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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황주환 지음 | 생각의나무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황주환 지음

생각의나무 / 2011년 3월 / 323쪽 / 12,000원



1장. 불편한 말들의 춤




변태變態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아이의 이름과 그 아이를 대하던 교무실의 공기, 그리고 내가 느꼈던 슬픔의 모습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교사 초년 시절, 고등학교에서 만난 그 여학생은 결석을 반복했다. 이틀 등교 하루 결석, 하루 등교 이틀 결석을 반복하는 아이였다. 나와의 대면에서도 아이는 무감하고 무심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도 없었고, 성적은 최하위권이었다. 이 소읍은 이혼이나 빈곤, 가정폭력 등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이 적지 않은 곳이기도 하고, 또 이웃 도시에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밀려오는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그 아이도 그런 아이의 하나였다. 아이가 결석을 반복하자 어머니가 학교로 왔다. 아버지의 부재와 사춘기 아이의 방황, 어머니의 가난 등 당시 아이의 어머니가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거린다.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음료수통 안에 흰 봉투가 놓여 있었다. 열어보니 만 원권 10장이었다. 이름하여 촌지였다. 촌지를 받지 않는 내 나름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하던 대로, 아이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어머니의 마음은 감사히 받겠다. 이 돈은 돌려 드린다. 아이에게 고기라도 사주시라. 나는 단지 담임으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었다."라며 봉투를 돌려보냈다. 그런데 하루인지 이틀인지 바로 뒤에 어머니가 먼 길을 직접 왔다. 교무실 책상 앞에서 내 손을 잡고 다시 흰 봉투를 꺼내시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받아들였으니 봉투는 갖고 가시라고 간곡히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남편 없이 아이를 혼자 키우는 고단함이 묻어나는 얼굴을 내 손에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돈을 받지 않는다면 내가 정한 규칙을 지키는 것으로 나는 만족할 수 있겠지만, 그 상황에서는 내 규칙만을 고집할 수 없었다. 우리가 베푼다는 것이, 사실은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준과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면, 받는 것이 어머니를 위한 것이라는 느낌이 떠올라, 그러겠노라고 코 막힌 소리로 그 흰 봉투를 받았다. 10여 년 전 여관 청소부의 월급에서 10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돌아서던 어머니의 뒷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의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후에, 내가 놓쳤던 것이 무엇인지, 그때는 몰랐다. 세월이 흐르면서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무엇인지 점점 더 분명해졌다. 내가 놓쳤던 질문이 무엇인지 이제는 안다. 학교란 우리 사회의 정확한 축약판이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반영된 축약판이다. 누가 뭐라 해도 선량한 교사들이 다수이고, 아이들의 웃음과 배움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학교의 고통이 상쇄되지는 않는다. 나는 학교란 곳이 얼마나 부조리와 억압과 폭력과 굴종이 혼재하는 곳인지 말하고 싶다. 이는 우리 사회가 그러하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나는 학교와 사회를 한 뿌리로 보기에. 내가 하는 학교 이야기가 단지 학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느낀 대로 말하고 싶다. 누군가에게라도 말하지 않고는 이 통증을 견디지 못할 것 같기에, 혼자라도 내지르고 싶은 것이다. 내가 내지르는 거친 통증의 말들이 당신을 불편하게 하더라도, 직접 체험한대로 토해내고 싶다. 치유는 고통을 정확히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기에, 어설픈 봉합보다는 냉정한 절개를 택하겠다. 불편한 말들이 춤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학교와 아이들에게 보내는 내 나름대로의 책임임을, 그리고 이제 중학생이 된 내 딸에 대한 사랑의 표현임을, 의심하지 않는다.그리고 나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의 변화가 일어났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변태變態해온 것이다.

왕의 자비를 기다리는

학교장이 교사를 체벌했다는 기사가 인터넷을 달구었다. 학생들의 복장과 두발지도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교장이 학생들 앞에서 교사를 엎드리게 하고 엉덩이를 때린 것이다. 교장이 교사를 체벌할 정도라면 평소 그 학교의 문화가 어떠한지는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가는 바다. 족벌체제의 그 사립재단과 학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을 것이고, 평소에도 학생이나 교사들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기사를 접한 동료교사들은 개탄을 금치 못하며 모두 학교장을 비난했다. 그러나 나는 맞은 교사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런 학교문화를 가능하게 한 책임은 교사들에게도 일정 부분 있는 것이다. 교장만 탓할 일이 아니다.

나는 성정性情이 편협한 까닭인지, 이 땅의 학교장에게 결코 후할 수 없다. 얼마 전 공정택 서울 교육감 재직 시 드러난 매관매직 사례나, 수학여행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적발된 60여 명의 서울지역 교장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어떤 권력이든 부정을 저지르지만, 학교장의 그것은 전국적으로 일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이다. 새로 지은 건물에 비가 줄줄 새는 것에서 학교 각종 공사의 10%는 리베이트라는 소문(40% 이상이라는 놀라운 설도 있다)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교장의 독선과 자기보신을 접해 본 사람이라면 학생 학부모의 입장이란 왜 애당초 씨도 먹히지 않는지 알 것이다.

