다고 하셨는데요. E: 당시 이웃에 나가naga라는 나체 승려가 있었는데, 나이는 오십이 넘었지만 몸은 삼십대의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어요. 그는 하루 종일 명상밖에 하지 않고, 또 아주 조금밖에 먹지 않았어요. 난 그런 경지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어떤 의사라도 건강식 다이어트를 하고, 그러한 수도원에서 규정된 삶의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육체적 젊음을 연장할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R: 수도사가 걸치고 있던 축축하고 얼음 같던 홑이불이 밤새 몇 번이나 말랐다는 이야기는요?E: 몇몇 서구 관찰자들이 그런 보고를 했어요. 알렉산드라 데이비드 닐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티베트에서는 그걸 그투모gtumo라고 부릅니다. 몸이 굉장히 열을 내서, 말씀하신 대로 시트를 말릴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신비한 열', 혹은 '신묘한 생리학'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열에 대해서는 믿을 만한 문헌적 증거가 있습니다. 요기가 걸치고 있던 꽁꽁 언 시트가 금방 말랐다는 경험, 그건 정말 사실입니다.
인도의 세 가지 교훈
R: 인도란?
E: 인도는 바로 내 교육의 장이었어요. 거기에서 배운 결정적인 교훈이 무엇이었냐고 하면, 다음에 세 가지를 들겠습니다. 첫째는 인도 철학의 존재, 무엇보다도 인도의 영적 차원의 존재를 발견한 것입니다. 내 관심을 끌었던 건 인간과 세계, 삶이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어요. 삶도, 세계도 실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고, 생명을 조절할 수도 있지요. 게다가 탄트리즘에서는 오랜 기간 요가를 수련하면서 준비해야 하는 어떤 의례를 행할 때, 인간의 생활도 변화될 수 있다고 해요. 그건 우리의 생리적인 활동, 예를 들어 성행위 같은 것을 변화시키는 문제입니다. 그렇게 해서 난 동양학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차원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삶을 누리고 동시에 컨트롤할 수 있게 하는 어떤 정신생리적인 테크닉에 대한 지식이 인도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에요. 삶이 성례적인 체험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것, 그게 첫 번째 발견이었습니다.
두 번째 발견, 내가 배운 두 번째 교훈은 '상징의 의미'입니다. 이미지와 상징에 의해 종교적으로 감응될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이 내게 영적 가치의 모든 세계를 열어 주었던 것입니다. 내 자신에게 말했지요. "하나의 성상을 바라보면서 신자는 단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상만 인지하는 게 아님이 분명하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 신의 어머니와 여신 소피아, 신성한 지혜를 보고 있는 것이다 ." 전통 문화에서 종교적 상징의 중요성을 발견한 것, 그것이 내가 종교학자가 되는 데 얼마나 중요했는지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발견은 '신석기인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도의 뿌리가 아주 깊숙이, 아리안이나 드라비다 문화만이 아니라 아시아 문화의 심층에, 원주민 문화에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것은 농경을 기반으로, 다시 말해 농경의 발견에 수반되는 종교와 문화, 특히 생명과 죽음과 재생이 단절되지 않은 순환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신석기 문명이었습니다. 그 순환은 식물 특유의 것이긴 하지만,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동시에 영적인 삶의 모델을 구성하는 것이지요.
30여 년 전에만 해도 중국에서 포르투갈까지를 가로질러 거기에는 농경에 의해, 그러니까 신석기의 유산에 의해 영적인 통일성, 기층적인 통일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화적 통일성이 나에겐 일종의 계시였어요. 여기 유럽에서도 그 뿌리는 이제껏 우리가 가정했던 것보다도 훨씬 깊숙이, 그리스나 로마, 지중해 세계보다 더 깊이, 고대 근동의 세계보다도 더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들은 유럽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에서 중국까지, 스칸디나비아에서 스리랑카에 이르기까지 뻗쳐 있는 전 영역이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영원한 인도
R: 1961년 1월 26일자 『일기』가 생각납니다. 처음 읽었을 때 꽤 놀랐지요. "힌두교 철학과 고행에 대한 나의 관심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도는 자유, 절대적인 자율에 사로잡혀 있다. 단순하거나 피상적인 방식이 아니라, 수많은 인간의 조건들을 아주 철저히 고려하여 그것들을 객관적이고 실험적으로 연구하면서, 그 조건들을 제거하거나 초월하게 해주는 도구를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심지어 기독교보다도 더, 힌두교의 영성은 이 우주에 자유를 불어넣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생해탈生骸脫의 존재 양식은 이 우주 안에 주어진 것이 아니다. 반면에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 안에서는, 절대적 자유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인도는 이 세계에 새로운 차원, 자유로운 존재의 차원을 추가했다는 공적이 있다."E: 예, 그 말을 오늘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었습니다.
