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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대한 오해와 편견

토머스 조이너 지음 | 베이직북스
토머스 조이너 지음

베이직북스 / 2011년 1월 / 414쪽 / 15,000원



1장 자살 심리




오해와 편견 - "자살은 손쉬운 탈출구며, 비겁한 사람이 쓰는 방법이다"

심각하고 무서운 정신질환: 우리는 자살을 열망하는 사람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겁을 먹고 도망친다는 사실에서 자살을 실행하는 일이 실로 어렵다는 관점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는다. 이뿐만 아니라 자살을 하기 전 연습을 통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도 자살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자살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 위해 무슨 짓까지 하는지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알 수 있다.

2007년 미시간 주에서 한 남자가 단두대의 부품을 구입하여 숲 속에 단두대를 짓고는 그 단두대를 이용하여 자살했다. 그 현장을 조사한 경찰은 "단두대를 짓는 데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렸는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이 남자는 정말로 자신의 목숨을 끝장내고 싶었던 모양이에요"라고 말했다.

2007년 3월 애틀랜타 주에서는 두 남자가 함께 원형톱을 이용하여 팔을 잘라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양팔을 자르고는 자신의 한 팔을 잘랐다. 여기까지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데 사건은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집주인이 두 남자의 유서를 발견하고 경찰에 연락한 것이다. 제때 도착한 경찰 덕분에 두 남자는 목숨을 건졌다.

어떤 방법으로 자살하려다 실패하면 바로 다른 방법을 동원해 자살하려 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부지기수이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처음부터 아주 치명적인 방법을 선택하며, 잘 되지 않으면 또 다른 치명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여기에서 죽고자 하는 결심이 얼마나 큰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사례들은 '자살은 쉬운 탈출구'라는 편견을 단호하게 반박한다.

결론 - 자살은 절대로 쉽지 않다!: 누군가는 '시지푸스의 신화'에서 카뮈의 말을 빌려 자살이 삶의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고백이라고 주장하면서, '쉬운 탈출구'라는 표현이 자살하는 행위 자체가 쉽다는 말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외면하는 일이 쉽다는 말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쉽단 말인가? 삶의 문제를 마주하는 일보다 쉬운가? 술로 도피하고, 침대에 숨고, 해외로 도주하는 일보다 쉽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자살을 하기 위해서는 수백만 년간 지속된 진화의 산물, 즉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똑바로 마주본 채 눈을 깜박이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자살은 비극적이고, 무시무시하고, 고통스럽고, 끔찍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오해와 편견 - "자살하려는 사람은 미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죽기 전날 구두를 산 라나 클락슨: 여배우였던 라나 클락슨의 죽음을 살펴보며 우리는 이 주제를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클락슨이 어떻게 죽었는지(얼굴에 총을 맞고), 어디서 죽었는지(음악 감독이던 필 스펙터의 저택에서), 누가 그 현장에 있었는지(필 스펙터가 있었다)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의문은 클락슨이 스스로 총을 쏘았는지, 스펙터가 클락슨을 살해했는지의 문제이다. 이 사건의 증거 중에서 주목할 점은 클락슨의 어머니가 증인석에서 클락슨이 죽기 전날 구두를 구입했다고 증언한 일이다.

검사는 왜 클락슨이 자살하기 전날 구두를 사야 했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검사는 자살하기 전날 구두를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클락슨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두를 샀다는 사실은 살인을 증명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자살하려는 사람들도, 살해당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기 전 날 구두를 사는 등의 일상적인 일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점이 스펙터의 무죄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스펙터는 2009년 2급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 정신 작용이 동시에 펼쳐진다. 하나는 누구나(자살의 순간이 임박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하는 일상적인(어떤 의미로는 대단한) 생각이다. "직장을 옮겨야 할까? 이번 주말에는 뭘 하지? 새로 차를 사야 하지 않나? 데이트에 가면 이러저러한 일을 물어봐야 할까? 청혼을 해야 할까?" 다른 하나는 일상과는 거리가 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생각들이다. "지금 당장 죽어버릴까? 그럼 마음이 편해질 텐데. 죽음에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텐데. 지금 당장 끝장을 내버릴까?"

결론 - 삶과 죽음의 치열한 싸움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살한 사람의 마지막 심리 상태를 더듬어 보는 일은 어려울뿐더러 불편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살하는 사람이 실제로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변하지는 않는다. 더욱 어려운 일은 자살하는 사람이 죽음에 대한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주말 계획을 세우거나, 잔디를 깎고 가게에 가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서 그 개념이 진실이라는 사실 자체가 변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향한 마음을 동시에 품는다는 것은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며,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는 오늘 자살하는 사람들이 어제 미래의 계획을 세웠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오해와 편견 - "수많은 사람들은 종종 '충동적'으로 자살한다"

충동적 자살이라는 뿌리 깊은 오해: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자살한다는 편견이 얼마나 뿌리 깊게 퍼져 있는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2004년 메인 주의 《케네벡 저널》에는 한 정신과 의사의 소견이 실렸다. 이 의사는 메인 주의 어거스타에 있는 한 다리에 자살 방지용 철책이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중보건에 큰 위험을 끼친다는 말과 함께 자살의 속성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거기에서 그쳤으면 좋았을 텐데, 의사는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흔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덧붙였다.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람들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런 편견은 꼬리를 감추고 사라질 것이다. 다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결과, 다리를 지나는 동안 사람들은, 아주 극단적으로 충동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조차 뛰어내릴 생각이 들거나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다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과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람을 구분 짓는 기준은 충동적인 성격이나 변덕스러운 기질이 아니다. 다리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버리는 비극적인 사건은 자살을 하고 싶은 마음이 수년간, 수개월간 축적되어 온 결과이며, 자살에 대한 욕망이 기분 장애나 정신분열증, 경계성 인격 장애 같은 정신장애로 더욱 발전된 결과이다.

