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텔레비전의 소멸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 아카넷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아카넷 / 2011년 1월 / 296쪽 / 13,000원
매스 시대는 끝났다 - 무엇이 살아남는가?'매스mass'의 소멸: 지금 일어나고 있는 매스미디어 붕괴는 철저하게 구조적인 문제이다. 그럼 구조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첫째는 매스미디어의 '매스'가 소멸하기 시작한 것이고, 둘째는 미디어의 플랫폼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매스'의 소멸에 대해 생각해보자. 매스가 사라진다는 것은 최근에 언급되기 시작한 말이 아니다. 광고와 영업 세계에서는 1980년대부터 나온 말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 일본 최대의 광고 회사 덴쓰에 후지오카 와카오라는 재치 있고 능력 있는 프로듀서가 있었는데, 그가 1984년에 발표한 『안녕, 대중 - 감성시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이전에는 소비자를 성별이나 연령, 학력, 직업, 소득 등 물리적인 속성으로 분류하여, 비슷한 속성을 가진 사람은 비슷한 것을 사고 싶어 한다는 것('전업주부라면 이런 요구를 한다' 등)이 대전제였다. 이처럼 가난한 시대에는 이제부터 시작될 풍요로운 생활에 대한 이미지를 세우고, 그 이미지를 향해 소비자를 끌어당기면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 '쇼와겐로쿠(경제 성장기의 천하태평시대를 일컫는 말)'로 불리는 시대가 되자, 그러한 풍요로움이라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 그러자 더 이상 매스 마케팅은 통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후지오카는 "지금까지는 소유의 풍요로움, 즉 '해빙(having)' 시대였지만, 앞으로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비잉(being)' 시대가 된다"고 예측하고, 이로써 사람들은 물건을 감성이라는 매우 개인적인 동기에 따라 사게 된다고 말하면서, 이것을 대중이 아니라 '소중(少衆)'이라고 이름 붙였다.
'대중'에서 '소중ㆍ분중'으로: 6개월 후 하쿠호도 생활종합연구소도 『'분중(分衆)'의 탄생 - 뉴피플을 잡는 시장전략이란』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런 두 권의 책에 의해 1980년대 중반의 거품 시대 전후 급격히 '소중(少衆)ㆍ분중(分衆)' 붐이 일게 되었다. 참고로 후지오카의 책에는 꽤 흥미로운 내용이 실려 있다. 대중 시대와 분중 시대의 텔레비전을 보는 이유가 다르다는 것이다. 즉 대중 시대에는 유행을 따라잡고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텔레비전을 보지만, 소중 시대에는 모두가 "대중과 같이 취급받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강해져, 텔레비전은 일반 대중의 기호를 알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매스미디어 다음에는 무엇이 오는가?: 『안녕 대중』은 이런 '매스'의 현상분석에 대해서는 상당히 잘 다루고 있지만,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바로 매스가 끝난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가에 대한 비전이 빠져 있다. 책 속에 쓰여 있는 "이제부터는 감성 시대이다."라는 애매한 단어만으로는 약하다. 물론, 지금 우리는 그것이 어떤 사회인지 알고 있다. 왜냐하면 21세기 초반의 일본, 지금이야말로 매스가 소멸된 새로운 사회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아이튠즈에 넣어서 듣고 있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매스미디어의 반격: 덴쓰와 하쿠호도의 이 '소중ㆍ분중'론은 당시 매스미디어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예를 들어 TBS 계열의 JNN 네트워크 협의회는 『안녕, 대중』이 나온 1년 후인 1985년 여름, '새로운 대중의 발견과 창조 - 과연 대중은 소실되었는가. 분중ㆍ소중론을 뛰어넘어'라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 참석자 가운데 당시 TBS 조사국 조사부장인 우에무라 타다시는 후지오카의 소중론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했다.