그러나 군산의 회현중학교 이항근 교장은 '교장이 힘들어야 교사들이 아이들을 잘 가르친다'며, 운동장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철제구조물을 직접 설치한다. 자신에게 교장이란 잠깐 받은 보직일 뿐이기에 교장은 교사와 학생을 섬기는 자리라며, 교장 명패도 없이 교사 일을 똑같이 한다. 광주 치평중학교 정병표 교장은 목요일 오후 교직원 총회에서, 행정실 직원을 포함한 전교직원이 참가하게 하여 학교 주요 사항을 결정한다. 쓴소리를 많이 하는 교사에게 '쓴소리상'을 주며 격려하고, 학교운영에 모든 구성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보장한다. 교사와 학부모들의 추대로 교장이 된 정읍의 수곡초등학교 이석문 교장을 비롯해 경기 남한산초등학교, 경북 상주 남부초등학교, 충남 거산초등학교 등 학부모 학생들로부터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킨 곳은 모두 학교장과 교사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낸 성과였다.

교과부는 교장승진 개혁의 하나로 몇 년 전부터 '교장공모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런 몇몇 성공사례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는 허울에 불과하다. 작년에는 131개 학교에서 교장공모제로 교장을 뽑았지만, 평교사에게도 지원자격을 개방한 '내부형공모제'는 겨우 5곳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기존 교장자격자만을 대상으로 한 '초빙형공모제'를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초빙형공모제는 교장자격을 따기 위한 폐해는 그대로 방치했을 뿐 아니라, 공모 교장의 임기는 교장 임기 8년에 포함되지 않는 법령을 악용해 교장의 임기 연장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내부형공모제든 교장선출보직제든, 누가 제도개혁을 추동할 것인가? 또 이 제도가 도입되지 않으면 학교개혁은 불가능할까? 이 모든 개혁의 주체는 교사가 되어야 하지만, 교육현장은 그렇지 못하다. 교사들은 '그런 제도가 도입되겠는가?'라며 무력하고, '내게 무슨 힘이 있는가?'라며 교장을 탓하기만 할 뿐이다. 심지어 학교장도 '내게 무슨 힘이 있는가?'라며 교육청을 빌려 자신의 권력남용을 변명한다. 제도개혁도 내부개혁도 이끌어낸 의지가 없다. 모두 남 탓으로, 누군가가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노예의식이,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있다.

'자비로운 권력'이 형용모순인 것처럼, 적어도 내가 아는 역사에서 자비를 베푼 권력은 한 번도 찾지 못했다. 권력은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머금지만, 권력의 미소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의 표정관리가 아니던가! 대통령이 머리띠 동여매고 투쟁하지 않는 것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온화한 미소로 대국민 담화를 할 수 없는 것은, 인품의 차이가 아니라 권력의 차이인 것이다. 노예 취향을 가진 자들은 그런 권력의 미소에 자비를 느끼는 법이다. 그리하여 학교장이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는 투정이야말로 어리석은 '백성'의 무지일 뿐이다. '시민'의 임무는 왕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권력을 '삭제'하는 것이어야 하듯, 교육권력도 해체시켜야 한다.

불합리한 제도를 타파할 의지도 없고, 스스로 권력에 대적하지도 않으면서, 남 탓하는 것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은 자들은, 자기의 권리를 갖지 못한다. 그들은 때리는 교장이나 맞는 교사를 비웃어서도 안 된다. 교장에게 매를 갖다 바친 교사들이 어떻게 그들을 비웃을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아이들은 작은 일에도 쉽게 감동하거나 힘을 얻기도 한다.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을 생생하게 다시 불러내 펼쳐놓기도 하고,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것으로 훗날 용기를 얻었다고 전해줄 때, 교사란 과분한 복을 받는 직업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내가 사소하게 여겼던 언행에 깊이 상처 받았을 테고, 의식하지 못한 짜증을 오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또 교사란 자기도 모르게 죄를 짓는 직업이기도 하다. 이러나저러나 교사란 자기 자신을 경계해야 하는 자리인 것은 분명하다.

아이든 어른이든 모두 사랑받고 싶어한다. 태어나자마자 울고 싸고 먹는 행위를 통해 '나는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한다. 이때 부모와 충분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자기존중감'은 손상되고, 그래서 일탈행동의 상당 부분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결핍감은 적개심이 되어 이리저리 뻗어 나와, 상대를 공격할 뿐 아니라 자신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몸은 자랐지만 성숙하지 못한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로 남게 되는데, 이는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교사가 학생을 바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지시와 몇 마디 말로 사람이 바로 바뀐다면, 세상은 얼마나 쉽게 아름다운 곳이 되겠는가. 그래서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마음에 없는 반성문을 쓴다고 해결될 일이란 없다. 바로 변하지 않는다고 다그치지만, 그것이야말로 굴종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 당장 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지금 당장 눈앞의 변화를 강제하는 것은 폭력에 가깝다. 그래서 교사는 기다려야 한다. 교사는 아이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고통과 결핍을 받아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아이는 자기가 받아들여진다고 느끼면 그때 변화를 준비한다.