처벅의 경우: 여기에서 여성 뉴스 리포터였던 크리스틴 처벅의 자살 사건을 살펴보자. 처벅의 자살 사건은 본질적으로 충동적이지 않은 자살이 어떻게 마지막 실행 과정에서 충동적인 면모를 보일 수 있으며, 그 때문에 자살에 이르는 전 과정이 충동적인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처벅은 방송을 하던 중 뉴스를 보도하다 말고 자신을 총으로 쏘아 자살했다. 처벅은 자살하기 전부터 우울증에 시달렸고 가족들에게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해왔다. 4년 전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으며 평소에 그 일을 자주 입에 올렸다. 죽기 몇 주 전에, 처벅은 자살에 얽힌 이야기를 취재하고 싶다고 방송국에 허가를 신청했다. 그 이야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처벅은 한 경찰관으로부터 "확실하게 자살하기 위해서는 특정 구경의 총에 특정한 총알을 넣고 관자놀이보다는 머리 뒤편을 겨누어 쏘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자살하기 일주일 전 처벅은 동료들에게 총을 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방송 중에 자살하면 어떻겠냐고 농담조로 말했다.

자살하던 당일 처벅은 자신이 진행하던 토크쇼를 시작하면서 평소와는 다르게 뉴스부터 읽어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뉴스를 적은 종이에는 자신의 자살을 알리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처벅은 토크쇼의 순서인 꼭두각시 인형 쇼를 위해 인형이 든 주머니를 갖고 있었다. 처벅은 자살하던 날, 혹은 이전부터 그 인형 주머니에 권총을 넣어두고 있었다. 방송이 시작되고 처벅은 몇 가지 뉴스를 전했다. 그 다음 전날 인근 식당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소식을 전할 순서가 되었을 때, 총격 사건의 자료 영상 테이프가 돌아가지 않는 사고가 일어났다. 처벅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최근 일어난 끔찍한 사건들을 가장 빠르고 생생하게 전해주는 채널 40의 정책에 따라 시청자 여러분은 이제 자살 장면을 목격하시게 될 겁니다." 말을 마친 순간 처벅은 총을 꺼내 들고 오른쪽 귀 뒤편을 쏘았다.

처벅이 충동적으로 자살했다고 보는 관점은 모든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처벅은 수년 동안 자살 욕망을 품고 있었으며, 그 욕망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고, 전에 자살을 기도한 전력도 있었다. 총을 미리 사두었고, 방송 중에 자살하면 어떻겠냐는 '농담'을 했고, 주머니에 총을 숨겨두고, 자신의 자살을 예고하는 보도문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처벅의 자살에는 어느 정도 충동적인 면도 존재한다. 처벅이 자료 영상 테이프가 바로 그 순간 돌아가지 않으리라 예상했을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벅은 바로 그 순간 자살을 실행할 시기를 결정했던 것이 분명하다. 처벅의 사례는 전문가를 비롯하여 수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고전적인 사례이다.

처벅은 몇 달 전부터 자살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방송 중에 자살하리란 계획을 세워두었기 때문에 일부러 방송의 프로그램 순서를 바꾸었던 것이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유일한 사안은 바로 자살을 결행할 정확한 시기였으며, 이 결정은 순간의 충동에 따라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이들이 이와 같은 사례를 판단할 때 말 앞에 마차를 두는 실수를 저지른다. 처벅의 죽음을 충동적인 자살로 보는 일은 단지 언제 방아쇠를 당길 것인가에 대한 충동적인 결정에만 초점을 맞춘 채 그 순간을 이끈 모든 계획을 뒷전으로 돌리는 일이다.

