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사회 2018
프랑크 쉬르마허 지음 | 나무생각
고령 사회 2018
프랑크 쉬르마허 지음
나무생각 / 2011년 3월 / 304쪽 / 15,000원
1부. 고령화 사회의 대두세대의 도착 시간과 출발 시간
인구 고령화 현상은 지구촌 어느 국가에서든지 경험하고 있는 21세기의 당면 과제이다. 특히, 선진국형 인구 구조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가 인구의 고령화이다. '고령화'란 노인 인구의 상대적 증가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고령 사회高齡社會'란 노인 인구가 일정 비율로 증가한 어떤 단계에 와서 그 비율이 거의 안정된 상태가 지속되는 상태를 가리키며, '고령화 사회'란 전체 인구에 대비한 노인 인구의 비율이 계속 증가하는 상태,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 중에 있는 사회를 뜻한다.
UN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인 사회를 고령화 시대(Aging Society). 14% 이상인 사회를 고령 사회(Aged Society)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고령화된 사회는 북유럽과 일본, 북미와 오세아니아 등 그 선진 사회가 주를 이룬다. 가장 고령화된 사회는 북유럽과 일본으로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15~10%에 이르고 있다. 또한 한 나라의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이 4% 미만인 나라를 '유년인구국幼年人口國', 4~7%인 나라를 ‘성년국成年國’, 7% 이상인 나라를 ‘노년인구국老年人口國’ 이라 지칭하고 있다.
한국은 1960년에는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9%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7년 6.3%, 1999년 6.8%로 증가했으며, 1999년 말을 기점으로 총인구에 대한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구성비가 7%를 넘어선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2000년에 7.1%). 그리하여 2005년 현재 9.1%를 넘어섰고, 점차 낮아지는 출산율과 사망률을 감안하면 노인 인구의 비율은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해 2018년에는 14.3%로 고령 사회에 진입하고, 2026년에는 20.8%로 본격적인 초고령 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통계청. 2005).
평균 기대 수명은 한국의 경우에도 가파르게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60년에는 출생 당시 평균 기대 수명이 52.4세였으나, 1971년 62.3세(남자 59.0세, 여자 66.1세), 1981년에는 66.2세(남자 62.3세, 여자 70.5세)였으며, 1991년에는 남녀 평균 70세를 넘은 71.7세였고, 2005년에는 77.9세(남자 74.8세, 여자 81.5세)에 이르고 있다. 2020년의 평균 수명은 81세(남자 78.2세, 여자 84.4세)로 전망하고 있고, 2050년에는 83.3세(남자 80.7세, 여자 86.6세)로 한국도 선진국 수준에 버금갈 정도로 '장수 사회長壽社會'를 맞이할 전망이다.
문화 전쟁
1993년 여름, 미국 외교 정책 전략 잡지라 할 《포린 어페어스》에 한 편의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는 그 동안 그 잡지에 실렸던 수많은 글들 중 가장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정치학자 헌팅턴이 쓴 이 기사는 그 사이 유행어가 되어버린 '문명의 충돌', 즉 다른 곳보다도 이슬람 세계와 서구 세계의 경계선에서 엄청난 갈등을 불러오게 될 새로운 세계 질서를 다루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은 헌팅턴의 예언을 '21세기 미국 외교 정책의 청사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쨌든 그 이후의 사태들은 -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 마치 헌팅턴이 만들어놓은 모델 같아 보인다.
우리는 살아생전 문화권간의 테러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9/11은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다. 이는 또한 내일의 노인들이 쪽수를 빌미로 젊은층을 정치적으로 지배하게 되리라는 상상이 상당히 비현실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젊은층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젊은층은 숫자는 적지만 강하다. 정치가, 은행원, 기자, 의사, 간호사도 젊은이들일 것이며, 우리가 투표권을 빌미로 그들을 약탈하려 들 경우 당장 우리에게 저항하려 들 것이다. 위협받고 있는 사회에게 인생 경험과 삶의 지혜에서 나온 자의식을 선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15년 후 이 나라에 살게 될 사람들의 가장 막중한 의무다. 늙는다는 것은 약해지거나 지치는 것이 아니다. 노인들을 허약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위협받고 있는 우리 공동체의 생존 규칙이 될 것이다.