"솔직히 어떻게 이런 책이, 이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우선, 첫째로 전체에 아전인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소중론, 분중론에 적합한 사실만을 인용하고 그에 맞지 않는 것에는 완전히 눈을 감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현상에는 좀 더 큰 흐름이 있습니다. 분중ㆍ소중론과는 관계가 없는 커다란, 나중에 오하시(《닛케이 비즈니스》 기자) 씨가 발표할 내용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대중 시장은 존재하며, 여러 가지 히트 상품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에는 눈을 감고, 마이너적, 하라주쿠, 롯본기, 아오야마 근처의 작은 카페바, 부티크, 비스트로의 성공 사례, 그런 것을 과도하게 가져온 형태로, 상황에 걸맞는 사실만을 과장해서 상당히 소중한 사실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매스 부정'에 대한 반발은, 1980년대뿐만 아니라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TBS 계열사의 제작국장인 다시로 후유히코는 2006년 12월,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연속해서 열린 JASRAC의 기부 강좌 '콘텐츠 산업론'에서 '매스는 죽었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의했는데, 다시로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모두가 같은 것을 보는 시대는 끝났다는 말은 과거에도 여러 번 나왔지만, 그 후에도 메가 히트 상품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대중이라는 개념은 사라지지 않는다.'
텔레비전은 바보가 되고 싶을 때 본다: 돌이켜보면, 덴쓰의 후지오카가 지적한 것처럼 모두가 같은 상품을 산다고 하는 대량소비 시대는 이미 1980년대에 끝났다. 하지만 미디어 세계에서는 소비의 대중 시대가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매스가 계속해서 살아남았다. 패션이나 자동차나 라이프스타일에서는 소중화가 진행되어 좀 더 세분화되고 있었음에도 1990년대에는 여전히 "모두가 같은 인기 프로그램을 본다", "모두가《아사히 신문》을 구독한다"는 매스 모델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디어 공간에서도 매스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읽는 잡지, 신문이라는 것은 사라지고, 각각의 권역 정보를 전하는 미디어만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일본인 전체를 위한 미디어'를 기대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것이 매스미디어를 붕괴시킨 원동력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제2의 물결_ 플랫폼화: 또 하나 매스미디어의 구조적 문제는 미디어의 플랫폼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화는 어떤 것일까? 지금까지의 신문은 '기사를 쓰는 사람', '신문 지면을 만드는 사람', '지면을 인쇄하는 사람'이 모두 같았다. 즉 신문사라는 기업에 소속된 사원이 기사를 쓰고 지면을 만들고, 인쇄하여 판매점에 배달하는 것이다. 판매점은 신문사와는 별개의 기업이지만, '전매점'이라는 형태로 네트워크화되어 있어 결국은 수직통합이다.
구글의 오이카와 타쿠야는 이것을 '콘텐츠', '컨테이너', '컨베이어'라는 세 개의 층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콘텐츠는 기사 그 자체이고, 컨테이너는 그런 기사를 운반하는 용기, 그리고 컨베이어는 용기에 해당하는 컨테이너를 배달해주는 시스템이다. 신문으로 말하자면, '콘텐츠 = 신문 기사 / 컨테이너 = 신문 지면 / 컨베이어 = 판매점' 이 되는 것이다. 텔레비전도 다음과 같이 이와 비슷한 수직통합 모델로 되어 있다. 콘텐츠 = 프로그램 / 컨테이너 = 텔레비전 / 컨베이어 = 지상파, 위성방송, CATV
뉴스는 야후의 동영상으로: 하지만 이 수직통합 모델은 지금 파탄에 직면해 있다. 수직통합이 산산이 부서져 수평분산으로 이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신문 기사를 읽는 습관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전에는 판매점에서 배달된 신문을 우편함에서 꺼내 그 속에 게재되어 있는 기사를 읽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에서도 신문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이니치신문》이나 시사통신 기사는 야후 뉴스에서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조금 전에 소개한 삼층 모델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버린 다. 콘텐츠 = 신문 기사 / 컨테이너 = 야후 뉴스 / 컨베이어 = 인터넷