결론 -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으려는 사람은 자살이라는 행위를 몇 십 번, 몇 백 번 곱씹어 생각하며 세부 사항을 머릿속에서 그려보기도 한다. 오직 이런 과정을 겪고 난 다음에야 과격하고 치명적인 행동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 정도의 준비로도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다. 자살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자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실제로 자살에 성공하는 사람은 그보다 더 적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몇몇 자살 사례의 세부 사항에서 충동적인 면모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크리스틴 처벅이 자살한 경우가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소한 사항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필자는 이런 혼란이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느닷없이 충동적으로 자살한다는 생각은 자살을 연구하고, 알아가고, 치료하고, 예방하려는 노력을 일시에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살 행동을 이해하고 추적할 수 있다면, 자살 행동을 막고 예방할 수 있는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다. 하지만 자살이 신비스럽게 안개 속에서 나타나는 행위라면 이런 연구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자살을 막을 수 있으며, 이미 자살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미래에 자살할 위험을 안고 있는 이들을 위해 자살을 막고 예방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2장 자살 행동



오해와 편견 - "자살하는 사람은 대게 유서를 남긴다"

어떤 연구에서도 자살하는 사람이 유서를 남기는 비율이 50%를 넘기는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서를 남기는 비율은 0%에서 40% 정도이다. 평균으로 따져 대략 25% 정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가장 낮은 비율을 보인 연구를 살펴보자. 《미국 법의학 및 병리학 저널》에 발표된 1997년 연구에서는 덴마크에서 10년 동안 일어난 분신자살 사례들을 조사했다. 모두 마흔세 건의 분신자살 사건이 있었고, 모두 정치적인 시위나 종교적인 순교와는 상관없는 자살이었다. 여러모로 볼 때 분신자살한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자살한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이를테면 십중팔구는 정신장애에 시달렸고 과거에 자살을 기도한 전력도 있었다. 이들에게는 다른 공통점도 있었다. 마흔세 건의 자살에서 아무도 유서를 남기지 않은 것이다. 유서가 불에 타버렸을 가능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 연구는, 다른 연구와 마찬가지로 유서를 남기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자살하는 사람 네 명 중에 세 명이 유서를 남기지 않는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는 일로 불필요한 심적 고통과 혼란은 벗어버릴 수 있다. 어떤 경우 돈을 절약할 수도 있다. 자살한 사람의 가족을 비롯하여 이따금 숙련된 조사관들조차 유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자살하는 사람이 본래 유서를 남기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가족들은 마음의 정리를 하기 쉬울뿐더러 비싼 조사에 돈을 낭비할 일도 없을 것이다.

결론 - 기억할 것은 유서에 담긴 외로움이 아니라 외롭지 않았던 수많은 순간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유서를 남기는 경우가 생각처럼 많지 않으며, 남겨진 유서에는 통념과는 달리 일상적이고 긍정적인 내용이 많았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아는 일만으로도 감정에 휘둘리기 쉬운 현실 세계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경찰은 물론, 가족들도 유서가 없다는 사실에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보통 자살하는 사람은 유서를 남기지 않으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마음 깊이 단절감을 느낀다는 사실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유서가 남겨져 있다 하더라도, 유서에서 자기 속내를 털어놓는 경우는 드물다. 유서는 보통 사무적인 말투로 일상적인 내용이 담겨 있으며, 결심이나 확신처럼 긍정적인 감정이 표현되기도 한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유서에서 책망이나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유서에 무엇이라 쓰여 있든지 가족들은 그 유서를 쓴 사람이 당시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 심리 상태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대변하지 않는다. 필자의 아버지는 "이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라는 글을 남겼다. 필자가 이 외로운 질문만을 생각하며, 아버지가 행복하고 외롭지 않았던 인생의 수많은 순간을 잊는다면 큰 실수를 저지르는 셈이다.

오해와 편견 - "자살하겠다는 말은 도움을 바라는 외침에 불과하다"

자살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의 심리: 필자는 "말은 쉽지"라는 말과, 말이 행동에 앞선다는 원칙이 자살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내는 데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자살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말뿐이며 자살을 실제 결행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편견이다. 정말 심각하다면 말하는 대신 이미 자살을 실행했을 테니까. 필자는 "말은 쉽지"라는 말은 "보통은 말이 쉽지"라는 말로, "말이 행동에 앞선다"는 원칙은 "보통은 말이 행동에 앞선다"는 원칙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과 원칙에는 분명 예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예외는 야구 경기에서도 나타나며 자살 행동 또한 이런 예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야구 경기에서 예외가 나타날 때는 어떤 행동을 위한 상황이 갑작스레 바뀌면서 선수들이 작전을 다시 짜야 하는 경우이다. 자살 행동에도 대략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자살하기로 굳게 결심을 하고 계획을 세운 사람, 심지어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나 마음의 균형이 다시 삶 쪽으로 기울어진다. 죽음을 향한 열망과 삶을 향한 열망 사이, 상반되는 마음의 시소 놀이는 앞서 살펴보았다시피 자살하는 사람의 심리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주위에 자살할 것이라 이야기하는 시기는 바로 이렇게 아직 결정이 나지 않은 시기, 자살하려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삶과 죽음이 확실하게 끝장을 보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시기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일을 털어놓는 행위, 특히 자살하고 싶다는 말처럼 개인적이고 고통스러운 일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행위는 곧 다른 이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이다. 자신의 주위에 사회적 유대가 이어져 있는지, 그 유대에 의지해도 좋은지를 확인하는 작업인 셈이다. 이 확인 작업의 결과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 상대가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이해심 있게 들어주고 적절한 치료와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마음 속 전투에서 삶이 승리할 것이다. 반면 상대가 무시하는 자세로 일관하며 "넌 언제나 말뿐이야", "관심 끌려고 그러는 거잖아"라는 식으로 대답한다면 삶은 패배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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