세대 전쟁
세대 전쟁은 여타 다른 갈등이나 전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군대가 등장하지도 않고, 서로 총을 쏘지도 않고, 포로를 잡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세대 갈등은 '전쟁'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투철하고 혁명적인 힘을 발동시킨다.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가 가장 깊은 전쟁이자, 가장 현대적인 전쟁이며, 수천 년 전부터 심리전으로, 말과 모욕의 전쟁으로만 치러졌기에 가장 현대적인 전쟁이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정체성을 파괴해 노인들을 죽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이 언어와 이미지만을 사용한다.
영혼의 전쟁 배후에는 '노화와 경제의 갈등'이 숨어 있다. 이 갈등은 우리 인간 전체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자연은 다른 곳에서도 그러하듯 노인에게서 전 재산을 빼앗으려고 하는 존재들의 스승이다) 노인들이 젊은이들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의 원천이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비난하고 살아 생전 유산을, 다시 말해 재산의 양도를 노린다. 세대간 전쟁은 거의 언제나 지상의 지옥으로 묘사된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욕을 하고 고함을 치고 비웃고, 경멸하고, 저주한다.
미래의 고령화 사회가 야기할 문제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사회, 정치적 문제에 한정될 것이라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국내 정책은 물론 국제 정치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집단적 노화가 몰고 올 문제들과 끊임없이 마주치게 될 것이다. 노화라는 주제가 지구를 오염시키는 전염병처럼 매일매일의 뉴스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늙어가고 있는데, 지구의 다른 끝에서는 여전히 엄청난 출산율과 젊은이들이 넘쳐나기에 고령화의 영향력은 대내외적으로 동시에 우리에게 와 닿을 것이다.
2부. 공모노인 차별에 숨어 있는 특별한 형태의 자기 증오를 몰아내자는 것이 공모다. 미래의 다수를 차지하게 될 노인들을 건망증 심한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낡아 못쓰게 된 쓰레기 취급을 한다면 우리 사회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노인 차별을 묵인한 결과 우리가 겪게 될 재앙은, 우리 자식들이나 손자들 혹은 미래 세대들이나 먼 세상의 끝을 강타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를 강타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허약하고 늙었을 때, 오래 전 자의식을 잃어버렸을 때다. 노화에 대한 증오와 노화에 대한 두려움은 원초적 폭력이다. 한때 전제군주가 우리 조상들을 지배했듯 우리를 지배하게 될 권력이다. 그들의 지배에 항거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다. 모든 변혁에 선행하는 것, 바로 공모다.'젊음의 망상' 의 끝
세계적인 패션 잡지 《보그Vogue》의 편집장 다이안 브릴랜드는 처음으로 'Youthquake’라는 개념을 사용해 널리 보급한 인물이다. 이 개념은 그 시대의 패션과 팝 음악, 청년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질풍노도의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행복이 되어야 함에도 행복이 되지 못하는 파멸, 거대한 새 소비자 군단을 주문으로 불러낸다. 이 개념은 오늘날까지도 광고를 통해 우리의 의식으로 전달되고 있는 '젊음의 망상'의 출발점이었다. 실제로는 소비자의 다수가 날이 갈수록 늙어갈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성인 소아주의'가 탄생할 것이다. 아이들처럼 말하고 아이들처럼 옷을 입는 40대가 우글거릴 것이며, 텔레비전과 책은 영원한 유년기의 기억을 추억할 것이다. 특히 1970년에서 1985년에 태어난 세대가 그러하다.