3장. 유럽정신의 힘
R: 1947년 8월 25일자 『일기』에 "사람들은 나에게 역사적 순간과 결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사회적인 문제,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제기한 사회적인 문제에 지배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기가 살아가는 역사적 순간에 대하여 자신의 작품을 통해 어떻게든 대응해야 한다. 그렇다, 나는 붓다와 소크라테스처럼 대응할 것이다. 역사적 순간을 초월하고, 다른 것들을 창조하거나, 그것들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쓰셨는데요. E: 예, 붓다와 소크라테스를 '도피하는' 자들로 보면 안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역사적 순간에서 출발하였고, 그 역사적 순간에 대응한 것입니다. 그들은 다만 다른 차원에서, 다른 언어로 했을 뿐이지요. 한쪽은 인도에서, 다른 쪽은 그리스에서 영적인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입니다.
4장. 파리R: 선생님의 학문적인 연구 전체에는 열정, 읽기와 쓰기의 열정이 흐르고 있습니다. 특히 '발자크 읽기'요. E: 예, 발자크를 즐겨 읽긴 했었는데, 파리에 있으면서 그에게 완전히 빠졌어요. 루마니아어로 발자크의 생애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의 서거 100주년 기념으로 루마니아에서 출판할 생각이었죠. 그 모험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고 후회하지는 않아요. 보시다시피 발자크는 여전히 내 서가에 있거든요.
R: 1945년 파리에선 바타유, 브르통, 베라 도말, 테야르 드 샤르댕, 그리고 프랑스의 저명한 동양학자들과 인도 학자들을 만나셨는데요. 『일기』에서는 사르트르나 카뮈, 시몬느 드 보부아르, 메를로퐁티를 전혀 언급하지 않으셨어요. E: 그들의 저작을 읽기도 했고, 또 많이 참고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원래 원고에서 세 번째, 가끔은 다섯 번째로 인용할 때는, 예를 들어, 사르트르의 유명한 강연인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 대해서 내가 말한 문장들은 넣지 않았어요. 내가 그 강연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은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고, 우리 문화적 분위기의 일부였기 때문이지요. 난 다른 구절들을 더 좋아했어요. 그리고 난 실존주의 철학자들보다는, 바타유와 에메 파트리, 아마도 브르통과, 그리고 몇몇 동양학자들, 필리오자, 폴 뮈, 르노 등과 더 친했어요.
5장. 시카고신들의 미래
R: 종교적 문제에 있어서 그 미래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21세기는 종교적일까, 아닐까?"라고 했던 말과 비슷한 생각이십니까?E: 아무것도 예언할 수는 없지만, 어떤 시원적인 계시들은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아무리 기술 문명의 시대라고 해도 바뀔 수 없는 것이 있잖아요.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원하지 않더라도 우주적 리듬에 동화되어 있어요. 빛과 어둠, 밤과 낮처럼. 가장 비종교적인 사람조차도 그 우주적 리듬 안에 존재하고, 그 자신의 고유한 존재 안에서 그걸 찾아내요. 낮 동안의 생활과 잘 동안의 꿈에서요. 그는 항상 꿈을 꾸지요. 물론 우리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구조에 의해 조건 지어지고, 종교적 체험의 표현도 항상 우리의 언어와 사회, 관심사에 의해 조건 지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여기, 정해진 리듬과 주기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우주 안에서, 인간적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확신하는 것은, 종교적 체험의 미래 형태는 우리에게 친숙한 기독교나 유대교나 이슬람과 매우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종교들의 표현은 화석화되었고, 시대에 뒤떨어졌고, 의미가 고갈되었어요. 반드시 새로운 표현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어떤 것들이냐고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가장 경이로운 것은 정신의 자유, 그 창조성입니다.
6장. 역사와 해석학해석학
R: 우리는 지각할 수 있는 세계 너머에, 신까진 아니더라도 어떤 신적인 것, 영적인 세계가 있다고 믿도록 배웠습니다. 그리고 해석학은 우리가 자신을 그 신성과 통합하도록 이끕니다. 다른 한편으로, 예를 들어, 우리는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갈 때 일련의 신앙, 신화, 의례가 새로 구축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이고 '유물론적인' 과학을 알면서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들과 연관된 신앙이 초역사적인 의미, 초월을 내포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