이전까지만 해도 세 층을 모두 신문사에서 지배하고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무려 세 층 가운데 두 층이나 다른 데에 빼앗기고 만 것이다. 물론 신문사는 자사의 웹 브라우저도 가지고 있다. 만약 독자가 그런 공식 사이트를 경유해서 신문 기사를 읽는다면 다음과 같이 신문사 지배가 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콘텐츠 = 신문 기사 / 컨테이너 = 신문사 사이트 / 컨베이어 = 인터넷
이렇게 되면 세 층 가운데 두 층까지는 신문사가 지배할 수 있다. 이 존재 방식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인터넷 시대에도 신문사는 강한 존재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최근에 인터넷에서 신문 기사를 읽는 방법이 다음과 같이 더욱 세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 신문 기사 / 컨테이너 = 야후 뉴스, 검색엔진, 누군가(불특정 다수)의 블로그 / 컨베이어 = 인터넷
아이튠즈 스토어와 유튜브의 대두: 음악은 벌써 예전부터 다음과 같이 되었다. '콘텐츠 = 음악 / 컨테이너 = 아이튠즈 스토어 / 컨베이어 = 인터넷'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이다. 아직 인터넷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주류는 아니지만, 유튜브 등의 등장으로 다음과 같이 조금씩 수직통합은 흩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콘텐츠 = 프로그램 / 컨테이너 = 유튜브 / 컨베이어 = 인터넷 물론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마음대로 유튜브에 올리고 그것을 모두가 보는 것은 저작권 침해이고, 일본에서는 방송사가 일제히 유튜브에 항의하여 '저작권 침해 프로그램을 올리는 것을 금지시키도록' 제의하고 있다.
표제 게재는 저작권 침해인가?: 신문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 신문사 가운데 인터넷에서 철수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인터넷은 우리 기사를 무단으로 유용하고 있다"고 불평하면서도, 인터넷에 계속 기사 재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터넷에 대한 이중적 자세는 신문만이 아니라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이다. "유튜브는 저작권 침해이다"라고 화를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유튜브에 다가가려는 콘텐츠 기업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 선진국인 미국에서 그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2009년 4월 유튜브는 소니 픽처스와 MGM, 라이온즈 게이트 등의 영화사, 더 나아가 CBS, 영국 BBC 등의 방송국과도 제휴해,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의 콘텐츠를 무료로 전송하는 데 합의했다.
적에서 사업 파트너로: 이렇게 해서 영화사와 방송국이 유튜브에 접근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 텔레비전 방송국은 아직도 여전히 유튜브를 적대시하고 있지만, 아마도 앞으로는 미국처럼 손을 잡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신문, 텔레비전은 전전긍긍: 그럼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컨테이너와 컨베이어를 빼앗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세 개의 파워(1. 어느 기사를 읽도록 하고, 어느 프로그램을 보도록 하는 컨트롤 파워 2.어떤 광고를 콘텐츠에 맞추어 배송하는 광고 파워 3. 콘텐츠의 요금을 부과하는 결제 시스템) 를 빼앗긴다는 의미이다. 그럼 신문사와 방송국이 빼앗긴 이러한 파워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물론 그런 파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파워의 중심이 신문사나 방송국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럼 어디로 옮겨가는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컨테이너 부분을 쥐고 있는 기업으로 파워가 이동하는 것이다. 참고로 지금까지는 신문사 편집국이 "이 기사는 일면 톱으로, 이 기사는 사회면 구석의 일단기사"라는 식으로 기사의 경중을 판단해 레이아웃을 정하고 독자를 유도했다. 이것이야말로 '편집권'이다. 텔레비전에도 마찬가지로 편집권이 있다. 그래서 편성국이라는 평범한 직장은,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보도국보다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제작하는 제작국보다도 훨씬 권한이 강하고 엘리트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해온 것이다.