진짜 쇼크는 아마 2010년에서 2020년 사이에 일어날 것이다. 1960년에서 197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는 이 10년 동안 전적으로 개인적인 노년의 위기를 겪고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기세가 등등한 우울한 노인상으로 미루어볼 때 엄청난 슬픔과 공포의 분위기가 퍼져나갈 것이다. 또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여러 세대의 노인들이 동시에 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나 사회, 경제적으로 전혀 다르지만 모두가 똑같이 '노인'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결국 전혀 다른 세대들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뒤섞이게 될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세계를 개조했다: '젊음의 망상'이라 부르는 건 구매력 현상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아동기와 청년기라는 개념의 의미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그들의 엄청난 숫자를 통해 세계를 뒤바꾸어놓은 것이다. 그들의 숫자가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젊은이들의 손에 들어가 본 적 없었던 구매력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틴에이저'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던 바로 그 세대가 우드스탁 이후 처음으로 다시 집단적 세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고령화되고 있는 독일이 1950~1960년대의 문화적 경험을 반복하게 되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늙어가고 있으며 죽어가고 있는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이번에도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젊은 사람들은 문화를 통해 사회화되고, 세대로서 규정된다. 늙은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를 대부분 문화에서 길러낸다. 독일 음악 방송 '비바VIVA'의 사장 디터 고르니는 사회 내부에 '블랙홀'이 탄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만 해도 젊은, 아니 어린 구매자들이 팝 스타들의 성공을 도와주었지만, 이젠 그 연령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노인 그룹과 함께 늙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차세대 집단은 너무 적다. 그들의 구매력은 노인들의 구매력과 도무지 경쟁이 되지 않는다. 고령화 사회의 자기 증오와 거부감, 두려움에 맞서 부정이나 모정 같은 다른 감정을 내세울 때, 비로소 우리는 후손들과 교류를 유지하며 그들에게 자식을 낳으라고 격려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노화를 수치스럽게 생각할까?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느낌 사이, 그 감정의 낙차는 앞으로 30~40년 안에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아댈 것이다. 우리의 의식은 시공간이 없지만 우리의 육체는 시간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남은 여생을 셈하는 수단이 될 연금보험의 수학은 인정머리라고는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서른, 마흔, 쉰, 예순, 그 새로운 전환점마다 우리는 지나간 세월을 두려움과 근심 때문에 즐기지도 못하고 지쳐버린 자신을 저주할 것이다. 그것은 노화를 공적인 의례 행사로 느끼기 때문이며, 텔레비전, 영화, 광고를 불문하고 노인들이 종적을 감춰버렸기 때문에 개인의 노화는 더욱 눈에 띄는 현상이 된다.
자연은 계산을 한다. 우리도 계산을 한다. 사방에서 인간 생명에 투자되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다시 말해 어떤 의료 행위가 값어치가 있는지 계산을 하고 있다. 오로지 그 때문에 노인들은 이상한 수치심을 느낀다. 통장의 잔고가 바닥나거나 도박으로 돈을 몽땅 날렸을 때 느끼는 바로 그런 수치심이다. 물론 자연의 '메시지'는 없다. 자연을 말하지 않는다. "퇴물들은 없애버려라!"라고 자연이 그렇게 말한다는 것을 어디서도 읽은 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아주 엄격하지만 단기적 이윤에 집중하는 농장 경영주의 장부를 읽듯. 우리의 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종의 생존 규칙을 우리의 종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우리의 이야기들은 침팬지 새끼가 엄마에게 받는 끝없는 수업 같은 역할을 한다.
오하이오의 노화 연구에 참석한 베카 레비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이런 분열된 태도가 노화 과정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노화를 부인할, 적어도 사회가 주입한 우울한 노화의 비전을 부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이런 노화의 부정을 어떻게 대할지 지켜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노화를 활짝 팔 벌려 환영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보톡스까지 동원하여 저항하는 게 나을까? 우리는 이 연관관계를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레비는 말한다.