우리 모두 사랑받고 싶어하기에, 교사인 "나도 여러분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낄낄거린다. 존중과 사랑은 다르지 않고, 자기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존중할 수 있는 법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어느 누구에게서 함부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처럼, 너희들도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사랑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렇게 자존심을 가진 사람만이 굴종하지 않고 불의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세상의 변화란 단박에 몸을 뒤집듯 하는 것이 아니라, 사탕 한 알처럼 작은 마음들에서 비롯한다고 믿게 되었다. 아주 작은 것의 시작에서, 세상은 몸을 틀기 시작한다고… .

나를 바꿔준 책들에 대하여



악의 평범성과 말의 쓸모 -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명성만큼이나 논란이 많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 예상했던 것보다 영감이 풍부한 책이다. 독일 나치의 영관급 장교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럽 전역의 유대인을 '이송, 재정착'시켜 '최종해결책'에 이르게 한 총괄 실무 담당자였다. 물론 그는 보다 높은 자의 명령에 따랐기에 그가 학살정책의 입안자도 아니고, 또 그 혼자 모든 것을 행한 것도 아니다. 종전 후, 그는 아르헨티나로 숨었다가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납치되어 법정에 서게 된다. 유대인인 한나 아렌트는 나치가 발호하자 뉴욕으로 망명했다가, 1961년 예루살렘에 와서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전범을 처벌하는 차원에서라면 재판은 어쩌면 간단한 문제일 수 있겠지만, 아이히만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발언하기 시작했다. 아이히만의 변호사가 내세운 주된 변론은, 그의 행위는 당시 존재하던 나치체제의 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히만은 복종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고, '자신이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자신이 받은 명령이란 무엇이었던가? 수백만 명의 남녀와 아이들을 상당한 열정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유대인 조카를 살려준 일을 자신의 의무와 양심을 위반한 것으로 여겨 상관에게 자기의 죄로 고백하기도 했다.

아이히만의 언어는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의무와 양심과 이상과는 다른 언어사용법인 것이다. 그가 자신의 이상과 양심을 말하고 자신이 받은 명령만을 이야기할 때, 더 이상 타인과의 소통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자신만의 언어사용법에 함몰되어 그의 언어는 현실과 닿지 못하는 공허한 것이 되었다. 특히 아이히만은 칸트의 도덕교훈에 따라 살아왔다고 증언했는데, 이는 그의 언어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칸트는 '맹목적인 복종을 배제하는 인간 판단 기능'으로서, 자신이 자기행위의 입법자가 되어야 한다는 도덕명령을 말했다. 그런데 아이히만에게는 히틀러 총통의 의지와 명령이 자기행위의 입법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렌트는 이런 '무사유無思惟를 악惡'이라고 규정했다. 명령을 내리는 그 권위가 곧 정의가 되며 자신은 판단하지 않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을 '무사유와 악의 이상한 상호결합'이라 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은 마치 어머니의 말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유아처럼, 선악을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편안한 양심'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아이히만의 죄는 불성실 때문이 아니다. 아렌트의 지적처럼, 아이히만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굉장히 성실했지만,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자였던 것이다. 그의 죄는 복종에서 나왔다. 복종을 덕목으로만 아는 무사유에서 말이다. 그래서 단지 자신의 일에 성실하다는 것으로 그 사람이 곧 정의롭거나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우리 주변에서도 단지 조직논리를 앞세우는 상황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고, 그래서 내가 하는 것이 죄가 되지는 않는다."라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렌트는 자기 자신이 전체의 '작은 톱니바퀴의 이'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은 자신의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고 느끼지 않았다고 해서 혹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했다고 해서, 자신의 행위가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남들이 집단적으로 모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또 죄에 대한 자각이 없다고 해서, 자신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사람의 행위는 그 사람 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이지 집단으로 환원시킬 수는 없다는 말이다.

덧붙여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책에서 제기하는 도덕, 정의, 죄, 악의 문제는, 그대로 이스라엘에게 다시 던질 수밖에 없는 물음이라는 것이다. 홀로코스트만이 인류에 대한 유일한 범죄도 아니었고 인류의 가장 부끄러운 기억도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로 글을 맺을까 한다. 2008년 말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포위하고 무차별 폭격하여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무방비로 죽어갔다. 그때 도시락과 망원경을 준비한 젊은 이스라엘 남녀들이, 전장 가까운 곳에서 폭격을 지켜보며 '브라보'를 외치던 사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그때 감정의 기억이, 슬프고도 길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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