편집권을 빼앗긴 신문: 그런데 인터넷 시대가 되면 신문 기사 중에서 어떤 기사를 읽게 할 것인가는 야후 뉴스 편집부에서 정한다. 동영상 콘텐츠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더욱이 광고의 배송도 컨테이너 부분으로 옮겨진다. 예를 들어 아사히컴 같은 신문사 웹 브라우저에서는 톱 페이지의 배너 광고가 가장 수익률이 높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의 사람은 신문사 톱 페이지 따위는 보지 않고 야후 뉴스나 구글의 검색엔진으로 기사를 읽게 되었다. 당연히 야후 뉴스 광고나 구글 검색엔진에 뜨는 광고가, 신문사 웹 사이트 광고보다 훨씬 큰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제로섬게임의 미디어 산업 / 매스미디어는 더 이상 신이 아니다: 그렇게 파워를 야후와 구글이나 유튜브에게 빼앗긴다면 이제 매스미디어는 인터넷 따위는 무시하고 종이나 전파를 특화하면 좋지 않을까? 미디어 산업은 상당 부분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광고 시장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줄곧 '국내 총생산의 1%'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한 번도 국가 전체 성장률을 뛰어넘어 성장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일정액의 광고비를 지금까지는 텔레비전과 신문, 잡지, 라디오라는 4대 매스미디어가 나누어 가졌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인터넷이 들어와 이제는 인터넷 광고비가 잡지와 라디오를 따돌리고 곧 신문도 따라잡을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당연히 인터넷 광고의 증가에 맞추어 텔레비전이나 신문의 광고 수입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제로섬게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에 등을 돌린 채 종이와 전파만으로 밥을 먹고 살아간다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점점 축소재생산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뿐 얻는 것은 적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려고 해도, 이번에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일어선 인터넷 기업에게 컨테이너 부분에서 밀려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아무튼 매스미디어가 신인 시대는 이미 끝났다. 하지만 아직도 매스미디어 업계 종사자의 상당수가 그것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아니,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눈을 감으려고 하고 있다.
컨테이너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수직통합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신문사와 방송국은 단순한 콘텐츠 제공업자가 되었다. 파워는 컨테이너를 쥐고 있는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 시대이다. 컨테이너를 쥐고 있는 자야말로 플랫폼의 지배자, 즉 쥐고 있는 사람이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플랫폼이 되어간다. 다시 말해 플랫포머(플랫폼을 잡는 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매우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수직통합이 완전히 무너져 수평분산되는 구조는 놀랍게도 매스가 소멸하여 하나하나의 권역이 분산되어가는 상황과도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반대로, 매스가 소멸하여 진정한 의미의 '소중ㆍ분중'이 생겨났기 때문에, 수평분산을 뒷받침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즉 매스의 소멸과 플랫폼화는 표리일체의 현상인 것이다.
신문의 패배 - 이제는 미들미디어의 시대이다미들미디어에서 정보 대폭발: 매스가 사라진 다음에는 도대체 무엇이 찾아오는 것일까? 그것은 미들미디어이다. 미들미디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매스미디어도 퍼스널미디어도 아닌 중간적인 권역에 해당한다. 미디어를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전달하는 범위에 따라 1. 퍼스널미디어(연애편지나 개인적인 메모, 혹은 주변 친구밖에 읽지 않을 신변잡기의 블로그 등 적은 인원 사이에서 공유되는 정보), 2. 미들미디어(특정 기업이나 업계, 특정 분야, 특정 취미의 사람 등, 수천 명에서 수만 명 규모의 특정층을 대상으로 전송되는 정보), 3. 매스미디어(텔레비전이나 신문 등 수백만 명에서 수천만 명에게 전송되는 정보)로 분류해보자. 이 가운데서 실제로 받는 사람의 요구가 가장 큰 것은, 두 번째의 미들미디어이다.
1990년대까지는 이 미들미디어를 유통시키기가 어려웠다. 미디어라고 하면 종이나 전파 정도밖에 없었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전파는 면허제이기에 이런 미니커뮤니케이션 잡지 미디어에서는 손을 댈 수 없고, 종이는 인쇄와 제본, 유통에 비용이 든다. 그런데 인터넷의 출현으로 미들미디어처럼 수천 명에서 수만 명 정도의 사람에게도 싼 가격에 정보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둑이 무너진 것처럼 미들미디어가 폭발적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정보 대폭발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이처럼 많은 정보가 사회 안을 떠돌아다닌 적은 없었다. 이러한 미들미디어의 정보 대폭발은 지금까지 매스미디어가 쥐고 있던 플랫폼을 아주 멋지게 무력화시켜버렸다. 이것이 매스미디어 붕괴라는 패러다임 시프트(인식의 전환)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