사이버 젊음
이제 우리와 더불어 기술 수준 높은 노년의 단계가 시작된다. 마법의 손으로 만지기라도 한 듯 21세기 초반에 하필이면, 우리가 노년 그 자체를 혁신화할 기술을 만나게 된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 휴대전화는 1960년대의 전축, 대중교통, 텔레비전에 버금가는 기술이다. 노화하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는 그것들의 도움을 받아 2010년에서 2050년까지 다시 한번 집단적으로 사회에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음에 반한 실리콘밸리가 1990년대 말, 처음으로 거대한 노인 자원에게 다시 손을 내민 건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아니 수백억 명의 노인들이 사용자가 되어 네트워크로 밀고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들이 국제적으로 네트워크화된 세계에서 최고령에 이를 때까지 사사건건 개입을 한다면? 이베이에서 아마존까지, 생명 보험에서 구좌 이동에 이르기까지 이미 지금도 인터넷상에선 진짜 사실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노쇠해 정신이 없거나 사회적으로 특이한 존재라는 이유로 '실제 세계'에서 계약을 체결하거나 상품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모든 요인들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세계는 우리를, 미래의 노인들은 어떻게 막으려 하는 걸까?
네트워크화는 일방통행로가 아니다. 노인들은 시스템에 읽힐 뿐 아니라 스스로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를 통해 노인들은 지속적인 불안의 요인이 될 것이다. 인구 통계학적으로 보아 결정적인 2020년대를 바라보며, 영국 정부의 전문위원들은 노소의 엄청난 사회적 충돌을 두려워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그런 충돌이 새로운 유형의 노인 하이테크 범죄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다른 그룹들에서도 볼 수 있듯, 이런 현상은 대형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정보 기술을 통해, 기관과 지식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통해 유혹은 더 강해진다. 전자 세계에선 신체적 능력은 한계 요인이 아니다.
죽음의 비용
복지가 사라진 사회가 인간의 생명 보존에 얼마를 투자해야 좋을지, 후손의 생명과 노인의 생명에 얼마를 투자해야 할지, 이미 사방에서는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그걸 전문 용어로 '바이오 정책'이라 부른다. 현재 태아의 조혈 세포와 유전자 코드 해독에 정신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이 말이, 앞으로 우리의 삶에 동행하게 될 것이다. 바이오 정책은 21세기의 출입문 위에 있다. 그리고 방금 이 문을 들어선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생명의 시작일 뿐 아니라 끝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게 될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드는 날은 죽는 날이다. 노인의 건강복지 비용으로 14달러가 지출되는 데 반해, 아동 1인당 지출 비용은 겨우 1달러에 불과하다. 생의 마지막 몇 달에 복지예산의 70~90%가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건강부 장관이 1990년대 초에 한 말이다. 이런 생명의 상대성은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오래전부터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 생명을 도덕적 의미 및 경제적 의미에서의 비용 요인(후손들의 짐으로)으로 계산하는 경제, 도덕, 사회적 요인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생명 연장 장치를 14일만 일찍 떼어내도 전체 국민 보건 시스템이 개선될 것이라는 추측이 지금부터 나오고 있다. '시스템을 구하기 위해 자기 생명의 이틀을 포기하는 건 이틀 휴가를 삭제하는 것과 비슷하게 유용할 것'이라고 말이다.
보건복지 비용을 둘러싼 논쟁과 나란히 죽음의 절약 효과에 대한 논쟁도 이미 시작되었다. 학자들이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이유는, 이미 1998년의 효용성 논쟁을 통해 경각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의사의 안내를 받는 자살의 합법화를 통해 절감할 수 있는 총액은 비교적 적지만, 우리는 국민복지제도의 가격 경쟁으로 인해 이런 시술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최고 재판소 앞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건강부와 그 직원들이 예산 압박 때문에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의사의 안내를 받는 자살을 선택할 것을 종용할 가능성이 있다. 환자의 고통은 의사의 경제적 명령 때문에 치료되지 못할 것이므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자살을 선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